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위편》

闢衛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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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위편》 양수본과 현행본.

《벽위편》 양수본과 현행본.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천주교를 배척하거 나 반서학(反西學)의 이론을 담은 여러 문헌과 상소, 박 해 관련 자료 등을 모아 편찬한 대표적인 척사론서(斥邪 論書) . '벽위' 는 '사학이나 이단을 물리치고 정학 즉 유 학을 고수하며 드높인다' 는 '벽사위정' (闢邪衛正)의 준 말로, 여기에서 말하는 사학이나 이단은 모두 천주교를 가리킨다. 〔종 류〕 현존하는 《벽위편》으로는 척암(瘠菴) 이기경 (李基慶)이 편찬한 양수본(兩水本, 즉 이기경본)과 그의 고손인 이만채(李晩采)가 편찬한 현행본(現行本, 즉 이만 채본) 두 가지가 있다. 1959년에 양수본이 발견되기 이 전까지는 1931년 열화당(悅和堂)에서 석인본(石印本) 으로 간행된 현행본만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지만, 그 서문과 발문에서 본래 이기경이 편찬한 원본이 있었으 며, 원본과 현행본의 내용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홍이섭(洪以燮)은 원본을 찾기 위해 노력 하던 중 1959년에 이기경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던 경기 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의 용진(龍津)에서 원 본으로 생각되는 《벽위편》 사본을 발견하고 이를 '양수 본' 이라 명명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양수본 또한 이기경 편찬의 원본은 아니었다. 원본은 현행본의 발문 에서 밝힌 대로 '오랫동안 풍상을 겪음으로써 찢어지고 흐려진 구본(舊本)', 임이 분명하며, 양수본은 그 보존 상 태가 양호한 것으로 볼 때 구본인 원본을 베낀 사본으로 추정된다. 이 양수본은 1978년에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영인본으로 간행되었다. 또 한 종류의 《벽위편》은 일본인 학자 히라토리(白鳥 庫吉)가 중심이 되어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道株 式會社)의 지원 아래 수집하여 동경대학에 기증하였다가 1923년에 소실된 백산흑수 문고(白山黑水文庫, 일명 南 滿蒐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실제 명칭은 《벽위휘편》 (闢衛彙編)으로, 백산흑수 문고 안의 조선 야사 총서인 《총사》(叢史)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총사본 《벽위휘 편》의 목록만은 소실되기 전에 마에마(前間恭作)에 의해 그의 저서 《고선책보》(古鮮冊譜)에 수록되어 전해지게 되었으며, 이마니시(今西龍) 또한 총사본 《벽위휘편》을 보고 그 목록을 수초하여 세상에 알린 적이 있었다. 그러 나 현재로서는 이 총사본 《벽위휘편》의 내용을 알 길이 없고, 그 목록도 양수본과 어느 정도 출입이 있으므로 그 둘을 동일본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 총사본도 원본이 아 닌 사본으로 추정되며, 원본의 필사 과정에서 재편집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이 밖에도 양수본이 발견된 이기경의 후손 집안에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3책으로 된 《벽위편》 사본이 있 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현행본과 동일함 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현행본의 또 다른 사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선 후기의 붕당(朋黨) 관련 자료로 인용되는 저자 미상의 《동인록》(東麟錄) 전반부가 양수 본 내용과 거의 동일한데, 그중에는 1785년의 명례방 사건(明禮坊事件) 당시에 있은 반중통문(泮中通文) 등 《벽위편》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내용들이 있어 참고가 된다. 〔양수본의 내용〕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양수본의 저자는 정조 때의 문신 이기경(1756~1819)이다. 그는 같 은 기호 남인의 학자로 친서계(親西系)였던 이승훈(李承 薰), 정약용(丁若鏞) 등과 가까웠으면서도 1787년의 정 미 반회 사건(丁未泮會事件) 이후 척사에 앞장선 공서계 (攻西系)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생전 에 《벽위편》을 저술하여 천주교를 사학으로 배척함으로 써 정도인 유학을 고수하고자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책이 편찬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 내용이 신유년(1801) 12월에서 끝나고 있음으로 보아 신유박해 직후에 편찬된 것 같다. 아마도 천주교 박해자들이 신유 박해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척사윤음> (斥邪綸音)을 반포한 것처럼 이기경도 척사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기 위해 《벽위 편》을 편찬하였을 것이다. 