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망》

闢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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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망》.

《벽망》.


1613~1616년경 중국 명나라의 학자 서광계(徐光啓, 1562~1633)가 저술한 척불서(斥佛書) 원명은 《벽석씨제 망》(闢釋氏諸妄). 파옥(破獄) · 시식(施食) · 무주 고혼 혈호(無主孤魂血湖) · 소지(燒紙) · 지주(持呪) · 윤회(輪 廻) · 염불(念佛) · 선종(禪宗) 등 8개 항목에 걸쳐 천주 교의 입장에서 불교 교리의 오류를 비판한 호교서(護敎 書)이다. 《벽망》의 초간(初刊) 시기는 알 수 없으며, 현 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 1903년에 상해 자모당(慈母堂) 에서 간행된 14장(張) 분량의 활관본(活版本)과 이듬해 홍콩 나자렛 출판사에서 간행된 17장의 활판본, 그리고 간행 연도를 알 수 없는 16장의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 다. 이와 함께 필사 시기를 알 수 없는 32장 분량의 한글 필사본도 있는 것으로 보아 《벽망》은 간행 후 조선에도 전래되어 읽혀졌음을 알 수 있다. 〔내 용〕 파옥 : 불교에서는 사람이 재(齋)를 올리고 진 언(眞言)을 외우면 지옥이 파(破)해진다고 하였다. 그러 나 천주가 세운 지옥이 몇 마디의 말로써 깨지고 혼(魂) 들이 달아날 수 있다면 지옥을 설치할 필요가 없으며, 또 한 사람의 진언이 지옥을 파할 수 있다면 사람의 권한이 오히려 천주보다 큰 것이므로 대단히 허망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극악한 자라도 돈이 있어 재 를 올리면 살고, 선한 자라도 돈이 없어 재를 올리지 못 하면 죽게 되는 것이니, 이는 파옥의 망령됨 중에 으뜸이 라고 하였다. 시식 : 시식이란 불가에서 죽은 친속(親屬) 혹은 일체 의 고혼(孤魂)에게 법식(法食)을 주면서 경문을 읽으며 염불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어떻게 귀신들을 지옥에서 내보내고 불러들이며, 또 여러 곳에서 동시에 재사(齋 事)가 있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귀신들 이 모든 시식 행사에 참석한다면 귀신은 영원히 세상에 있으면서 먹고 쓰고 노닐어 극락에 있는 것처럼 될 것이 니, 이것은 지옥을 설치한 뜻이 아니라고 하였다. 무주 고혼 혈호 : 불교에서는 공양할 사람도 있고 지 옥에 있는 유주혼(有主魂)을 시식에 청하는 것이 아니 라, 자손도 없고 지옥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무주 고혼 (無主孤魂)을 청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죽어서 천당이 아니면 지옥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천 지간에 떠도는 혼은 없으며, 또 인귀(人鬼)는 천주가 만 든 것이니 사람은 혼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영혼에는 무 주(無主)와 유주(有主)의 구분이 없다고 하였다. 한편 산부(産婦)의 피를 죄로 설정한 혈호 지옥(血湖地獄)에 대해, 해산한 여자의 피가 더러워 죄가 된다면, 천주는 마땅히 산부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 피는 사람을 낳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이것을 죄 라고 말하는 것은 극히 부당하다고 하였다. 소지 : 불교에는 신상(神像)을 태워 신에 대한 공경을 나타내고, 또 종이로 된 가짜 돈을 불에 태워 진짜 돈으 로 화(化)하게 한 뒤 신의 재물로 삼는 의식(儀式)이 있 다. 서광계는 이를 유가(儒家)의 전통적인 제사 형식에 비추어 비판하였고, 또 종이와 돈이 생겨난 유래를 설명 하면서 이러한 의식의 모순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생 전에 미리 사후에 쓸 것을 준비한다는 예수(豫修)와 종 이와 비단으로 지옥에서 쓸 물건을 준비하고 이를 불에 태워 지옥의 창고에 보관한다는 기고(寄庫)설의 허망함 을 논박하였다. 그러면서 선악에 대한 상벌은 천주가 이 미 정한 것이므로 이러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신상 을 태우는 것은 마음속에 천주의 상을 두는 것만 못하고, 종이들을 불태우는 것은 신심(身心)에 실질적인 덕을 닦 음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지주 : 불교에서는 주문을 진언으로 삼아 천만 번을 외우면 구하는 대로 얻는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생사부 귀(生死富貴)는 하늘이 주재하며 각각 한정됨이 있는데, 불교의 주문은 반드시 하늘을 거슬러 이러한 한정을 깨 뜨리려 한다고 비판하였다. 