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성서학적 고찰
〔구약에서〕 우리말 '거룩함' 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카도쉬(qādôš)이다. 카도쉬의 어근 qdš. 본래 '분리' , '격리' 의 뜻을 지닌다. 같은 셈족어인 페니키아어에서도 qdš는 '거룩함' 을 뜻하며 거기서 파생된 mqdš는 '성소' 를 가리킨다. 아시리아어 Kadâšu는 '정결' 을, Kadištu는 이스타르 신에게 바쳐진 성전 노예(hierodule)를 가리킨다. 아랍어와 이디오피아어에서도 qdš는 히브리어와 같은 뜻을 지닌다. 시리아어 qadeš는 '신에게 바쳐진' , '인정하게 된'을 뜻한다. 여기서 파생된 아랍어 케다샤(qdāša)는 '귀고리' , 혹은 '코고리' 를 뜻한다. 본래 그러한 '고리' 는 신성한 것이었다. 구약에서 '거룩함' 이라고 하는 속성이 부여되거나 관련되어 언급된 대상은 주로 하느님, 시간, 사람, 장소 및 기타 사물들이다. qds와 동의어로 쓰이는 히브리어는 "분리하다" 를 뜻하는 bdl, "바치다, 봉헌하다"를 뜻하는 hnk, "하느님께 바쳐진 것으로서, 사람이 가져서는 안되는, 엄격하게 구별된 물건"을 뜻하는 hrm, "헌신하다"를 뜻하는 rwm, "분리하다, 하느님께 바칠 것으로 따로 나누어 놓다"를 뜻하는 nzr, "헌신하다" 뜻하는 'br 등이 있다. "거룩함"에 반대되는 "속됨"을 뜻하는 히브리 말로서는 "속되다, 신성을 더럽히다" 를 뜻하는 hli, "신성을 더럽히다"를 뜻하는 g'l,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죄를 범하다"는 뜻을 지닌 m'l 등이 있다.
하느님의 거룩함 : 거룩함이란 개념은 일차적으로 하느님과의 관련 속에서 언급되고 있다. 사람과는 구별되고, 사람과는 격리되어 있는 분, 그러기에 거룩한 분으로 언급되어 있다.
① 현현(Theophany)과 관련된 것 : 이사야는 우찌야 왕이 죽던 해에 야훼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야훼의 보좌 주변에서 스랍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외친 내용이 바로 야훼의 거룩하심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이사 6, 3). 여기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구나. 입들 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여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 (이사 6, 5)에서, 즉 하느님을 뵙는 자는 죽음을 각오한다는 생각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한 예언자의 인식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 대한 묘사로서의 '거룩함 분' 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 이라는 표현과 평행을 이루어 쓰이기도 한다(시편 22, 3 ; 이사 57, 15). '거룩함' 과 '두려움' (nora)이 곧 하느님의 이름이다(시편 99, 3 ; 111, 9).
② 인간의 결함, 불순 및 죄와는 완전히 격리된 것 : E 문서 기자는 인간이 지닌 결함, 불손 및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섬길 수 없게까지 한다고 말한다(여호 24, 19). 즉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하느님의 거룩과 인간의 죄 사이에는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양자를 관계 맺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거룩한 분의 임재 앞에는 아무(것)도 거룩하게 되지 아니한 상태로는 나타날 수 없다(1사무 6, 20). 거룩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분과 관계를 가질 사람이 거룩해지는 길뿐이다(레위 11, 44-45 ; 19, 2 ; 20, 26 ; 21, 8).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야 한다"(레위 11, 45).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 2).
③ 하느님의 칭호 : 주로 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으로 불린다(이사 1, 4 ; 5, 19-24 ; 10, 20 ; 12, 6 ; 17, 7 ; 29, 19 ; 30, 11. 12. 15 ; 31, 1). 제 2 이사야에게서도 이런 표현은 계속 나타난다(이사 41, 14. 16. 20 ; 43, 3. 14 ; 45, 11 ; 47, 4 ; 48, 17 ; 49, 7 ; 54, 5 ; 55, 5 ; 60, 9. 14). 예레미야(50, 29 ; 51, 5)와 시편 (71, 22 ; 78, 41 ; 89, 19)에서도 이런 표현을 볼 수 있다. 달리, '야곱의 거룩하신 이' (이사 29, 33), '그(이스라엘) 거룩하신 이' (이사 10, 17 : 49, 7), 너희의 거룩한 자 (이사 43, 15) 등으로도 나온다.
