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벤투라 (1217~1274)
Bonaven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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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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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벤투라.
성인. 추기경.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스콜라 신학자로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 교회 학자. 알바노(Albano)의 교구장. 축일은 7월 15일. 1217년경 이탈리아 중부 비 테르보(Viterbo) 근처의 산골짜기 마을 바뇨레조(Bagnoregio)에서 태어나 그곳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기초 학문과 종교 교육을 받은 후, 당시 유럽 학문의 중심지인 파리로 유학을 떠나 1235~1241년 파리 대학교 문학부 에서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1243년에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같은 해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다. 본래 이름은 조 반니 디 피단차(Giovanni di Fidanza)였으나 수도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자신의 설명에 의 하면, 그가 어렸을 적에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중재 기도를 바쳐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바뇨레조의 이후 1248년까지 파리 대 학교 신학부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는데, 이때 그의 스승 은 프란치스코회 교수들인 헤일스의 알렉산델(Alexander Halensis), 라 로셀의 요한(Jean de la Rochelle), 리고(Eudes Rigaud), 멜리토나의 월리엄(William of Melitona) 등이었 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헤일스의 알렉산델 교수는 보나 벤투라에게 '스승이요 아버지' 였을 만큼 절대적인 영향 력을 미쳤다. 5년 간의 신학부 과정을 마치고 1248년에 성서 학사 학위를 받은 보나벤투라는 2년 동안 성서를 가르쳤으며, 1250년에는 명제집 학사 학위를 받고 당시의 신학 교과 서인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저서 《명제집》(Sentences)을 2 년 동안 강의하였다. 또 1253~1257년에는 정식 교수 로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강의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파리 대학교 본부는 탁발 수도회가 파리 대학교를 잠식 한다는 일반 교수들의 반대 때문에 보나벤투라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정식 교수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교황 알 렉산델 4세(1254~1261)의 개입으로 1257년 8월에 파리 대학교 본부는 이를 인정하였지만, 그 해 2월에 이미 그 는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교수직 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나벤투라는 학자로서, 또 프란치스코회 총장으로서 많은 일을 하였다. 우선 학자로서 그는 자기가 속한 이 신생 수도회를 비판하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수도회를 변 호하여야 했다. 여러 논증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이들 의 변론>(Apologia pauperum)은 유명하다. 또 총장으로서 수도회 내부의 여러 유파로부터 수도자들을 보호해야 했 던 그는 창설자 성 프란치스코의 참 정신과 정체성을 정 립하려 하였다. 그 결과 1260년에 프란치스코회의 회칙 을 개정하였으며, 성인의 전기(傳記)를 새로 작성하여 《성 프란치스코의 대전기》(Legenda major, 1260)와 《성 프 란치스코의 소전기》를 발표하였다. 그는 또한 '교회의 사람' 으로서 교회 안팎의 이단적 사상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일을 하였는데, 파리 대학교 문학부에 팽배해 있던 이교 사상을 반박하기 위해 학술 강연회를 개최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성령의 은사》, 《6일 창조의 역사》라는 강연집이 출판되었다. 1265년에 교황 글레멘스 4세(1265~1268)로부터 영국 요크(York)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수도회 사정상 이를 수락 할 수 없어 겸손하게 사양하였던 그는, 1273년 5월 그 레고리오 10세 교황(1271~1276)에 의해 알바노의 교구 장 추기경으로 임명되어 그 해 10월 리용에서 주교 축성 식을 거행하였다. 보나벤투라는 교황으로부터 1274년에 개최될 제2차 리용 공의회를 준비하라는 부탁을 받고 동 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화해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공 의회 넷째 회기 중인 1274년 7월 15일 리용에서 사망하 여 그곳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당에 묻혔다. 