베르나노스, 조르주 (1888~1948)

Bernanos, Geor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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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베르나노스.

조르주 베르나노스.


프랑스의 가톨릭 소설가. 비평가. 1888년 2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로렌(Lorraine) 지방의 부르주아 출신인 아버지와 베리(Bery) 지방의 농민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 서 태어나 아르트와(Artois)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예 수회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에 다니면서 발자크(Honordé de Balzac) . 도르빌리(Barbey d'Aurevilly) , 졸라(Emile Zola) 도스토예프스키(F.M. Dostoevsky) 등의 작품들을 탐독하였다. 1906~1913년 사이에 법률과 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왕당파 언론인으로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소렐(Georges Sorel), 드뤼몽(Edouard Drumont), 모 라스(Charles Maurras) 등과 친교를 나누었으며, 신문과 잡지에 많은 기사를 기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희곡 작품 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그는 희곡 작품을 쓰지는 못하였지만 극작가로서 그가 가진 재능은 훗날 그의 소 설과 수필들에서 유감없이 드러나며, 그의 사후에 《모욕 당한 아이들》(Les Enfants humiliés, 1949)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그의 일기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베르나노스 는 이미 군 복무를 마쳤음에도 전쟁에 참여하여 여러 전 투에 참가하였고, 휴전이 되자 보험 회사 조사원으로 일 하였다. 1917년에 결혼하여 1933년에 여섯 아이의 아 버지가 된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쉴 틈 없이 일했지 만,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중병에 걸려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그는 사십이 다 된 나이에 첫 작품 《악마 의 태양 아래서》(Sous le Soleil de Satan, 1926)를 발표하였 는데, 아르스의 본당 신부의 체험에 바탕을 둔 이 작품으 로 큰 성공을 거두자 그는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로 들어 서 이듬해 《사기》(L' Imposture)와 《기쁨》(La Joie)이라는 두 권의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 려움들과 계속되는 심각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1934년 에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고, 스 페인의 발레아레스 제도(諸島)에서 1937년까지 머무르 면서 스페인 내전(1936~1939)의 참상과 고통을 목격하였 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죄악에 대한 젊은 성직자의 싸움을 묘사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Le Journal d'un Curé de Campagne)를 1936년에 발표하였으며, 이듬해 《무세트의 새로운 이야기》(Nouvelle Histoire de Mouchette)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스페인 내전으로 베르나노스의 가족은 분열되 고 말았다. 즉 그의 장남은 스페인의 파시스트적 팔랑헤 당(Falange)에 가담하였으나, 베르나노스는 수필집 <달빛 아래의 큰 묘지》(Les Grands Cimetières SOUS la lune, 1938)에 서 프랑코파를 교조적이며 고문을 일삼는 집단이라고 강 력하게 비난하였다. 스페인 내란 때의 파시스트의 만행 과 그들을 지지한 교회 고위 성직자들을 비난한 이 작품 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37년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지만, 파시스트의 정치적 횡포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1939년에는 뮌헨 협약의 도덕적 타락을 심 각하게 느껴 <진실의 추문>(Scandale dela vérite)이라는 글 을 쓴 후, 1940년에 다시 가족을 이끌고 브라질로 망명 하였다. 그곳에서 쓴 《영국인에게 보내는 편지》(Lettre aux Anglais, 1942)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프랑스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44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곧 튀니지로 옮겨 생활하다가 마지막 병석에 누운 뒤 프 랑스로 돌아왔다. 사망하기 직전, 그는 프랑스 혁명 때 순교한 16명의 수녀들을 소재로 한 《가르멜 수녀들의 대 화》(Dialogue des Carmelites)를 완성하고 1948년 7월 5일 뇌이(Neailly)에서 눈을 감았다. 〔사상과 작품 경향〕 베르나노스는 죄악의 문제를 탐구 한 가톨릭 소설가였다. 위대한 것과 자유에 열광하고 심 취하였던 그는 페기(Charles Péguy)처럼 정신적인 것을 추 구한 작가 그룹에 속한다. 타협을 몰랐던 그는 자신의 독 립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 지 않았지만, 자신이 속한 문명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리 스도교적 유산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정하였다. 