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영〕 Kingdom of Belg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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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부 유럽의 입헌 군주국으로, 유럽에서 가장 작은 국가 가운데 하나. 공식 명칭은 '벨기에 왕국' (Koninkrijk Belgie). 북쪽은 네덜란드, 동쪽은 독일과 룩셈부르크, 남 쪽은 프랑스와 접경하고 있으며, 북서쪽은 북해와 접해 있다. 면적은 30,528k㎡, 인구는 10,005,000명(195) 이며, 수도는 브뤼셀(Brussel)이다. 국민 대부분이 북부에 사는 플라망인들로 네덜란드어에서 파생된 플라망어를 사용하는데, 주로 남부에 사는 왈론인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독일 국경 근처에 사는 소수 민족은 독일어를 사용한다. 공용어는 플라망어와 프랑스어, 독일어이며,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지만 프로테스탄트와 이슬 람교 신자도 있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 정복 시기에 이곳에 거주하였던 켈트족과 게르만족들은, 5세기 초엽까지 로마인들에 의 해 지배를 받았다. 이후 5~7세기에는 프랑크 왕국의 메 로빙거 왕조, 8~9세기에는 카롤링거 왕조가 이 지역을 지배하였고, 10~14세기 중엽까지는 세속 공국과 교회 공국들이 출현하였다. 현재의 벨기에 지역은 1504년부 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1579년 아라스(Amas) 동맹을 맺은 스페인의 남부 주들은 스페인 왕과 가톨릭에 충성을 맹세한 반면, 프로테스탄트가 주 축을 이룬 북부 주들은 네덜란드 연합주를 형성하였는 데, 벨기에를 포함한 스페인령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왕 위 계승 전쟁(1701~1714)에서 패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 르크 왕가에 양도되었다. 그 후 나폴레옹 전쟁으로 프랑 스에 잠시 합병된 후 네덜란드와 다시 통합되어 오랑즈 (Orange) 왕가의 지배를 받는 국가가 되었다. 1830년 네 덜란드인의 지배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이듬해 독립 된 벨기에 왕국이 탄생되었으며, 이때 작센코부르크 가 (家)의 레오폴트 공이 왕으로 선출되어 레오폴트 1세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벨기에를 침략하 자 벨기에군은 플랑드르 서쪽의 이제르 강까지 퇴각하였 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중립국의 지위를 포기한 벨기 에는, 1920년에 프랑스와 방위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벨기에 의회는 1930년에 각기 다른 행정 체제가 적용되 는 2개의 언어권(북부와 남부)으로 벨기에를 분리하였다. 1940년에 독일군에 점령되었는데, 4년 간의 나치 점 령 기간 동안에는 거센 저항 운동이 잇따랐다. 1950년 대 들어 한때 플라망인 거주 지역과 왈론인 거주 지역 사 이에 불화와 반감이 심화되기도 하였으나, 1960년대 후 반에 두 지역의 연방화가 진행되면서 관계 개선이 이루 어졌다. 벨기에는 세 차례의 헌법 개정(1970, 1980, 1988) 을 통해 단일 국가 체제 내에 연방화를 이루었으며, 그 후 각각의 지역에서는 문화 · 경제 · 교육 부문에서 자치 행정을 펴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복음화〕 그리스도교는 4세기 초경에 이 지역에 소개되었으며, 730년경에 복음화가 완전히 이루어졌다. 중세 시기에 교회는 굳건한 교구 체 제를 이루었으며, 활기 찬 수도 생활 및 영향력 있는 수 도원과 성당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종교 개혁 시기에는 루터파와 칼뱅파들이 다소 증대하였으나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17세기 초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으로 교회는 다시 부흥하였다. 1640년부터 18세기 까지에는 안센주의(Jansenism)가 교회 내에 널리 퍼져 악 영향을 미쳤고, 18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 정부에 의해 강제로 도입된 요셉주의(Josephinism)가 교회를 어지럽히 기도 하였다. 또 나폴레옹 정복 시기에는 교회에 억압과 박해가 가해지기도 하였다. 1830년 벨기에 독립 운동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국가 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된 교회는 자유를 획득하였지 만, 그 후 교회는 철학적인 자유주의와 정치적인 사회주 의라는 심각한 문제들과 직면하게 되었고, 가톨릭 신자 들은 오랫동안 교육적 · 사회적 · 정치적 운동에 가담하 였다. 1880~1884년의 5년 간을 제외하고, 벨기에는 1835년 이후부터 바티칸과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맺어 왔다. 19세기의 가톨릭 지도자들은 사랑의 정신으로 최 하층 계급들의 사회적인 불행들을 치유하려고 노력하였 는데, 리에즈(Liège)의 가톨릭 회의(1886, 1887, 1890)에서 는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 무렵 발표된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 은 벨기에의 가톨릭 사회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00년에 '그리스도교 직업 연맹' (Christian Trade Unions) 이 설립되었으며, 카르댕(Jozef Cardijn) 신부에 의하여 1912년부터 시작된 '가톨릭 노동 청년회' (J.O.C., Jeunesse ouvrière chretienne)는 1925년에 전국 규모의 조직을 갖추 면서, 벨기에 주교들은 물론 교황 비오 11세(1922~1939) 의 지지와 승인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벨기에 주교들은 독일에 의한 '국가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자들 의 추방 등을 강력히 반대하였는데, 이로 인해 약 85명 의 벨기에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1945년에 독일군에 의 해 사형되거나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6월 3~4일 벨기에를 방문하여 벨기에 출신으로 평생을 나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한 다 미안(Damien de Veuster, 1840~1889) 신부의 시복 미사를 집전하였다. 1996년 현재 총 인구의 86.3%인 863만 4,000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대교구 1, 교구 7, 본당 3,969개 에, 추기경 4, 주교 24, 사제 9,604(교구 소속 5,971, 수도 회 소속 3,633), 종신 부제 412, 신학생 359, 수사 1,628, 수녀 20,432명이 있다. 한인 교포 신자는 96명 이다. (→ 네덜란드) ※ 참고문헌  M. Dierickx, 《NCE》2, pp. 239~2491 M. Deweerdt, 《EU》 3, pp. 955~956/《EU》 Les Chiffres du Monde, p. 120/ Petit Robert Dictiom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 2, Paris, 1988, Pp. 198~201/ 1996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한국 천주교 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한국 천주교회 교세 통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