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성서에서의 복
히브리어 '아쉬레' (אֲשֵׁרֵי, 복되다, ~하는 사람들)와 그리스어 '마카리오스' (μακάριος, ~하는 이는 복되다)가 우리말 '복' (福)에 가장 가까운 성서 용어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복되다' 는 개념은 일차적으로 걱정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이해되었다. 또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복' 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신(神)들만이 가진것이었으며, '복되다' 는 말은 신들과 관련되어 사용된 술어였다. 이와는 달리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복되다' 는개념은 물질적 행복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선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의 '복되다' 는 말은 무엇보다도 영적(靈的)인 행복을 의미하였다. 즉 신약성서에묘사된 '복' 은 이 세상이 가져다 주는 물질적 행복의 테두리를 넘어선 초월적인 의미에서, 곧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는 데서 오는 행복을 지칭하였다. 따라서 구약의 '행복론' 이 그 내용 및 성격상 대개 시편과 지혜 문학 안에서 발견되는 반면, 신약의 '행복론' 은 그 종말론적 성격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와의 연관성 때문에 주로 공관 복음서와 요한의 묵시록에서 나타난다.
〔구약성서〕 구약성서는 우선적으로 현세적 의미에서의 축복, 즉 많은 자녀를 둔 사람(창세 30, 9-13 ; 칠십인역1열왕 10, 8 : 시편 127, 3-5 ; 집회 25, 7), 좋은 아내를 둔 남편(집회 26, 1), 그리고 지혜와 명예를 지니고 있어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을 거느리는 이들(집회 25, 9)을 '행복하다' 고 일컫는다. 나아가 구약의 '복되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행복 선언' 〔祝福文〕은 다음과 같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며 죄를 피하는 신앙인들 안에서 발견된다. 즉 만군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되고(시편84, 13),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은복될 뿐만 아니라 그 후손도 융성하며, 물질적 행복까지 누린다(시편 112, 1 : 128, 1). 또한 주님께 신뢰를 두거나그분께 피신하는 이들(시편 2, 12 : 34, 9 : 40, 5), 악을피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이사 56, 2 : 시편 1, 1-2 ; 106, 3 : 119, 1 : 잠언 20, 7 :지혜 7, 14 바룩 4, 4), 지혜와 슬기를 찾아 나서며 그를따라 사는 이들(잠언 3, 13 : 집회 14, 20),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들(이사 30, 18)은 복되다고 구약성서는언급하고 있다.
구약의 '복된 이들' 은 현재의 갖가지 선행이 앞날의축복을 마련해 준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미리 '복되다···'를 힘차게 노래하면서, 주님께 희망을 걸고있다. "행복하여라, 가련한 이를 돌봐 주는 사람! 불행의 날에 주님께서 그를 구하시리라"(시편 41, 2 ; 이사 30,18). 그렇기 때문에 '복된 이들' 은 오랜 기간을 인내하 며 주님이 구원하실 날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이다(다니12, 12). 그들은 주님께 희망을 두며 고난의 시기를 극복 하는 이들이다(토비 13, 15-16).
구약성서의 '행복 선언' 은 대부분 "복되다, ··· 하는사람"의 경우와 같이 3인칭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복된 사람' 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음이가시화된다. 즉 '참 행복' 에 이르는 길은 보편적이며 현 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다. 하느님을 경외하거나 주님께 신뢰를 두는 모든 이들, 나아가 그분이 선택하신 이
들(시편 65, 5), 가련한 이를 돌봐 주는 이들(시편 41, 2 ;토비 4, 7-11) 모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 구약성서의 '참된 행복' 은 하느님과 직결되어 있으며, 여러 유형의 격언들 안에서 나타난다. 산발적으로 전승되어 오던 '참된 행복' (축복문)이 집회서 저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수집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집필되었는데, 저자는자신이 생각하는 '복된 사람들' 을 아홉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집회 25, 7-11). 이에 대한 분석은 신약성서의 '참된 행복' (真福宣言, 마태 5, 3-12)의 이해에 적지않은 도움을 준다.
〔신약성서〕 '복되다' (μακάριος)는 낱말은 신약성서에50회 등장하는데, 공관 복음서에 28회나 사용되었다. 마태오 복음서의 13번 가운데 아홉 번은 산상 설교에 사용되었으며, 루가 복음서에는 15회 사용되었다. 공관 복음서를 제외하고는 요한의 묵시록에 자주 등장(7회)하였고, 그 밖에 바오로 서간에 4회, 사목 서간에 3회, 공동서간에 4회 그리고 요한 복음서와 사도 행전에 각각 2회씩 나타난다.