그것은 《달빛 아래의 큰 묘지》에 "그리스도교적인 명예라는 것 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경외심과 하느님의 사랑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다"라고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인 간적인 심리를 묘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초자연적인 투쟁의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영혼의 구원이기 때문에 순전히 인간적인 모험만으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았 다. 그의 소설은 신학적인 기초 위에 있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선하든 악하든 그의 영혼 속에서 두 가지 경향이 치열하게 대결하는 싸움터일 뿐 이다. 즉 완고한 죄인의 영혼 속에서는 하느님이 그 속으 로 들어가기 위해 악마와 싸우고 있고, 선한 사람들의 영 혼 속에서는 그와 반대로 악마가 하느님과 싸우고 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어중간한 사람의 영혼 속에는 하느님 이 들어가려 하지 않으므로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한 쪽을 분명히 택해야만 한다. 베르나노스의 작품 속에 등장하 는 악마가 깃들어 있는 '참다운' 죄인들은 광포(狂暴)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착한 사람 들이 맑은 영혼의 소유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악마가 그 속으로 뚫고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이상적인 인물들 대신 고뇌로 번민하는 인간상을 묘사하였다. 작품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완전한 인간' 을 꿈꾸었 던 그는, 신앙심과 '어린이 같은 마음' (l'Esprit d'enfance) 과 마음의 가난함을 역설하였다. 그 스스로 '어린이 같 은 마음' 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보다 고귀하고 높은 가치 를 지향하였기 때문이고, 어린이들이 아직 타락하지 않 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 에 순교자나 착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린이 같은 마 음' 을 추구하며 순수한 영혼을 가지려고 하고, 반면에 그것을 잃게 되면 즉시 사탄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가 생각하는 순수한 어린이에 대한 관념은 실제로 그의 유 년 생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글에서 그는 "나의 인생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오직 어린 시절의 내 모습에 일생 동안 충실하길 바랄 뿐이 다"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가난함 또한 그의 전 작품에 걸쳐 끊임없이 반 복되는 주제이다. 그는 가톨릭 교회가 부자들에게 우선 적인 지위를 부여하거나 부(富)를 찬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교회가 가난을 타파하는 데 앞장서서 도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오히려 그는 교회가 가난한 이 들에게 가난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가난이 지니고 있는 승고하고 고귀한 의미를 드러내 보여야만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는 인간이 경험하는 가난과 고통 을 그리스도 수난의 반영으로 보았던 것이고, 베르나노 스의 관점은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평 가〕 베르나노스가 제기하는 문제들과 그의 작중 인물들의 심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을 표현하고 묘사하 는 극적이고 환상적인 힘, 열정적이면서 직선적인 어조, 서정적인 열정, 격렬한 열기 등은 미신자들에게도 충분 한 공감을 일으키며 감동을 준다. 그의 글은 많은 부분이 가장 열광적인 낭만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면은 장점 외에도 낭만적 요소가 지나칠 때 나타 나는 결점도 갖고 있다.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재능은 훌 륭하였지만 말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사상은 사라지고 서 술이 혼란스러웠다. 그의 장점과 단점은 수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 수필을 쓸 때는 줄거리 때문에 제약받을 필요가 없으 며, 작중 인물의 입을 통해 이야기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그는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천부적인 비평가인 그는 강력한 요구와 단호한 결정으로 통렬한 능변을 던진다. 하지만 그는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모 든 무기력과, 인간을 짓밟는 모든 압제에 대항한 사람이 었다. 그는 순결한 마음의 가치와 그 힘을 믿었다. "오늘 날에 있어서도 문제는 여전히 질서에 의한 정의가 이기 느냐, 정의에 의한 질서가 이기느냐 하는 것을 아는 일이 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는 복음서에 의한 정의라고 분명히 단정 지었다.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참고문헌  André Lagard · Laurent Michard, Les grands auteurs frangais du programme, XXᵉ Siecle, Bordas, 1969/ G. Lanson · P. Tuffrau, Mamuel illustré d'histoires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Classique Hachette, 1974/ Pierre Brunel etc, 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tome 2, Bordas, 1981/ J.-P. de Beaumarchais · Daniel Couty · Alain Rey, Dictiomaire des littératures de Langue française, tome 1, Bordas, 1987. 〔曺圭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