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렌, 폴 (1844 ~ 1896)

Verlaine,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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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베를렌.

폴 베를렌.


프랑스의 서정 시인. 〔생애와 작품〕 1844년 3월 30일 북부 프랑스 플랑드 르(Flandre) 지방의 메츠(Metz)에서 프랑스 공병 대위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무척 예민하고 순박한 성 격을 지녔으나 풍족한 환경에서 성장한 탓인지 간혹 무 례하고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던 베를렌은, 아버지 를 여읜 후 1851년에 파리의 보나파르트 중고등학교(지 금의 콩도르세 중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862년 대학 입 학 자격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대학을 포기하고 파리 시 청 공무원이 된 그는 비교적 여유 있는 직책을 맡았던 탓 에 틈틈이 시도 쓰고, 고답파(高踏派, Parnasse) 시인들이 모이는 살롱과 카페를 출입하면서 그들과 사귀게 되었다. 베를렌이 처음으로 발표한 시는 <프뤼돔 씨>(Monsieur Prudhomme)로 1863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3년 뒤인 1866년에 발간된 고답파의 동인 시집 《현대 고답파 시 집》(Le Parnasse Contemporain) 제1집에는 그의 시 8편이 수록되었으며, 같은 해 발표한 그의 첫 시집 《우수 시집》 (Poèmes Saturniens)으로 그는 고답파 시인들로부터 호평 을 받았다. 이 시집에는 고답파적인 신념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정서, 관능적인 표현 및 암시적인 음악성 등 그의 개인적인 특성을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겪 는 정신적인 불안과 우수, 그리고 그의 사촌 누나 엘리자 (Elisa)에 대한 사랑과 우수 등이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1869년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시집 《화려한 향연》 (Fetes Galantes)은 와토(J.-A. Watteau)와 같은 18세기 화가 들이 당시의 호화로운 향연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서 영 감을 받고 쓴 작품으로, 당시의 많은 인물들과 사회 모습 을 묘사하였는데 화려한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항상 침울 한 느낌과 우울감이 깃들어 있다. 고답파의 걸작 시집으 로 알려진 이 시집은 외관상으로는 멋있고 화려하게 묘 사되어 있지만 시인의 남모를 불안감과 비관적인 사상이 숨겨져 있다. 세 번째 시집 《기쁜 노래》(La Bonne chanson, 1870)는 친 구의 사촌 여동생 마틸드(Mathilde Mauté)와의 사랑을 노 래한 것으로서, 그녀와의 약혼 기념으로 발표한 작품이 다. 사랑을 하기 전까지 불안감과 공허감에 사로잡혀 있 던 베를렌을, 그녀는 순수한 사랑으로 행복한 생활로 이 끌었고 무한한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이 시집은 무 척 독창적인 성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문학사 상 이 시집처럼 성실하고 감동적인 작품도 드물다. 순수 한 기쁨과 사랑과 정열을 묘사하고, 가정의 평화로운 행 복을 상상하며 묘사한 이 작품에는, 베를렌이 지녔던 당 시의 안정되고 평화로운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1870년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베를렌은 다음해 파리 코 윈(Commune de Paris)에 가담하여 홍보 담당자로 일했는 데, 그로 인해 시청의 직장을 잃고 술을 마시며 자유 분 방한 생활을 하였다. 1871년 9월 자신보다 열 살 아래인 당시 17세의 천재 시인 랭보(J-N-A. Rimbaud, 1854~1891)를 알게 된 후 그 와 동성애 관계를 가지면서 아내와의 관계가 나빠진 그 는, 결국 결혼 생활의 파탄을 맞았다. 그리고 이듬해 7월 가정을 버리고 랭보와 함께 파리를 떠나 영국에서 생활 하였다. 이 당시 완성되어 2년 뒤에 출판된 그의 네 번째 시집 《가사 없는 연가》(Romances sans Paroles, 1874)는 대 부분 1872~1873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들인데, 랭보의 영향에 영국의 색채가 가미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벨기에와 영국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다음과 같이 서정시로 묘사하였다. "거리에 비가 오듯 내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 내 가슴에 스며드는 이 설레임 은 무엇일까?" 1873년 7월 랭보와 다툰 후 브뤼셀로 혼자 돌아와 아 내와 화해하기 위해 노력한 베를렌은, 자신의 생활을 깊 이 후회하면서 용서를 청하며 재출발할 것을 호소하였 다. 그러나 부인은 이를 거절하고 법적으로 이혼 수속을 마쳤다. 그의 시 〈나쁜 노래〉(Mauvaise chanson)에는 랭보 와 자기 부인 마틸드에 대한 사랑과 갈등, 그리고 동시에 증오심이 절실하게 묘사되어 있다. 재결합에 실패하자 랭보를 브뤼셀로 부른 그는 함께 런던으로 가자고 하였 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선 랭보가 떠나려고 하자 베를렌 은 랭보의 손목에 총상을 입혔고, 다시 총을 쏘겠다고 위 협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유죄 선고를 받고 벨기에의 몽스(Mons) 감옥에서 2년 동안 복역하였다. 