양수본은 4권 4책의 필사본으로 각 책의 크기는 약간 씩 차이가 있지만, 가로 19.5~22.5cm 세로 27.5~35 cm이다. 또 분량과 내용을 본다면, 우선 1책 1권이 122 장으로 가장 많은데, 여기에는 1787~1795년의 사건들 즉 정미 반회 사건과 1791년의 신해박해(辛亥迫害), , 1795년의 을묘박해(乙卯迫害)와 관련된 상소 · 통문 · 전교 · 계사(啓辭) 등 70여 건의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 다. 다음으로 2책 2권은 79장으로, 신유년 정월부터 동 년 5월까지 신유박해 초기에 해당하는 전교 · 계사 · 상 소 · 초사(招辭) · 결안(結案) 등 80여 건이 정리되어 있 다. 다만, 여기에서 왕족인 이인(李祖), 그의 처 송(宋) 마리아, 이담(李湛)의 처 신(申) 마리아와 관련된 내용 들은 일부 삭제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3~4권에서도 마 찬가지로 처리되었다. 3책 3권은 모두 47장으로 가장 분량이 적은데, 여기 에는 신유년 5월부터 10월까지 신유박해의 전개 과정을 알려 주는 자료 및 6월 10일자(음)의 토역 반교문(討逆 頒敎文), 황사영(黃嗣永)의 <백서>(帛書) 사건과 관련된 40여 건의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 끝으로 4책 4권은 68장으로, 신유년 10월부터 동년 말까지 신유박해 후기 의 양상을 설명해 주는 자료 50여 건이 정리되어 있다. 특히 이 4권에는 <백서> 사건 이후의 관련 자료들, 즉 황 심(黃沁) · 황사영의 처분 내용과 각종 상소 · 통문, 그리 고 청나라에 전하기 위해 10월 27일(음) 대제학 이만수 (李晚秀)가 찬진한 <토사주문>(討邪奏文, 일명 陳奏文草), 역시 이만수가 짓고 12월 22일자로 반포된 <토역 반교 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청나라에서 <토사주문>을 받고 12월 27일자로 지어 조선에 보낸 <토사주복>(討邪奏覆, 즉 回咨)이 수록되어 있다. 〔현행본의 내용〕 현행본은 편자인 이만채 자신이 밝히 고 있는 것처럼 고조부 이기경의 《벽위편》을 토대로 집 안에서 대대로 보완 작업을 거쳐 완성한 것이다. 특히 이 기경의 현손 완산(完山) 이희필(李熙弼)이 서문에서 밝 힌 것처럼 양수본과는 달리 척사론자인 삼명(三溟) 강준 흠(姜浚欽)과 이재(頤齋) 목태석(睦台錫)의 견해를 비롯 하여 편자의 사건 설명과 이에 대한 의견 등 안기(按記) 가 곳곳에 첨부되어 있다. 현행본은 상 · 하 7권으로, 서문과 발문을 합쳐 모두 442쪽이다. 이 중 상편은 3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 선 제1권에는 천주교가 동양에 전래된 시말을 밝힐 수 있는 《명사》(明史) 외이전(外夷傳) 등 중국 자료와 이수 광(李碎光)의 《지봉류설》(芝峯類說)을 비롯하여 이익 (李潼)의 《천주실의발》(天主實義鈸), 안정복(安鼎福)의 《천학고》(天學考)와 《천학문답》(天學問答), 목만중(睦萬 中)의 《술감시》(述感詩), 이헌경(李獻慶)의 《천학문답》, 신후담(愼後聃)의 《서학변》(西學辨) 등 조선 후기의 대 표적인 척사론서들이 수록되어 있다. 천주교가 선왕들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어 제2권 에는 을사 추조 적발 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즉 1785 년의 명례방 사건에 관한 자료와 안정복이 그 해에 권철 신(權哲身) · 이기양(李基讓) · 채제공(蔡濟恭) 등과 주 고받은 서한 자료인 을사일기(乙巳日記), 정미 반회 사 건과 신해박해에 관련된 서한 · 통문 · 상소 · 계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제3권에는 신해박해와 관련되어 처분된 죄인들의 자료, 1792년에 이승훈과 관련하여 일 어난 평택 사건, 1795년의 을묘박해에 관한 자료들이 편자의 의견과 함께 정리되어 있다. 하편 제4권에는 을묘박해 이후의 상소와 여기에서 사 학(邪學)의 3흉으로 지목된 이가환(李家煥) · 정약용 · 이승훈 등의 처분, 무오년(1798)과 기미년(1799)에 충청 도에서 있은 박해 사실이 수록되어 있고, 제5권에는 주 로 신유박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정리되어 있 다. 그리고 제6권에는 1806년에서 1827년의 정해박해 (丁亥迫害) 때까지의 사실들이, 제7권에는 1839년의 기 해박해(己亥迫害), 1846년에 있은 프랑스 함대의 내침 사건을 비롯하여 1857년 4월까지 천주교와 관련된 내용 들이 단편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1844년에 청나라의 학자 위원(魏源)이 저술하여 간행한 뒤 1850 년대에 조선에 전해진 《해국도지》(海國圖志)를 일부 채 록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양수본 현행본 · 총사본 비교〕 이처럼 현행본은 그 편찬 과정에서 양수본에 비해 많은 첨삭과 보정이 가해 졌다. 첨부된 안기만 보더라도 양수본이 8행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현행본은 228행이나 된다. 반면에 총사본 《벽위휘편》은 양수본과 편차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 렇다고 해서 내용과 체제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따 라서 원본 《벽위편》은 양수본이나 총사본에 비해 더 풍 부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양수본과 비교해 볼 때, 현행본의 권1 · 6 · 7은 후대 에 보정된 것이 분명하다. 