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에서 빵과 포도주를 성체와 성혈로 축성한 뒤 신자들이 쳐다보고 경배할 수 있도록 높이 올려드는 행위. 또는 성체로 축성된 빵의 거양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래 거양 성체는 미사 때에 성체로 축성될 빵을 신자들이 미리 볼 수 있도록 높이 드는 데서 유래하였다. 사실 12세기경 많은 사제들이 축성되지 않은 빵을 제단 위로 높이 들고 축성 기도를 하였다. 하지만 신자들은 단지 높이 들려졌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축성된 성체라고 믿고 경배하였다. 이러한 그릇된 경배 예식이 점차 확산되자 13세기 초엽 파리 교구장 에우데스 드 쉴리(또는 그의 직후계자라는 설도 있음)는 축성하기 전에 빵을 드는 것을 금지하고 반드시 축성한 후에 거양하도록 하였다.
그 후 거양 성체는 성체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신자들의 열망에 부합하여 급속도록 전파되어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방 교회 전역에 확산되었다. 하지만 때때로 성체께 대한 경배가 지나쳐서 종종 미신적으로 발전되었다. 예를 들면 신자들은 자신들이 성체를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기 위해 사제에게 오랫동안, 심지어는 잘 볼 수 있도록 더 높이 거양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이들이 성체의 효능을 그릇되이 생각하여 마치 부적과 같이 아침에 성체를 보면 불운을 막아주고, 그날 올 수도 있는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막아 준다고 믿기도 하였다. 더욱이 성체를 모시기보다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여 거양 성체가 끝나고 나면 성당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정반대의 신심이 등장하여 종종 신자들은 성체를 전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고개 숙여 절만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비오 10세는 신자들에게 신앙과 애정을 가지고 성체를 쳐다보며 마음속으로는 "주시요 내 참 천주시로소이다"라고 열성을 발하는 이에게 전대사를 허용하면서 (1914) 바른 성체 공경을 위한 지침을 마련하였다.
성혈의 거양은 성체 거양보다도 훨씬 뒤인 14세기에 가서야 보편화되었는데 이는 신자들이 성체를 보는 만큼 성혈이 담겨져 있는 성작을 보기를 갈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혈의 거양은 1570년 비오 5세의 미사 경본에 정식으로 규정되었는데 카르투지오회원들 (Carthusians)은 오늘날까지도 성혈을 거양하지 않는다. 장엄 미사 중의 거양 성체 때에 분향하는 것은 14세기 중반에서야 도입되었고 장궤하는 것은 1570년에 가서야 규정되었다.
거양 성체의 의미는 빵과 포도주가 축성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었음을 신자들에게 주지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제헌하고자 하는 지향을 촉구하며,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께 감사를 드리는 데 있다. 때문에 거양 성체는 신자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구세주께 대한 사랑과 흠숭의 마음을 표현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 한편으로는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라고 선포하고 신자들이 "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전하리다"라고 외치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공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한다. (→ 미사 ; 성변화)
※ 참고문헌 이기명,《알기쉬운 미사 해설》, 가톨릭출판사, 1991/ 최윤환, 《간추린 미사 해설》, 가톨릭출판사, 1992/ Jovian P. Lang, OFM, 《DL》. [邊宗燦]
거양 성체
舉揚聖體
〔라〕elevatio · 〔영〕elevation in the M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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