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本性

〔그〕φύσις · 〔라〕natura · 〔영〕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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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로 본성을 능산적 본성과 소산적 본성으로 구분한 아베로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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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로 본성을 능산적 본성과 소산적 본성으로 구분한 아베로에스.

사람의 경우 본래부터 타고난 성질 즉 천성(天性)을 의미하며, 사물이나 자연 현상의 경우에는 본래부터 있
던 고유한 특성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본성 외에도 자연(自然), 물리(物理) 등 다양하게 번역되고 또 사용되고 있다.
〔어원과 정의〕 본성을 뜻하는 라틴어 '나투라' (natura)는 '나시' (nasci, 태어나다)에서 파생되었는데, 본성
은 저 절로 생겨나는 것뿐만 아니라 생겨난 모든 것의 고유성 을 포괄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뿐만 아니라 본성적 개별 (個別) 사물, 특히 생명체의 탄생과 직결된 것을 의미한 다. 넓은 의미에서 본성은 개개의 존재자가 그 시원(始 原)에서부터 타고나는 본질적 특성을 지칭하므로, 한 사 물의 본성이란 결국 어떤 개체로 되어 가는 역동적 계기 (契機), 생성과 소멸의 원리(原理), 능동적이고 수동적 인 변화의 내적 근거를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가진다. 이러한 본성은 모든 존재 자에 내재하는 생성과 소멸의 내적 계획과 변화의 규범 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본성에서 우러나는 것이 바로 본성적 법칙, 즉 자연법(自然法)이기 때문이다. 여 기서 무의식적 사물은 그 본성적 법칙에 따라 변화하는 한편, 인간은 이 본성적 법칙에 따라 행위의 당위성을 인 식한다. 따라서 윤리적 규범도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다. 이런 본성의 규범성으로 인하여 포괄적 전체로서의 본성은, 다시 생성하는 본성을 가진 모든 것들의 총체성 을 의미하게 된다. 그래서 범신론에서는 본성을 모든 존 재자의 총체성으로 이해하였다. 본성은 그 대립 개념에 의해서 규정되기도 한다. 우선 본성은 정신(精神)에 대립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무 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성장하는 모든 생물학적 개체는 본성적인 것에 속한다. 두 번째로 본성은 문화(文化)에 대립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본성은 본성적 법칙에 따 라 그 자체로 자라나고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 따라 저절 로 반복되는 인간이나 사물의 상태를 뜻한다. 반면에 문 화는 인간이 계획적이고 인위적 노력에 의해 그 자신이 나 다른 사물로부터 개발해 내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인 간은 필연적으로 문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순수한 본 성적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세 번째로는 초본성 (超本性)에 대립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피조물에 속 하는 모든 것은 본성적인 것이요, 이런 본성적인 것들은 자신의 천부적 목표를 실현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 서 본성적(자연적) 질서는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본성에 속하는 모든 것들의 총체성(總體性)을 의미한다. 반면에 이러한 피조물의 정신이 은총을 통하여 하느님의 본성이 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초본성적(초자연적)이라고 부른 다. 즉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인간이야말로 처음부터 구 원될 수 있는 초본성적 상태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중세 그리스도교에서 부각된 본성 개념은 고대 그리스 의 본성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본 성은 그 원천을 자체 내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 조주 하느님 안에 가지고 있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의 본 성은 그 원천을 자체 내에 가지고 있다. 결국 본성 개념 이 가리키고 있는 총체와 개체 사이의 긴장과 자기 외적 원리와 자기 내적 원리 사이의 긴장은 후대에 오면서 본 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야기시키는 근본적 계기가 되 었다. 즉 본성은 이들 긴장의 양편 가운데 어느 편을 강 조하느냐에 따라 상징적 또는 사변적인 것으로, 인과적 또는 자율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본성 개념은 사 상사에 등장하는 각각의 사상적 체계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역 사〕 고대 :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부터 본성은 한편 모든 자연 사물의 총체를 뜻하고 다른 한편 개별 사물에 있어서 "변화의 내적 원리" (Physica Ⅱ. 1)를 뜻한다. 그러나 본성에서 출발하는 그의 사상은 무엇보 다도 생성과 소멸의 내적 원리라는 후자의 의미에 기초 한다. 즉 본성이란 변천에 던져진 모든 사물에 내재하는 변화의 원리이므로, 이 본성을 기준으로 그 사물의 변화 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불변적인 것이다. 