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본당

報恩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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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174-8 소재. 1955년 10월 1일 옥천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의 모후. 관할 구역은 보은읍, 수한면, 탄부면, 회북면, 회남면, 내속리면, 외속리면, 산외 면 전역과 마로면, 삼승면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송죽,회인, 속리, 하개, 관기, 백석 등 6개소. 〔교 세〕 1955년 460명, 1964년 1,474명, 1971년 1,400명, 1972년900명, 1978년 1,826명, 1983년 2,229명, 1988년 2,200명, 1993년 2,285명, 1995년 2,140명. 〔역대 신부〕 초대 크레이그(H. Craig, 奇厚根) 후고(195. 10~1957.2), 2대 설리번(R. Sullivan, 반예문) 라이문도(1957. 3~1958. 9), 3대 맥키(T. Mckee, 牟) 토마스(1958. 10~1959.3), 4대 포틴(L. Fortin, 尹) 루치아노(1959. 4~1960.2), 5대피노(J.Fino, 지) 야고보(1960. 3~1964. 7), 6대 파렐(G. Far-rell, 백영제) 제랄드(1964. 8~1970. 9) , 7대 김병철(金炳喆) 베네딕도(1971.3~1973.7), 8대 이종태(李鍾泰) 베드로(1973. 7~1975.4), 9대 신순근( 申順根) 비오(1975. 7~1979.5), 10대 장봉훈(張奉勳) 가브리엘(1979. 5~1984. 8), 11대 전명수(全明洙) 아브라함(1984. 8~1988. 5), 12대 김성규(金成圭) 요한(1988. 5~1991. 8), 13대 김원우(金源佑)루도비코(1991. 8~1993. 4), 14대 박기현(朴基賢) 실베스테르(1993. 4~1997. 6), 15대 김상수(金祥洙) 블라시오 (1997.7~현재).
〔전사 및 본당 설립〕 보은군 일대에 본격적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897~1898년경 장호원(현 甘谷) 본당의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가 선녀실(三升面 仙谷 1區), 가습(三升面 達山里 可習), 황토말(三升面 仙谷 3區)의 옹기촌에 신자들이 거주하는 사실을 알고 이곳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당시의 교세 통계표에는 이후 1904년까지 선녀실, 하가습, 황토말, 아치실(內北面 峨谷里)잣고개(內俗籬面 柏峴里) 공소 등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보은 지역은 병인박해(1866) 이전에 7개의 교우촌이 있을 정도로 전교 활동이 활발하였던 곳이지만, 박해로 인해 모두 사라졌다가 1897년에 이르러 다시 신앙의 기운이 싹트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오랜 신앙의 전통을 지니고 있던 보은 지역은 1906년 5월 20일 공주 본당에서 옥천(沃川) 본당이 분 리 설정되면서 이 본당의 관할이 되었고, 옥천 본당이 공 소로 격하된 시기에는 비룡(飛龍) · 대전(大田) 본당의 관할 지역으로 존재하였다. 이후 백현(內俗離面 柏峴里), 분저실(懷南面 分諸里), 가습 공소 및 송죽(三升面 松竹里), 하개(外俗離面 下開里) 등지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이 꾸준 히 이어지다가 1939년 2월 청주(현 壽洞) 본당 소속의 송죽 공소와 하개 공소가 설립되었고, 1952년에는 보은 읍에 보은 공소(竹田里 南山)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한편 1948년에 보은 지역은 다시 옥천 본당으로 편입 되었으나, 본당의 관할 구역이 광범위하여 사목상의 문 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보은 지역의 교세가 확대되는 것과 맞물려 새로운 본당의 설립을 필요로 하 였고, 그 결과 1955년 10월 1일 보은 본당이 옥천 본당 에서 분리 신설되었다. 그러면서 송죽 공소와 하개 공소 도 보은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성장과 변모〕 1955년 10월 보은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크레이그 신부는 교구의 도움으로 이듬해 3월 10일 성당 대지를 매입하고, 12월 15일 성당과 사제관 을 낙성하였다. 그리고 1957년에는 세중 공소(馬老面 世 中里, 1959년 9월 1일자로 青山本堂으로 편입), 1960년에는 상판 공소(內俗離面 上板里, 1967년 폐쇄), 1963년에는 백 석(山外面 白石里) 공소와 회인(懷仁, 懷北面 中央里) 공소 가 설립되면서 설립 당시 460명이었던 신자수가 1964 년에는 1,474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렇게 교세가 신장되자 6대 주임 파렐 신부는 메리놀회의 도움으로 1965년 11월 25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년 만 인 1966년 11월 21일에 248.6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 였다. 또 이듬해 3월에는 동정 성모회의 분원이 설치되 어 수녀들이 본당 사목을 돕게 되었으며, 1968년에는 마로면(馬老面) 지역에 관기(官基)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렇게 성장하던 보은 본당은 1970년대 들어 신자수가 감소하면서 교세도 약화되었다. 그러나 1975년 10월에 속리 공소(內俗離面 舍乃里)가 설립되고, 1976년에는 제 대회 · 성가대 · 청년회가 창설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사 목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점차 본당의 운영도 활기를 띠어 갔다. 그 결과 1980년대 들어 신자수가 점차 증가하여 1983년부터는 약간의 편차를 보이면서 현재의 교세 수 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1984년에 부임한 11대 주임 전명수 신부는 신자 간의 화합과 내실 있는 신앙 생활을 도모하고자 1986년 부터 윳놀이 대회를 개최하여 공소 신자간의 친목에 힘 썼고, 이듬해에는 남부 지구(보은, 옥천, 영동, 청산, 황간) 신앙 연수회 참가 및 성지 순례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사 목 방침은 후임 신부에게도 이어져 성지 순례와 피정은 매년 또는 격년제로 실시되고 있으며, 1990년 4월부터 1994년 6월까지는 성령 쇄신 철야 기도회를 개최하여 신자들의 신심을 고양시켰다. 이와 함께 1991년 7월에 성모회가, 1992년 6월에 연령회가 창설되면서 신자들이 본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14대 주임 박 기현 신부는 1994년 10월부터 1997년 2월까지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미사 때 5분 간씩 교리 교육을 실시 하였다. 또한 신자들은 교구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여 1995년 6월에는 남부 지구 성체 현양 대회에 참가하였 고, 10월에는 배티에서 거행된 신앙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타종교의 영향이 강한 지역 적 특성 때문에 본당의 사목 활동은 전반적으로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으며, 전교 활동도 어려운 실정에 있다. 1997년 현재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연령회, 성가대, 성모회, 제대회 등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 청주교구)
※ 참고문헌  <1897~1924년 교세 통계표>,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1 《옥천 본당사》, 청주교구 옥천 교회, 1991/ 《청주교구 연감》, 청주교구청, 1995.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