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의 권위 아래 고유한 목자인 본당 신부에게 사목이 맡겨진 교구의 한 부분으로, 교구나 준교구 내에 고정적으로 설정된 일정한 신자들의 공동체(교회법 515조 1항). 특별한 사정으로 본당으로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고유한 목자인 사제에게 맡겨진 준본당(quasi-paroecia) 역시법으로 달리 규정되지 않는 한 본당과 동등시된다(516조1항).
〔용어의 의미〕 그리스어 '파로이카 (παροικία)는 시민권 없이 외국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을 지칭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과 친분 관계를 맺고 지내는 외국인들은 파로이코스' (παροικος)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또한 자신들의 현세의 삶 전체를 지칭할 때에도 이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자신들의 본국은 내세의 하느님 나라이기에결국 현세는 외국에서 나그네 살이를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였다(1역대 29, 15).
그리스 시대 이후 '파로이카' 는 마을을 이루고 사는주민들과 가옥들, 즉 부락이나 동리를 뜻하게 되었다. 이 러한 의미의 '파로이키아' 에서 라틴어 '파로키아' (paro-chia) 또는 '파레치아' (paroecia)가 유래하였다. 이 용어를중국 교회에서는 '당구' (堂區)라고 번역하였고, 한국 교회에서는 '본당' 또는 '본당 사목구 (本堂司牧區)로 번역하였다. 1932년에 라틴어로 발표된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Directorium Commune
MissionumCorea) 2항에서는 "본당(statio residentialis)은 아직 준사목구로 설정되 지는 않았으나, 선교사가 상주하는 그 지역의 중심이 되 는 성당(ecclesia principalis)이 있는 곳이라고 정의하였 고, "공소(statio non residentialis)는 선교사가 상주하지 않 고 정해진 시기에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순회하는 곳" 이며, "사목 구역(dstrictus)은 한 명의 담임 선교사에 게 위탁된 한 개의 본당과 여러 개의 공소를 포괄하는 구 역"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한편 《국어 대사전》(이희승 편, 민중서림, 1986)에서는 '불교의 사원에서 본존(本尊)을 모시어 두는 전당(殿堂)' 이라는 의미와 '천주교의 주임 신부가 상주하는 교회당' 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역 사〕 초기 교회 : 사도들과 그들의 직제자들이 행한 순회 전교 활동으로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에 복음이 선 포되었는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라틴어 '파로키 아 를 '나그네 생활' 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즉 신자들의 본국은 하느님 나라이고, 신자들은 하느님 나 라의 시민인 만큼 현세의 생활은 외국에서 나그네 생활 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1베드 1, 17). 이 용어가 그 리스도교 신자 공동체' 를 의미하게 된 것은 150년 이후 부터였다. 1세기 후반부터는 도시마다 주교들이 정주하 면서 신자 공동체를 사목하고 주일에는 신자들의 집이나 지하 묘지에서 전례를 거행하였다. 이 당시 주교가 사제 단과 함께 사목하는 신자 공동체는 각 도시에 하나뿐이 었는데, 주교가 관할하는 지역을 '디에체시스' (dioecesis) 또는 '파레치아' 라고 일컬었다. 이로 인해 교구(dioece- sis)와 사목구(paroecia)라는 용어가 같은 의미로 혼용되 었다. 4~6세기 :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 를 선언한 후, 로마 제국의 서방 지역에서도 도시뿐만 아 니라 시골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래서 도시의 주 교는 시골에 사는 신자들을 위해 사제들을 파견하였고, 마을을 순회하면서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집전하게 하 였는데, 이들을 '순회 사목 사제' (sacerdos circulantes et visitatores)라고 하였다.
