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적 신학
辨證法的 神學
〔라〕theologia dialectica · 〔독〕Dialektische Theologie · 〔영〕dialectical theology
글자 크기
5권

1 / 2
《변학유독》.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로테스탄트 신학 내부에서 등 장하여 바르트(K. Barth), 불트만(R.Bultmann), 투르나이 젠(E. Thurneysen) , 고가르텐(F.Gogarten), 브루너(E. Brunner) 등 일련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표방된 신학의 흐름. 보다 정확하게는 1922년에 바르트의 《로마서》(Der Römerbrief) 제2판이 출간되면서 당시까지 주류를 이루 었던 '문화 프로테스탄티즘' (Kulturprotestantismus)적인 신학의 영역(paradigm)을 새롭게 하면서 등장한 신학이다. 〔태 동〕 '변증법적 신학' 이라는 명칭은 이들 신학자들 이 일종의 동인지 형식으로 1922년부터 출간하기 시작 하였던 신학 잡지 《시대의 사이에서》(Zwischen den Zeiten) 에 게재되는 논문들에 붙여졌는데, 이들의 신학적 흐름 이 '변증법적' 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이 신학이 표방하 는 내용 때문이었다. 변증법적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는 그 배경이 되는 문화 프로테스탄티즘적인 신학의 영 역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변증법적 신학 역시 그 시 대가 요청하는 신학에 부응하여 태동한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문화 프로테스탄티즘은 그리스도교 진리와 그 진리의 역사적 맥락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 서 그들은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진리의 계보적 근거를 거슬러 올라가거나(Harnack, Troeltsch), 그리스도교 진리를 철학적 문맥에서 재해석하고자 하였다(Herrmann, Ritschl). 그 결과 문화 프로테스탄티즘에 있어서 신학은 역사학으 로 풀이되거나 또는 인문학적 색채가 짙은 모습으로 수 행될 수밖에 없었다. 리츨(A.Ritschl)의 하느님 나라 이해 는 이러한 사실을 결정적으로 증언해 준다. 그는 "하느 님 나라는 성별, 지위의 차별, 민족의 단위를 뛰어넘어서 사랑에 의해서 서로 행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 한 단계를 거쳐서 인류 전체에까지 확대되는 도덕적 태 도와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종교사학파(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를 대표하는 트뢸치(E. Troeltsch)의 신학적 고민도 그리스도교의 독특 성이 일반 문화사나 종교사와 나란히 진행되어 온 역사 라는 장(場)에서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 다. 이것은 비단 트뢸치만의 문제 의식이라기보다는 문 화 프로테스탄티즘 일반이 품고 있었던 신학적 핵심이라 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트뢸치는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과 종교사》(Die Absolutheit des christentums und die Religionsgeschichte, 1902)에서 일반 종교사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은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확신' 이라고 고백하였 다. 그는 나아가서 <세계 종교들 가운데 처한 그리스도 교의 상황>이라는 강연 원고에서-이 강연은 옥스퍼드 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트뢸치는 이 강연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그리스도교적 진리 역시 다수의 종교적 진리 가운데 하나이며, 이러한 다양한 진리의 모 습들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근원을 지양하고 있음을 예 감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모습이라고 천명하였 다. 그러므로 문화 프로테스탄티즘에 있어서 역사는 그 리스도교 진리를 구성하는 적극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나아가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역사상에 존재하는 다수의 종교적 진리와 연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바르트로 대변되는 변증법적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독 특성이 '사라지는' 데 대한 위기 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변증법적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독특성의 '위기' 는 하느님의 심판과 부정이라는 위기를 역사를 통해서 해결 하려는 데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문화 프로테스탄 티즘이 하느님의 낯섬과 그리스도교적 선포의 낯섬을 문 화와 역사 속으로 세련되게 순치시킴으로써, 이제는 반 대로 그리스도교적 진리의 독특성이 위기를 초래하였다 고 본 것이다. 