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백서>

假帛書

글자 크기
1
대제학 이만수가 쓴 가백서.

대제학 이만수가 쓴 가백서.

일명 토사주문(討邪奏文). 천주교 신자로 신유박해(1801) 때 처형된 황사영(黃嗣永)의 <백서> 내용을 청나라에 알리기 위해 대제학 이만수(李晩秀)가 1801년(순조1) 10월 20일(음)자로 축소 작성한 문서로, 1801년 10월 진주사(陳奏使) 조윤대(曹允大) 일행이 북경에 전하 였다. <백서>의 원문이 모두 1만 3,331자인 데 비해 <가백서>는 923자로 되어 있다. 조선에서 서둘러 이를 청나라에 보고한 이유는, 첫째 사적(邪賊)인 천주교 신자들의 패륜과 선동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천주교를 탄압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하고, 둘째 신유박해 때 청나라 사람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처형한 사실이 중국에 알려져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가백서>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을 패륜과 선동 행위에 앞장서는 사적(邪賊)으로 표현하고, 주문모 신부는 그 사적들의 괴수로 조선 사람과는 언어나 외양이 다름이 없어 외국인으로 보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 또 천주교 신자들이 서양 선박을 요청한 사실이나 금령을 어기고 중국 선교사들과 연락하려 한 점 등이 강조되고 있는 반면에 황사영이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조선 감호책(朝鮮監護策)이나 청의 종주권(宗主權) 발동 등에 관한 내용은 삭제되어 있다. 현재 그 내용이 《순조 실록》과 이기경(李基慶)의 《벽위편》(闢衛編)에 전하며, 1924년 교회측에서 작성한 필사본이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중 《벽위편》에
는 그 제목이 '진주문초' (陳奏文草)라 기록되어 있다. (→ <백서> ; 황사영)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