조시모 교황(417~418)과 레오 1세 교황(440~461) 때부 터 시골에도 성당이 건축되었고, 사목 구역의 경계가 확 정되어 사제가 시골에 고정적으로 상주하면서 시골 신자 들을 사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골 본당에 상주하 면서 신자 공동체를 사목하는 사제를 본당 주임 신부 (parochus)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주교의 관할 구역 전체 를 의미하는 교구와 시골 본당 및 본당 주임 신부 제도가 확정되었는데, 성직자들은 특정 교회에 종신토록 봉사하 기 위하여 서품되었고 임지를 이동하는 일이 드물었으 며, 시골 본당을 위하여 서품된 사제는 이동하는 경우가 별로 없이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만 봉직하였다. 이런 시골 본당의 사제들을 위하여 교회 공동 재산의 일부가 할당되어 그 수익으로 사제들의 생활비를 충당하게 하였 으며, 만일 그 사제가 사망하면 재산은 다시 교구로 반환 되는 교회록(benefcium) 제도가 6세기부터 제정되었다. 젤라시오 1세 교황(492~496)은 각 본당의 수입 중 4분의 1을 빈민 구제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
세속 권력의 간섭 : 6세기에 게르만 민족이 개종한 이 후, 야만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던 성당들의 재건 사업 에 세속 권력자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귀족들은 자 신들의 영토 내의 여러 곳에 성당을 건축하고 사제를 초 빙하거나 주교로부터 파견받아 사목하게 함으로써 여러 곳에 '사유 교회' (私有敎會)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이러 한 성당에서 사목하는 사제는 주교의 협력자이기보다는 사실상 영주의 부하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도시에는 주교좌 성당 학교(schola cathedralis)와 성직자 양성 기관 이 있었으며, 주교와 여러 성직자들이 함께 어울려 생활 하였다. 그러나 영주에게 소속된 시골 사제들은 양성도 불충분하였고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생활하였기 때문 에, 시골 성직자들의 자질과 규율도 자연 문란해졌다. 카롤링거 왕조의 카알 마르텔(714~741)이 모든 교회 재산을 왕에게 귀속시키도록 주교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주교들은 모든 본당들에 대한 보호권과 관리권을 빼앗기 게 되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카알 대제 (768~814)는 주임 신부가 있는 본당을 촌락마다 설립하 려 하였다. 세속 권력이 교회 역할을 계속 침해하자 교황 알렉산델 3세(1159~1181)는 보호권 제도를 도입하고, 영 주나 지주들은 성당의 관리권만 갖도록 하였다. 그러나 보호권까지 차지한 영주와 지주들이 성직 서임권과 주임 신부 추천권은 물론 본당까지 그들의 수입원으로 하였기 에 참다운 사목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또 당시 본당들은 상당한 토지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본당에 대한 보호권 을 가진 수도원들도 본당을 수도원에 합병시켜서 수입을 늘리려 하였다. 이에 주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시골 본당 들을 건축함으로써 영주들이 자신들의 영토에 성당을 건 축하지 못하도록 견제하였고, 성직자들을 양성하고 서품 하였다. 또 죄인들을 장엄한 형식으로 사죄하여 교회와 화해를 이루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골 본당들을 순시 하는 한편 교구 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하는 권한을 행사 하였다. 그리고 영주들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세례 성당 (ecclesiabaptismalis) 제도를 도입하였다.
성당의 등급과 세례 성당 : 교회뿐 아니라 영주들도 시 골에 성당들을 많이 건축하자 성당의 등급이 매겨졌다. 역사 깊은 큰 고장의 성당은 '상급 성당' (titulus maior) 작은 고장의 성당은 '하급 성당' (titulus minor)이라고 불렀다. 또한 성당의 중요성에 따라 대성전(basilica), 성당(ecclesia), 경당(oratorium), 순교당(martyrium), 소성당(cappella), 예배실(sacellum) 등으로 구별되었다. 상급 성 당은 본당이자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세례 성당이었다. 그러나 하급 성당은 상급 성당에 종속되었고, 이곳에서 는 세례성사가 집전되지 못했다. '수석 사제' (archipresbyter) 라고 불린 상급 성당의 주임 신부는 하급 성당의 성직자 들을 지휘하였다. 본당의 주임 신부에게만 세례성사와 장례 미사를 집전 할 권한이 주어지면서 신자들은 주소지의 본당에 소속되 어야 하는 의무 제도가 도입되었다. 주교들이 건축한 성 당이 영주들이 건축한 성당들에 비해 소수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주교들은 사사로운 성당들 중에서 몇 개를 선택 하여 그 구역의 본당에 종속하는 공소로 설정하였다. 이 공소들은 수입 중 일부를 본당에 바칠 의무가 있었고, 본 당 주임 신부는 교회록 수입과 신자들의 봉헌으로 생활 비를 충당하였다. 또한 주교들은 주일과 대축일에는 신 자들이 주교좌 성당이나 본당에서 미사를 참례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그 외의 성당이나 경당에서는 주일과 대축일에 미사를 집전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본당 외의 다른 성당에서는 세례성사를 집전하지 못하도록 금 지시킴으로써 본당이 '세례 성당' 이 되었지만, 혼인성사 의 주례권에 대해서는 중세기에 본당 주임 신부에게만 유보되었다는 명확한 기록은 없다.