뉘우침과 감옥에서의 금욕 등으로 가톨릭에 귀의한 베를렌은,1875년 1월 감옥에서 나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잠시 생활한 후 신앙 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출옥 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파리를 떠나 2 년 동안 영국의 어느 시골 중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프랑 스어를 가르쳤는데, 이곳에서 그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선생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 후 귀국하여 1877년부터 2 년 간은 레텔 중고등학교(Collègge de Rethel)에서 교편을 잡았다. 1881년에 발표한 그의 다섯 번째 시집 《지혜 시 집》(Sagesse)에는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생활을 시작한 후 경건한 신앙심과 과거를 참회하는 심정이 잘 묘사되 어 있다. 이 시집은 1873~1878년에 쓰여진 시로, 일부 는 감옥에서 쓴 작품이고 일부는 출옥 후에 쓴 것이지만, 전 작품을 통해서 같은 어조와 심정을 묘사하였다. 이 시 집은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시형(詩形)이 전통적인 형식 에 벗어나는 산문시이다. 이 시집의 <가스파르 오세르는 노래한다>(Gaspard Hausser Chante)와 <지붕 위에 하늘이 있다>(Le ciel est par-dessus le toit)에서는 그가 느끼는 과거 에 대한 참회와 극심한 고통이 잘 나타나 있고, <무척 다 정한 노래를 들어 쥐요>(Ecoutez une chanson bien douce)에 서는 자기 부인에게 용서를 청하고 있다. 그는 하느님께 겸허하고 열렬하게 지혜를 간구하였으며, 교만 · 증오 · 육욕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순종하고 예수 그리 스도와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의탁하였다. 또한, 하느 님의 사랑에 심취하여 앞으로는 참다운 신앙 생활을 하 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가톨릭 신앙에 새로운 희망을 두 고 삶의 의의를 찾았는데, 이 시집에 이러한 신앙심이 잘 반영되어 있다. 1880년부터 농장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 으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다시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 그 는, 《지혜 시집》이 출판된 직후부터 술을 다시 마시기 시 작하고 과거의 방탕한 생활로 돌아갔다. 만년의 작품들에는 선으로 향하려는 노력과 악으로 기 울어지려는 경향 사이의 동요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미 덕과 죄악 사이에서,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신앙적인 열 망과 타락시키는 육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과 내면 세계를 묘사하였다. 《지혜 시집》에 응답하는 내용 으로 1883년에 그는 여섯 번째 시집 《옛날과 지금》(Jadis et Naguère)을 발표하였는데, 그는 이 시집에서 정신적인 열망과 육체적인 타락 사이의 갈등을 잘 묘사하였다. 그 리고 《저주받은 시인들》(Les poètes maudits, 1884)이란 그 의 산문 작품에서는 당시 문단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 던 말라르메(S. Mallarmé, 1842~1898) , 랭보, 코르비에르 (T. Corbière, 1845~1875) 빌리에 드 릴라당(J-M-M.P-P-A. Villiers de L'lsle-Adam, 1838~1889)을 비롯한 시인 6명의 생애를 다루었는데, 그들의 예술적 가치를 논하여 문단 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이들 시인과 작가들을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1886년 어머니의 사망으로 베를렌은 경제적으로 더 욱 어려움을 겪었으며, 또한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을 전 전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상 징주의 시인들과 퇴폐파(Décadent) 시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 곳을 다니면서 문학 강연을 하였다.르콩트 드 릴(C.-M-R. Leconte de Lisle, 1818~1894)이 사망 한 후 '시인의 왕' (Prince des poètes)이라는 대가(大家)의 칭호를 받은 베를렌은, 1896년 1월 8일 52세의 나이로 파리의 전세방에서 비참한 종말을 고하였다. 〔평 가〕 초기에는 고답파 시인이었지만 후에 상징주의 (symbolisme) 시인의 지도자로 전향함으로써 보들레르 (C.P. Baudelaire, 1821~1867) , 말라르메, 랭보와 함께 대표 적인 상징주의 시인이 된 베를렌은 누구보다도 선천적인 재능을 갖춘 프랑스의 시인들 가운데 가장 순수한 서정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에서 고전적인 운율을 깨 뜨리고 기수 음절(奇數音節)의 시행을 교묘하게 구사하 여 새로운 음악적 효과를 창조하여, 근대 언어 음악의 선 구자이며 낭만주의에서 상징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대표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그는 인간의 내면 세계 를 음악적 효과와 상징을 통하여 표현하였으며, 지성적 인 것으로부터 시를 해방시켜 순수하고 감동적인 내면 세계를 표현하였기에 그의 훌륭한 작품에는 명쾌하고 지 적인 또는 철학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시어 는 간결하지만 내용을 암시함으로써 표현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였다.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참고문헌  André Lagard · Laurent Michard, Les grands auteurs frangais du programme XIXᵉ Siecle, Bordas, 1969/ Pierre-Georges Castex · Paul Surer, Manuel des Etudes littéraires frangaises 5, XIXᵉ Siècle, Hachette, 1950/ G. Lanson · P. Tuffrau, Manuel illustré d'histoires de la Littérature frunçaise, Classique Hachette, 1974/ Pierre Brunel etc, Histoir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tome 2, Bordas, 1981. 〔曺圭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