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福音

〔그〕 εὐαγγέλιον · 〔라〕 evangelium · 〔영〕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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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구스타브 도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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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들(구스타브 도레 작).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하는 일.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 느님의 통치와 구원의 기쁜 소식. 전례 중에 봉독되는 복음은 기쁜 소식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해방 을 알리는 것이다.
〔성서 이외의 문헌〕 그리스 언어권 :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복음은 '에우안겔로스' (εὐαγγελος,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라는 일반 명사에서 유래하였다. '에우안겔로스' 가 당도했다고 하는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이 왔다는 뜻이며, 이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대가또는 상이 '에우안겔리온' (εὐαγγελιον)이었다. 이런 식의 표현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쁜 소식을 전한 이에게 주는 상 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단지 '기쁜 소식' 만을 의미하게 되었다(schn. Euang., 120 ; Aeschin., 3, 160). 그리스어 문화권에서 '에우안겔리온' 이 기술 용어(termini technici)로 사용될 때에는 특별히 '승리의 기쁜 소식' 을 의미한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19?)의 <영웅전》에 보면, 전쟁에 대한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아테네 시민들 앞에 소식을 전하는 이가 전쟁터에서 달려온다. 그는 한 손을 힘차게 들어 큰소리로 "기뻐하라. ···우리가 이겼다" (Demetr, 17, I . 896c)라고 외쳤다. 그의 나타남은 그 자체로서 기쁜 소식이며, 그의 얼굴은 환히 빛나고, 그의 창에는 월계관이, 그의 머리에는 관이 씌워진다(Heliodor.Aeth, Ⅹ, 3 : Philostr. Vit. Soph., II , 5, 3) 간혹 복수형으로 정치적인 소식이나 개인적인 소식에도 이 낱말이 사용되기도 하지만(Heliodor. Aeth., I , 14), '에우안겔리온' 은 일차적으로 '승리의 소식'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가 종교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경우에는 제의를 축하하다' (Ditt. Or., 1, 4, 42), '신탁의 말씀' (Plut.Sertorius, 11)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 외에 정치적인 의미에서 왕과 관련된 모든 일을 '에우안겔리온' 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를테면 그의 등장이 왕국의 번영을 가져온다고 해서 '에우안겔리온' 이라 하였고, 심지어는 그가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가져오는 존재라 하여 그의 탄생도 '에우안겔리온' 이라고 하였다(Plur. De Fortuna Romanorum, Ⅱ ,6, 319c.d). 특히 신약성서가 쓰여지던 당시에 '에우안겔리온' 은 왕권과 관련되어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유대교 : 칠십인역에서는 복음이라는 단어의 단수형은 등장하지 않고 복수형인 '에우안겔리아' (εὐαγγελια)가 단 한 번 나오는데(2사무 4, 10) 그 뜻은 '기쁜 소식에 대한 대가' 이다. 이는 분명히 종교적인 용법이 아니므로 신약성서의 '복음' 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필로(Philo)의 저서에서는 이 단어가 없고, 요세푸스(F. Josephus)의 저서에서는 단지 '기쁜 일' 이라는 일반적인 뜻으로 사용될 뿐이다(《유대 전쟁사》 2, 420 ; 4, 656). 랍비들의 문헌에 보면 이 단어에 해당하는 낱말로 '기쁜 소식' 이라는뜻의 '바사르' (בָּשָׂר)가 있지만, 종말론적으로나 하느님의 나라를 뜻하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는 명백하게 복음이
라는 의 미로 사용되는 용어는 없다. 유대인들은 단지 사생활이 나 공생활에서 벌어진 경사스러운 일들, 즉 원수의 죽음 (2사무 18, 19-20. 26), 승리(시편 68, 12), 유대의 광복(나 훔 2, 1) 등을 일반적으로 기쁜 소식이라는 뜻으로 사용 하였다. 하지만 이사야서 40-66장에서의 이 단어는 엄 격한 의미로 종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기쁜 소식의 사 자(使者)는 유배 생활의 종말과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언한다. 기쁜 소식의 내용은 위로의 말씀, 죄의 용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하느님의 귀환 등이다(이사 40, 1-2. 9).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인 복음은 산에서 선포되고(이사 40, 9), 만민의 관심사가 된다(이사 52, 10 ; 시편 96, 2). 이 복음은 그 시대라는 한계를 넘어선다. 그리고 유배지에서의 귀환이라는 경사스러운 사건을 넘 어서서 하느님의 승리와 통치의 완전한 성취를 예고한 다. 〔신약성서〕 신약성서에 복음이라는 말은 총 76번 등 장하는데, 마르코 복음서에 8번, 마태오 복음서에 4번, 사도 행전에 2번, 베드로 전서와 요한 묵시록에 각각 1 번씩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바오로의 편지에만 60번 나 온다. 따라서 복음이란 말은 일차적으로 바오로의 애용 어라고 할 수 있다.