대도시인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는 5세기부터 주교좌 성당 외에 '명의 본당' (tituli paroeciales)들이 설립되었다. 그 외의 도시에서는 11세기에 본당 제도가 도입되었는 데, 도시 내에 여러 성당들이 설립되었어도 신자들은 주 일 미사를 주교좌 성당에서만 참례하였다. 또 한 도시 안 에 여러 개의 본당들이 설정되었지만, 사목 구역의 한계 가 없이 도시민 전체를 위한 본당들도 설정되었다.
본당 제도의 확립 :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제3 기 24회의에서는 본당 제도가 재조직되었고, 다음과 같 은 내용이 결정되었다. "주교는 그 교구의 목자이다. 주 교는 자기 양 떼와 함께 정주하며 통치할 의무가 있고, 또한 교구민에게 설교하고 순시하며 교구 성직자들을 양 성할 책임이 있다. 각 교구마다 신학교가 설립되어야 하 며, 성직 후보자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다. 교구는 여러 개의 본당들로 구분되어야 하는데, 본당은 일정한 구역 과 주민 및 주임 신부로 구성된다. 본당은 확정된 경계가 있어야 하며, 너무 크지 말아야 한다. 본당 주임 신부가 소속 신자들의 사목에 대한 책임자이다. 그는 자기 양 떼 와 함께 정주하며 설교하고 청소년의 종교 교육을 보살 필 책임이 있다. 필요한 곳에는 주임 신부를 돕는 보좌를 두어야 하며,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 사목에 종사하려면 교구장 주교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초대 교회 때부터 모든 성직자는 특정 교회에 종신토 록 봉직하기 위하여 서품되었으며, 그가 봉직하는 교회 를 그의 명의 성당(ecclesia titularis)이라고 일컬었다. 모든 성직자들은 극히 예외적으로만 이동되었다. 그 후 제2차 니체아 공의회(787)에서 성직자의 임지 이동을 금지하는 규정이 정해져 계속 준수되다가 프랑스 혁명(1789) 이후 본당의 주임 신부를 주교가 임의대로 이동시킬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본당의 주임 신 부는 이동되지 않는 종신직이었다. 1917년 교회법전에 규정된 본당과 본당 주임 및 보좌에 관한 법규(216조, 451~478조)는 대체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이 보존된 것이지만, 그 외의 몇 가지 내용이 이 교회법전에는 규정 되어 있다. 즉 "주임 신부가 이동하지 않는 종신 제도의 본당은 교황청의 허가가 있어야 주임 신부가 이동할 수 있는 유기 제도의 본당으로 변경될 수 있다. 또한, 유기 제도의 본당은 주교가 주교좌 참사회(의전 사제단)의 의 견을 듣고 종신 제도의 본당으로 변경할 수 있다. 신설되 는 본당은 원칙적으로 종신 제도가 적용되며, 전교 지방 의 대목구나 지목구에서는 정식 본당이 설정될 수 없고 준본당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준본당은 모두 유기 제도 가 적용된다" 는 지침을 밝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 cilium)에서 "주교는 신자들의 작은 집단을 조직해야 하 며, 이 집단 중에서 주교를 대신하는 목자 아래 지역적으 로 설정된 본당이 가장 중요하다. 본당은 온 세상에 세워 져 보이는 교회를 어느 정도 표상하기에, 본당의 전례 생 활 및 주교와의 관련성이 신자들과 성직자들의 정신과 행동에 배양되어야 한다" (42항)고 하였고, <주교 교령> (Christus Dominus)에서는 "주교의 각별한 협조자들은 주 교의 권위 아래 고유한 목자로서 교구의 특정 부분의 사 목이 위탁된 본당 주임 신부들"(10항)이라고 하였다. 