나아가 그는 사물을 질료와 형상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원리의 결 합으로 보았기 때문에, 어떤 사물의 본성 역시 그 사물의 '질료' (ὕλη)이기도 하고, 그 사물이 목표로 삼는 '형상' (εἶδος)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성이란 "질료가 형상으로 지향하고 있음" 또는 "목표하고 있는 형상이 개별 사물 속에 실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본성은 물체의 물리적 변화, 생물의 생리적 성장, 인간의 인위적 행위의 내재적 원리를 구분 없이 의미한다. 따라 서 모든 변화는 무의식적인 것이든 의식적인 것이든 본 성이라는 동일한 목적 지향성에 속한다는 결론이 나온 다. 결국 인간도 이런 본성의 일종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지향하는 것도 본성의 자체 보존에 지나 지 않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도 인간을 내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고유한 인간의 본 성을 이성과 의지로 본다. 따라서 인간은 실천적으로는 제한된 공동체 내에서 행복한 자체 보존을 목적으로 삼 는 한편, 사변적으로는 본성의 자체 보존을 초월하는 목 적(절대적 행복)을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본성을 변 화의 내적 원리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통괄적 이해 는,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최종 목적에 이르러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일반적으로 본성을 "어떤 것 이 그 자신의 종류로 인식되게끔 하는 것" (De mor. cath. 2 2)으로 보았다. 이렇게 본질 내지는 실체의 의미로 파악 되는 본성에는 창조하는 본성(창조주)과 창조된 본성(피 조물)이 있으므로, 그의 본성 개념은 그리스 철학의 '자 연' (φύσις)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리스토 텔레스가 가정하지 않던 창조주 하느님의 흔적이 어떤 식으로든 본성에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에 대해 본성이란 바로 그가 창조하는 바의 것" (De gen. a. litt. II . 1. 14)이라고 정의하였다. 결국 본성이란 하느님의 창조적 이성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본성 속에는 하느님의 은총과 기적 그리고 예지 도 내포되어 있다. 즉 "창조주의 위대한 의지야말로 모 든 창조된 사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De civ. Dei 21, 8). 인간의 본성인 의지의 자유도 하느님의 예지의 대상이 다. 그러나 하느님은 또한 인간의 본성이 인간 행위의 자 기 원인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의지의 자유로운 실천을 미리 예정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아우구스티노는 인간 의 이러한 의지적 본성과 창조주 하느님의 의지적 본성 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보에시오(Boetius, 470/475?~524)는 본성 개념에 대한 규 정적 해명을 시도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한 인격 속에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가지 본성이 함께하는가 하는 그리스도론을 설명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일반적 으로 본성이란 오직 물체만을 지칭하거나, 아니면 물체 적이든 비물체적이든 모든 실체를 지칭하거나, 아니면 존재하는 한의 모든 사물을 지칭한다. 여기서 보에시오 는 본성을 네 가지로 정의하였다. 첫째 이성에 파악되는 한의 모든 우유(偶有)적인 것(accidens)과 실체적인 것 (substans)을 지칭한다. 둘째, 무엇을 능동적으로 행하거 나 수동적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실체를 지칭한다. 셋째 는 움직임이나 변화의 원리이며, 넷째는 개개의 사물이 가지는 종(種)적인 차이를 말한다(Contra Eut. et Nest. I). 이 정의는 중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와는 달리, 요한 스코투스 에리우제나(Johanness Scotus Eriugena, 810~877)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의 내연(內緣)"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그는 본성을 만들어 나가면서도 스스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형식, 만 들어진 것이면서 만들어 나가는 형식, 만들어진 것이면 서 스스로는 만들어 나가지 않는 형식, 만들어진 것도 아 니요 만들어 나가는 것도 아닌 형식으로 분류하였다(De div. nat. I , 36). 이렇게 네 가지 형식으로 분류한 본성 개 념은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의 상징적 본성 이해를 기초로 한다. 디오니시오는 본성을 "하느님이 스스로 드러나시는 것" 으로 파악하였다(Dedv. nat. Ⅰ, 54). 하느님의 현현(顯現) 속에서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일자(一者)가 감각 가능한 다양한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표현된다는 것이다. 결국 감각할 수 없는 하느 님은 본성을 통해서 감각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하느님이 바로 본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오히 려 본성의 창조적 원리로서, 이러한 영향력이나 현현 그 리고 모든 생성 가운데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분이시다. 따라서 인간이 지각하고 통찰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본성 의 일종이기 때문에, 결국 "드러나지 않는 분이 드러나 신 것" 이야말로 본성이다(De div. nat. Ⅲ 58).