바오로 서간 : 신약성서에서 복음이라는 용어를 제일 처음 사용한 인물은 바오로이다. 그는 이 낱말을 앞뒤에 수식하는 용어 없이 단순하게 '기쁜 소식' 이라는 뜻으로 만 사용하였는데, 이는 편지를 읽는 독자들이 이미 이 낱 말에 친숙해 있어 별다른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 없었음 을 암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오로 서신에 나오는 복음 이 쉽게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는 성격의 낱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① 우선 복음은 '복음을 전파한다' 라는 선교 행위와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바오로가 고린토 교회에 보낸 적 이 있는 어떤 사람은 복음 선포에 힘쓴 사람이고(2고린 8, 18), 바오로가 다닌 전도 여행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 기 위해서였다(2고린 2, 12 ; 필립 4, 3). 그러나 복음을 전 하는 이들은, 바오로 스스로가 말했듯이, 하느님으로부 터 선택받은 사람이어야 한다(로마 1, 1).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보면, 바오로는 '복음이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 을 받은 이가 전하는 행동을 통해 퍼져 나간다' 는 사고 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사 람은 1세기경 십자가 사건을 전하고 다니던 유랑 전도사 들을 일컫는 말인데, 바오로 자신이 투신하였던 삶의 반 영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바오로가 복음이란 낱말을 사용하면서 이는 곧 "하 느님의 아들로 책봉되신 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 이라고 하였다(로마 1, 3). 따라서 바오로의 서간에 나타 난 예수 그리스도관(觀)을 살펴보면 그가 전한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다(로마 1, 3).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은 역대 왕들 중 가장 위 대한 업적을 쌓은 왕으로 평가받으며, 그가 다스리던 당 시의 이스라엘은 부강한 나라로 전성기를 누렸었다. 따 라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항상 이방인의 침략에 시달리며 내리막길로 치닫던 이스라엘에게는 다윗 왕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 나라를 부흥시켜 주리라는 희망이 필요하였고, 이는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으로 자리잡았 다. 그리고 메시아는 반드시 다윗 왕의 후손에서 나오리 라는 예언도 메시아 대망 사상에 한몫을 단단히 차지하 였다.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1세기 당시에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염원이 유달리 컸었고,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그가 바로 다윗의 후손 메시아라는 사실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마태 1, 1 : 마르 10, 47. 48 ;루가 1, 27 이하 등). 따라서 바오로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점이 강조된 것은 그가 구약성서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 즉 구약(舊約)을 완성한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로마 1, 1 이하 : 1고린 15, 1 이하). 바오로에게는 구약성서 자체가 바로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구약성서의 계시는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열려진 복음이었다(로마 16, 25 이하).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의 부활 이후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아들로 책봉된 분"이다(로마 1, 4). 이는 예수가 지상에서 누렸던 생애의 광범위한 요약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바오로 서간에서는 주로신조(Credo)의 형태로 쓰여져 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4절 외에도 "실상 나도 전해 받았고 또 여러분에게 제일먼저 전해 준 것은 이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말씀)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또 성경(말씀)대로 사흘 만에 일으켜지시고"(1고린 15, 3-4)라는 구절과 "또한 그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당신 아들, 우리를 장차 닥쳐올 진노로부터 건져 주시는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어떻게 고대하게 되었는가도 그들은 전하고 있습니다"(1데살 1, 10)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세 구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데살로니카 전서 1장 10절에서는 그가 재림하리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이 세가지 사항은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1세기경 교회에서 철석 같이 믿고 있던 그리스도의 정체였으며 선포문(Kerygma)으로, 신조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가 선재(先在)한 분이었다는 사상이 복음의 내용에 이미 전제되어 있었는지는 불분명한데, 바오로의 예수이해 중 선재 사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필립 2, 6-11)적어도 선포문에는 이 사상이 드러나게 포함되어 있지않다. 그러나 육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요, 영으로는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점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③ 복음에서 파생되는 효과는 '구원' 이다. 복음의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에페 1, 13 : 로마 1, 16 : 1고린 15, 2). 복음은 믿는 이들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하느님의 능력이며, 복음은 믿음을 싹트게 만들기도 한다(로마 1, 16 이하). 