④ 하느님의 이름 : "너희는 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레위 22, 32). 하느님의 이름은 거룩하다. 그러나 그 거룩한 이름이 사람의 죄 때문에 모독을 받을 수도 있다. "주 야훼가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가는 곳곳에서 뭇 민족에게 멸시를 받게 한 거룩한 내 이름 때문에 행동할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을 뭇 민족에게 멸시받게 했지만 나는 야훼다. 내 이름이 다시는 멸시를 받지 않고 오히려 드날리게 하리라···" (에제 36, 22-23). 여기, "내 이름을 ··· 드날리게 하리라"는 표현을 히브리어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따라 번역하면, "더럽혀진 내 큰 이름을 내가 다시 거룩하게 하겠다"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 땅에서 하느님을 저버려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말았으니 사람이 더럽힌 그 이름을 하느님 자신이 거룩하게 하신다는 생각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신약성서 주의 기도(마태 6, 9) 에 나오는 '하기아스테토 토 오노마 수(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어지기를 ···)' 이해에 도움을 준다. 그리스어 본문은 행위자가 없는 수동태이므로,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이 논란이 된다. 그 해결책의 하나가 바로 구약 에제키엘서에서 보는 것으로서 사람의 죄로 더럽혀진 하느님의 이름을 하느님 자신이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행위자가 없는 수동태 '하기아스테토 토 오노마 수 를 "하느님이 행위자가 되는 수동태"(Passivum Divinum)로 보고, 하느님께서 친히 하느님이 이름을 거룩하게 해주실 것을 비는 간구로 이해한다.
시간의 거룩함 : '거룩함' 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카도쉬가 구약 안에서 적용된 최초의 예가 '시간의 거룩' 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 (창세 2, 3). 안식의 '시간' (안식일)이 복받고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조에 관한 기록에는 공간 속의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거룩하다' 는 특성을 부여한 것으로 언급된 것이 없다. 다만 '거룩하다' 는 최초의 적용이 '시간의 거룩함' , 그중에서도 노동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의 거룩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간에 대한 성화(聖化)는 느헤미야에서도 볼 수 있다(8, 9. 10. 11). 이사야도 안식일을 '야훼의 거룩한 날' (58, 13)이라고 한다.
사람의 거룩함 : 시간 다음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것은 개인으로서나 단체로서의 사람이다.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출애 19, 6). 백성 전체가, 한 나라 전체가 거룩하다는 속성을 부여받는다(신명 7, 6 ; 14, 2. 21 ; 26, 19 ; 28, 9). 이것은 다른 나라, 다른 백성과의 구별이다. 백성 사이에서도 사제들(레위 21, 7. 8 ; 민수 16, 5. 7), 아론(시편 106, 16), 레위인들(2역대 35, 3), 예언자(2열왕 4, 9), 나지르인들 (민수 6, 5. 8)이 또 달리 거룩하게 구별된다.
장소와 사물의 거룩함 : 거룩한 장소로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성막과 그 안의 기구들이다.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민수 7, 1) 성막의 신성함은 오경의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다(출애 29, 31 : 레위 6, 9. 19. 20 ; 7, 6 ; 10, 13 ; 16, 24). 그 밖에 예루살렘(전도 8, 10), 사제들의 거실들(에제 42, 13) 이스라엘 진(신명 23, 15)도 거룩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밖에도 거룩한 물(민수 5, 17), 거룩한 천사(시편 89, 6. 8 ; 욥기 5, 1 ; 15, 15 ; 즈가 14, 5; 다니 8, 13) 등에 관한 언급들도 보인다. 이상에서 보듯이 거룩한 시간, 사람, 장소, 사물 등은 모두 '하느님' 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거룩한 것이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속성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질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신약에서〕 신약에 와서도 거룩함이 개념, 그것이 갖는 하느님과의 본질적 관계 등에는 변함이 없다. 신약의 '하기오스' (ἅγιος)는 구약에 나오는 히브리어 qds의 그리스어 대응 낱말이다. '하기오스' 외에도 '거룩함' 이라든가 '정결' 의 개념과 관련된 뜻을 지닌 '호시오스' (사도 2. 27), '호시오테스' (에페 4, 24) , '하그노스' (2고린 7, 11), '하그노테스' (2고린 6, 6), '히에로스'' (1고린 9, 13) 등이 있다. 