그의 시성식은 1482년에 교황 식스토 4세(1471~1484)에 의해 서 거행되었으며, 1588년 교황 식스토 5세(1585~1590) 는 그를 '교회 학자' 로 선포하였다. 그는 종종 '세라됨적 박사' (Seraphic Doctor)로 불린다. 〔저 서〕 성서 주석과 관련된 작품으로 《루가 복음 주 석》, 《전도서 주석》, 《지혜서 주석》, 《요한 복음 주석》이 있으며, 철학 · 신학 관련 작품으로는 《명제집 주석》 1~ 4권, 《신학 요강》, 《그리스도의 인식》, 《삼위 일체 신 비》, 《복음적 완덕》,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 《모든 학문의 신학적 환원》, 《십계명》, 《성령 칠은》이 있 다. 또 영성 신학 관련 작품으로는 《삼중도》, 《독백록》, 《생명의 나무》, 《아기 예수의 다섯 축제》, 《미사 준비》, 《영혼의 통치》, 《수녀들에게 보낸 삶의 완덕》, 《세라펌의 여섯 날개》, 《그리스도의 수난》, 《신비의 포도나무》가 있 으며, 프란치스코회 관련 작품으로는 《서신 1》, 《서신 2》, 《회칙 해설과 나르본 회헌》, 《세 가지 문제에 대한 서신》이 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설교 모음집이 있는데, 철학 · 신학과 관련된 설교로서는 《삼위 일체》, 《삼위 일 체의 삼중적 증거》, 《강생》, 《생명의 나무이신 그리스 도》, 《중보자 그리스도》, 《유일한 스승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 《그리스도를 찾는 방법》, 《주의 만찬》, 《하느님의 모상》 등이 있다. 〔사 상〕 사상적 계보 : 보나벤투라는 사상적으로는 플 라톤-아우구스티노 노선에 연결되어 있다. 그가 플라톤 을 따른다는 것은 이데아론 때문이고, 아우구스티노를 따른다는 것은 사상 체계 대부분이 그에게 의존하고 있 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신플라톤 사상은 그리스도교 사 상과 잘 조화될 수 있었다. 그들의 주장, 영혼의 불멸성, 이데아론, 만물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느님께 되돌 아간다는 유출설과 귀천(歸天) 사상 등은 그리스도교 사 상과 유사성을 지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에 대해서는 중세 신학 전체가 그에게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특히 보나벤투라는 아우구스티노에게 아낌없는 최고 의 찬사를 보냈으며, 심지어는 아무도 아우구스티노보다 철학 · 신학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였다고까지 하 였다. 반면, 보나벤투라는 자연 철학적인 면에서는 아리 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랐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물 리학 · 생물학 · 우주학적 인식 영역에서 공헌한 아리스 토텔레스를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세상의 창조, 신과 세 상과의 관계, 인간의 초자연적 운명 등에 대해서는 그리 스도교적 지평과 만족스러운 일치를 제시하지 못하였으 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플라톤과 신플라톤의 사상, 아 우구스티노의 노선을 따랐다. 즉 그는 플라톤에 대한 아 우구스티노적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창조의 이데 아론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철학과 신학(이성과 신앙) : 보나벤투라는 철학과 신학 의 영역을 분명히 구분하면서 신앙 진리에 있어서 철학 자체의 한계를 분명히 밝혔다. 신앙의 빛이 없는, 다시 말해서 신학에서 분리된 철학은 하느님의 신비, 인간의 신비, 양쪽의 관계, 인류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 올바로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원죄로 인해서 하 느님의 지혜를 스스로는 더 이상 알아낼 도리가 없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이성이 신앙에 의해 스스로를 넘어서지 않고 그 자체에 머무르는 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얼마 든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보나벤투라가 살았 던 중세기의 사상적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제대로 이해 될 수 있다. 그 당시 파리 대학교 문학부 교수들은 아리 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초로 그리스도교의 신학과는 전 혀 다른 사상, 즉 세상의 영원성과 지성의 단일성을 주장 하고, 모형적 이데아 사상을 반대하였다. 이것을 이성의 오류와 탈선이라고 여긴 보나벤투라는, 이성이 그 자체 의 힘만으로는 진리의 빛에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탐구할 수 있는 대상 즉 자연에 대해서만 확실한 인식을 제공한다. 철학은 자연적 대상 을 출발점으로 삼아 경험에서 얻은 결과들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성은 자신의 고유 영 역인 탐구 분야에서는 진리를 온전히 인식할 수 있고 완 전히 자율적이다. 이성은 또한 신앙의 대상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성은 '신 의 존재와 유일성' 을 알아낼 수 있고, 또 필연적 논증 방 식으로 증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성은 신앙적 인식 대 상에 대해서 완전하고도 전체적인 인식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초자연적 실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확 신을 얻으려면 더 높은 차원에서 오는 빛을 받아야 한다. 