윤회 : 윤회에 대해, 영혼이 윤회한다면 새우 · 게 · 조 개 등은 모두 인과(因果)로써 태어날 것이므로, 인류는 백 년이 못 되어 끝나고 세상에는 단지 그런 종류만 있게 될 것인데, 어찌하여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지를 반문하 고, 또 사람이 윤회하여 다시 사람이 된다면 아비가 자식 이 되고 어미가 처가 될 수 있고, 이류(異類)로 태어난다 면 자식이 어버이의 살을 먹을 수도 있으니, 지극히 인자 하신 천주가 어찌 사람에게 이 같은 일을 시키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생육도(四生六道)의 혼이 서 로 다름을 전제하고, 전세(前世)의 윤회에 관계없이 선 (善)을 하고 천주를 알면 비록 빈천한 자라도 천당에 갈 수 있고, 악을 하면서 천주를 어기면 비록 부귀하더라도 지옥에 떨어진다는 천주교의 근본 교리를 아울러 설명하 였다. 염불 : 불교에서는 사람이 정토(淨土)를 닦고 나무아 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하면, 바로 서방(西方)에 가 서 연화화생(蓮花化生)을 얻고, 삼계(三界)에 태어난다 고 하였다. 이에 대해 염불이란 허무하고 망령된 것이어 서 실질적인 근거가 없으며, 사람에게는 죽은 다음에 천 당과 지옥 두 길만이 있고, 서방 극락 세계는 없다고 하 였다. 또 사람이 이류보다 귀한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인 데, 사람이 연꽃에서 태어나는 것은 무지(無知)에서 유 지(有知)가 나고 지극히 천한 것에서 지극히 귀한 것이 나는 것이라고 논박하였다. 그러면서 천주는 인성(人性) 의 근본이니 마땅히 흠숭하여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며, 부처는 살아 있을 때 인간이었고, 죽어 지옥에 떨어진 존 재이므로 그러한 권한은 없다고 하였다. 선종 : 서광계가 불교의 여러 종파 가운데 특히 선종 을 비판한 것은 명말 중국 불교가 선종으로 통합되어 가 면서 천주교에 대한 비판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 여 그는 선종에 관한 폭 넓은 지식을 갖고 선(禪)의 실체 와 의식을 공박하였다. 먼저 마음을 밝혀 성(性)을 알게 되면 성불(成佛)한다는 것에 대해, 불교는 근본에서 떠 나 있기 때문에 이는 혹세 무민(惑世誣民)의 말로서 성 을 아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또 선(禪)을 말하는 자가 오랫동안 강경(經講)하고 설법하는 것은 바람을 잡고 그 림자를 잡는 것이어서 거기서 성을 볼 수는 없으며, 모든 사물에 본성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동식물과 함께 여기 는 것으로 이는 천성(賤性), 천불(賤佛), 사생(死性) 사 불(死佛)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처의 말은 공론(空論) 일 뿐이며, 만유의 근본이 조물주임을 모르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처럼 천주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치가 실천 과 무관하고, 행동이 하나의 높은 데에 정해지지 못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나 망령됨을 알지 못하고 또 부끄러움도 알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벽망》은 천주교의 입장에서 불교 이론의 불합 리성을 지적하였지만, 단순히 불교의 교리만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즉 만물의 창조주인 천주가 세상과 천상을 주재한다는 전제 아래 천당 · 지옥 · 상선 벌악(賞善罰 惡)의 교리까지도 불교와 비교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맹자(孟子) 주자(朱子), 동자(董子) 등 대표적인 유가 사상가의 말을 인용하여 불교를 공격하였고, 의식 면에서도 전통적인 유가 의식에 불교의 제 의식을 비교 하여 비판함으로써 당시 중국 천주교의 특징인 보유 척 불(補儒斥佛)의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간행된 뒤에 중국 불교계로부터 불교를 모함하는 글이라 는 공격을 받았고, 홍제즙(洪濟楫), 장성요(張星曜) 등 에 의해 8개 조목의 척불 내용을 반박하는 《벽망벽략설》 (闢妄闢略說)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 서광계) ※ 참고문헌  《闢妄》 張貞蘭, 〈徐光啓研究〉, 서강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 1970.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