'마카리오스' (μακάριος)는 단순히 '행복하다' 또는'좋다' 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할 때에 여러 가지 방식으 로 사용되었는데, '어떤 인격체의 행복' 에 대하여 사용된 경우도 있고(사도 26, 2), '인격체가 아닌 어떤 사실이 나 진리' 를 말할 때에 사용(사도 20, 35 : 1고린 7, 40)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카리오스는 마태오 복음서 5장3-11절 및 루가 복음서 6장 20-22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부분의 경우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 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즉 마카리오스를 뒤따르는 동사 '에신'(ἐστιν, ~이다)이나 그와 맞먹는 동사가 흔히 생략되어 있으며, '복된 유형의 사람들' 은 2인칭이나 3인칭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복된 사람' 이 누구인지는 조건문을 통하여 또는 이를 전제하거나 함축하는 문장 속에서 드러날 뿐이다. 신약성서의 '마카리즘' (makarismus, 真福宣言,真福論)은 본래 종말론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때문에 '예언적-묵시 문학적 가르침' 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마카리오스를 단순히 '행복하다'는 표현보다는 영적(靈的)인 의미를 포함하는 '복되다' ,'참된 행복' , '진복' (眞福)과 같은 표현으로 번역하는것이 옳다.
신약성서의 '마카리즘' 이 단지 구약성서 및 유대교적인 의미에서 또는 헬라적 및 헬레니즘적인 영역에서 유 래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복되다, ···하는 사람들' 이라는 표현, 곧 신약에 나오는 '진복 선언' 의 문체가 이들 안에 기초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내용적으로도 구약의 지혜 문학이나 묵시 문학적인 요소들과 깊 이 관련되어 있다. 이 모든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신약의마카리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을 전제하고 이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행복론' 과 구별된다. 즉 신약의 마카리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부터 출발하여 초대 교회 신앙의 증인들 및 신약성서 저자들을 통하여 오늘날의 형태에 도달한다. 한마디로 신약성서 안에 묘사된 '마카리즘' 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그 예는 마태오와 루가 복음사가가똑같이 전해 주는 구절로 확인될 수 있다(마태 11, 6 : 루가 7, 23).
마태오 복음 : 마태오 복음의 산상 설교(마태 5-7장)와 루가 복음의 평지 설교(루가 6, 20-49) 안에 들어 있는 '마카리즘'은 두 복음사가가 예수 어록(Q)에서 인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두 복음사가 모두 마카리즘 끝 부분에 서는 박해받는 이들이 누릴 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 며(마태 5, 10. 11-12 ; 루가 6, 22-23), 특히 세 가지 마카 리즘은 두 복음 모두 공통적으로 전해 주고 있다(마태 5, 3와 루가 6, 20 : 마태 5, 6와 루가 6, 21a : 마태 5, 4와 루가 6, 21b). 병행 구절 중에서 서로 다른 표현들은 어록의 차 이 '마태오 어록' 또는 '루가의 어록' )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마태오의 경우 마카리오스의 주체가 3인칭인 데(11-12절은 예외) 반해 루가의 경우 2인칭으로 묘사한 것도 이러한 이유로 여겨진다. 첫 부분에 나오는 세 단계 에서 예수는 구약성서 및 유대교의 '가난한 이들의 신실 성' (《솔로몬의 시편》 5, 2 : 10, 6)을 수용하여 '가난한 이 들, 배고픈 이들 그리고 슬퍼하는(우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를 약속한다. 이는 그들의 입장이 전적으로 새롭게바뀌리라는 약속이다. 이들 세 마카리즘은 프 (π)자로시작하는 낱말, 곧 '프-두운법(頭韻法)' 을 사용하여 간결하면서도 형식 면에서는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마태오 복음의 경우 이러한 모습이 돋보인다. 반면박해받는 이들에 대한 진복 선언' 의 경우, 루가 복음은 유대교 회당에서 추방당하리라는 내용을 통해 박해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 주지만, 구체적인 상황 설명과 더불어 보다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마태 5, 11-12 ; 루가6, 22-23). 이 모든 마카리즘은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 문장(οτι, 종속문)을 사용함으로써 미래 지향적 · 종말론적성격을 띠게 된다. 