중세 : 중세의 황금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징적이고 사변적인 본성 해석과 나란히 물리학적이고 자연적인 본 성 해석이 대두되었다. 고대 후기와 아라비아의 문헌이 유럽에 전달되면서 본성에 대한 자연학적 관심이 영향력 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12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 아델라르(Adelard)는 《본성에 관한 질문 집》(Quaestiones Naturales)에서 자연의 원인을 탐구하면서, 오직 이성만을 이러한 자연 탐구의 척도로 삼았다. 또한 샤르트르의 티에리(Thiery de Chartres, 1100?~1150?)를 위 시한 샤르트르 학파 역시 세계를 본성적(자연적) 질서(ordo naturaleis)로 이해하여, 오직 본성을 통해 모든 것을 해석 하였다. 즉 그들은 세계의 부분에서부터 생명체의 발생 에 이르기까지 구성 요소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나아가 그들은 이러한 자연적 진행 과정을 창조 행위의 진화적 연속성으로 파악하였 다. 12세기의 유럽은 플라톤의 세계혼(anima mundi)이란 개념의 영향으로, 우주마저도 하나의 살아 있는 조직적 전체로 파악하였다. 결국 12세기의 본성 개념은 물체, 존재자, 실체, 그리고 실체적 차이의 형상(foma)으로 쓰 이게 되면서 새로운 독립성을 획득하였다. 이러한 본성 개념은 형이상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더욱 발전하 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자연적 우주와 우주 의 원리를 반성하였기 때문이다. 즉 '본성의 발견' 과 '형 이상학의 성장'은 아우구스티노주의자들의 도전을 받았 지만, 결국 13세기 초반에 파리 대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의 《자연학》(Libri Naturales)을 수용하였다. 아베로에스(Avemoes, 1126~1198)는 역사상 최초로 본 성을 능산적(能産的) 본성(natura naturans)과 그 무엇으로 피조된 소산적(所産的) 본성(natura naturata)으로 구분하 였는데, 전자는 그 자체로 무엇을 창조해 내는 본성이고, 후자는 그렇게 만들어진 본성, 즉 피조물의 본성을 뜻한 다. 그 이후 이 구분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서양 철학사에 서 끊임없이 등장하였다. 특히 대(大)알베르토(Albertus Magnus, 1206~1280)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본성 개념 을 규정하였다. 즉 본성적 사물은 "변화와 정지의 원리" (Phys. Ⅱ tr. 1 c. 2)라는 확실한 능력이나 힘을 내장하고 있다 는 것이다. 그래서 본성적 사물은 이 내재적 원리에 의해 예술 작품(atificialia)이나 외적 영향력을 통해 변화되는 것과 구별된다. 알베르토는 본성의 원리를 질료, 형상 그 리고 결핍 세 가지로 보았다. 이들로부터 비롯되거나 초 래되는 모든 것은 결국 본성적(자연적)이다. 나아가 알베 르토는 본성적인 것(naturalia)을 본성 외적인 것, 비본성 적인 것, 초본성적인 것(supranaturalia)들과 구별하였다. 여기서 초본성적인 것이란 본성적인 것이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본성의 완 성(perfectio)을 의미한다(In De div. nom. Ⅵ 12).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의 철학적 탐구는 본성이 가진 고유한 법칙성에서 출발한다. 즉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본성을 통 해 그 자신만의 고유한 작용력을 가 진다는 것이다. 그는 본성의 자립성 을 강조함으로써, 개별적 존재자를 본성의 전체 속에 질서 지우는 동시 에 본성의 전체를 개별적 존재자의 조건으로 삼았다. 물론 그는 아리스 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본성을 "자연 사물의 질서" (ordo rerum naturalium)를 규정하는 내적 원리로 이해하였으나 (In II Physic. lec. I . 145), 이미 아리스 토텔레스부터 적용되던 본성 개념의 이중적 어법을 해소시켰다. 