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 막스(1864~1920)

Weber, Max

글자 크기
5
막스 베버.

막스 베버.


독일의 사회학자. 정치 · 경제 · 사회 · 역사 · 법률 · 종 교 등 문화 현상 전반에 걸쳐 탁월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그는, 여러 영역의 문화를 체계화하고 유형화함으로써 근대 사회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불후의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그가 죽 은 다음 부인과 제자들에 의해 출판되었다. 〔생 애〕 1864년 4월 21일 독일 에르푸르트(Erfur) 지 방 부르주아 가문의 일곱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나 어려서 부터 라틴어 · 역사 · 고전 ·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에르 푸르트 지사(知事)를 역임하고 주로 베를린 시의원으로 활동한 후 프로이센 하원과 독일 제국 의회의 의원이 된 베버의 아버지는 자유주의자로서, 당시의 비스마르크 (Bismarck, 1815~1898)와 연대하고 있던 '국민 자유당' 내 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지도적인 정치인들은 물 론 저명한 학자들과도 깊은 교류를 맺고 있었다. 그의 어 머니는 정통적인 칼뱅주의자로서 확고한 재정적 기반을 갖고 있었던 지식인 가문 출신이었다. 베버는 권위주의 적인 교육 방식을 취한 아버지와는 자주 충돌한 반면, 종 교적이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어머니로부터는 많 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병역 의무를 수행할 때부터 깊은 교류를 갖게 되었던 이모부와 이모의 영향은 그의 학문 과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적인 면에서 볼 때, 역사가였던 이모부 바움가르텐(H.Baumgarten)은 베버의 스승이자 동료였으며, 독실한 프 로테스탄트인 이모는 베버에게 종교적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베버가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지니지 않았 으면서도 평생 프로테스탄티즘의 미덕을 경외하는 감정 을 지니게 된 것은 이들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1882년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대학에 입학하여 법 학을 전공하면서 역사학 · 경제학 · 철학 등을 공부한 베 버는, 이 대학에서 세 학기를 공부하는 동안 당시 명성이 높았던 베커(Immanuel Bekker)로부터 로마법을, 그리고 노석학(老碩學)이었던 크니스(Karl Knies)로부터 경제학 을 배웠다. 1년 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1884년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법률과 역사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베버 는, 1886년에 고등 고시에 합격하여 사법관 시보가 되 었으며, 1889년에는 베를린 대학에서 <중세기에 있어서 의 상업 회사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 다. 그리고 1892년부터 베를린 대학에서 로마법과 상법 을 강의하다가 1894년에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1897년에는 크니스의 후임 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는 1901년 정신 질환으로 휴직하고 4년 후 사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 야전 병원에 근무하였으며, 종전 후에는 베르사유 평화 회의에 참석한 독일 대표의 자문 역을 맡았고, 바이마르 헌법의 기초 위원으로도 활동한 그는, 1918년 빈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하였다. 새로이 조직된 독일 민주당의 창당 멤버이자 핵심적인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한 베버는, 1919년 뮌헨 대학의 교수가 되 었지만, 그 이듬해 6월 14일 폐렴으로 뮌헨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학 문〕 베버의 학문 세계는 독립된 사회 과학으로서 의 사회학의 성격 확립과, 근대 사회의 성격 규명이라는 두 가지 부문으로 대별된다. 베버는 칸트 이래 독일 관념 철학의 지적 전통이었던 자연 과학과 정신 과학을 엄격히 구분하는 방식을 거부 하였다. 독일의 전통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는 자연계를 지배한 규칙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계를 탐구하는 방법으로는 다루어질 수 없다. 인간 현상의 연 구에 적합한 방식은 일반 법칙을 세우려는 보편적인 방 법보다는 일회적인 사건을 다루는 개별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연구의 대상이 무엇이든지 추상 과 일반화의 방법을 통한 법칙 정립적인 연구는 모두 과 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연 과학은 주로 추상적 법칙에 의해 공식화될 수 있는 자연적 사건에 관 심을 가지며, 사회 과학은 인간 행위에 대한 법칙적인 추 상적 일반화나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의 포착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양자간의 기본적 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베버는 사회학을 사회적 행위, 즉 행위자의 주관적 의 미가 결부되어 있으면서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행위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함으로써 그 행위의 경과와 결과를 인과적(因果的)으로 설명하는 과학이라고 정의 하였다.