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 프랜시스 (1561~1626)

Bacon, Fran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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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

프랜시스 베이컨.


영국의 법률가. 정치가. 철학자. 1561년 1월 22일 런던에서 궁내무 장관으로 있던 부친 니콜라스 베이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573~157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 교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에서 고전학을 공부하였 으며, 1576년 런던의 4개 법학원 중 하나인 그레이스 인(Gray's Inn)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였다. 1582년에 법정 변호사 자격을 얻은 뒤 법학원 강사, 평의원, 칙선 변호사를 역임했으며, 1584년에는 의회에 진출하였다. 1593년 스페인과의 전쟁 비용으로 특별 보조금을 요구 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했다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 ~1603)의 눈 밖에 난 베이컨은, 1603년 기사 작위를 받 고, 이듬해 칙선 변호사로 선임되었으며, 또한 하원 의원 이 되었다. 1607년 법무 차관이 되었으나 정치적 영향 력은 크지 않았다. 1613년 법무 장관으로 임명된 데 이 어 1617년에는 궁내무 장관이 되었으며, 이듬해 대법관 이 되어 남작 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지도력은 정치적으 로나 도덕적으로 거의 나무랄 데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 었다. 베이컨의 또 다른 야망은 비전통적, 반아리스토텔 레스주의 철학을 개혁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정치적 직 무와 법계에서의 활동 수행이 과중하여 많은 방해를 받 았다. 한동안 그의 권력은 확고 부동한 것처럼 보였지만 1621년에 뇌물을 수수했다는 누명을 쓰고 가혹한 처벌 을 받았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지치지 않는 지적 정력과 불굴의 용기를 보인 베이컨은, 1626년 3월 기관지염에 걸려 4월 9일 사망하였다. 철학적 · 과학적 주제를 담은 30편의 저술 중에서 오 직 7편만이 그 자신에 의해 발행되었는데, 주요 저서로 는 《학문의 진보》(The Advancement ofLearning, 1605), 《선 인들의 지혜》(De Sapientia Veterum, 1609), 《학문의 신기관 론》(Novum Organum Scientiarum, 1620) 등이 있다. 첫 번째 작품은 고대인들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시험이자 우주에 대한 학구적인 몰두이며, 두 번째 작품은 시적 우화의 해 석 방법으로 자연주의적 철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진술 이고, 세 번째 작품은 귀납법을 새로운 논리로 규정한 것 이다. 〔방법과 사상〕 새로운 학문 : 많은 발명과 정치적 주장 들이 난무하던 시대에 살았던 베이컨은 무엇보다도 인간 에게 자연의 지배권을 부여하고 이를 강화시키고자 힘썼 다. 그는 이러한 지배권이 학문을 통해 얻어진다고 여겼 다. 하지만 그는 당시까지 학문의 전통적인 체계로 인정 되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체계는 '비생산적' 이기 때문에 부적합하다고 여겨 학문의 새로운 기초가 필요하 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는 이것을 "가장 근원적인 원리로 부터의 대건설"(Instauratio magna ab imis fundamentis)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실 그의 모든 사상은 학문을 근본적으로 쇄신하고 재건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따라서 권위에 바탕을 둔 전통 사상 숭배를 배척하였으며, 인간의 인식 에 온전한 신뢰심을 두면서, 과학적 지식은 자연을 지배 하는 확실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베이컨은 '새로운 철학' 을 상술하면서, 몇 가지 원리 들로 학문들을 분류하였다. 그는 자연 과학이나 물리학 을 지성적 지식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수 학을 독립적인 위치에 놓는 것을 부정하였다. 한편 신의 본성과 존재, 그리고 인간 행위에 대한 규율을 포함한 아 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 윤리학적 주제들을 계시 진리의 영역으로 이전시켰다. 베이컨 자신의 학문, 혹은 철학 체계의 기반은 자연적 역사이고, 그 위에는 물리학 을 놓았다. 물리학은 보다 제한된 원리들이나 인과적 설 명의 원리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맨 위에는 형이상학을 두었다. 베이컨에게 있어서 학문의 제1차적 과제는 형 상, 즉 자연의 특수한 상태 안에 있는 그 원인과 구성 요 소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 형상들은 그 자체로 형성되 어 있으며, 능동적이고 인과적인 질료와 분리시킬 수 없 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적인 원인들은 질료적인 원인들이고, 따라서 '최종 원인' 은 자연 안에 없는 것이 다. 새로운 방법론 : 베이컨은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인 학 문 방법으로 받아들였던 전통적인 방법을 비판하고, 인 간이 지식을 추구할 때 범하는 오류의 심리적 원인을 논 의하면서 그 비유로 '우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이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극장의 우상' (idola theatri) 이란 잘못된 철학 체계를 가리키는데, 한 학파의 전통이 라고 해서 그것만을 고집하는 견해를 의미한다. 이는 사 실에 따라 결정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에 따라 어떤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시장의 우상' (idola fori)은 언어와 관련된 오류를 의미한다. 