즉 본성 (자연)은 천부적 사물의 총체를 뜻하는 한편, 개별적 사 물의 내적 원리를 뜻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어 떤 '사물의 본성' (naturarei)이라는 소유격적 어법을 고정 시킨다. 즉 본성이란 어떤 사물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것, 즉 어떤 사물의 보유체(保有體)라는 것 이다. 이런 소유격적 어법에서의 본성이란 사물의 총체 나 집합이 아니라, 오직 어떤 사물을 바로 그 사물이게끔 하는 내재적 원리이다. 따라서 본성은 어떤 특정 종류가 아니라, 어떤 사물의 본성이냐에 따라 각각 상이하고 고 유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개개의 존재자는 어떤 본성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신만의 고유한 수동적 · 능동 적 작용을 하게 되며, 또 그런 종(種)의 사물로 규정된 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본성은 사물의 통성 원리(通性原理, quidditas)와도 구분된다. "본성이란 말은 그 본성이 일정한 사물의 본래적 작용 방식에 근저하는 한에서 사물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떤 사물도 그 사물의 본래적 작용 방식에 대해서는 결코 결 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성 원리라는 말은 정의를 통하여 주어진 의미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De ente et essentia, 1). 그래서 본성 개념은 '사물의 본질' (essentia rei)이란 의미를 그 사물의 본래적 활성이나 행위의 질서 속에서 획득한다. 그러나 토마스에 있어서 본질이란 어 떤 존재자로 하여금 그 존재를 획득하게 하는 것이다. 나 아가 본질은 원래 실체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본 성도 결국에는 모든 실체(substantia)를 의미하게 된다(De ente et essentia, 1). 그래서 토마스의 본성 개념은 이제 그 자 신의 고유한 작용이나 실체를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는 더 이상 함축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본성은 그 본성 을 소유하는 사물에 각각 고유한 것일 뿐이다. 결국 그는 "본성이란 어떤 사물이 자연적 사물이라 불릴 수 있는 바로 그 근거" (《철학 대전》 Ⅳ, 35 n. 35)라고 말하였다. 나아가 이 본성의 의미는 또다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 하는 물리학적 의미와 토마스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로 세분된다. 즉 본성은 변화할 수 있는 사물의 내재적 원리 인 한 물질적인 것들의 질료이거나 형상이지만, 다른 한 편 어떤 사물에 본성적인(naturalis) 것은 그 사물의 실체 와 일치하므로, 본성은 임의의 실체이거나 임의의 존재 이다(《신학 대전》 I a~ Ⅱ ae, q. 10 a. 1 c.a.). 여기서 후자의 존 재론적 의미는 본성에 실재적인 어떤 것을 설정하므로, 결국 개개의 사물에 일치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도 오직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으로서, 가장 인 간적인 행위의 내적 원리로 특수화된다. 그런데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근본적인 것은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 (nota naturaliter)과 인간이 "천부적으로 의욕하고 있는 것" (volitum naturaliter)이므로, 결국 인간의 본성은 합리적 이성(intellectus)과 자유로운 의지(volun- tas)의 현실성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본성의 존엄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우주 속에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며, 결국 물체적 본성과 정신적 본성이 이루는 '지평' (horizont)에 서 있다. 