믿음은 복음을 통해 성장하며(필립 1, 27), 평화를 가져오고(에페 6, 15), 거듭나게 하여 새 삶을 주며(1고린 4, 15),죽음을 넘어 생명에 이르게 하며(2디모 1, 10), 무엇인가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준다(골로 1, 5). 바오로는 이른바 '의화론' (義化論)을 편 인물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맞추어 복음이 가지는 구원의 측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음은, 믿는 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유 대인 그 다음에는 헬라인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 16). 이로써 이제까지 이 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허락되어졌다고 여겨지던 '하느님 의 의로움' 이 더 이상 유대인들만의 점유물이 아님을 밝 혀 준다. 또한 바오로는 '하느님의 의로움' 이 지니는 보 편성을 분명하게 하였다(로마 3, 25 ; 4, 25 ; 1고린 6, 11). 둘째, 바오로에 따르면 유대인 · 이방인 할 것 없이 모 든 인간은 율법 아래서는 죄인이지만(로마 1, 18 이하), 이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의로움' 이 선물로 주어졌다. 그리고 율법의 실천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의로움' 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을 폐기 처분하였다. 셋째, 바오로는 인간을 육(肉) · 죄 · 죽음의 세력에 종 살이하는 존재로 이해하였다. 다시 말해서 육 · 죄 · 죽음 을 어떤 '힘' 으로 간주하였고, 인간은 그 힘 밑에 짓눌려 있는 존재로 파악하였다. 복음은 이러한 가련한 인간을 '예수 안으로' (공간적인 의미에서 : 1고린 12, 12-31 ; 로마 12, 3 ; 1데살 4, 16 등) 옮겨 앉게 만드는, 죄의 힘에서 해 방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예수 안으로 거처를 옮긴다 는 것은 또 다른 예속이 아니라 바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 내용으로 하는 복음을 통하여 '하 느님의 의로움' 이 드러나고, 인간은 이 복음을 믿음으로 써 비로소 악의 세력에서 해방된다. 복음은 곧 구원에 이 르는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④ 바오로 서간에 보면,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자 신의 사도직과 깊이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편지 앞머리 에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사람임 을 거듭 밝혔고(갈라 1, 1 : 로마 1, 1 ; 1고린 1, 1 2고린 1, 1), 자신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진 사도 임을 강조하였으며(로마 15, 14-21), 자신 역시 다른 사 도들처럼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음을 내세운다 (1고린 9, 1 이하). 이처럼 바오로가 자신의 사도직에 대 해 예민하였던 이유는 그가 받았던 사도직에 대한 도전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자신이 진짜 사도임을 내세우 던 바오로는 그가 전하는 복음 역시 다른 사도들의 그것 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들 의 복음' 이라는 표현을 쓰고(2고린 4, 3 ; 1디모 1, 5 : 2디 모 2, 14 : 참조 : 1고린 15, 1 : 갈라 1, 6), 복음이란 단 하 나뿐이라고 하며(갈라 1, 16),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 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오히려 그 신앙을 전파하기 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갈라 2, 23).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사도이며(갈라 1, 16), 복음을 통한 축복의 동반자이고(1고린 9, 23), 복음 의 전파를 위해 제사장의 직무를 맡았다고 자부한다(로 마 15, 16). 그는 복음 때문에 고통을 받았으며(2디모 1, 8), 복음의 변호자이기도 하다(필립 1, 16).
⑤ 바오로 서간에서 복음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은 종 말론적인 차원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우선 선포문의 세 가지 내용 중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이다 (1데살 1, 10). 재림의 날은 "하느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숨은 속을 심판하실 그날" (로마 2, 16)이다. 바오로가 한 종말 심판 설교의 중 심 내용은 세상의 구원자인 예수가 바로 심판관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은 장구한 세월을 두고 숨겨져 왔던 진리를 드러내 보여 믿 음을 굳세게 해준다.
바오로 서간에서는 지상에서 예수가 한 언행에 대한 자료가 복음서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다. 이는 바오로가 역사의 예수에 대해 가졌던 정보가 그만큼 빈약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닥쳐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너무 임박한 나머지 예수 생애의 핵심인 십자가 사건을우선적으로 전파하고, 이를 통해 믿는 이를 한 사람이라도 더 늘리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로마 16, 20). 따라서 예수를 믿어 심판의 날에 그 앞에 서는 이에게는,심판날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날이 될것이라는 확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1데살 4, 13-5, 11).
복음서 : 마르코 복음 1장 1절에 보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었 다)"라고 되어 있고, 1장 14-15절에는 예수가 전파한 복음의 내용이 '하느님의 나라' 로 요약되어 있다. 즉 예 수의 말씀 속에 복음이 들어 있고, 이는 장차 닥쳐올 '하느님 나라' 이다.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고(8, 35 ; 10, 29),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하며(13, 10 :16, 15), 또한 예수가 지상에서 했던 모든 언행이 바로 복음이다(1, 1 : 14, 9). 다시 말해서 예수는 복음(하느님의 나라)을 전한 주체이자, 그의 언행이 복음으로 전해졌다는 점에서 복음의 객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복음의 객체로 삼아 전도하였던 바오로와 차이가 나는 점이다.