만약 이성이 자신의 자연적 능력만을 의지하고 고집한다 면, 결국 인간은 오만해지며 어둠 속에 스스로를 닫아 버리게 된다. 보나벤투라는 "철학적 지식은 다른 차원의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따라서 누가 거기에 멈추어서 안주해 버리면 그는 어둠 속에 빠지게 된다" 고 하였다. 이 말은 철학한다는 그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이성이 인간이 제기한 모든 문제에 완전한 해답을 제공 한다고 믿는 것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계시 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진리도 있다. 이성은 그 자 체의 힘만으로는 이런 실재들을 고찰할 수 없다. 이것이 자연적 이성의 한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신의 부 활' 이라는 계시 진리를 전혀 몰랐는데, 그것은 그가 신 앙의 빛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하였다. 신 존재 증명 : 보나벤투라의 신 존재 증명은 '논리적 명증법' 으로, 논리적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하 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여러 가지로 증명하였는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실 세계의 존재물 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갖지 못하며, 종속적 · 의존적이 다. 그렇다면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자체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둘째, 인간은 누구나 본성상 행복(beatitudo)을 추구한다. 이는 선(善)을 바라 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면 최고 행복은 최고선을 누리 는 것이다. 피조물은 최고선이 될 수 없다. 오직 신만이 최고선을 향유한다. 그러므로 최고선인 하느님이 존재한 다는 것은 명백하다. 셋째, 하느님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제일 큰 존재이다. 그런 존재는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할 수밖에 없 다. 머리 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그는 제일 큰 존재가 아니 기 때문이다. 넷째, 인간은 하느님에 대한 본유 개념을 생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존재한 다. 보나벤투라는 하느님이 논리적 추론이나 증명을 통 해서만 도달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하 느님의 개념을 생득적으로 타고나기 때문에 만물 한가운 데서 그분을 보고 느끼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 인간이 그 의지를 사용할 때 하느님은 보여지고 느껴지고 관조된 다. 창조 : 세상은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이 그 리스도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구체적으로 어 떻게 창조를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인간이 모르는 신비로 남아 있으며 여기에 대해 많은 사상가들이 오랫동안 논 쟁하여 왔다. 보나벤투라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 은 당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면 하 느님은 왜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보여 주려고 하는가? 보나벤투라는 하느님의 이 자기 전달, 자기 현시의 원인 을 그분의 선성(善性), 사랑에서 찾았다. 그분은 사랑이 시기에 자신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 은 하느님의 선성과 사랑의 모습을 지닌다. 세상은 하느 님을 보여 주는 책과 같기에, 세상은 하느님의 창조의 책 이다. 또한, 세상은 하느님의 완전함을 반사하는 거울이며 그분 모습이 박혀진 발자국이다. 인간은 그런 하느님의 모습을 세상 한가운데서 읽고 해석해야 하는 창조의 해석자이다. 인간은 세상을 보고 하느님을 볼 줄 알아야 하며, 그 역으로 하느님을 보고 역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하는 해석자이다. 그러므로 인 간은 창조물이 아무리 좋고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이 피조된 이상 절대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인간도 절대화시키지 말아야 하고, 세상 사물도 그 가치를 절대 화시켜서는 안된다.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이 절대이시고, 나머지 창조물은 상대적이다. 세상을 보되 그것을 하느 님께로 인도하는 매개물로 여겨야지 그곳에 머물러서 안 주하거나 그 자체만을 인정하고 더 높은 실재를 부인하 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인간은 하느님 앞에 서 가난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가난한 자만이 창조주와 창조물 사이를 순환하면서 올바로 해석할 수 있다. 