바르트는 이것을 "목회자로서의 나의 임 무가 직면한 곤궁"이라고 불렀다. 이 위기는 나아가서 당시 유럽이 문화사 전체 면에서 경험하였던 위기 의식과도 일맥 상통한 것이었다. 그리 고 이 위기 의식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절 정에 도달하였다. 그러므로 이 위기를 극복하여 줄 신학 적 영역의 전이는 역사와 하느님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추구되었다. 유럽이 당면하고 있던 한계 상황 은 역사와 하느님, 시간과 영원의 일치를 위기로 몰아넣 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이 역사에 대해서 지니는 낯섬 과 이로 말미암은 위기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에서,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하느님됨을 부상시키면서 인간이 그 하 느님 앞에 섰을 때 경험하는 심판과 용서를 주창하면서 새로운 신학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신학의 위기 는 하느님이 역사에 대해서 던지는 위기를 통해서 극복 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변증법적 신학의 출발은 문화 에 대한 비판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변증법적 신학이 지니는 '변증법적' 성격이 드러난다. 즉 문화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신과 인간의 연속적인 관계성을 강조하지만, 변증법적 신학에서는 인 간에 대한 하느님의 부정과 모순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하느님의 은혜는 인간 내재적인 차원의 무한한 발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심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과 역사가 하느님 앞에서 발견하는 죄의식과 심판됨은 하느 님이 인간과 역사를 받아들이는 은혜의 방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위기는 하느님의 근본적인 존재 방식이 다. 이러한 하느님의 절대 모순적인 자기 동일성에서 변 증법적 신학은 출발하였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모순 은 하느님의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말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긍정에서 부정으로의 쉼 없는 운동이 변증법적 하느님 인식의 요체이며, 이것은 긍정과 부정의 어느 곳에도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다.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긍정과 동시에 부정, 부정과 동시에 긍정을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적 신학이 표방하는 '변증법' 은 헤겔류의 '양적인 변증법'이 아니라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가 표방하고 있 는 '질적인 변증법' 인 것이다. 이것은 변증법적인 지속 과 발전의 과정을 한 번 더 부정하고서 순간 안에서 긍 정과 부정이 갈려지는 것이다. 또한, 키에르케고르의 말 대로 '이것이냐, 저것이냐 의 선택적 결단을 의미한다. 변증법적 신학의 태동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 도교 종말론의 재발견이다. 리츨 등에 의해서 칸트적인 색채로 윤리화된 종말론을 신약성서 본문 속에 등장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리려는 시도 중에 이루어진 종말론의 재발견은, 그 신학적 주제가 지니는 낯섬을 우선적인 범 주로 여기게 되었다. 리츨이 칸트를 따라서 그리스도교 의 종말을 실천 이성의 추구 대상인 최고선의 범주로 해 석함으로써 윤리적으로 내재화시킨 종말을 바이스(J.Weiss)나 슈바이처(A. Schweitzer)는 현대의 사고 방식으 로는 접근하기 불가능한 낯선 것으로 다시 부각시켰다. 그리고 종교사학파는 원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을 고대 유대교의 세계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것은 철저한 역사적 탐구의 대상이었었다. 이러한 사 실에서 종말론은 현대적인 감각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낯선 사상이었다. 하지만, 변증법적 신학으로 인해 오버 베크(J.F. Overbeck) 등이 주장하였듯이 그리스도교와 문 화가 부드럽게 조화될 수 있는 종합체라는 인식이 무너 지게 되었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 바르트로 대표되는 변증법 적 신학에서 종말론은 역사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 리스도교적 실재 인식의 기본 성격에 대한 규정, 즉 보편 적인 존재 양태에 대한 이름으로 변하면서 보다 철저하 게 '종말론화' 되었다. 종말론은 이제 역사적 탐구 대상 에서 사유 양식으로 변한 것이다. 종말은 역사에 대한 하 느님의 존재 양태를 가리킨다.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 이 역사에서 종말로 경험되는 것이다. 종말은 그러므로 미래의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변증법적 신학자들과 동시대에 속하면서 종말론을 자신의 신학의 주제로 삼았던 독일 신학자 슈츠(Paul Schiitz, 1891~1985) 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종말에 대한 이해를 대변한 다. "최후의 것(eschata)은 극단적인 것이다. 