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위신편》

闢衛新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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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위신편》.

《벽위신편》.


조선 후기에 저술된 척사론서(斥邪論書)이자 해방론 서(海防論書) . '벽위' 는 '사학이나 이단을 물리치고 정 학 즉 유학을 고수하며 드높인다' 는 '벽사위정' (闢邪衛 正)의 준말이다. 저자는 고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연 재(淵齋) 윤종의(尹宗儀, 1805~1886)이며, 그는 1848년 (헌종 14)에 집필을 완료하여 그 해 3월에 자서(自序)를 붙인 뒤 10월에 지우인 관여(盥如) 이정관(李正觀)의 서 문을 받아 7권으로 편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초고본이 다. 그 후 윤종의는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에게서 평을 받고 1854년(철종 5)까지 초고본의 내용을 개정하 였으며, 1880년대 초까지 계속 새로운 자료를 보완하여 현행본을 완성하였다. 〔저술 목적〕 《벽위신편》은 윤종의가 관직에 나가기 이 전에 저술된 것으로, 그 첫 번째 목적은 천주교에 물든 사람들의 마음을 고치도록 하여 천주교 신앙이 날로 퍼 져 유학을 침식하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 그리고 두 번 째로는 서양 세력들이 중국을 침탈한 데 이어 조선의 연 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 정세를 자세히 파악하여 해 방(海防)을 강화하고, 아울러 서양 세력을 막는 어양책 (禦洋策)을 제시하려는 데 목적이 있 었다. 여기에서 그는 천주교 즉 사교 (邪敎)가 서양 세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그의 척사 론과 해방론은 동일한 목적 아래서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용 구성〕 책의 내용은 이정관의 서문에서 설명되고 있는 초고본과 현 행본에 차이가 있는데, 특히 초고본 에 있던 권1의 <이교인기>(夷敎因起) 가 현행본에는 누락되어 있는 대신 권4의 <연해형승>(沿每形勝)이 상 · 하로 확대되었다. 척사론보다는 해방 론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 다. 그 결과 현행본의 본문은 권1 〈제가논변〉(諸家辨), 권2 〈이국전기〉(異國傳記), 권3 <연해형승> 상(중국 편), 권4 <연해형승> 하(조선 편), 권5 <정리전도>(程里連度) , 권6 <비어초략>(備祭), , 권7 <사비시말>(査匪始末) 등 7권으로 구성되었다. 아울러 본문 앞 부분에는 자서와 이정관의 서를 수록하고, 마지 막 부분에는 총설에 이어 박규수의 13단으로 된 평과 지 운호(池運浩)의 발문을 첨부하였다. 권1 <제가논변>에서는 일찍이 기윤(紀的), 이위(李 衛), 구가수(邱嘉穗), 심대성(沈大成), 조익(趙翼) 등 청 나라의 학자들이 제시하였던 척사론과 교광열(喬光烈), 장견도(張甄陶) 등이 제시하였던 해방론과 제이책(制夷 策)을 통해 천주교 신앙의 중국 전파 과정과 천주교 배 척의 논리,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 관문인 마카오의 통제 책과 서양 세력에 대한 제어 방책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안정복(安鼎福), 이정관(李正觀), 이익(李潼) 등 조선의 학자들이 제시하였던 척사론을 소개하였으며, 이후 위원 (魏源)의 해방론, 양광선(楊光先)의 《벽사론》(闢邪論) 조선 후기의 학자 김치진(金致振)의 《척사론》을 보완 수 록하였다. 권2 <이국전기>는 청대의 《문헌통고》(文獻通考), 《명 사》(明史), 《경세문편》(經世文編) 등을 바탕으로 서양 제국과 중국 인근의 나라들에 대해 설명한 인문 지리적 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명사》의 내용 이 주로 인용되었는데, 이후 그는 미흡한 부분을 위원의 《해국도지》(海國圖志), 서계여(徐繼畬)의 《영환지략》(瀛 環志略), 고염무(顧炎武)의 (천하군국이병서)(天下郡國 利病書)를 통해 보완 설명하였다. 윤종의가 <영환지략> 을 본 것은 1852년이었으며, 《해국도지》나 《천하군국이 병서》도 이 무렵에 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권3의 <연해형승>(상)에는 우선 간략한 세계 지도인 <사해총도>(四海總圖)를 수록한 뒤 중국의 자세한 <연해 전도>(沿海全圖)와 <대만도>(臺灣圖) 등을 수록하고, 진 륜형(陳倫炯)의 《해국견문록》(海國見聞錄)을 토대로 천 하의 연안 형세와 소서양 · 대서양에 대해 설명하고 있 다. 그리고 권4 <연해형승>(하)에서는 본격적으로 조선 의 해방에 필요한 지도로, <8도 연해 군현도>, 조선의 서 해안과 중국의 동해안과 류큐(琉球)와의 경계를 표시한 〈삼계도〉(三界圖) 상 · 하, 그리고 조선의 <연해전도>를 수록하였다. 아울러 해방에 필요한 군현 사이의 거리를 자세히 설명한 다음 49개 조목에 달하는 연안 지형의 내 용, 1482년(성종 13)에서 1847년(헌종 13) 사이의 해방 관련 사건 19조목을 수록하였다. 권5의 <정리전도>는 세계 인문 지리학 내지는 역사 지 리학적 설명으로, 끝에는 박규수의 <지세의명>(地勢儀 銘)을 첨부하였으며, 권6의 <비어초략>에서는 청나라의 건륭제 · 가경제 당시의 문사들이 제시한 방해(防海), 연 해 단련설(沿海團練說) , 연해 축보설(沿海築堡 등을 인용하여 서양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해안의 군사 조직 과 방어 시설의 축조, 서양과 같은 무기 · 병선의 제작과 방법 등을 설명하였다. 윤종의는 특히 이러한 해방 전략 을 《해국도지》, <영환지략> 등을 통해 보완하였다. 