보나벤투라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 (Itinerarium mentis 1Deum)에서 이런 자세를 강조하였다. 그리스도 : 보나벤투라는 그리스도를 모든 것의 중심 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며 동시에 인간 이고, 스승인 동시에 형제이고, 임금이며 친구이고, 영원 한 말씀인 동시에 사람이 된 말씀이고, 창조주이며 구원 자이고,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다. 그리스도는 성부· 성자 · 성령 하느님의 중심이며, 인간의 중심이다. 그리 스도는 유일한 스승이며, 맏형이며, 왕 중의 왕이다. 또 한, 그리스도는 모든 학문과 예술의 중심이다. 따라서 세 상의 의미를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만물의 중심인 그리 스도를 알아야 한다. 이렇듯 보나벤투라의 그리스도관은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주의이다. 보나벤투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되지 않은 (영원 한) 말씀이고, 육신을 취한 말씀이고, 영의 옷을 입은 말 씀"이라는 세 가지 모습을 지닌 존재라고 강조하였다. 이렇게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말씀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시간 속으로 들어와 인간이 되지만 그는 본질적으 로 여느 인간들과 차원이 다른 인간이다. 성서는 예수 그 리스도의 신비를 '죄' 없는 인간, '하느님 아버지의 형 상' 이라고 표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친아 들로서 그의 전권을 위임받아 직접 하느님 아버지의 뜻 을 세상에 펴게 되었고, 아버지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완전히 보여 주시고 전달하신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을 보여 주는 세상의 빛이다. 이 빛을 받아 인간은 자신의 학문을 올바로 할 수 있고, 성서의 뜻을 올바로 읽을 수 있고, 제대로 관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예언의 경지에 올라갈 수 있고, 탈혼의 경지에 도 올라갈 수 있게 된다. 보나벤투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나무' 요 '생명 의 책' 이라고 단언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생명 을 보장해 주는 나무요, 영원한 생명에 관하여 모든 보물 이 담겨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지 식과 참 지혜의 보물이 숨겨져 있기에 그는 또한 '지혜 의 책' 이다. 따라서 인간이 이 책을 발견하여 읽을 수만 있다면 그는 영생을 얻을 것이요, 지고의 행복을 얻을 것 이요,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열락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인간 : 보나벤투라는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 조되었지만 죄를 지어 본성적으로 일그러진 존재로 파악 하였다. 즉 그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인 동시 에 죄인이다. 따라서 인간은 치유되어야 할 슬픈 존재이 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지성이 병들어 무식하게 되었 고, 감성이 병들어 교만과 분노에 사로잡혔으며, 의지가 병들어 탐욕과 나태에 빠졌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어 디서 나왔는지 그 기원을 잘 모르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 야 하는지 그 실천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인간은 지 혜의 은사를 받아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그분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성사적 은총에 힘입어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동료 인간들과 사이 좋게 지내며 서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지내야 한다 고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나벤투라는 인간이 아무 리 죄를 지어 병약하더라도 삼위 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의 주장에 따라 인간은 실제로 하느님의 모상을 삼중적 으로 반사하고 있는데, 그것이 '기억 · 지성 · 의지' 라고 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삼중적 특성을 바탕으로 하여 삼 위 일체이신 성부 · 성자 · 성령 하느님의 관계를 유추적 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보나벤투라는 인간을 창조 세계의 중간 존재로 보면서 하느님과 다른 창조물과의 이중적 관계를 가진다고 하였 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과 육을 동시에 가진 존재이기 때 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교제하며 동 시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께로 기울어진다고 하였다. 