신약에서 거룩함을 뜻하는 하기오스(ἅγιος)는 그 자체의 그리스어적 의미에서 고찰되기보다는 히브리어 카도쉬의 번역이므로, 신약의 하기오스 이해를 위해서도 구약의 카도쉬 이해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하느님의 거룩함 : 스랍들이 하느님의 거룩함을 선포한 것을 구약(이사 6, 3)에서 볼 수 있듯이 네 생물이 하느님의 거룩함을 날마다 선포하고 있는 것을 신약(묵시 4, 8)에서도 볼 수 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주님,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느님, 주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시리로다." 거룩함과 전능함이 결합되어 하느님의 본성을 나타내고 있다. 요한 묵시록에서뿐만 아니라 요한 복음에서도 우리는 예수께서 '거룩하신 아버지' (요한 17, 11)라는 말로 하느님의 본질적인 성격을 묘사한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도 그의 첫째 편지에서 레위기(14, 44-45 : 19, 2 : 20, 7 등)에 근거하여 하느님께서 거룩하시어 하느님의 자녀인 신도들도 모든 행위에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을 권면하고 있다(1베드 1, 14-15). '주의 기도' 에서도 기도하는 이는, 사람이 더럽힌 하느님 자신의 이름을 하느님께서 친히 거룩하게 하실 것을 간구한다(마태 6, 9 ; 루가 11, 12). 한국 프로테스탄트의 옛 번역 성서는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라고 하며, 하느님이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주체로 이해하였으나, 개역 성서는 주의 기도의 첫째 간구를 번역할 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라고 하여, 첫째 간구를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받들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능력을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 200주년 신약성서가 주의 기도의 첫째 간구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소서"라고 번역한 것은 사람이 더럽힌 하느님의 그 큰 이름을 하느님 자신이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반영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이름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계시
하시는 인격이다(마태 28, 19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 : 하기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예는 여러 곳(마태 1, 24 : 루가 1, 35 : 4, 34 : 요한 6, 69 ; 1요한 2, 20 : 묵시 3, 7 : 사도 3, 14 : 4, 27. 30)에 나타나 있다. 그분의 출생 묘사에서부터 그의 어머니에게 '성령' (πνευμα άγιον)이 오셔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 이 그를 감싸 '거룩한 아기' (τὸ γεννάμενονἅγιον) 곧 '하느님의 아들' 을 낳을 것을 예고하였다(루가1, 35).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 기원을 말한다.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본질은 세례받으실 때 '성령의 오심' 과 함께 한 번 더 확인된다(루가 3, 22). '더러운 마귀가 들린 한 사람' 이 예수를 알아 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 (ὁ ἅγιος τοῦ θεοῦ)이라고 고백한다(루가 4,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 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왕국을 파멸시키실 자이다. 같은 고백을 이번에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서도 들을 수 있다(요한 6, 69) . 사도행전에서는 예수에게 하느님의 '거룩한 종' (ὁἅγιος παῖς)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3, 14 ; 4, 27. 30).
여기에는 제2 이사야의 '야훼의 종'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예수는 하느님의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희생당하는 '거룩한' 희생 제물이다(1베드 1, 18-19).
성령의 거룩함 : 성령 혹은 영의 거룩함은 하느님의 거룩함 및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 뿌리는 구약의 '거룩한 영' 이다(이사 63, 10-11 ; 시편 51, 11). 복음서 기자들 중에서는 루가가 정관사 없이 πνεῦμα ἅγιον(루가 1, 15. 35. 41. 67 ; 2, 25 ; 3, 16 ; 4, 1 ; 11, 13) 혹은 정관사와 함께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루가 2, 26 ; 3, 22 ; 10, 21 ; 12, 10. 12)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신약에 와서 성령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신성한 성분을 함께 갖는다.
