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본당
福者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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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①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4 가 86 소재. 1965년 12월 16일 신설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병인 24위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1 · 2가 일부와 3 · 4가 전역, 고사동 1 · 2가, 서 완산동, 진북2동, 태평동 1 · 2가, 중화산동 신일 아파트 일부 지역. 〔교 세〕 1965년 579명, 1972년 992명, 1976년 1,306명, 1981년 1,794명, 1985년 2,383명, 1990년 2,520명, 1994년 2,425명, 1995년 2,484명. 〔역대 신부〕 초대 이태규(李泰圭) 요셉(1965. 12~1966. 12), 2대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1966. 12~1967. 12), 3대 범석규(范錫圭) 마티아(1967. 12~1969. 4), 4대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1969. 4~1975. 7), 5대 김종길 (金鍾吉) 라파엘(1975. 7~1977. 5), 6대 김종택(金鍾澤) 요셉(1977. 5~1982. 10), 7대 권영균(權寧均) 안토니오 (1982. 10~1986. 1), 8대 김기수(金基洙) 사도 요한(1986. 2~ 1990.5), 9대 김병환(金炳煥) 사도 요한(1990. 5~1994. 2) , 10대 정승현(丁勝鉉) 요셉(1994. 2~1998. 1), 11대 김진 룡(金眞龍) 안토니오(1998. 1~현재). 〔설립과 정착〕 1964년 춘계 주교 회의에서는 병인년 순교 100주년이 되는 1966년에 각 교구에 기념 성당을 건립할 것을 결의하였는데, 이에 따라 전주교구에서도 1965년 2월 25일 교구 신부 회의를 열어 복자 성당 건 립 계획을 논의한 데 이어 3월에는 교구장 한공렬(韓표 烈, 1913~1973) 주교가 <순교자 기념 성당 건립 취지문> 을 발표하였다. 4월에는 교구 사제 긴급 회의를 개최하 여 기념 성당 건립에 합의함으로써, 교구에서는 교구 후 원금과 신자 신부들의 성금으로 7월에 523평의 대지를 구입하고, 그 해 12월 16일 전동 본당과 중앙 본당 관할 구역 중 일부를 분할하여 복자 본당을 설립함과 동시에 이태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본당 설립과 함께 교구에서는 1966년 1월 20일에 60평 규모의 임시 성당을 준공하였고, 9월에는 본격적으로 성당 건립을 추 진하기 위하여 '복자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 를 구성하였 다. 그 후 약 6개월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1967년 3월 8일 공사에 착수하여 9월 30일 준공하고 10월 3일에 축 성식을 거행하였다. 왜관의 알렌 신부가 설계한 이 성당 은 총건평 122평에 500만 원의 공사비가 소요되었으며, 이듬해 4월에는 21평 규모의 사제관도 건립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69년 4월에 부임한 4대 주임 오기순 신부는 재임 중 본당의 토대를 닦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부임 직후 그는 본당 운영을 평신도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목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사목 방침에 따라 신자들 은 주인 의식을 갖고 본당 운영에 참여하였으며, 그 결과 1969년 6~10월에는 성모상, 14처, 79위 벽화상, 김대 건 신부상 등 본당의 시설물들이 신자들의 기증에 의해 갖추어졌다. 1970년 3월에는 본당 최초의 '평화의 모 후'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고, 12월경에는 교구청에서 손선지(베드로), 이명서(베드로) 등 8위의 순교 복자 유 해를 모셔다가 새로 갖춘 유해 진열장에 안치하였다. 이 에 앞서 같은 해 4월에는 인보 성체 수녀회의 수녀들이 부임하였는데, 본당 사정상 독립된 수녀원을 건립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73년 1월 22일 본원으로 철수하고 말 았다. 한편 1978년 1월에는 교구 내 관할 구역의 변동 으로 완산동 일부가 파티마 본당으로 이관된 대신 중앙 본당 관내의 태평동 일부가 편입되었다. 그리고 1979년 2월에는 처음으로 박성팔(朴性八, 안드레아) 보좌 신부 가 부임하였고, 1982년 2월 2일에는 안철문(安哲文, 이 냐시오)이 본당 출신 첫 사제로 탄생하였으며, 1984년 4월에는 수녀원 건립과 동시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의 분원이 설치되어 본당 사목을 돕게 되었다. 〔변모와 현재〕 1986년 2월 8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기 수 신부는 그 해 본당 내외의 시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 여 12월 10일에 성당 보수 공사를 완료하였고, 교구의 결정에 따라 평신도 사도회' 를 '사목 협의회' 체제로 바꾸어 보다 효율적인 본당 사목을 도모하였다. 이와 함 께 제대회(1986), 청년회(1987), 여성 분과(1987), 대건 회(1987), 요셉회(1988), 안나회(1988), 밀알회(1988) , 작은 모임(1988) 등 새로운 단체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 으로 설립되어 본당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러 한 가운데 1988년 2월에는 화산동 본당의 신설로 화산 동 신자 90세대 207명이 이관되었다가, 그중 일부(20세 대 56명)가 3월에 다시 본당 소속이 되었다. 1991년 3월 에는 전 신자의 헌금으로 소성당에 유해실을 설치하였 고, 이듬해 4월에는 성모상을 교체하였다.
1995년 창설 30주년을 맞은 복자 본당은 이를 계기로 본당의 기록 보존과 신자 공동체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3 월에 월보 《복자 가족》을 창간하였고, 12월에는 신앙 대 강연회 등 기념 행사를 개최하였다. 아울러 본당의 역사 를 정리하기 위해 '복자 본당 30년사 편찬위원회' 를 발 족시켰는데, 이들의 노력으로 2년 6개월 만인 1997년 9 월에 《복자 성당 30년》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복 자 본당은 병인년 순교 기념 성당이라는 설립 취지가 잊 혀진 채 하나의 평범한 본당에 머무르고 있으며, 위치상 으로도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지역에 있다. 이 때문에 신자들의 이주가 계속 늘어나 교세가 위축되 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 복자 본당이 해결해 야 할 과제이다. 1997년 현재 복자 본당에는 레지오 마 리애 1개 꾸리아와 25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하여, 구역 장회, 성우회, 성모회, 애령회, 중 · 고등부 학생회, 초등 부 주일학교 교리 교사회, 빈천시오회, 자모회, 성가대, 대건회, 요셉회, 파스카 형제회, 복사단, 청년회, 여성 분과, 안나회, 밀알회, 작은 모임, 매리지 엔카운터, 울 뜨레야 등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김진소, 《전주교구사 연표》, 호남교회사연구소, 1993/ 《복자 성당 30년》, 천주교 전주교구 복자 성당, 1997. 〔편찬실〕
②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 신천동 본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