또 <평신도 교령>(Apostolicam Actuosiatem)에서는 "본당은 단체적 사도직의 훌륭한 표본이며, 평신도들은 자기 사 제들과 친밀히 결합되어 본당 안에서 일하는 습관을 길 러야 한다. 평신도들은 자신과 세속의 문제, 또 인간 구 원에 관한 문제들을 교회 공동체에 들고 와서 의견을 나 누며 연구하고 해결해야 한다. 또한, 본당의 사도적 및 포교적 사업을 힘대로 도와야 한다"(10항)고 밝혔다. 이러한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1983년 교회법전의 본당과 주임 및 보좌 신부에 관한 법규(374조, 515~552 조)는 1917년 교회법전의 규정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개정하였다. 즉, 본당의 종신 제도나 유기 제도의 구별이 폐지되어 교구장의 재량에 따라 모든 본당 주임 신부의 이동이 가능해졌으며, 본당의 교회록에 대한 언급이 삭 제되었다. 〔본당의 설정권자〕 본당을 설립 · 폐지 · 변경할 수 있 는 것은 교구장만의 권한이다. 그러나 사제 평의회의 의 견을 듣지 않고는 본당을 설립, 폐지 또는 현저하게 변경 하지 말아야 하지만(교회법 515조 2항), 교구장은 반드시 사제 평의회의 의견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총대리나 교구장 대리는 교구장의 특별 위임이 없는 한, 본당을 설 립 · 폐지 · 변경할 수 없다(134조 3항). 교구장좌가 공석 중일 때에는 아무것도 혁신할 수 없으며, 교구장 직무 대 행은 본당을 설립 · 폐지 · 변경할 수 없다(428조, 525조). 1917년 교회법전에서는 속인적(屬人的) 본당을 설정하 려면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기존의 속인적 본당 을 변경하려면 교황청과 의논해야 한다(216조 4항)고 규 정되어 있지만, 1983년 새 교회법전에서는 이러한 규정 이 없어졌다.
〔본당 신부〕 본당의 주임 신부는 한 본당만 사목해야 한다. 그러나 사제들의 부족이나 그 밖의 사정으로 인근 의 여러 본당들의 사목이 한 명의 본당 주임 신부에게 맡 겨질 수 있다(526조 1항). 또 한 본당과 여러 본당의 사목 이 여러 명의 사제들에게 연대적으로 맡겨질 수도 있다. 다만 법적으로, 그들 중의 한 명이 사목 수행의 지휘자가 되어 합동 행위를 통솔하고 주교 앞에서 이에 대한 책임 을 져야 한다(517조 1항). 교구장은 사제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제나 기타 사제 인호가 없는 사람이나 사람들 의 공동체에게 본당의 사목을 맡겨야 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본당 주임 신부의 권력과 특별 권한을 부여받고 사 목을 지휘하는 자로 어떤 한 사제를 선임할 수 있다(517 조 2항).
수도회나 선교회 등 법인은 본당 주임이 되지 못한다. 다만 특정한 한 명의 수도자나 선교사를 관할 장상이 교 구장에게 제청하면 교구장이 그 사제를 본당 주임으로 임명할 수 있다. 또한, 교구장은 성직자 수도회나 성직자 사도 생활단의 성당에 관할 장상의 동의 아래 본당을 설 립하면서 이를 그 수도회나 단체에게 맡길 수 있지만, 교 구장 직무 대행은 이를 할 수 없다(520조 1항). 본당을 수 도회나 선교회 등에 위탁하는 경우에는 영구적 또한 일 정 기한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교구장과 그 수도회나 단체의 관할 장상 사이에 맺은 서면 협약으 로 맺어져야 하며, 이 협약에는 수행할 일과 그 본당에 종사할 사람과 재무에 관한 것이 명시적으로 정확히 규 정되어야 한다(520조 2항) .