이 같은 의미에서 마카리즘은 우선적으로 위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앞에 등장하는 세 진복 선언 다음에 다시금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되다···' 가 선언된다. 이들은 '자비를 베 푸는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이다(마태 5, 7. 8. 9). 이들 세 부류의 마카리즘 역시 마태오가 어록에서 취한 내용으로, 교훈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온유한 사람들' 에 대한 진복 선언(마태 5, 5)은 내용 면에서 볼 때 이들 세 부류에 잘 어울린다(칠십인역 시편 36, 11). 충만한 수 '일곱' 에해당되는 3절부터 9절까지의 '일곱 마카리즘' 이 이미마태오 복음 이전에 형성되어 전승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자신이 받은 전승에 윤리적인 의미를 첨가하여 '영으로(τῷ πνεύματι) 가난한 이들' (5, 3)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들은 '스스로가 하느님 앞에 빈손으로 서 있는 존재' 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결국 '겸손한이들' 이다. 히브리어로 '가난한' 과 '겸손한' 의 차이는 실제로 점 하나(י와 ו)의 차이 즉 점의 길이가 조금 길고짧다는 데 있을 뿐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 자신도 이들을 혼동할 정도이다. 마태오가 전하는 마카리즘의 특징은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 (6, 6)이라는 표현안에서 다시 한번 명백히 드러난다.
루가 복음 :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삽입하는마태오 복음사가와는 대조적으로 루가 복음사가는 평지 설교에서 전승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복된 사람들' 이 2인칭 안에 표현되고 있다는 점과 부유한 자들과 배부른 자들에 대한 '불행 선언' (루가 6, 24-26)까지도전해 준다는 점이 이 같은 개연성을 더해 준다. 루가 복 음사가는 사회 경제적 · 물질적인 측면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 (νυν, 25절에는 두 번)이란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보다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이로써 위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교훈적인 측면까지도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루가 6, 27-49). 특히 루가 복음서에 따르면 마리아가 '복된 여인' (μακαρία)으로 등장한다. '믿음 때문에' '복되다' 고 일컬어지며, 또한 이에 근거하여 '주님의 약속' 이 성취된다. "복되어라, 믿으신 분! 주님께서그에게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리니”(루가 1, 45). 마리아는 '메시아를 잉태하고 젖을 먹인 어머니' 라는 사실보다는 오히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인물' 이기에 '복된 여인' 이라고 예수는 어느 군중의 말을수정하여 가르치고 있다(루가 11, 27-28).
요한 복음 :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두 가지 마카리즘은 모두 종말론적 구원 약속으로서 미래 지향적인 성격 을 띤다(요한 13, 17 : 20, 29).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모범적 행위' 바로 뒤에 나오는 '마카리즘' (13, 17)은 제자들로 하여금 스승 예수가 보여 준 사랑의 행위를 깊이 깨닫고 그대로 실행하도록 이끌어 줄 목적을 지닌다. "부활한 분을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은 복되다" (20, 29)라는 구절 역시 신앙의 후손들을 겨냥한 '진복 선언' 이라고 할 수 있다.
서간 : 신학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은 구절(1고린 7.40)을 제외하면, 바오로 서간 중에 마카리즘은 로마서 4장 7절과 8절에만 나타난다. 이들 두 구절은 모두 칠십인역 시편 31편 1-2절에서 인용된 내용이다. 야고보서