따라서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이란, 자기 보존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고(이성) 의욕 하는(의지) 행위를 통해 자신의 본성 자체를 극복할 것을 목적으로 삼는 존재이다. 이렇게 소유격적 의미로 분석 된 본성 개념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본성도 신성과 인성 이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결합된 그 자신의 특수한 본성 일 따름이다.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8~1274) 역시 대알베르토 와 똑같이 본성과 초본성(超本性)을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구분하였다. 즉 그는 사물의 본성적(자연적) 변화를 초자연적 변화와 의지적 변화로부터 구분하였다 (Ⅱ Sent. d. 23 a. 2 q. 1 c.a.). 물론 이러한 구분은 이미 신학의 당위성과 나란히 형이상학의 당위성을 표출하고 있다.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5/1266~1308)는 본성을 무엇보다 그 자체로 사유 속에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으 로 보았다. 인식 작용에 있어서 대상이 선행될 것이라면, 그 실체의 본성은 "그 자체로부터 나온 것"일 수 없을 것 이다(Ord. Ⅱ d. 3 p. 1 q. 1 nn. 1~28). 그는 본성이 단일한가 보편적인가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본성은 그 자체로 하나(-者)도 아니요, 그 대상과 다른 것도 아니 며, 단지 "선천적인 것"일 뿐이다. 본성 그 자체로서의 본성은 '공통적 본성' (natura communis)이다. 물론 본성의 형상적 실재는 이성이 파악하도록 선재하며, 본성의 통 일성(統一性)은 그 본질의 순수한 사태인 개별자의 통일 성보다 미약하다. 현실적으로 본성은 오직 모든 개별자 의 본성으로서 실존하며, 그런 개별적 규정성으로부터 두 가지 사물처럼 분리되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스코투 스의 본성은 구체적 명칭으로서 개별적 주체에 대해 본 성이라 언급될 수 있을 뿐이지만, 반대로 추상적 명칭으 로서는 오직 본성 그 자체에 대해 언급될 수 있을 뿐이다 (Ord. I d. 8 p. 1 q. 3 n. 140).
오캄(Wilhelm von Ockham, 1290?~1349)은 이러한 '공통 적 본성'에 반대하여, 비정신적 사물의 완전한 단일성과 통일성을 주장하였다. 추상될 수 있는 본질성이나 본성 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 작용의 일종으로서 이성 에 의하여 형성된 상(像)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SL Ⅰ, 12~15). 따라서 본성은 개별자나 개체를 위한 전문 용어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전제한다. 물론 오캄은 자연 과학의 대상도 비정신적 실재성이 아니라 내성(intentio) 이라고 가정하면서도, 본성을 변화와 정지의 내적 원리 로 이해하였다(In phys. prol. 4). 즉 본성은 그 자체로 존재 하는 것이요, 본질적으로 변화에 던져진 것들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본성적인 것은 인위적이거나 자유 행위 에 의해 나온 것과도 구분되며, 습성에서 비롯되는 것과 도 구분되며, 강제에서 비롯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의 흐름' 과 대립되는 초자연적 것과도 구분된다(Ⅲ Sent. q. 6 a. 2 sol.) . 부리다누스(Johannes Buridanus, +1360) 역시 본성을 현 실적 공간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본성 이란 특정 방식으로 현실성을 지시하는 관계 개념에 지 나지 않는다(Phys. Ⅱ 4 ; Met. Ⅶ 1). 본성의 공간이 없어짐으 로써, 경험이 가지는 시공적 관계에 대한 주관적이고 필 연적 근거도 없어지고 만다. 이러한 본성 해석은 아리스 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ca)에 의해 부각된 본성관과의 분리를 암시한다.