교회의 거룩함 : 일찍부터 초기 예루살렘 신앙 공동체는 '거룩한 종' (ἅγιος παῖς)이 세운 것이다(사도 4, 27. 30). 그 공동체는 곧 '성령의 전' (성령으로 가득 찬)이었다 (사도 4, 31). 그리하여 하느님의 새 백성이 탄생하였다 (히브 13, 12 이하 참조). 이것이 교회다. 교회의 거룩함의 근거는 그리스도 희생의 피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어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이것은 그분이 교회를 화려한 모습으로 당신 (앞에) 나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때나 주름이나 그와 비슷한 어떠한 (흠)도 없이 거룩하고 나무랄 데 없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에페 5, 26-27). 그리고 이 교회에 속한 신도는 '거룩한 백성' 이다(1고린 1, 2). 유대 그리스도 교인들과 이방 그리스도 교인들의 구별도 없어진다. 모든 신도가 다 '신령한 하느님의 집' 이 된다(에페 2, 22). 이것은 '신도들의 거룩함' 이라는 개념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 성성)
※ 참고문헌 F. Brown, S.R. Driver and C.A. Briggs, @@@@ ,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the Old Testament, Oxford 1972, pp. 872~873/ W.F. Arndt and F.W. Geingrich, 'ἅγοις',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t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1974, pp. 9~10/ G. Kitttel, trans. by G.W. Bromiley, 'ἅγοις' , 《TDNT》 I/J. Muilenburg, Holiness' , 《IDB》 Ⅱ. (閔泳珍〕
II . 종교학적 고찰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대상을 체험할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또는 상태를 표현한 말. 종교적인 것과 비종교적인 것을 구분하는 척도로도 쓰인다. 그러나 이 용어는 유일 한 신적 존재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물 · 장소 · 때와 계절 ·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연구 동향] 거룩함에 대한 연구는 거룩함을 타부 (Taboo)와의 관계로 고찰한 스미스(W.R. Smith), 정(淨) 과 부정(不淨)의 관념으로 고찰한 프레이저(J.G. Frazer) , 타부-마나(mana)의 연합 관념으로 고찰한 마레트(R.R. Marett), 토템(totem) 집단의 연구를 한 뒤르켐(Durkheim) 등이 있으나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광범위하고 깊이 있 게 고찰한 대표적인 학자는 오토(R. Otto)와 엘리아데(M. Eliade)이다.
루돌프 오토(Rudolf Otto) : 오토는 저서 《거룩함》(Das Heilige, 1917)에서 신(神) 관념에서 '비합리적 요소와 합 리적 요소와의 관계' 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 오토는 종교에는 명확한 개념적 이해와 언어적 표현을 초월하는 어떤 비합리적 요소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 을 전제로 분석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것을 '누미노제' (das Numinose, 누멘적 감정)라 불렀다. 그러면서 이 감정 이 언어적 접근을 초월하는 '비합리적 체험' 이 되는 이 유를 그것이 무엇보다 어떤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대상, 즉 '누멘' (Numen) 혹은 '누멘적 대상' 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연구에서 또 '거룩함' 이라 는 종교 만의 고유한 본질적 체험을 기술하였다. 그는 거룩함이란 일체의 합리적 요소를 배제한 종교의 근본 체험이며 이 체험이 바로 '누미노제' , '누멘적 감정' (거 룩함)이라고 하였다. 오토는 이러한 감정이 지니는 여러 측면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신성 (神性) 혹은 거룩함(das Heilige)의 비합리적인 측면에 대 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려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토 는 '거룩함' 이란 완전한 선(善)도 또 다른 가치를 의미 하는 것도 아니며, 그보다 전적으로 고유하여 다른 어느 것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하나의 정신 상태 , 곧 논의할 수는 있어도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이 감정은 독특하여 사랑, 두려움, 공포, 고귀함 등의 감정 으로 분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태를 표현 하기 위해 오토는 '누미노스' (Numinous ; das numinose)라 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초자연적인 실
체를 뜻하는 라틴어 '누멘' (Numen)에서 파생하였다. 여 기서 누미노스 감정을 체험하는 것이 곧 누멘의 실재를 체험하고 '피조물 의식' (creature consciousnes)을 느끼는 것인데 여기서는 '전율, 황홀한 신비' (mysterium tremen- dum et fascinans)로 스스로를 현현하며 타자(他者, 여기서 누멘은 絶對他者), 외경, 장엄, 힘의 감각을 전달한다. 그 러나 이 신비는 두려우면서 동시에 존재 전체를 사로잡 는 황홀한 신비이다.
