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에시우스, 아니치우스 만리우스 토르과투스 세베리누 스 (470/475?~524)

Boetius, Anicius Manlius Torquatus Sever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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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시우스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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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시우스 성인


성인. 순교자. 로마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정치가. 축 일은 10월 23일. '마지막 로마인이자 중세기의 창립자 요 최초의 스콜라 학자' 라고도 불린다. 470/475년경 로 마의 그리스도교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487년에 동고트 의 테오데리히 대제의 집정관이 된 아버지가 곧 세상을 떠나자 귀족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Aurelus Symmachus) 의 집에서 자랐으며, 훗날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면서 문학 · 철학 · 산 술학 · 기하학 · 음악 · 천문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공부 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학식과 인품은 테오데리히 대제 의 인정을 받아 510년경에 집정관이 되었고, 520년에는 최고 행정 사법관이 되었다. 520년에 로마의 원로원 의원들과 테오데리히 대제는 전(前) 집정관 알비누스(Albinus)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518~527)와 내통하였다는 이유로 고발 하였는데, 이때 보에시우스가 법정에서 알비누스를 옹호 함으로써 그 역시 반역 혐의를 받았고, 마술을 부려 신성 을 모독하였다고 고발당했다. 또한, 아리우스주의자였던 테오데리히 대제가,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녔던 보 에시우스의 친구인 교황 요한 1세(523~526)와 동로마 제 국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 사이의 친분 관계에 반감을 갖고 있었기에, 보에시우스는 가톨릭에 대한 아리우스주 의자들의 박해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사이의 화해 관계 에 대한 위협이라는 사회적인 배경으로 총애를 잃고 반 역자로 고발되어 파비아(Pavia)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오직 양부인 심마쿠스만이 그를 옹호해 주었으며, 이 기 간 동안 감옥에서 《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을 저술한 보에시우스는 524년에 잔인하게 처형되 어 파비아의 성 베드로 성당에 묻혔고, 훗날 원로원 동료 였던 카시오도로(Casicdom)에 의해 그의 전기가 작성 되었다. 브레시아(Brescia) 등 몇몇 이탈리아의 교구에서 순교자로 공경받아 오다가 1883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 하여 시성됨으로써, 파비아에서 거행되던 그에 대한 공 경이 교회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저 서〕 철학 작품 : 보에시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전 작품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두 철학자의 사상을 신플라톤주의적 양식으로 통합시키려 했는데, 그 의 이러한 계획은 일부만이 수행되었을 뿐이다. 510년 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설》(De Interpretatione)을 번역한 보에시우스는, 이것을 두 개의 주석 즉 초보자를 위한 것 (511)과 논리학에 보다 접근한 학생들을 위한 것(513)으 로 나누어 번역하였으며, 511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Categnics)과 그에 대한 해설서를 집필하였다. 한편 505년 이전에 그는, 마리우스 빅토리누스(Marius Victorinus)가 번역한 포르피리오스(Pophyrios)의 3세기경 작품으로 그리스어로 집필된 《이사고게》(Isagoge)의 주석 서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보에시우스는 509년에 《이사 고게》를 직접 번역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고(509~510), , 아리스토텔레스의 《토피카》(Topica) 와 《제1 철학》(Analytica priora)의 번역 의도도 언급하였 다(PL 64 : 1173C ; 1216D ; 1184D) 513~515년에는 치체로(Cicero)의 《토피카》(Topica) 의 주석서를 저술하였으나 그 일부가 상실되었고(PL 64 : 1039~1174) 《범주적 추론법》(De categoricis syllogismis, PL 64 : 793~832)과 《가설 추론법》(De hypotheticis syllogismis, PL 64 : 831~876)으로 되어 있는 《범주적 추론법의 입 문》(Introductio ad Syllogismos categoricos)을 저술하였으며 (PL 64 : 793~832), 《구분》(De divisione, PL 64 : 875~ 892)은 매우 권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밖에 그가 저술하였다고 여겨져 오던 많은 작품들은 다른 이들의 저술로 판명되었다. 