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테, 베른하르트 (1906~1983)
Welte, Bern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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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신부. 종교 철학자. 신학자. 라너(K Rahner), 지베르 트(G. Siewerth) , 로츠(J.B. Lotz), 물러(M. Miiler) . 될러(J.Möller) 등과 함께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가톨릭 종교 철 학자 가운데 한 사람. 1906년 3월 31일 독일 서남쪽 지 방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의 메스키르 히(Meβkirch)에서 태어나 콘스탄츠(Konstanz)에서 김나지 움을 마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29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그는 "당신은 곤경 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시편 4, 2)라는 구절에 매료되었는데, 이 말씀은 한평생 스콜라주의를 탈피하여 넓은 그리스도의 세계로 이행할 수 있는 그의 좌우명이 되었다. 벨테의 동향인으로는 훗날 프라이부르크 대주교 가 된 그뢰버(C. Gröber, 1872~1948)와 세계적인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1889~1976)가 있다. 1934~1946년 프라이부르크 대주교인 그뢰버의 비 서로 일하던 그는, 1939년에 <세례 이후의 도유(塗油) : 고대 교회의 증언에 따른 이 의식의 상징적 형태와 성사 적 귀속성>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라이부르크의 사제들을 위한 신학원 (Collegium Boromeum)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1946년에는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과 토마스 철학을 통한 그 해석의 가능성>(Der philosophische Glaube bei Karl Jaspers und die Möglichkeit seiner Deutung durch die thomistische philosophie)이라는 교수 자격 취득 논문을 발표하였다. 1952년부터 벨테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종교 철학을 가르쳤는데, 1974년 은퇴할 때까지 그는 강의와 강연과 저술 등을 통하여 종교 철학에 대한 그의 독특한 이해를 제시하였다. 1955~1956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을 역임한 후, 로마 · 리마 · 레바논 · 남아메리카 · 예루 살렘에서 객원 교수 생활을 한 벨테는, 1983년 9월 6일 사망하였다. 〔저 서〕 종교 철학 교수직을 맡은 이후 그의 중요한 첫 연구서는 1966년에 출판된 《구원에 대한 이해》인데, 이 책의 부제(副題) "그리스도교의 이해를 위하여 몇 가지 전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함"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그의 관심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인간 실존에 책임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 실존의 철학적 분석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그는 이러한 사실을 같은 해에 나온 《유한성과 무한성의 영역에서》 (Im Spielfeld von Endlichkeit und Unendlichkeit)에서도 밝히 고 있다. 그리고 1967년 7월에는 헤르만-헤르더 재단의 도움으로 인간의 행태 연구가인 로렌츠(K. Lorenz) 및 하 센슈타인(B. Hassenstin)과의 공동 연구를 통하여, 현대 의 행태 연구에서 통용되는 관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결정론과 자유》를 발표하였다. 이 책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연구서이다. 