그것은 절대 적으로 극단적인 것이다. 그것은 유한한 시간의 끝을 의 미하며, 모든 의미에서의 끝을 의미한다. 역사 철학은 우 리를 앞을 향해 보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최후의 것은 뒤 에도 있다. 최후의 것은 위에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타락 역시 최후의 것이다. 이처럼 최후의 것은 위에도, 뒤에도 있다. 즉 그것은 위와 뒤를 향한 유한한 시간의 끝을 의미한다."그러므로 변증법적 신학은 하느님의 절대 타자성에 중 심을 둔다. 하느님은 '전적인 타자' (der ganz Andere)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알려지지 않은 신으로서 우리들에게 알려진다." 이처럼 인간적인 것과의 일체의 연관성과 유 비를 허락하지 않는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려는 신학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서 출발해야 된다. 그리고 하느님 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인식이 곧 신앙을 의미하기에 변증 법적 신학은 종교 개혁적 원리, 즉 '오직 신앙으로만' , '오직 은총으로만' , '오직 성서로만' 을 주장하였던 종교 개혁의 원리에 의존한다. 따라서 루터가 스콜라 신학을 '영광의 신학' (thelogia gloriae)이라고 비판하면서 참된 신 학은 인간적인 일체의 것을 십자가에 못박는 '십자의 신학' (theologia crusis)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 변증법적 신학의 깃발을 올리게 한 바르트의 《로마서》 서문에서 다시 발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혀 놓았는데, 이것 은 당시의 문화 프로테스탄티즘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동 시에 새로운 신학적 인식론의 선언이다. "만일 내가 어 떤 '체계' 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키에르케고 르가 시간과 영원의 '무한한 질적인 차이' 라고 불렀던 것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에서 가능한 한 엄정하게 바라본다는 사실에 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이러한 하느님이 이러한 인간과 맺으시는 관계, 이러한 인간이 이러한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나에 게 있어서는 성서의 주제이고 철학의 총합이다. 철학은 인간 인식의 이러한 위기를 근원이라고 부른다. 성서는 이러한 기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 변증법적 신학이 종교 개혁적 유산의 성실한 계승자임 을 자처하였다는 사실은 이들의 신학이 철저한 신앙 중 심주의, 그리스도 중심주의, 성서 중심주의적인 해석학 적 원리(motive)로 일관되었음을 예고하여 준다. 변증법 적 신학에 있어서 신학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서 출발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기 계 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하느님의 철저한 타자성이야말로 변증법적 신학 내에서 다양한 변주(變 奏)의 원인이 되었다. 그 까닭은 하느님의 철저 타자성 에 대한 이해가 야기시키는 신학적 인식론이 각각 상이 한 방향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경우 하느님의 철저 타자성은 신학이 배타적 으로 하느님 자신의 계시에서 출발하도록 만든다. 만일 신학에도 유비(類比)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신앙의 유비 (analogia fidei)가 있을 뿐이다. 바르트에게 있어 일체의 자연 신학적 유비의 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다. 이로 말미 암아 바르트는 인간 이성 속에서-인간의 언어성과 사 랑할 수 있는 능력 속에서-하느님과의 '접촉점' (tangent point)을 찾았던 브루너의 주장과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느님과 인간은 그리스도라는 접촉 점에서 유일회적으로 스칠 뿐이다. 또한, 계시는 '수직 적으로 위에서' (senkrecht von oben) 내려올 뿐 어떠한 수 평적 단면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접촉점 유무를 둘러싼 부룬너와의 논쟁에서 바르트의 대답은 '아니다!'(Nein!)였다. 〔불트만의 변증법적 신학〕 바르트의 견해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에서 인간의 자기 이해를 찾으려 하였던 불트 만의 신학과도 차이가 있다. 불트만에게 있어서 하느님 은 철저한 타자가 되기 때문에 그 하느님에 대해서 객관 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해 인간이 지니는 한 계인 죄성의 표출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을 말하 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하느님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불트만은 바르트가 거부한 철학적 '전이해' 를 신학에 적 극 수용함으로써-이 경우 하이데거(M. Heidegger), 특 히 그의 《존재와 시간》에 나타난 전기(前期) 사상이 주 로 영향을 주었다-인간 실존 이해에 근거한 신학의 지 평을 열었다. 