일상적 어휘로는 '누멘' 의 속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항상 비유어(analogue)에 의존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토는 이것을 표의어(diagramm)라 이름붙 였다. 표의어란 "어떤 개념을 나타내는 일종의 대체물" , "우리가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완전하게 전달하지는 못 하나 암시 정도는 하는 것으로 자연의 영역에서 취한 일 종의 유사 관념"이다. 또한 '누미노스' 는 인간의 지각 소여(sense-data)로부터 추론할 수도 없다. 곧 누미노스 '정신 상태' 는 전적으로 고유하며 다른 어느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오토의 누멘은 심리적 과정 이 아니라 그 대상을 뜻한다. 따라서 오토는 종교적 체 험에서 주관적 마음의 상태가 차지하는 위치보다는 오히 려 그 대상을 지시하는 것을 강조한다. 주관적 감정을 단지 그 대상에 대한 불가결한 단서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그는 감정이란 말을 정감과 같은 뜻으로 사 용하지 않고, 일상적인 지각이 아니고 일상적인 생각도 아닌 어떤 의식의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든지 친구의 현존을 느낀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경우에 느낌은 단지 마음에 발생하거나 자극된 감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 라, 객관적 상황 안에 우리의 발견과 인지를 기다리는 무엇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오토는 '누멘적인 것에 대한 감정' 이나 혹은 누멘적 감정을 말 하는 것이다. 결국 같은 독일 철학자 릭케르트가 말한 대로 누멘적인 것이 뜻하는 것은 심리적 과정이 아니라 그 대상 즉 거룩함이다.
오토는 누멘적 감정(거룩함)의 분석을 통하여 이를 종 교만의 고유한 체험이라는 '거룩함' 의 개념에 적용한다. 오토에게 거룩함이란 전적으로 고유한(sui generis) 범주 이다. 이것은 다른 어떤 체험에서 주어지는 개념이나 범 주들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거룩함의 체험이란 도덕적 체험도 미적 체험도 기타 다른 체험도 아니다. 마치 미에는 미적 감각이 따로 있듯이 종교에는 거룩함 을 인식하는 '누멘적 감각' (sensus numinis)이 선험적(先 驗的, a priori) 능력으로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종교란 근본에 있어서 이러한 독특하고, 고유한 거룩함의 체험 에 근거하고 있으며 결코 우주와 인생에 대한 지적 탐구 나 사변의 결과 그 답으로 생긴 것도 아니다. 종교는 일 차적으로 오직 거룩함의 자기 현현과 그것을 감지하고 느끼는 인간의 체험, 그리고 이러한 체험을 가능케 하는 인간 내면의 (어떤 선험적) 요소에 근거하고 있다. 결론 적으로 오토는 거룩함이란 하나의 순수 선험적인 범주로 서, 종교의 본질 개념이며 일체의 합리적 요소를 배제한
종교의 근본 체험이다. 따라서 거룩함의 체험이란 결코 어떠한 체험으로도 환원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종교적 현상, 체험이다. 이같이 오토는 거룩함이라는 범 주를 종교 이해의 기본 적이고 독자적인 범주로 정립하 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오토를 둘러싼 많은 오 해 중의 하나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부언해야 할 한 가 지는 오토가 그의 영역본 2판 머리말에서 특별히 밝히고 있듯이 그는 결코 거룩함을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범주들 로 해석하려는 성실한 노력들에 반대하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성과 도덕성이 거룩함의 의미가 지니는 내용 의 본질적인 한 부분임을 강조하였다. 단지 그것이 전부 가 아닐 뿐이라는 것이다. 오토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 하였다. "이 책은 비합리적인 것이 형이상학에 있어서 지니는 심오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개념이 미치지 못 하는 곳에 남아 있는 감정을 더욱 정확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엘리아데(M. Eliade) : 오토가 거룩함의 합리성을 배제 한 것처럼 엘리아데 역시 거룩함의 비합리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종교 경험의 여러 형태를 분석한다. 다만, 오 토가 종교사의 전개 과정에서 도덕성이 성에 포섭되면서 이른바 원시성 내지 미개성을 지닌 종교가 고등 종교로 발전하는 단계를 암시하였다면, 엘리아데는 이와 같이 '원시' 에서 '고등' 으로의 발전이라는 가치 판단 아래 종 교를 유형화하려는 종래 서구적인 사고의 편향을 지적하 고 모든 인간은 본래 종교적인 인간(homo religiosus)이라 는 데 주목했다. 엘리아데는 종교 경험에는 미개 또는 문명을 막론하고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 없으며, 아주 원초적인 거룩함의 현현(顯現, 예컨대 나무나 물)이나 최 고의 거룩함(예컨대 예수가 신의 육화라고 보는 것) 사이에 는 연속성을 지닌, 다시 말해서 발전 단계설과 같은 것 으로 설명할 성질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같은 성질이라 말한다. 엘리아데는 이 거룩함의 현현을 개념화하기 위 해 히에로파니(Hierophany)라는 독특한 개념을 사용한 다. Hierophany는 그리스어의 Hieros(신성)와 Phainomai(나 타남, 현현)의 합성어이다. 거룩한 것은 항상 무엇인가를 통해 나타난다. 히에로파니는 바로 그 '무엇' 을 말한다. 