관심이 매우 다양하고 넓었던 벨테는 철학적 사유, 신 학의 근본 문제, 인간과 인격, 언어의 문제, 시간과 역 사, 그리스도론, 죽음과 희망, 이데올로기와 종교, 그리 스도교와 세계 종교 등에 대한 강연과 논문들을 발표하 였고, 이러한 주제들은 《영원한 것의 흔적을 찾아서》 (Auf der Spur des Ewigen, 1965), 《시간과 신비》(Zeit und Geheimnis, 1975) ,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Zwischen Zeit undEwigkeit, 1982)라는 논문집으로 출간되었다. 또한 1977년에 출간된 《인간의 가치와 종교 : 우리 사회 안에 있는 교회에 대한 물음》이란 연구서에서 그는 인간의 가치와 종교, 사회와 역사 및 문화를 문제시하며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의 실천적 과제를 찾으려 하였 다. 한편 그의 사상이 완숙해지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짙게 풍긴 작품은 1979년에 발표된 《무(無)의 빛》(Das Licht des Nichs)인데, 이 책에서 벨테는 종교 체험이 박탈 당하고 상실된 현대 사회에서의 새로운 종교 체험을 모 색하였다. 그 밖에 중요한 작품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정 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희망의 진 지한 경우 : 죽음에 관한 사상》, 《사랑의 변증법》 등이 있다. 1960~1970년대에 걸쳐 벨테는 정기적으로 종교 철 학에 대한 강의를 하였는데, 이 강의들이 정리되고 심화 되어 1978년에 출간된 책이 그의 주저(主著)라고 할 수 있는 《종교 철학)(Relgionsphilosophie)다. 1982년에 펴 낸 《신앙이란 무엇인가?》(Was ist Glauben)라는 소책자에 서는 신앙의 주체적 측면이 종교 철학적으로 더 깊이 있 게 다루어졌다. 〔사 상〕 종교 철학 : 종교 철학자로서 벨테의 우선적 과제는 종교 철학을 정의하는 일이었다. '종교 철학' 이 란 용어는 철학이란 말과 철학보다 더 오래된 종교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벨테는 종교를 사태(Sache)의 영역으 로, 철학은 이 사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기능으로 여 겼다. 철학의 본질은 기존의 사상을 단순히 배우는 데 있 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함이며 생각하는 것을 배우 는 일이며 사유의 훈련에 있다. 벨테는 고대와 중세의 실 체론적 사유나 근세 이후의 주관주의적 사유 대신 탈형 이상학적 사유로서의 역사적 사유와 관계론적 사유를 제 시하였다. 이러한 철학이 사유의 주제로 삼는 종교란 무 엇인가? 종교는 교리나 체계 혹은 제의가 아니라 일차적 으로 살아 있는 삶이며 삶의 양식이다. 그리스도교는 무 엇보다 삶〔生〕이다. 종교는 "신의 말 건넴과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함께하는 놀이로부터 기인한 살아 있는 통일성"이다. 종교는 철학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철학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벨테에게 있어서 종교 철학에서의 종교와 철학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우위 를 점유한다거나 서로 무관하게 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안에 있는 철학이다. 종교는 종교 철학의 주제이고 철학적 사유는 종교 철학의 방법인 셈이다. 예로부터 "종교는 하느님 혹은 신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관계로 이해된다." 그는 종교에 대한 이 정의로부터 세 개의 중 요한 어휘인 '하느님' , '인간' 그리고 '관계' 를 중심으 로 종교의 본질을 구명(究明)하였던 것이다. 인간관 :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in-der-Welt-sein) 사상의 영향을 받은 벨테는 인간의 관계성을 '세계 현존 재' (Weltdasein)로 표현하였다. 나는 나의 세계 한가운데 존재하며, 나의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존재한다. 인간은 세계와 다른 인간과 상응함으로써 존재하며, 인간으로서 항상 세계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산다. 나와 세계 의 관계만이 현존재 해석의 모든 가능성의 공통 뿌리이 다. 무세계적인 나도 존재할 수 없으며, 나 없는 세계도 없다. 인간은 항상 '···과의 관계' 라는 근거 속에서 실존 하므로 '세계 현존재' 는 모든 인간의 근본 범주이다. 세 계 속에 있는 현존재는 열려진 경험의 공간이다. 세계 현 존재로서의 인간은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어떤 방 식으로든 생각하고 활동하며 쉬거나 독서한다. 