불트만은, 하느님은 인간 결단의 대상이지 추론의 대상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일체의 자연 신학적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점에서는 바르트의 주장과 같지만, 하느님의 절대 타자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자기 이해 를 통해서만 중재된다고 생각함으로써 바르트의 주장과 달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 불트만의 '비신 화화' (Entmythologierung) 작업이다. 신화적 언어로 기록 되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자기 이해를 중심으 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불트만은 생각한 것이다. 신앙은 신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라는 율법적 차원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성서 신학 및 그리스도교 전체에 커다란 반향 을 불러일으켰던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변증법적 신학이 종교 개혁적 전통에 근거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 는 동시에, 변증법적 신학이 '선포' (Kerygma)의 신학임 을 드러내고 있다. 불트만은 이러한 해석학적 맥락에 따 라서 성서적인 언어인 신화는 매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 어야 한다고 보았는데-제거되는 것이 아니다!-이러 한 비신화화를 통해서 도달하는 신앙의 사실은 바로 예 수는 그리스도라는 초대 교회의 선포이다. 이것은 더 이 상 신화가 아니다. 그런데 이 선포에 대해서 긍정하는가, 부정하는가는 논리적 이성으로 결론지을 수 없는 결단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사건이 구원 사건이 되는 것은 율법적인 차원에서의 인식이 아니라 신앙 사건이고 은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와 신화》에 나타 난 불트만의 다음과 같은 말은 변증법적 신학의 해석학 적 원리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선언이다. "그리스도교 의 선포가 신화론에 불과하다는 비난에서 그것을 지키는 것은 바로 그것들의 증명 불가능이다. 하느님의 피안성 은 신화에서처럼 차안적인 것이 되지 않는다." 불트만의 이 말은 하느님은 인간의 인식에 대해서 '숨어 계신 하 느님' (Deus absconditus)이며, 뿐만 아니라 그 하느님은 그 리스도의 십자가 속에 가장 깊숙이 숨어 계신다고 보았 던 루터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의의와 비판〕 자연에 대한 은총의 우위는 사도 바오 로 이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다양한 변화를 거치면서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변증법적 신학에서 다시 등장했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변증법적 신학 자체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 각이 부상되고, 히틀러의 독일에 의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 발발하였던 유럽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무르익었기 때 문에 그 신학은 신의 은총 이외의 여타의 것에 대해서 강 하게 '아니오!' 를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변증법적 신학 역시 그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러 므로 변증법적 신학에 있어서 은총에 대립되는 것으로 등장하는 갖가지 개념들은-그중에서 '종교' 가 대표적 인데, 예를 들어서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Kirchichche Dogmatik)에서 일관되게 '종교는 불신앙이다' 라고 강하 게 단죄한다-모두 이와 같은 시대적 제약을 염두에 두 고서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론적인 배타성 내 지는 이른바 그리스도 중심주의' 가 배제한 것이 무엇이 었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부각시키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비중을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증법적 신학의 종교 비판 내지는 문 화와 역사 비판이 후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바르트나 바르트로 대표되는 변증법적 신학을 단순히 그의 시대에 제한해서 읽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변증법적 신학 이 자신의 성립 근거로서 고수해 왔던 계시와 자연, 신앙 과 종교, 은총과 문화의 이분법 자체에 대한 의문 제기인 동시에, 그러한 이분법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었던 그 들의 계시 이해에 대한 비판이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변 증법적 신학의 한계를 언급하게 된다. '역사로서의 계시' 를 주창했던 판넨베르크(W. Pannenberg)에 의하면 변증법적 신학의 문제는 인간 이해에 근 거한 신학의 인간학적 근거 설정의 문제와 계시의 역사 성 문제이다. 