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 366-1소재. 1983년 8월 23일 송현동(松峴洞) 본당으로부터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관할구역은 본리동, 장기동, 감삼동, 본동 일부 지역. 〔교 세〕1983년 805명, 1988년 3,075명, 1992년 3,115명,1996년 3,236명. 〔역대 신부〕 초대 최창덕(崔昌德)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3. 8~1985. 1), 2대 최시동(崔時東)요한(1985. 1~1988. 7), 3대 권혁시(權赫時) 모세(1988. 7~1992. 6), 4대 이대길(李大吉) 시메온(1992. 6~1997. 9), 5대 황주철(黃柱鐵) 로제리오(1997.9~현재).
현재의 본리동 지역은 1970년대 초까지 고작 세 가구 만이 상리동(上里洞) 본당에 교적을 두고 있을 정도로 교세가 극히 미미하였으나, 이후 대명동(大明洞)과 대덕 (大德) 본당으로 관할이 변경되면서 신자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본리동 지역은 달성군 성서읍에 속해 있었는데, 198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될 때 함께 편 입되어 신흥 주거 지역으로 변모하면서 1982년 5월에 송현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1983년 1월 대구대교구에 서는 교구 사목 방침에 의거하여 한국 천주교회 200주 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본리동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 정하였다. 비록 모 본당인 송현동 본당이 설립된 지 채 1 년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본리동 본당 설립 계획이 1980년대 초부터 대덕 본당의 신상조(申相祚, 스테파 노) 신부에 의해 추진되어 왔었기 때문에 신상조 신부의 지휘 아래 이미 매입해 두었던 572평의 부지에서 1983 년 6월 18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리 고 두 달 후 본당 설립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최창덕 신부가 부임하였다. 1984년 10월 6일 424평의 성당이 건립된 후 교세가 급속히 증가하자 3대 주임 권혁시 신 부는 그 해 4월 443명의 교적을 성당동(聖堂洞) 본당으 로 이관하였으며, 아울러 1990년에는 청년회를 결성하 고 청년회 소식지 《소리》를 창간하여 활동이 부진한 젊 은이들을 교회로 불러모으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4대 주 임 이대길 신부 때인 1992년 6월 27일에는 월성(月城) 본당이 신설되면서 156세대 479명의 교적을 이관하였 고, 1997년 9월에 5대 주임으로 부임한 황주철 신부는 신자 재교육의 일환으로 매주 3분 교리 교재를 배부하는 등 신앙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 대구대 교구 ; 송현동 본당 ②)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본리 본당 10년사 편찬위원회 편,《본리 성당 10년》, 천주교 본리 교회, 1994. 〔편찬실〕
본리동 본당
本里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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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