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 본당

蓬萊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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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3가 132소재. 1969년 3월 20일 청학(靑鶴) 본당 · 신선(新仙)본당 · 중앙(中央) 주교좌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천사의 모후. 관할 구역은 봉래동 1~5가, 대평동, 대교동 전 지역과 남항동, 영선동, 신선동 일부 지역. 〔교 세〕 1970년 799명, 1976년 1,550명, 1982년2,069명, 1987년 2,651명, 1991년 2,821명, 1996년 2,984명. 〔역대 신부〕 초대 주포니(C. Giupponi, 주부의)콘스탄시오(1969. 3~1977. 1), 2대 이종한(李宗漢) 요한( 1977. 1~1979. 2), 3대 우리아헤레카(J. Uriagereka, 우영환) 요셉(1979. 2~1982. 4), 4대 하라테(A. Garate, 강인조)알렉산데르(1982. 4~1988. 3), 5대 박병윤(朴炳瑜) 에벤시오(1988. 3~1991. 2), 6대 권용희(權龍喜) 도미니코(1991.2~ 1997. 3), 7대 이상철(李相喆) 바오로(1997.3~현재). 봉래동은 1932년에 설립된 청학 본당에 속해 있다가 1955년에 신선 본당으로 이관된 지역으로, 관공서와 학 교를 비롯해 조선소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신자수가 증 가함에 따라 교구에서는 본당 설립을 결정하고 봉래동 3 가 90번지에 260평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1969 년 3월 20일자로 청학 본당 · 신선 본당 · 중앙 본당으로 부터 426세대 1,171명의 교적을 이관받아 봉래 본당을 설립하였으며, 초대 주임으로 작은 형제회(즉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주포니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교구에서 매입해 준 부지가 너무 협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근에 추가로 매입할 땅도 부족하여 성당 신축이 불가능하게 되자, 주포니 신부는 그 부지를 매각하고 현재의 성당 부 지 341평을 새로 매입하였다. 이어 한 제약 회사의 공장 가건물을 임시 성당으로 보수하여 1969년 7월 20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이듬해 4월 7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971년 4월 15일 600평의 성당을 완공하였 다.
본당의 초석을 다져 놓았던 주포니 신부의 후임으로 그의 보좌였던 이종한 신부가 1977년 1월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는데, 이종한 신부는 누구보다도 본당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산적해 있는 문제점들을 하나씩 보완해 나가는 한편, 1978년 9월에는 수녀원을 신축한 데 이어 유치원을 확장하였다. 4대 주임 하라테 신부는 1983년 7월 31일 레지오 마리애 모든 은총의 중재자' 꾸리아를 창단하였고, 이듬해 8월에는 구역 개편을 통해 소공동체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노력하였으며, 1985 년 6월 30일에는 사제 양성 장학회를 창립하였고, 1987 년 5월 10일에는 34평의 교육관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11월 이를 완공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1989 년에 프란치스코 유치원을 폐원하면서 그 건물을 대강당 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어 6대 주임 권용희 신부는 본 당 설립 25주년을 기념하여 1994년 7월에 본당 소식지 《면류관》을 발간하였고, 10월 30일에는 운동회 · 시화 전 · 성가 경연 대회 등 기념 행사를 마련했다. 교세가 꾸 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1997년 3월 7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상철 신부는 내실에 주력하면서 신심 및 전교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 부산교구 ; 신선 본당 ; 중앙 주교좌 본당② ; 청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 사연구소 편, 《教區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