1장 12절 역시 칠십인역에 자주 등장하는 '마카리즘-양식' (μακάριος ἀνήρ)을 그대로 본따고 있다(시편 1, 1 ;31, 2 ; 이사 56, 2 : 잠언 8, 32 등). 베드로 전서 3장 14절 은 초대 교회 공동체가 처해 있던 당시 상황과 직결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마태오 복음 5장 10절과의 유사성 때 문에 학자들은 본래 같은 내용이 구두로 전승되는 과정 속에서 약간 달라지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 : 이 묵시록에 등장하는 '복된 사람들' 은 모두 3인칭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수신인인 공동체를 '간접적으로' 겨냥한다. "복되다, 예언의 말씀들을 읽는 사람, 그리고 듣는 이들···"(묵시 1, 3) "복되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사람!"(22, 7). 묵시록 맨 앞과 맨 뒤에 나오는 이 두 가지 마카리즘은 나름대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묵시록을 읽는 이들은 이들 두 구 절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 씀' 은 결국 묵시록 저자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표현이 다. 묵시록에는 박해받는 교회의 상황이 이미 전제되어 있다. 순교자들은 첫 번째 부활' 에 참여하게 될 뿐만 아 니라 죽음까지도 궁극적으로 이겨내게 되리라는 약속이 선포된다(20, 6). 묵시록의 마카리즘 속에는 위로와 충고가 잘 결합되어 있다. (-> 산상 설교)
※ 참고문헌 정양모 역, 《루가 복음서》, 분도출판사, 1983/ 박영식,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하여》, 바오로딸, 1995/ D. Deden, Selig,Bibel-Lexikon, Hrsg. H. Haag, Zuerich · Einsiedeln · Köln, 1968, pp.1573~1574/ G. Strecker, μακάριος, 《EWNT》, Bd. 2, 1981, pp. 925~9321U. Luz, Das Evangelium nach Matthaeus 1-1, 《EKK》, 1985/ F. Bovon, DasEvangelium nach Lukas 3-1, 《EKK》, 1989. 〔辛敎善〕
II . 동양 철학에서의 복
좋은 것, 완전한 것, 신령한 것을 의미하는 '매우 경사스러운 말' (大慶之辭). 우리말 사전에는 '큰 행운' . 좋 은 운수' 등으로 풀이되어 있는데, 행복(幸福) · 축복(祝福) · 복권(福券) 등의 단어와 '복받으십시오' 라는 인사말, 그리고 장식품이나 옷 등의 문양(文樣) 속에서 흔히찾아볼 수 있다. 다른 어떤 말이나 문자보다도 한국인의일상 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어원과 용례〕 복 (福)은 '보일 시' (示)와 '가득 찰복' (昌)으로 이루어진 회의(會意) · 형성(形聲) 문자이 며, 갑골문에서의 문자 형태는 "두 손을 신 앞에서 높이받드는 모양" 으로 되어 있다. 《설문》(說文)에서는 복 을 비(備)라 하였고, "제사를 갖추면 반드시 복을 얻는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신이 길(吉)하고 상 서로움을 내려 사람을 돕는다' 는 뜻의 우(祐)자나 록(祿)자와도 같은 뜻으로 사용되어 복록(福祿)처럼 함께 사용한 경우도 많다. 이런 일차적인 의미 이외에도 제육(祭肉, 제사에 공양하고 남은 고기)을 '복' 이라고 하였고,고대에 부인(婦人)들의 인사를 복 이라고도 하였다. 이처럼 '복' 이란 글자는 제사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복을 빌고 구하는 기복적(祈福的)인 존재임을 보여 준다. '복' 은 단순한 개념이나 바람으로 머무르지 않고, 여러 가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인간의 삶과 생명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그래서 집이나 토지 · 양식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들뿐만 아니라, 법(法)과질서, 선(善)과 화목 등과 같은 도덕적 · 정신적 가치들도 포함된다.
장수 : 동양에서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복을 비는마음이 정착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바라는 내용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는 복은 바로 장수(長壽) 이다. 《서경》(書經)의 <흥범구주>(洪範九疇)에는 오복(五福)으로 수(壽) · 부(富) · 강령(康寧) · 유호덕(攸好德) · 고종명(考終命)을 꼽았고, 《한비자》(韓非子)에서는 수(壽) · 부(富) · 귀(貴)를 복이라고 하였다. 한편 우리 나라의 속설(俗說)에는 치아가 튼튼한 것을 복으로 여겼으며, 자손이 번창하고 아들을 얻는 것을 큰 복으로 꼽기도 하였다. 《시경》(詩經)에서는 29편의 시(詩)에서 직접적으로 복을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서 "많은 복을 받으시어 머리도 다시 나시고 아이처럼 튼튼한 치아를 가지시기를" 축원하는 시가 있는데, 이는 바로 무병 장 수(無病長壽)를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긴 것으로 삶에 대 한 긍정적인 인생관을 보여 준다. 또 많은 자손을 복으로 여겼는데, 특히 대(代)를 이어나갈 아들을 얻는 것을 큰 복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생명의 지속성을 지향하는 인 간의 모습으로, 이런 전통은 그 이전에 이미 받아들여진 것으로 많은 자손을 갖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내려 주는 큰 복이고, 그 자손들이 효(孝)를 다할 때 복은 더욱 완 전하게 채워진다고 믿었다.