이를 제외한다면 현행본의 권 2~4는 양수본 권1과 총사본 권1에 해당하는데, 여기에 서도 현행본의 편자는 양수본에 제목만 있는 것을 보완 하거나 아주 새로운 자료를 추가하기도 하였다. 다음으 로 현행본 권5는 양수본 권2~4와 총사본 권2에 해당한 다. 이처럼 현행본의 권수가 양수본이나 총사본에 비해 줄어든 것은 많은 내용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현행본 에서 양수본에 없는 것이 추가된 것은 황사영의 <백서> 뿐이다. 뿐만 아니라 현행본에서는 '을사추조적발' , 정 미반회사' 등 새롭게 표제를 붙이기도 하였으며, 천주교 신자들에 관한 결안 내용을 대폭 축소하였고, 양수본에 있는 순서를 뒤바꾸어 놓음으로써 사건의 이해를 어렵게 한 점도 있다. 한편 총사본 권3은 현행본 권3~5와 양수 본 권2~4에서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 에 관한 문초 기록을 따로 떼어 편집해 놓은 것이 특징이 다. 아마도 그 이유는 천주교 신자 개개인의 생애와 신앙 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하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사료적 가치〕 현재 내용을 알 수 없는 총사본을 제외 하고 양수본과 현행본 《벽위편》은 척사의 입장에서 편찬 된 것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조선 후기의 척사론을 정확 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특히 현행 본 가운데서도 편자의 안기 내용들은 척사론자들이 가지 고 있던 천주교에 대한 인식 내지는 배척 운동의 전말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 신후담의 《서 학변》은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둔와 서 학변》(遯窩西學辨) 원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주로 현행 본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 널리 이용되기도 하였다. 뿐 만 아니라 양수본에 연대기적으로 수록되어 있는 통문 · 상소 · 계사 · 전교 · 윤음 등은 당시의 척사 배경과 내용 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다음으로 《벽위편》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연구에도 필 수 불가결한 자료로 손꼽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양수본의 내용은 신해박해와 신유박해의 전말을 정확하면서도 상 세히 알려 주고 있으며, 현행본에 비해 편자의 주관이나 편견이 거의 가미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당시의 사실 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울러 박 해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에 관한 결안을 통해 순교자 들의 신앙 내용과 순교 사실을 아주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샤를르 달레(Ch. Dallet)는 《한국 천주교회사》 (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를 저술하면서 《벽위편》의 가 치에 주목하여 그 내용을 자주 인용하였다. 여기에서 인 용한 내용들, 특히 천주교 신자들의 결안 · 결안일 · <진 주문초> · <토역 반교문> 등은 양수본의 내용과 거의 일 치한다. 또 이 자료를 조선에서 입수한 뒤 프랑스어로 번 역하여 1862년에 프랑스로 보낸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 뤼(Daveluy, 安敦伊) 주교의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그 가 《벽위편》을 입수한 것은 이기경이 죽은 뒤 30년 정도 가 지난 1850년대로 추정된다. 따라서 다블뤼 주교가 입수하고 달레가 인용한 《벽위편》은 양수본이거나 아니 면 《벽위편》 원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행본이나 양수본의 내용에는 인명과 결안일, 사건의 배경 기록 등에서 적지 않은 오류가 발견된다. 그 러므로 이를 자료로 활용하고자 할 때는 언제나 여타의 관찬 기록이나 《사학징의》(邪學懲義), 기타 개인 문집 들, 그리고 교회측 기록과 비교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되 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행본에서 언급되고 있는 강준 흠의 《삼명집》이나 목태석의 《이재집》, 이기경의 《척암 유고》, 강세정(姜世靖)의 《송담유고》(松潭遺稿) 등을 발 굴하여 보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 이기경 ; 위정 척 사론) ※ 참고문헌  이기경, 《벽위편》, 한국교회사연구소, 1978/ 이만채, 《벽위편》, 열화당, 1931/ 《동인록》, 驪江出版社, 1985/ 前間恭作, 《估 鮮冊譜》, 景仁文化社, 1969/ 《달레 교회사》 上l 山口正之 〈闢衛 書 評〉, 《青丘學叢》 8, 1932/ 洪以燮, 〈所謂 闢衛編의 形成에 대하여一種 兩水寫本을 中心으로>, 《人文科學》 4, 1959/ 朱明俊, 〈白山黑水 文庫本 叢史의 邪學懲義와 闢衛彙編〉, 《韓國敎會史論文集》 Ⅱ, 한 국교회사연구소, 1985.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