어떤 식 으로든지 항상 '···과 관계' 하고 있는 인간은 '의미 관계 성' 속에서 산다. 벨테에게 존재 물음은 존재의 의미 물 음이며, 이는 곧 구원의 의미 물음이다. 그에게 있어서 생의 의미 물음과 무관한 존재론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이 러한 의미에서 벨테의 존재론은 의미론이며 이는 곧 구 원론이다. 구원이란 존재의 균열과 분열 및 대립으로부 터 의미 충만한 전체, 통일된 전체적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신론 : 현대인은 충일한 존재의 체험보다는 재난과 죽 음, 전쟁과 사회적인 악으로 인한 고난과 무(無)를 더 많 이 체험하면서 살아간다. 고대 철학자들은 존재의 신비 앞에서 놀라움(Erstaunen)과 경외감을 금치 못하여 '도대 체 왜 무가 아니며 오히려 존재인가? 라는 질문 속에서 철학을 하였다. 그러나 현대인은 이와는 반대로 모순의 황당함과 어이없음의 체험 속에서 경악(Erschrecken)을 금치 못하여 '도대체 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무인가?' 라고 묻는다. 이것이 현대인의 실재 체험이다. 전통적으 로 신론의 자리는 존재론이었다. 그래서 철학적으로 형 이상학적 존재론이 가능할 때 신론의 가능성도 확보되었 다. 그러나 현대의 농도 짙은 무의 체험 속에서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존재론은 그 기반이 무너지고 있으며, 따라 서 신론의 가능성 또한 위협받고 있다. 벨테는 하이데거 와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1328)의 해석에 서 무 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형이상학적 사유의 극복을 시도하며, 무의 체험을 새로운 신론의 자 리로 모색하였다. 인간은 무의 체험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항상 존 재하지는 않았으며, 앞으로도 항상 존재하게 되지는 않 을 것이다." 무를 체험할 때 인간은 '허무적 무' 로 체험 하거나, '절대적 은폐성' 으로 체험하게 된다. 인간은 무 의 정체를 알지 못하며 현상적으로 볼 때 무는 모호하다. 또한 인간은 무의 체험 앞에서 무를 더욱 왜곡하고 은폐 하게 되는데, 이는 다양한 실제적 노력으로 무의 체험을 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는 인간에게 불 가피하게 다가온다. 무의 불가피성은 인간의 의미 요청 의 사실성 앞에서 무한한 실재로 나타난다. 무는 현상적 으로 고찰할 때 모호하고 이중적이지만 윤리적 의미 요 청 앞에서, 이를테면 타자에 대한 구체적 사랑이나 정의 와 자유를 위한 구체적 참여와 투쟁을 결코 무의미하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때 무는 무한하고 무제약적으로 만물을 현존하게 하며 만사를 가능하게 하고 지탱시키는 무한한 능력의 은폐된 현존으로, 즉 '절대 신비' 로 드러 난다. 벨테는 이 절대 신비를 그리스도 신앙의 신비인 하느 님과 연결시켜 언급하였다. 첫째, 절대 신비는 인격적 차 원을 지닌다. 벨테는 점점 개체화되며 기능화되는 사회 속에서 인격 개념의 중요성을 유대계 독일 철학자 부버 (M. Buber), 에브너(F. Ebner), 로젠츠바이크(F. Rosenzweig)를 원용하여 역설하였다. 인격은 객관화할 수도 기 능화할 수도 없다. 인격적인 것은 본래적인 의미에서 파 악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며, 인격적인 것은 인격과 인격 사이의 연관성, 즉 신실하고 참된 인격적인 만남이 있는 곳에 존재한다. 이때 인격적 존재는 자기 자신의 존재이 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초월하여 타자와 세계를 향하 여 개방된 존재로 드러난다. 인격은 타자와 세계에 대한 관계적 존재이며, 인격의 의미는 불변하는 존속성에 있 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과 사건에서 찾아진다. 의미 물음 과 의미 요청 속에서 체험되는 절대 신비이신 하느님은 무인격적인 절대적인 원리가 아니라 인격적인 당신이다. 그러나 절대 신비는 하나의 인격체는 아니다. 하나의 인 격체와 인격적인 절대 신비 사이의 언어적 유비와 '신학 적 차이' 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벨테는 절대 신비를 하느님으로 이해하였다. 절 대 신비는 자신을 계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체 험할 수 있도록 한다. 계시 안에서 초존재자와 존재자 사 이의 근본적이며 무한한 질적 차이가 용해된다. 