쿠사의 니콜라오(Nicolaus Cusanus, 1401~1464)는 인본 주의를 향한 전환기에서 플라톤적 본성 개념을 새로이 도입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중세 후기의 그리스도 교 철학적 문제 때문이었다. 즉 모든 피조물은 오직 각각 의 본성이나 본질을 통해 존재한다. 모든 것은 자신의 존 재를 어떤 보편적 본성이나 보편적 본질을 통해 받는 것 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받기 때문이다(De doc. ign. Ⅲ 1~3). 이러한 본성 개념의 개별화(個別化)는 플라 톤적 이데아(idea)의 불변적이고 현실적인 우주와 존재 가능성의 무한한 충만성과의 개념적 한계를 없애 버린다 (De ven. sap. 29). 니콜라오에 의하면, 본성이야말로 하느 님의 무한한 창조력의 표현이자 동시에 변화에서 비롯되 는 모든 것들의 전개이다(De doc. ign. Ⅱ 3~7). 따라서 신 (神)적 본성의 질서는 오직 우리의 추정적 사고와 통할 수 있을 뿐이다. 이론적 실험에서 드러나는 사물의 상관 관계에 대한 수학적 인식도 여기서는 본성에 대한 추정 적 인식이 되어 버린다.
르네상스 시대는 본성을 역동적이고 생동적인 힘으로 파악하여 점점 더 높이 평가하는 가운데, 급기야는 본성 을 신격화(神格化)했다. 그래서 발라(L. Valla)는 "본성 (자연)은 곧 신과 동일한 것이다" (idem est natura quod deus) 라고 말하였다. 나아가 브루노(G. Bruno)는 능산적 본성 을 범신론적으로 생각하여 신성(神性)과 동일시하였다. 즉 소산적 본성으로서의 세계는 곧 만개(滿開)한 신성이 라는 것이다. 또한 스피노자(Spinoza)도 신과 본성(deus sive natura)을 하나로 보았다. 결국 무한하고 초시간적으 로 무궁한 본질과 통일성으로서의 신이야말로 능산적 본 성인 반면, 소산적 본성은 범일자(汎一者)가 특수화된 유한한 사물(modi)의 포괄 개념을 의미한다(Ethica Ⅰ prop. ⅩⅩⅠ). 결국 스피노자는 본성을 창조 활동을 통해 그 자신 으로부터 개별 사물을 이끌어 내는 살아 있는 아름다움 [美] 그 자체라고 여긴다.
근대 : 근대로 넘어오면서 본성 개념에 대한 과학적 반성이 제기되었다. 스투르미우스(C. Sturmius)는 그리스 어 '피시스' (φύσις)뿐만 아니라 라틴어 '나투라' 도 가장 대표적인 다의적 용어라고 선언하였다. 그 후 흄(D. Hume, 1711~1776)은 현대적 의미의 자연 과학을 정초하 면서, 본성 개념은 "공허하고 비규정적인 것"이라고 규 정하였다. 그 후 본성 개념은 존재론적 의미를 상실하고 또다시 물리학적 집합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칸트(l.Kant, 1724~1804)의 비판 철학에 의하면, 본성이 란 "모든 사물들의 총괄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 의해 본성은 사물의 존재론적 의미와 무관하게 현 대적이고 과학적인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즉 "본성이란 우리의 감성뿐만 아니라 또한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한, 모든 사물의 총괄 개념이며, 결국 모든 현상의 전체, 즉 모든 비감성적 대상을 제외한 감성의 세계야말로 본 성으로 이해된다" (Met. Anfangs. der Naturwissen. Vorrede p. Ⅲ). 이제 본성은 보편적 법칙에 따라 규정되는 한 사물의 현 존에 지나지 않는다(Proleg. 4)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을 본성이게 하는 법칙적 질서는 '주어진' 것도 아니요, 그 자체로 생기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인식하는 의식에 달 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성, 즉 대상 인식에 대한 선 험적이고 논리적인 조건이나 전제 없이는 본성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후의 칸트 학파 역시 이와 비슷하 게 본성을 정의함으로써 현대 과학적 의미의 본성을 출 발시켰다.