부 : '부' (富) 또한 복으로 여겨졌다. 가난은 바람직하 지 못한 요소이며, 효의 실천에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 였다. 그런데 '부' 는 공자(孔子) 이후에 의(義)를 동반 해야만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다. 《논어》(論語)에서는 '복' 이란 글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녹' (祿)자만이5번 언급되는데, 모두 인격 수양과 학문을 위해 공부하는 노력을 쌓을 때 복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사용됨으로써 공자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공자가 '복'
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반면, 《맹자》(孟子)에는 3번 언급되고 있는데 대개 복을 받기 위한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였다. 순자(荀子)도 현실을 주목하고 강조하는 사 상적 특징에서 복을 빌기에 급급하기보다는 도리(道理) 를 따르는 것과 화복(禍福)을 분별할 줄 아는 합리성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천인지분(天人之分)을 역설한 그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서, 하늘의 일은 하늘에 맡기고 인간 편에서 해야 할 몫은 학문과 도덕적 노력임 을 제시하고 있다. 유가(儒家)의 사상에서도 은(殷) 이 후 복은 천(天)에 대한 종교적인 차원의 생명과 같이 필 수 불가결한 것이고, 이의 충만을 기원하는 기복(祈福) 사상이 강하였으나 차츰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중점을 두는 인본적이고 합리주의적인 경향으로 변하였다. 〔복을 얻는 방법〕 복을 누리는 데에는 방법이 수반된 다. 복은 '바라다' , '기원한다' , '내리다' 라는 동사와 함 께 쓰임으로써 천(天)이나 신(神) 등이 인간에게 내려 주는 것이라는 성격을 띤다. 인간은 복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기도하고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는데, 이런 인간 의 노력 중에서도 제사는 복과 관련된 가장 근본적인 방 법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의례(儀禮)도 중시되지 만 제사에 임하는 이의 마음의 정성과 진지함이 없이는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래서 복은 이러한 신앙 행위에 대한 보답으로 얻어지는 귀한 것으 로 이해되었고, 신을 정성껏 섬기면 자연히 복도 따라오 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므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덕 (德)이야말로 제물(祭物)과 더불어 복이 내릴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이며, 덕에 따르는 보답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 신으로부터 온다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복 을 받기 위해 자신의 덕을 쌓아서 최선을 다하고 복이 내 리기를 기원하면 복은 스스로 찾아올 것이라는 것으로, 사람이 복을 받는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보편적으로 깔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은 종교 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의 복전(福 田, 부처를 공양하면 밭에서 먹을 것을 거두어들이듯 복을 거두 어들일 수 있음)이나 그리스도교의 복음(福音)이라는 용 어에서 이러한 성격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흔히 '복을 빈다' 라고 했을 때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사람의 기도나 축원으로 복을 불러들이는 방법을 의미한 다. 즉 '인위' (人爲)에 의해서 복을 '얻을 수 있는 것' 이 라는 기대가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복은 인위적으로 무조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 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이는 '타고난 복' 이나 '복상' (福相)의 말의 쓰임으로도 알 수 있다. 그 러나 대체적으로 복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 라 복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조건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 게 된다. 동양의 복 지향적인 전통은 삶 자체를 즐겁고 복스러운 것으로 확신하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복을 바라는 삶의 태도 속에 내재되어 있는 현실 긍정적 사고나 조상을 섬 기는 태도, 또한 작게는 가족에서 크게는 나라에 이르기 까지 화목을 추구하는 태도는 현대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복은 인간의 노력 없이 얻어지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고, 극기와 인내의 자아 수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요행을 바라는 태도와 행위는 지양해야 함을 제시해 주고 있다.
※ 참고문헌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소, 《四書》/ 《十三經引得》, 남악출판사/ 許愼, 《說文解字》, 중화서국/ 《辭源》, 상무인서 관/《大漢和辭典》, 동경 : 대수관서점, 1974/ 《禮記》, 보경 문화사/ 《詩經》, 보경 문화사/ 《段玉裁 說文解字 注》, 여명문화사업부/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 9, 정신문화연구원, pp. 904~914/ 백천정, 《字通》, 평범사, 1984/ 《形音義綜合大字典》, 정 중서국/ 김승혜, 《原始儒敎》, 민 음사, 1990/ 이명숙, <시경에 나타난 복 사상 연구>, 서강대학교 석사논문, 1984. 〔宋河璟〕
복
福
〔라〕beatitudo · 〔영〕bea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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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진복 선언은 영적인 행복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