《철학의 위안》 : 산문과 시를 번갈아 사용한 이 저서는 아름다운 문체와 살아 있는 대화의 형식이 돋보이는 철 학서로 5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이교도 철 학자가 저술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 저서의 사상은 원칙 적으로 플라톤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소위 소 크라테스의 유산' 과 견유학파의 철학과 스토아주의, 에 피쿠로스 학파의 철학도 들어 있고, 직접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나 복음, 사도나 교부들에 대한 말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교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모순 되는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여성으로 의인화된 철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보에시우 스는 '선' 이라는 플라톤적 개념으로 개종하게 되고, 자 신에게 내려진 강제 추방 명령은 분명히 부당하지만 이 우주를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다스리고 관리하는 '최고의 선 (summum bonum)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기에 '악' 의 존재는 배제된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지만, 신의 질서와 예지를 전혀 방해하지 못한다. 미덕은 반드시 보 답을 받기 때문에, 죄수는 죽은 뒤에 반드시 보답을 받으 리라는 희망으로 위안을 얻는다. 결국, 보에시우스는 인 간이 알 수 있는 한계 너머에 다른 존재가 있을 가능성을 강조하고,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 외에 다른 차원이 존재 할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지상의 여러 가지 사물들 의 무상함과 영적인 인내의 위대함, 특히 지적 가치들을 강조하였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의 그리스도교 철학자인 질송(E. Gilson, 1884~1978)은 비록 이 책이 엄밀하게는 철 학적이지만 영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교적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저자가 성서와 오리제네스와 아우구스티 노의 저서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 라고 하였다. 신학 작품 : 520년경에 저술하였다고 여겨지는 《신학 논고집》(Opuscula sacra)은 그가 삼위 일체와 예수의 강생 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성 아우구스티노와 동등한 신학 의 권위자로서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다. 이 《신학 논고 집》은 <삼위 일체론>(De Trinitate I : Quomodo trinitas unus Deus), <성부>(De Trinitate I : Utrum Pater) , <실체>(De Trinitate Ⅲ : Quomodo substantiae) , <가톨릭 신앙>(De fide catholica), <에우티케스와 네스토리우스를 반박함>(Contra Eutychen et Nestorium) 등 다섯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 상〕 철학 체계 : 보에시우스는 학문 활동을 모든 학문, 특히 논리학에서 시작한다. 그는 《이사고게》 주석 서에서 철학을 '지혜의 사랑' 이라고 정의하면서, 철학이 모든 존재와 지식의 근원인 신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자 세히 해설하였다(PL64 : 10D~11A). 그에 따르면 철학은 '이론적이고 사유적인 철학' 과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철 학' 으로 나뉘어지는데, 후자는 윤리학 · 정치학 · 경제학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반면에, 전자는 인식의 종류에 따라 다음 세 가지 부문으로 나뉘어진다고 하였다. 첫째 는, 관념상의 것들(intellectibilia) 즉 소위 신(神)과 천사들 같은 물질 밖에 존재하는 존재에 부응하는 '신학' 으로, 물질적인 사물들을 넘어서 형성되는 이 학문은 신을 모 든 존재의 원천인 비물질적인 형상으로 고찰한다. 둘째 는, 육체 안에 있으나 순수한 사유에 의해 이해할 수 있 는 관념상의 존재에 부응하는 '형이상학' 이다. 그에게 형이상학은 역경 속에 있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었다. 셋째는, 자연적인 것(naturalia)을 연구하는 생리학 혹은 물리학이라고도 불리는 '자연 철학' 이다. 자연 철 학은 실재하는 물리적 육체들의 본성을 연구하는데, 여 기에는 산술학 · 천문학 · 기하학 · 음악 · 문법학 · 수사 학 · 논리학이 포함된다. 이 학문들은 물질과 운동, 감각 사물들로부터 지성에 의해서 추상된 여러 '형상' 들을 연구한다. 유의 본성 : 유(有)는 선한 것이기에, 피조물은 선하다 고 여긴다. 보에시우스는 유를 선과 동일시하였으며, 악 을 비유(非有)와 동일시하였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직 육체만도 아니고 오직 영혼만도 아니다. 그런데 신은 신적인 단순성으로 인해서 피조물 들과는 다르게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신의 있음, 즉 유와 무엇임 즉 본질은 하나이다. 보에시우스는 신적인 실체를 '질료가 없는 형상' 으로 정의하였다. 그에 의하 면, 인간은 육체인 질료와 영혼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결 국, 영혼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다. 형상은 실체로 하여금 실체이게 하는 것이다. 이 형상은 유이며, 실체로 구성된 모든 유는 아직 완성된 유가 아니며, 유에 참여한 다. 한편, 그는 사물 속에는 이중의 선이 있다고 하였다. 그중 하나는 그 사물의 본성에 따라서 존재하는 그 상태 인데, 이 선함은 직접 '제1 선(善)' 으로부터 나온 것이 다. 또 다른 선은 '유의 완성' 으로, 이것은 창조된 사물 에게는 본질적이지 않고 우유적으로 나타나는 선이며, 오직 신에게만 본질적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주제 를 그의 저서 《진리론》(De Veritate)과 《신학 대전》(Somma Theologicae)에서 더 발전시켰다. 