그리 고 권7의 <사비시말>에서는 1644년(인조 22)부터 1866 년(고종 3)의 병인박해 때까지 서양과의 접촉 사건을 연 대기적으로 수록하였다. 〔척사론과 해방론〕 비록 <벽위신편> 현행본의 내용이 초고본과는 달리 해방에 더 비중이 두어졌다고 하지만, 이 해방론과 깊은 상관성을 가지고 있던 척사론 또한 초 고본의 수정 · 보완 과정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윤종의는 철저하게 천주교를 '사교' 로 생각하였으며, 그 전파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유학의 참된 도리를 밝히고(明吾 道) , 천주교에 물든 사람들의 마음을 고치는 것이 최상 의 방법(革心爲上)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천주교의 실체를 바로 알고자 하였으며, 그 이론을 바탕 으로 다섯 가지의 기본 교리 즉 천주가 피조물이고 신이 라고 한 점, 천주가 허명지중(虛明之主)이고 또 신을 창 조하였다는 점, 천지 만물을 조성하고 인간을 창조하였 다는 점, 상제(上帝)를 도(道)요 천부(天父)라고 한 점, 천지의 생성 원리를 설명한 점을 비판함으로써 천주교를 사천(事天)이 아닌 무천(誣天)의 학으로 단정하였다. 아 울러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천주 강생설, 야소설(耶蘇 說), 구속론, 인류의 서토 기원설(西土起源說), 천당 지 옥설, 유일신론 등을 지적하였다. 이어 윤종의는 서양의 기예가 정밀하다는 것을 인정하 면서도 도(道)의 바탕이 없이 이(利)만을 추구하는 것이 기 때문에 천주교와 관련되어 있는 서양의 세력과 기예 가 조선에 유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리고 그 네 가지 방책으로서 정학을 일으키고 사교를 토 멸하며(正學興 息邪說), 본업에 힘쓰고 이익만을 탐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며(務本業 賤末利), 위로는 인륜을 밝 히고 아래로는 백성과 친화하며(人倫明於上 小民親於 下), 나라의 금칙을 엄하게 하고 미리 방어책을 갖추어 야 함(嚴禁防 豫備禦)을 제시하였다. 이 중에서도 마지막에 제시되어 있는 그의 해방론은 서양 세력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앞서 윤종의는 각국의 위치나 조선 · 중국의 해안 지리, 동 · 서양의 관계, 서양의 기후 · 물산 등 인문 · 자 연 지리를 다양하게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조선 해방에 필요한 각종 자료와 지도를 수집하였다. 그 결과 조선의 <연해전도>를 작성하게 된 그는, 이미 서양 세력이 조선 의 연해를 침범한 사실들을 들어 우선 연안의 주요 군현 들을 연결하여 방비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동해 · 남해 · 서해 연안의 총 127관(官)을 해안 거점 으로 삼아 방어 요처를 설정한 다음, 이들과 내륙의 각 본관(本官)들을 긴밀하게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어 그는 서울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서해의 방어 중심지 를 한강 입구의 조강(祖江)에 두었으며, 《천하군국이병 서》를 근거로 "연해의 수령은 신중하게 가려 발탁해야 한다" (沿海守令 當愼擇)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해국도 지》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서양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전함 · 화기 기술의 획득, 양병(養兵) · 연병(練兵) 등 서 양의 기술과 우수함을 배워야 한다(師夷長技)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벽위신편》에 나타난 척사론과 해방론의 궁극 적인 목적은 서양 세력으로부터 조선의 기존 질서를 방 어한다는 데 있었다. 아울러 그 이론은 초고본의 보완 과 정에서 더욱 세밀해지게 되었으며, 무게 중심이 척사론 보다는 해방론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반면에 윤종의의 척사론은 천주교 교리의 불합리성을 밝히려는 기존의 틀 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성이 있었고, 새로운 지리 지식 이나 서양 기술의 우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해방 의 수단으로만 소개함으로써 초기의 개화 사상가들처럼 구체적이고 개방적인 이론으로 발전하지 못한 점도 있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니고 있던 새로운 학문의 수용 태도는 천주교와 서양 세력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 의 이해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벽위신편》의 내용 자체는 조선 후기의 지 리사나 천주교회사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 위정 척사론) ※ 참고문헌  《闢衛編》, 韓國教會史研究資料 22집, 한국교회사 연구소, 1990/ 韓章錫, 《眉山集》 朴珪壽, 《瓛齋先生集》 朴能緒, 韓 國系行譜》 金庠基, 〈尹淵齋와 그 遺著에 대하여>, 《東方 史論叢》, 1974/ 趙珖, <19世紀의 해방론과 벽위신편>, 《교회와 역사》 75호 (1981. 11), 한국교회사연구소, p. 31 孫炯富, 〈闢衛新編評語와 地勢儀 銘井書에 나타난 朴珪壽의 西洋論〉, <역사학보> 127집, 역사학회, 1990/ 車基真, <尹宗儀의 斥邪論과 海防論 인식에 대한 연구>, 尹炳 奭教授華甲紀念 韓國近代史論叢》 知識産業社, 1990.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