엘리아데의 주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 가 거룩함(聖)의 구조와 양태가 문화 · 역사적인 상이성 에도 불구하고 모든 유형의 종교 현상 속에서 불가결하 게 현존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의 구조와 양태에 대 한 이해는 종교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지도적 원리가 될 수 있다. 엘리아데는 이를 다음과 같은 네가지 사실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거룩함은 속(俗)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러나 거룩함은 자연적인 사물을 성현을 통하여 역설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속의 세계에 있는 어떠한 사물이나, 어떠한 장소에 있는 사물이거나 그 속 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둘째, 이와 같은 거룩함의 변증법은 이른바 '원시적' 인 형태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 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속한 것이다. 돌이나 나무에 대 한 예배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아바타르
(avatar) 교의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육화(incamation)의 신 비 속에서도 발견된다. 셋째, 우리는 가장 단순하고 기 본적인 거룩함의 나타남(聖顯)만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 라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종교적 형태(초월자, 도덕률, 신화)도 함께 이 성현 속에서 발견한다. 넷째, 우리는 동 시에 어디에서나 그 성현에 맞는 하나의 체계를 발견한 다. 그것은 이른바 고등 종교의 형태에서만 발견되는 것 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성현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신화와 상징 등이 그 예이다.
여기서 엘리아데가 강조하는 중요한 사실은 어떤 시대 를 막론하고 성과 속의 이분법은 경험된 실재라는 사실 이다. 인간의 '자연' 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도 사실이 지만 그러한 변화가 곧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이루 어진 자연의 경험 전부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 다. 그럼에도 역사는 속(俗)의 현상에 대한 수많은 다른 해석을 해왔고, 마침내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이라고 하는 사실적인 구별이 가능할 수 있기까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다. 그런데 이 양자간의 다름이란 "종교인은 열려진 세 계 속에서 살고, 따라서 종교인의 실존은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는데" 비종교인에게는 "우주가 불투명하고, 부 동하고, 무언(無言)한 것이어서 전해 줄 어떤 내용도 갖 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독해야 할 어떤 암호도 갖 고 있지 않다" 고 하는 차이라고 엘리아데는 말한다.
〔의의 및 평가] 오늘날 논리 실증주의의 종교 일반에 대한 도전이 그러하듯, 오토가 이 문제에 전념하였던 시 대 상황 또한 진화론과 모든 종교 혹은 형이상학적 일체 의 언설을 자연 · 사회 과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신념 이 팽배하여 있었다. 진화론, 계몽주의 사조가 전유럽을 풍미하던 시대 사조 속에서 이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종 교 세계의 고유성을 지키고 그 정당성을 보지하려던 일 군의 종교학자들의 시도는 오토에게서 결정적인 해답을 얻게 된다. 우리는 오토를 이성의 시대에 형이상학을 지 키려던 칸트의 고투와 비교할 수 있다. 지금도 이 문제 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오토 및 엘리아데에 이 르기까지 종교 세계의 고유성을 확보하려는 성실한 시도 는 고귀한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참고문헌 정진홍, 《종교학 서설》, 전망사, 1980/ 황선명, 《종교 학 개론》, 종로서적, 1983/ Rudolf Otto, Das Heilige, Munchen, 1963(길 희성, 《성 스러움의 의미》, 분도출판사, 1991)/ Mircea Eliade, The Sacred and the Profane : The Nature ofReligion, New York, 1959/ Mircea Eliade, The History ofReligious Ideas, vols. 3, Chicago, 1978~1986/ Philip C. Almond, Rudolf Otto : An Introduction to his Philosophical Theology, Chapel Hill, N.C., 1984/ Robert F. Davison, Rudolf Otto's interpretation of Religion, Princeton, 1947. 〔吳將均〕
거룩함
〔라〕sanctus · 〔영〕h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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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두었던 장막 모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