또한 아우구스티노에게 서 영감을 얻은 보에시우스는 그의 <삼위 일체론>에서 신적인 세 위격의 일치를 밝혔으며, <가톨릭 신앙>에서 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사상인 삼위 일체, 창조, 원죄, 강 생, 구원 등을 성서와 성전을 토대로 제시하였다. 신의 섭리와 운명 : 보에시우스는 《철학의 위안》에서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고 질문하였고, "만약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선이 어 떻게 왔겠는가?" 하고 반문하며 이에 대답하고 있다. '만일 신이 세상에 대한 선한 통치자라면, 어떻게 세상 의 악이 설명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보에시우스는 《철학의 위안》에서 섭리와 운명의 관계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신의 예지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였 다. 그에 따르면, 운명에 종속된 모든 것은 신의 섭리 안에 있다. 그러나 신의 섭리에 의존하는 어떠한 것이 운명을 모면하기도 한다. 섭리란, 신의 사유와 신적인 지성에 따 르는 신의 행위와 같이 생각되는 세상의 질서이다. 운명 이란, 세상의 경로를 통치하는 내부적인 법 즉 세상의 운 동과 실행을 이끄는 신의 행위와 같은 세상의 질서이다. 운명과 섭리는 두 개의 구별되는 실재이다. 섭리는 통일 된 신적인 계획이며, 신적인 지성이다. 그것은 영원히 신 의 부동성 안에 머물며, 그것은 곧 신이다. 운명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신적인 계획이며, 사물의 법이다. 그의 시간적인 양상은 섭리에 의존해 있다. 운명은 섭리에 반 대되지 않으며, 섭리를 따르더라도 인간의 자유를 배제 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신에게서 멀어질수록, 더욱 인간 은 운명에 이끌린다. 반면에 인간이 신에 더욱 다가갈수 록, 더욱 그는 자유롭다. 만약에 신의 예지가 무류적이라면, 인간은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만약에 인간이 자유롭다면 신의 무류성은 모순될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인 문제를 보에시우스는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다루었다. 그에 의하면, 신은 인간 에게서 나오는 행위들을 무류적으로 인식하며, 그것을 자유로운 행위로서 인식한다. 신의 예지는 미래 사건에 어떠한 필연성을 부과하지 않는다. 현재의 인식은 현재 에 어떠한 필연성을 수여하지 않으며, 과거에 대한 선견 은 미래에 어떠한 필연성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자칫 사 건의 필연성도 부정하고 신의 예지도 부정하는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신은 영원하며, 신의 사물들에 대한 인 식은 연속의 시간을 지배하고, 신은 모든 사건들을 마치 그것들이 현재에 일어나는 것처럼 인식한다. 또한 신의 직관은, 사물이 언제나 현재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사 물의 질을 결코 바꾸지 않으며, 단번에 모두를 포괄한다. 이러한 보에시우스의 철학적인 해답은 은총과 자유 의지 의 관계를 다루는 가톨릭 신학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평가와 영향〕 보에시우스의 교의적인 영향은 12세기 샤르트르 학파 학자들의 주석서를 통해 절정에 달하였 다. 포레의 질베르(Gilbert de la Porrée)는 《신학 논고집》을 모두 주석했고, 샤르트르의 티어리(Thieny of Chartres)와 그의 제자 아라스의 클라렌바우드(Caranbaud of Arras)는 《신학 논고집》 제1권과 제3권을 주석하였다. 한편 니체 (F. Nietzsche, 1844~1900)는 《신학 논고집》 저자의 진정성 을 의문시하였으며, 홀더(Alfred Holder)는 이 책이 보에 시우스의 원로원 동료인 카시오도로가 쓴 것이라고 주장 하였지만, 보에시우스가 저자가 아니라는 확실한 반증도 없다. 보에시우스의 《철학의 위안》에 대한 연구 · 주석 · 번 역은 11~15세기에 성행하였는데, 19세기에는 독일의 여러 학자들이 방법론적인 면에서 이 저서에 나타난 보 에시우스의 그리스도교 사상을 비판하였으며, 그가 이교 도였다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보에시우스의 이 저서에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흔적이 보이며, 그 안에는 또한 교의를 전제한 복음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보에시 우스는 이 저서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희망을 표현하였 는데, 이는 다름아닌 신앙의 행위였다. "우리가 신에게 우리의 희망과 기도를 드리는 것은 헛되지 않다. 왜냐하 면, 올바른 마음에서 나오는 희망과 기도는 없앨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결코 심판의 눈을 피할 수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 철학사) ※ 참고문헌  A.M. Sev. Boetius, De Consolatione Philosophiae(정의 채 역, 《哲學의 慰安》, 성바오로출판사, 1964)/ N.M. Haring, 《NCE》2, pp. 631~633/ F. Stehmiiller, 《LThK》 2, pp. 554~556/ 《EC》, p. 188/ R.P. Mohan, 2, pp. 7~81 Donald Attwater, The Penguin Dictionary of Saints, Great Britain, 1983, PP. 297~298/ C. Chaufour-Verheyen, Denis Huisman ed., Dictiomaire des philosophes, 1993, Paris, pp. 376~380/ 막스 물러 · 알로이스 할더, 강성위 역, 《철학 소사전》, 이문출판사, p. 112. 〔梁惠 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