마르코 복음서에 언급되는 8번의 복음이란 용어 중에 마르코의 편집구인 1장 1절을 제외하면 모두 전승을 통해 물려받은 것들로, 이 전승들은 대체로 세 가지 점을 반영한다. 먼저 예수의 설교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구원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1, 15 ; 14, 9).복음이란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비하여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말이며, 이는 종말론적인 미래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이 전승들은 1세기의 교회에서 가졌던 중요한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전하는 일이었음을 보여 준다(8, 25 : 10, 29 ; 13, 10). 이는 마르코 복음서 이전에 쓰여진 바오로 서간들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세 번째로 마르코 복음 1장 14절의 하 느님의 복음' 이라는 표현에서 유일신 신앙에 대해 1세기경의 교회가 가졌던 신앙을 읽어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사실을 종합해 보면 마르코 복음서에 있는 복음은 모두1세기에 교회가 선교적인 맥락에서 '그들의 선포와 가르침이 가지는 성격을 역사적 · 그리스도론적인 관점에서 규정한 말' 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마르코는 이처럼 교회(혹은 마르코의 공동체)에 전승을 통해 내려온 복음에 대한 예수 말씀들을 복음서 안에 써 넣었고, 복음서의 전체적인 성격마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으로 요약하였다. 또한 하느님의 복음은 때가 차서 이미 다가왔으므로 다급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는 예수 말씀을 복음서 서두에 배치시켰다(1, 15). 여기 서 마르코가 의도한 편집 사상의 단면을 읽어 볼 수 있는 데, 그것은 복음이 가지는 현재성이다. 예수의 복음은 시 공을 초월해 그 절대성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이를 바꿔 서 표현하면 예수의 뒤를 이어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통 해 예수는 현존한다는 뜻이다.
마르코 복음 1장 2-11절에 보면 예수와 관련된 처음 사건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일로 기록되어 있 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자 곧바로 하늘에서 비둘기 같은 영이 내려오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 니, 나는 너를 어여뻐 여겼노라" 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 온다(1, 11). 이는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한 첫 사건 이 바로 세례이며, 이 일이 있은 후 예수가 바야흐로 하 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졌다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사상 을 반영한다. 이는 예수를 선재한 분이라고 단정한 요한 복음서(1, 1-18)와는 차이가 나는 점이다.
복음서와 바오로 편지 이외 : 사도 행전(15, 7 ; 20, 24)과 베드로 전서(4, 17), 요한 묵시록(14, 6)에도 복음 이라는 낱말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사도 행전의 복음은 바오로가 이방인 전도를 위해 전한 '복음' 이라는 맥락에 서 이해될 수 있고, 베드로 전서는 '하느님의 복음' 을 믿 지 않는 사람에게 닥쳐올 운명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는 복음이 가지는 종말론적인 성격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복음은 그 쓰임새에 있어 바오로와 마 르코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반면 요한 묵시록의 복 음은 기존의 용법과 무척 다르다. "나는 또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서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에서 살 고 있는 사람들에게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언어와 백성에게 선포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14, 6). 여기서 복음의 선포자는 천사이고 그 내용은 심판이다. 따라서 복음이란 종말의 최후 심판을 알리는 표시이다. '영원한 복음' 이라는 표현은 신약성서에 쓰인 다른 복음들과 비교하면 퍽 생소한데, 복음을 통해 심판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어쨌든 요한 묵시록에 단 한 번 쓰인 복음은 이제 마지막 때가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서둘러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 복음서)
※ 참고문헌  《TDNT》2, pp. 707~7371 J. Gnilka, Das Evangelium nachMarkus I~I , 《EKK》 2-1. 1, Benziger · Neukichen, 1978~1979/ E.Schweizer, Das Evangelium nach Markus, 《NTD》 1, Göttingen, 1968/ G.Strecker, Eschaton und Historie, Göttingen, 1979/ R. Pesch, Markuse- vangelium I ~ I , 《HThNT》2-1. 2, Freiburg, 1984/ M. 디벨류스 · H. 릿츠만, 전경연 역, 《바울》, 한신대학교 출판부, 1977/ G. 보튼캄, 허혁역, 《바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69/ 진 토마스 역주,《데살로 니카 전후서》, 분도출판사, 1981, pp. 43~671 정양모 역주, 《마르코 복음서》, 분도출판사, 1981. 〔朴泰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