즉 사람들의 말을 믿고 그 말만 추종하려는 경향으로, 그 말이 뜻하는 것 즉 개 념과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오류이다. '동 굴의 우상' (idola specus)이란 개인의 지적 특성에 관한 것 으로, 사람들이 개인적인 견해에 사로잡혀 기껏해야 자 기의 안경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종족의 우 상 (idola tribus)은 인류에게 공통적인 지적 결함으로, 인 간은 각자 지니고 있는 선입관을 통해 객관적인 것을 주 관화하는 오류를 뜻한다. 이러한 비판을 바탕으로 그가 학문의 개혁을 위해서 제안한 방법은 귀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 그는 '현존' (現存)과 '부재' (不在) 그리고 '이탈' (離脫)이라는 세 가지 부문의 검토를 진행하였다. 첫 번째 부문은 원인이 나 자연 등의 형상이 관찰된 그대로 나타나는 예들인데, 이러한 형상 · 원인 · 자연 등은 베이컨에게 있어서 바뀔 수 있는 것들이다. 두 번째 부문은 형상 그 자체가 결여 된 경우들이고, 세 번째 부문은 여러 가지 형상의 활동이 나타나는 경우들이다. 그런데 특색이나 더 작은 원리들 에 의해 결정되는 보다 큰 원리들은 감각적 관찰을 통해 서 발생되는 것이며, 그 감각은 언제나 실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베이컨에게 있어서, 가장 일반적이고 형이상학적 인 학문의 원리나 원칙은, 전체 자연 안에서 발생되는 인 과적인 작용에 대한 귀납적인 결정이다. 그리고 학문에 서 원인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역시 자연 작용 안에도 있 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형이상학적 지식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인간에 의해 발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 동시 에 귀납적인 형이상학의 최후 목적이요, 최상의 보증이 된다. 베이컨에게 있어서 귀납법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 니었다. 왜냐하면 학문들은 언제나 하나하나의 경험을 모아서 보편적인 명제로 되어야 하며, 또 직관과 사고가 합법적으로 결합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기본적인 것은 경험이어야 하지만, 존재에 대한 질적 · 형상론적 관찰의 본질적인 특징, 즉 형상설과 목적론도 잘 간직되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론을 취한 그의 사상의 기초는, 인간이 자 신을 과거의 형식과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우상' 으 로부터 정신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인간 정신 세계를 명백하게 파악하는 것을 목표 로 하는 것이다. 또한 신학에서 철학을 분리 · 해방시켜 철학이 세계에 관해 편견 없는 욕구에 착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이 점차로 종교로부터 멀어져 과학 을 향하여 나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 놓으려 하였다. 그 러나 종교의 법칙들을 철저히 배격할 수는 없었으며, 인 간의 의지가 신의 의지에 맡겨져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신학을 자연 신학과 계시 신학으로 구분하 면서, 자연 신학이 자연의 연구와 신이 만든 피조물의 연 구로 얻을 수 있는 신에 관한 지식이라고 가르쳤다. 그러 나 그것은 신의 존재에 관해서 확실한 증거를 줄 수 있지 만, 그 이상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계시 신학에서 나와야 하며,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 이성이 아니라 교회를 그 지침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신의 법칙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도 그것 에 복종해야 하며, 우리의 이성이 신의 말씀에 충격을 받 더라도 그 말씀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평 가〕 베이컨은 귀납법에 대한 강조 때문에 종종 실 험적 발견의 예언자라 불렸다. 그는 또한 실험 과학의 발 견들을 형이상학의 원리들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의 모범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 중 극소수 의 사람들만이 귀납적 방법의 사용만으로 물리적 자연 과학을 성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 은 오랫동안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알려져 왔으며, 베 이컨 자신은 근대 경험주의의 선조로 간주되기도 한다. 사실 그는 "학문을 새롭게 하려는 모든 희망은 경험의 더욱 확실한 질서 안에서 새롭게 성립되고 세워질 것이 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베이컨은 결코 단순한 경험주의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경험 과학과 함께 혹은 그 위에 순수 이성이나 사유로부터 나온 전통적인 지식, 즉 제1 철학(philosophia prima) 혹은 일반적으로 개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원리 를 성립시키려 하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연 철 학과 나란히 자연 신학과 인간 정신 과학을 함께 세우려 하였다. 베이컨의 중심 사유는 존재에서부터 공리주의까 지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의 경험주의란 본질적으로 인 식론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방법적 · 실용주의적 경험주 의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F.H. Anderson, 《NCE》2, pp. 9~10/ 막스 물러 . 알로이 스 할더, 강성위 역, 《철학 소사전》, 이문출판사, p. 109/ 요한네스 휠 쉬베르거, 강성위 역, 《서양 철학사》 하, 이문출판사, pp. 98~101/ 김 현태 편역,《철학의 원리》 I ,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Pp. 180~183/ S.E. 프로스트, 서배식 역,《철학의 이해》, pp. 166, 199, 233. 〔梁惠 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