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 1232 소재. 1938년 8월 11일 합천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거창읍과 거창군의 대부분 지역이고, 소속 공소로는 가조(가조면), 마리(마리면), 위천(위천면), 웅양(웅양면), 신원(신원면) 등 5개소가 있다. 〔교 세〕 1957년 약 1,800명, 1966년 1,357명, 1972년 1,176명, 1978년 1,244명, 1984년 1,577명, 1989년 1,966명, 1993년 2,212명.
〔공소 시대〕 거창 지역에 처음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1870년대 초였다. 블랑(Blanc, 白圭三) 신부의 복사 박중현(안드레아)이 서울에서 이곳 적하면 개화동으로 이주하여 일시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이때 그는 이곳 사람 박제원(朴齊元, 요셉)에게 신앙을 전하였는데, 박요셉은 훗날 전라도 선교사들의 복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거창 지역에 실질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12년 이웃 함양(咸陽)에 본당이 설립된 다음이었다. 그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상화(李尙華, 발토로메오) 신부는 거창 지역의 전교에 노력하는 한편 1914년 거창읍 학리 (鶴里)에 공소를 설립하였지만, 눈에 띄게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1927년 초 함양 본당의 제4대 주임인 유선이(柳善伊, 요셉) 신부가 거창읍에 초가집을 매입하고 전교 회장을 파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교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이곳에 새로 설립된 공소의 이름은 양평(陽坪) 공소였다.
〔설립과 변모〕 양평과 학리 공소는 그 후 1932년 합천 (陜川) 본당의 설립과 함께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장순도(張順道, 바르나바) 신부는 병으로 은퇴하고, 이어 1934년에 부임한 유흥모(柳興模,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이때 대구교구에서 본당을 거창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유 신부 후임으로 부임한 박동준(朴東俊, 마티아)신부가 1938년 8월 본당을 거창으로 이전함으로써 '거창 본당' 의 설립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본당의 초대 주임이 된 박 신부는 1940년 중동(현 대평리) 1232번지에 새 부지를 매입하고, 4년 뒤 이곳에 임시 성당을 건립하였다. 그 후 본당은 제3대 신상도(申尙道, 프란치스코) 신부 재임기에 6 · 25 동란을 맞이하였으며, 1954년 4월에 부임한 제5대 김태호(金兌浩, 알로이시오) 신부 재임시인 1956년에 현재의 성당을 신축하고, 제6대 유창호(劉昌鎬, 토마) 신부 때에 종각을 건립하게 되었다. 그중 김태호 신부는 한때 함양 본당의 주임을 겸직하였다.
1957년 부산교구가 설립되면서 본당도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이 무렵 본당의 신자수는 합천 지역을 포함하여 1,800여 명에 달하였다. 이해 유창호 신부는 공소 신자들을 위해 웅양(熊陽) 공소집을 매입하고, 1958년에는 박암(朴岩) 공소를 증축하였으며, 같은 해 위천(渭川) 공소집을 매입하였다. 이어 1960년에 부임한 제7대 박문선(朴文善, 야고보) 신부는 다시 함양 본당 주임을 겸직하면서 이해 마리(馬里) 공소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제9대 강영식(姜永植, 프란치스코) 신부 때인 1964년 1월에 합천 본당을 분리했으며, 1966년 마산교구가 신설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 본당의 교세는 합천 본당 분리 이후 1970년대까지 일시적으로 축소되었으나, 1980년대부터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본당에는 1993년 8월부터 김영식(金煐式, 알로이시오) 신부가 재임하고 있으며,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에서 그 사목 활동을 돕고 있다. → 마산교구) 〔車基眞〕
거창 본당
居昌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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