이는 인간은 하느님에 대한 개념을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을 그리워하도록 되어 있 다는 뜻이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받은 영성(靈性) 때 문에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존엄한 존재이며, 창조계의 중심이다. 또한 영성 때문에 인간은 불사불멸하며 의지 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 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은 자기의 영성을 이 세상 안 에서 실현시키려는 욕심이 있지만 거기에는 한계와 장애 물이 많기 때문에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이다. 인간은 불 완전성으로 말미암아 좌절과 실의에 자주 빠지게 됨을 체험한다. 보나벤투라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행복을 추구 하고 최고선을 그리워하지만 본성이 병약하여 본성 그 자체의 힘만으로는 그것을 실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탈혼적 관상 : 보나벤투라에 의하면 인간이 본성적으로 받은 능력만으로는 하느님께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그분께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 자연적 능력들을 정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보나벤투라의 체계를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먼저 조명을 받고, 정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상의 경지에 들 어서게 된다. 인간 영혼은 하느님의 본질적 속성들을 관 상하는데 먼저 하느님을 '존재의 근본' 으로 보게 된다. 하느님은 존재의 근거요 존재 자체, 최초 존재요 영원 존 재, 절대 존재요 단순 존재라는 것을 관조하게 된다. 이 것은 구약성서에서 이미 계시된 것이다. 또한 인간은 하느님을 선하신 분으로 고찰하며, 말씀 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를 관상하게 된다. 예수 그리 스도의 한 위격 안에 제일 원리가 마지막 원리와 결합되 고, 하느님이 인간과 결합되고, 영원이 시간과 결합되어 한 인간과 결합되고, 절대 존재가 합성 존재와 결합되고, 완전 존재가 고통과 수난을 받게 됨을 관상하게 된다. 물 론 이런 관상은 신비적인 과정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접점을 보 고 거기서 구원의 중개자 되심을 깊이 깨달을 때 인간은 탈혼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누구나 거기에 도달 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총 이 필요하고 다음에 깨달음과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의 강한 원의와 기도 역시 필요하다. 탈혼의 경지에 도달하 면 인간은 그 어떤 욕망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상태에 이 르게 된다. 보나벤투라는 탈혼이 위에서 오는 선물이라고 하였다. 이 선물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실재가 드러나는 것이 다. 지성은 여기서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는 탈 혼 때 모든 지성적 활동이 정지되며 최고의 감정만이 고 취되어 온전히 하느님 안에서 변형되는 것이라고 말한 다. 그러나 이 말은 지성이 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아 니라, 신적 빛이 너무나 강력하고 강도 높아 지성의 능력 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보나벤투라는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처럼 이 빛을 어둠이라 고 명명하였는데, 탈혼 때 지성은 이해 활동을 중단하고 영혼이 최고로 밝게 빛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보나벤 투라의 신비 신학에서는 인간이 자연 이성보다는 관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한 차원 높게 고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 는 관상을 "하느님에 대한 경험적 인식"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피조물을 통해서 매개된 것이 아닌 하느님 인식 이다. 그러한 인식을 얻으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되고 앞으로 올 저 세상에서 하느님과의 재회만을 기다리게 된다. (-> 프란치스코회 학파 ; 아우 구스티노주의 ; 플라톤주의 ; 신비 사상) ※ 참고문헌 J.G. Bougerol, Solo i poveri possono capire-San Boncventura e l'uomo d'oggi, Roma, Edizioni Studium, 1975/ 一, trad. A. Calufetti, Introduzione a S. Bonaventura, Vicenza, Edizioni LI.E.F., 1988/ J.A. Merino, trad. L.D. Fiocchi, Storia della filosofia francescana, Milano, Edizioni Biblioteca Francescana, 1993/ L. Mauro, Introcduzione all' Itinerario dell anima a Dio, Milano, Rusconi, 1985. 〔朴長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