무명의 것이 명명(命名)되며, 영원한 것이 구체적인 시간 속에 서 일어나며 무한한 것이 구체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다. 하느님은 '성스러운 것' 의 인격적인 형체화이다. 셋째, 절대 신비는 역사적 차원을 지닌다. 역사는 무한 성과 유한성의 변증법이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이 하느 님의 신성을 만나는 구체적 차원이다. 벨테는 역사의 변 천 속에서 하느님의 형체화가 다양했음을 하느님의 이름 과 상징을 통하여 설명하였다. 하느님의 이름들과 상징 사이의 차이, 경쟁, 배타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명명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와 이름 사이의 '상징적 차이' 를 간 과할 때 우상화나 이념화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넷째, 벨테는 가톨릭 종교 철학자로서 하느님에 대한 종교 철학적인 논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 느님 체험에 이른다. 그는 니체아 공의회와 칼체돈 공의 회의 그리스도론 공식인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 실체성' (consubstantiality)을 비판적으로 연구하였다. 이 공식은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탈형이상 학적 구속론의 언어로 재해석할 때 바르게 이해될 수 있 다.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적 동일성은 인간 예수 안에서 일어난 인간과 살아 계신 구속하시는 하느님 사이의 사 건의 동일성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동일 실체' 가 대상적이며 정태적으로 표현된 반면, 성서는 예수의 생 의 사건을 통하여 비대상적이며 생동적인 언어로 표현하 였다. 구원 사건에서 하느님과 예수는 서로 상응하며 통 일성에 이른다. 〔평 가〕 벨테의 사유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고 명상적이다. 그의 사상은 하나의 완벽하고 닫혀진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주 목표가 아니라, 인간 현 존재의 본질적 영역을 통찰하고 설명하며 심화하는 것이 다. 또 그의 언어는 인간사의 모든 일에 왜곡되고 감추어 진 의미를 발견하여 의미를 탄생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 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벨테의 언어는 플라톤적으로 말 해 산파적인 언어이다. 벨테의 삶은 학문 이상이다. 그는 자연의 풀과 꽃을 사랑하고 여행과 스키를 즐기며 그림 을 그리고 시를 썼다. 그의 친구이며 제자인 헴멀레(K. Hemmerle) 주교, 벨테의 뒤를 이어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에서 종교 철학을 가르친 카스퍼(B.Casper), 그리고 튀빙 겐 대학교의 교의 신학자 휴너만(P. Hünermann) 등이 그 의 사상을 다양하게 계승 ·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벨테는 생의 마지막 몇 년 간 심한 병고를 겪었으나, 그는 이를 겸허한 신앙심으로 견디어 냈으며, 생의 마지 막 몇 주간에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희망의 진 지한 경우' 로서의 죽음이라고 쓴 소책자의 내용을 몸소 경험하여야 했던 벨테는, 그의 친구와 동료들이 부활절 알렐루야를 부르는 동안 죽음 가운데 있는 '무' 의 어두 운 문을 통하여 뜨겁게 달아오르는 영원의 '빛' 에 이르 는 길을 발견하였다. (-> 종교 철학) ※ 참고문헌 심상태, , 《가톨릭 대학 논문 집》 9집, 가톨릭대학, 1983, pp. 65~93/ 정달용, <베른하르트 벨테의 종교 철학에 대한 소고>, 《종교 신학 연구》 1집, 1988, PP. 111~123/I. Feige, Geschichtlichhkeit, Herder, 1989/ S. Kusar, Dem göttlichen Gott entgegen denken, Herder, 1986/ H. Lenz, Mut zum Nichts als Weg zu Gott, Herder, 1989/ K.W. Shim, Der nachmetaphysische Gott bei M. Heidegger, W. Weischedel und B. Welte, Bielefeld, 1991/ A. Tischinger, Das Phinomen der Schuld, Freiburg, 1986. 〔沈光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