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 내지는 초(超)유기체로 보면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을 사회의 구조와 변동에다 두었던 당시 프랑스나 영국의 유기체론자들이나 자연과 문화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연구 영역이라고 여겨 왔던 독일의 관념론자들과는 달리, 그의 주된 관심은 인간 행 위자가 특정 사회 · 역사적 맥락에서 상호 지향하는 가운 데 자신의 행위에 부여하는 주관적 의미에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 행위의 주관적 의미는 분석 대상이 되 는 경험에 대한 감정 이입(感情移入, Einfuehlung)과 추체 험(追體驗, Nacherleben)을 통해 잘 파악될 수 있다. 그러 나 어떠한 해석적 설명(Verstehende Erklaerung)도 그것이 과학적 명제라는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과 적 설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베버는 과학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치로 인해 사회 과학 연구에서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당시의 지 배적인 사조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하였다. 그에 의하 면, 가치 연관(價值聯關, Wertbeziehung)은 연구 대상의 선택에 작용하는 것이지 현상의 해석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는 가치 중립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연 구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가치 중립이란, 첫째로 과학자는 과학자로서의 역할에 입각한 과학 정신을 따라 야지 시민으로서의 역할에 지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고, 둘째로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는 엄밀히 분리시 켜야 한다는, 즉 존재에 대한 진술에서 당위적인 진술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베버의 전 저작을 통해 나타나는 일관된 주제는 '서유럽 문화의 합리화를 가져온 사회적 요인은 무엇인 가? 라는 것이었다. 그는 근대 사회의 기본적 성격을 합 리성의 증대에서 찾았다. 그는 합리성이란, 목적에 보다 효율적으로 수단을 적용시키는 경향 실재가 더욱더 체계 적으로 조직화되는 경향 그리고 신화와 주술이 사라지며 점진적으로 이성에 의존되는 경향이라고 규정하면서, 근 대 사회에서는 관료제의 등장, 자본주의의 발달 그리고 프로테스탄티즘과 과학의 발달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 다. 특히 서유럽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된 원인 을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찾고자 한 베버의 연구는, 그의 종교 사회학 이론에서 중심을 이루며, 사회학에서는 물 론 경제학 · 정치학 · 역사학 · 종교학 등 여러 학문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그중에서도 칼뱅주의의 세 가 지 중요한 교리 즉 예정론과 노동 윤리 그리고 금욕 윤리 가 자본주의의 등장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던 것으로 여겼다. 그는 당시 독일에서는 칼뱅주의를 신봉하는 사 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 람들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칼뱅주의의 윤 리와 자본주의 정신 간에 과연 친화성이 있는가 하는 점 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본주의의 정신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으 로 간주하여 그것을 위해 합리적인 방안을 동원하고자 하는 정신이라고 규정하면서, 서유럽 사회에서 이 정신 이 출현하고 전파되는 데 중요한 자극과 보강을 제공한 것은 칼뱅주의라고 하였다. 베버는 우선 칼뱅주의의 특징인 예정론적 관점을 다음 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이 세상을 창조하 고 지배하는 절대적이며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이 존재한 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이 절대자에게 접근할 수도 이 해할 수도 없다. 둘째,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은 각 인간 의 구원과 저주를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에 미리 정하였 으며,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그와 같은 결정을 바꿀 수 없다. 셋째, 하느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을 창 조하였다. 넷째, 저주를 받게 되든 구원을 받게 되든 인 간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 지상에 하 느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세 속적인 것, 인간적인 것, 그리고 육체적인 것은 죄악과 죽음에 관련된 것이고, 오직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 베버는 이와 같은 칼뱅주의의 교리가 과학적이며 합리 적인 태도의 함양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하였 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교리는 하느님과 인간의 고통을 부정함으로써 일체의 신비주의를 배격하게 되었으며, 이 교파에서의 의식주의(儀式主義)의 배격은 우상 숭배 . 