바르트의 경우 신학을 철저하게 신의 초월성에만 기초 함으로써 역으로 인간학적인 공백 상태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 중심주의' 로 일관되었던 그의 신학이 '하늘에서의 독백' 으로 그치는 위험성을 의미한다. 변증 법적 신학이 질적인 변증법을 의미함으로써 소외시켰던 변증법의 또 다른 축인 인간에 대한 언급 없이 신학은 신 학으로서의 타당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 은 인간학으로서 가능하다는 주장(K. Rahner)이 다시금 신 학 내에서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변증법적 신 학이 결여하고 있는 인간학적 자각에 대한 비판을 불트 만과 동일하게 하이데거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가톨릭 신 학자인 라너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불트만 신 학이 강하게 부각하고 있는 신학의 인간학적 접근이 지 니는 성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신학은 인간학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면에서 수 행되지 않으면 그 인간학적 차원 역시 무역사적인 진공 상태로 추락한다는 비판은 특히 변증법적 신학의 또 다 른 주창자인 불트만에 대해서 제기된다. 불트만이 말하 는 결단은 실제로 키에르케고르적인 '단독자' 의 차원에 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결단' 이 얼 굴 없는 대중(das Man)으로부터 결별하고 자신의 본래성 (Eigentlichkeit)으로 되돌아오는 작업인 것처럼, 불트만적 인 신앙의 결단은 신의 말 걸어 오심' (Anrede)에 대한 주체적인 응답인 것이다. 따라서 판넨베르크가 선포의 신학인 변증법적 신학의 일방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변증 법적 신학과는 다른 길을 걸어갔던 틸리히의 '상관 방 법' 에서 찾으면서 틸리히가 말하는 역사와 문화와 종교 를 포괄하는 넓은 틀을 지닌 '응답하는 신학' 을 대안으 로 제시한 것은 변증법적 신학에 대한 영역 전이의 방향 을 의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신학의 방향을 결정하였던 변증 법적 신학은 그리스도교적 유럽적이 아닌 문화 속에서 신학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비판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 다. 이것은 특히 바르트로 대표되는 종교 비판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다. 바르트의 종교 비판이 단순히 비그 리스도교 종교에 대한 단죄가 아니 라 그리스도교를 포함해서 신적인 것에 이르려는 인간적인 모든 시도 에 대해서 신의 심판을 선포한 것이 라는 주장은 그의 종교 비판의 근거 가 되었던 계시 이해의 문제점을 상 대화시키지 못한다. 변증법적 신학 이 말하는 신앙의 근간으로서의 하 느님 앞에서의 인간의 부정의 체험 은 바르트의 경우에서 처럼 신적 계 시의 일방성을 고수함으로써 수행되 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하느님-인간' 의 이분법을 고 정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한 번 더 무화시키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변증법적 신학의 '변증 법적' 성격에 대한 논의를 이 신학의 근본 전제인 하느 님-인간의 대립 구도를 다시 한번 문제시하는 방향에서 시작할 때 변증법적 신학에 대한 극복 역시 말해질 수 있 다. 실제로 20세기에 등장하였던 다양한 신학의 방향 역 시-세속화 신학, 사신(死神) 신학, 희망의 신학, 역사 로서의 신학 등등-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 이다. (-> 고가르텐 ; 바르트 ; 변증법 ; 불트만) ※ 참고문헌 Karl Barth, Der Romerbrief, Ziirich, 19221 一, Kirchliche Dogmatik, Ziirich, 1940/ Rudolf Bultmann, Glauben und Verstehen I~IV, Tuibingen, 1931ff(허혁 역, 《학문과 실존》 1~4, 서울, 1981)/ Emil Brunner, Die Mystik und das Wort, Tiibingen, 1924/ Friedrich Gagarten, Der Mensch zwischen Gott und Welt, Heidelberg, 1952/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Tiibingen, 12 Aufl., 19721 Jürgen Moltmann hg., Anfänge der dialektischen Theologie I~II, Miinchen, 1962/ Wolfhart Pannenberg, Grumdfraen systemaisicher Theologie, Göttingen, 1967/ Ernst Troeltsch, Die Absolutheit des Christentums und die Religionsgeschite, Tubingen, 1912/ Heinrich Zarnt, Die Sache mit Gott ; Die protestantische Theologie im 20. Jahrhundert, Zürich, 1966. 〔金承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