〔구성 요소와 교회법상의 지위〕 본당이 성립되기 위해 서는 모두 여섯 가지의 본질적 및 보완적 요소가 필요하 다. 본질적 요소 : 첫째는 '백성' 으로, 사목의 대상인 신자 들이거나 선교의 대상인 미신자들이거나 간에 사목자가 담임하는 백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주임 신부' 인데, 교구장의 권위 아래 고유한 목자로서 사목을 담당하고 성사를 집전할 사제가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본당의 '질료적(質粧的) 본질 요소' (elementa essentialia materialia) 라고 한다. 셋째는 '사목권' (司牧權)으로, 주임 신부는 사목권의 근원인 교황과 교구장 주교로부터 그 본당에 대한 사목권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본당의 '형상적(形 相的 본질 요소' (elementum essentiale formale)라고 한다. 보완적 요소 : 첫째는 '관할 구역' 이다. 본당은 원칙적 으로 속지적(屬地的)으로, 일정한 구역 내의 신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어느 지역 내 신자들의 전례나 언 어, 국적과 그 밖의 이유로 정해진 속인적 본당을 설정할 수 있다(518조). 예를 들어 외국인 성당은 관할 구역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둘째는 '본당의 기본 수익 재산 으 로, 이 재산이 없으면 본당의 운영비와 주임 신부의 생활 비 등 필요한 경비를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 다. 시대에 따라 교회의 재원(財源)이 바뀌었는데, 새 교 회법에는 교회록에 관한 규정이 없어졌으며(281조, 1274 조 ; 구 교회법 1415조 3항), 한국 교회는 신자들의 헌금으 로 교구나 본당 운영비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셋 째는 '성당' 인데, 고유한 성당이 없으면 타인 소유의 성 당이나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할 수 있다.
교회법상의 지위 : 합법적으로 설립된 본당은 교회법 상 법인격을 지니게 되어 '법인' 이며(515조 3항), 본당의 설립 자체로 교회 안의 '공법인' 이다(116조 2항, 515조 3 항). 이러한 본당의 주임 신부는 모든 법률적 업무에서 법규범에 따라 본당을 대표한다(532조) . 〔종 류〕 본당은 법적 지위와 지역에 따라 크게 둘로 구 분된다. 법적 지위 면 : '본당' 과 '준본당' 두 가지로 구별되는 데, 본당은 주임 신부에게 사목이 맡겨진 개별 교회 내에 고정적으로 설정된 일정한 신자 공동체이다(374조 1항, 515조 1항). 반면에 준본당은 특별한 사정 때문에 아직 본당으로 설립되지는 않았으나 준본당의 주임 신부에게 사목이 맡겨진 신자 공동체(516조 1항)로, 예를 들어 신 자수가 적거나 재정 자립도가 약하거나, 성당이 없거나 또는 구역 경계가 없는 외국인 성당 등의 경우이다.
지역 면 : 본당은 원칙적으로 속지적이기 때문에, 일 정한 지역 내의 모든 신자들을 관할하는 '속지적 본당' (paroecia territorialis)에 주소나 준주소에 따라 각 신자들의 본당이 정해진다(102조, 107조). 그러나 구역에 관계없이 설정되는 '속인적 본당' (paroecia personalis)은 예를 들어 동방 전례에 속하는 신자들을 위한 경우, 언어나 국적별 로 설정된 경우, 학생이나 군인을 위하여 설정되는 경우 등이 있다. (⇦ 준본당 ; → 교구장 ; 보좌 신부 ; 본당 문서 ; 본당 사목 ; 본당 사목 평의회 ; 본당 신부 ; 본당재무 평의회) ※ 참고문헌 S. Sipos, Enchiridion Iuris Canonici, Orbis Catholicus-Herder, Romae, 1954/ M. Coronata, Institutiones Iuris Canonici 1-5,Marietti, Romae, 1950/ E.F. Regatillo, Institutiones Iuris Canonici 1-2, SalTerrae, Santander, 1963/ P.V. Pinto, A.A., Commento al Codice di Diritto Canonico, Urbaniana Univ. Press, 1985/ J.A. Coriden . T.J. Green · D.E.Heintschel A.A., The Code of Canon Law : A Text and Commentary, TheCanon Law Society of America, Paulist Press, New York, 1985/ C. Riepe,《NCE》 10, pp. 1017~1019/ 정진석, 《교회법 해설》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 〔鄭鎮奭〕
본당
本堂
〔라〕parochia, paroecia · 〔영〕par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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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은 본당 신부에게 사목이 맡겨진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