피히테(J.G.Fiche, 1762~1814)는 더욱 극단적으로 나아 가 본성을 정신 내지는 자아(自我)의 생산물(生産物)로 보았다. 그는 본성은 이상적인 것이요, 비본질적인 것이 며, 경직되고 죽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본성은 단지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그 자체로 갇혀 있는 현존일 뿐이다. 셀 링(F.W. von Schelling, 1775~1854)은 본성을 대상적인 것의 포괄 개념, '절대적인 것' 의 실재적 계열로 보 았다. 그래서 "본성 그 자체" (Natur an sich)는 대상계 속에 태어난 정신 이며, 이 정신의 육체가 바로 현상적 본성이라는 것이다. 즉 본성은 볼 수 있는 정신' 이며, 이러한 본성과 정신은 절대적인 것의 양극단이다. 후에 셀링은 '하느님 안의 본성' 을 언급하였다. 사물을 내보내는 이 본 성이야말로 '그리움' 이요, 근거 없는 '의지' 이다. 나아가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는 본성을 형이상학적 '의지' 의 출현으로 여겼 으며, 헤겔(G.W.F. Hegel, 1770~1831) 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관념적 의미 를 가지게 되었다. 헤겔에 의하면, 본성은 그 자체로 생 기하는 정신, 관념의 표출(表出)이다. 즉 본성은 다른 존 재의 형상 속에 있는 '관념' (Idee)이요, '관념의 자체 발 현'이다.
현대 : 현대에 이르러 본성 개념은 언어적 반성을 겪 게 되었다. 현대 과학에서 본성 개념은 거의 예외가 없을 정도로 주어져 있는 현실성에 대한 집합 명칭으로 이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코티에(G.Cotier)와 같은 철 학자들은 본성을 개별 사물의 본래적 본질성이란 의미의 '철학적 어법' 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철학 자체 내에서도 본성을 천부적으로 주어진 "모든 것"이란 의미를 강조하기 때문에, 철학적 어법도 확정된 것은 아 니었다. 오히려 본성 개념은 어떤 철학이나 신학 체계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결국 스페만(R. Spaemann)의 말처럼, 본성이란 "그 시원에서부터 인간적 실천이나 행위에 귀속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철학적 입장 표명과 함께 본성 개념을 사용해야 할 것이 다.
〔신학적 의미〕 본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피시스' 와 라 틴어 '나투라' 는 원래 성서 세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신학, 특히 그리스도론 과 삼위 일체론의 합법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으로 정립되 었다. 본성은 '본성과 은총' (natura et gratia), '본성과 인 격' (natura et persona), '자연 신학과 계시 신학' 이란 대립 개념을 형성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따른 인식 · 본질 · 존 재 · 죄 등을 지칭하게 되었다. 특히 전문 용어로서의 순 수 본성(natura pura)은 하느님의 은총 외적인 관점에서 관찰한 인간의 특성, 즉 정신적 피조물을 의미한다. 여기 서 순수 본성은 하느님의 양자(養子)도 아니요, 하느님 을 직관하는 존재도 아니며, 단지 논리적으로 생각하였 을 때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이전의 순수한 가능성을 표 현한다.
여기서 은총은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의 순수 본성을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 하게 하고, 하느님을 직관하도록 하는 것으로 대두된다. 인간의 본성이 원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성의 이해는 토마스 아퀴나스 의 신학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즉 천사와 인간은 은총을 통하여 격상된 존재이기 이전에, "순수 본성적으로"(in puri naturalibus)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직관 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암시한다(《신학 대전》 I,q. 62 a.3 ;q.95 a.3). 이는 물론 그리스도교의 공식 적 교리로 표명되지는 않았다. 또한 본성은 신학적으로모든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보편성(universale)을 뜻하는 반면에, 인격은 인간의 개별성(singulare)을 뜻한다. 여기에서 '본성적 죄' (peccatum naturae)와 '인격적 죄' (pecca-tum personae) 등과 같은 일련의 신학적 대립 개념이 형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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