의식주의 · 신비주의를 부정하는 과학적 탐구 정신과도 일맥 상통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칼뱅주의를 신봉하 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구원과 저주에 관해 어떠 한 결정을 내려놓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심리적인 긴장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구원의 징표를 찾고자 하였다. 사실상 일부 칼뱅 종파에서는 현세적 내지 경제적 성공을 구원 의 징표로 삼고 있었으며, 따라서 이러한 교리를 믿는 사 람들은 자기 운명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일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합리적 · 규칙적 · 지속 적 노동은 하느님의 계명에 대한 복종이라고 생각하였다 는 것이다. 한편, 베버는 칼뱅주의의 교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현 세적 일에 관심을 갖게 하는 한편, 육체적 욕구를 억제하 고 금욕적이기를 강요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그 결과, 그 는 칼뱅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은 합리적으로 노동을 하여 이윤을 얻으면서도 그것을 소비해 버리지 않았는데, 이 러한 성향은 이윤 추구와 재투자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 의의 정신과 직접 상통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베버는 칼뱅주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등장 사이의 관 계에 대한 자신의 명제를 검증하기 위하여 중국의 유교 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등 세계의 주요 종교들과 비교 연구를 하였다. 그는 칼뱅주의의 경우와는 달리, 중 국과 인도의 종교 사상들과 자본주의의 정신 사이에는 대단히 심한 불일치와 차이점들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자본주의의 등 장을 위해서는 물질적 토대, 사회 정치적 조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배경과 요인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 인들만으로는 자본주의가 등장하지 못한다. 그것을 위해 서는 또 하나의 다른 조건, 즉 변동에 대한 유리한 가치 와 관념들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용의가 있어야 한 다. 서유럽 사회에서 유독 자본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칼뱅주의라는 종교적인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 가〕 베버는 사회학의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을 명 확히 설정함으로써 사회학을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확 립시켰다는 점에서 사회학의 성립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 을 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합리성, 카리스 마, 권력과 지배, 권위의 유형, 관료제, 자본주의, 경제 윤리 등의 주요 개념들을 제공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분 석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근대 유럽 사회와 문화 의 특질을 독특한 방법에 의해 비교 규명함으로써 20 세기 사회 과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칼 뱅주의의 경제 윤리가 자본주의의 등장에 결정적 요인으 로 작용하였다는 그의 학설은 종교를 비롯한 인간의 정 신 세계는 오직 물질 세계에 의해 결정되고 지배될 뿐이 라는 마르크스(Kan Marx)의 유물론을 경험적으로 부정 하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서유럽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가 등장한 지역은 오히려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이탈리 아였다는 반론이나, 당시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에 칼 뱅주의자들이 많았던 것은 이윤 추구와 현세 생활에 관 심을 갖는 자본가들로서는 현세로부터의 초월을 강조하 던 당시의 가톨릭보다는 물질적인 성공을 하느님의 축복 으로 간주하는 칼뱅주의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다는 해석, 서유럽 자본주의의 발 전에 작용한 결정적 요인은 당시 식민지로부터 유입된 귀금속과 그로 인해 발생한 물가 상승 그리고 자본이 유 리한 곳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던 당시의 국제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는 이론 등으로 인해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자본주의 ; 종교 사회학) ※ 참고문헌  Marx Weber, 박종선 역,《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 주의 정신》, 세계출판사, 1987/ 이종수 편, 《막스 베버의 학문과 사 상》, 한길사, 1981/ 박성환, 《막스 베버의 문화 사회학과 인간학》, 문 학과 지성사, 1992/ R.H. Tawney,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 Mentor Books, 1953(이경식 역,《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전망사, 1983)/ Robert W. Green, Protestantism and Capitalism : The Weber Thesis and its Critics, D.C. Heath and Co., 1959(이동하 역, 《프로테스탄티즘 과 자본주의》, 종로서적, 1981)/ 오갑환, 《사회의 구조와 변동》, 박영 사, 1980/ 오경환,《종교 사회학》, 서광사, 1990. 〔盧吉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