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奉仕

〔그〕διακονία · 〔라〕ministerium · 〔영〕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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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대한 봉사는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분께 완전히 순종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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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대한 봉사는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분께 완전히 순종함을 의미한다.

Ⅰ . 성서에서의 봉사
Ⅱ . 사회학에서의 봉사
일반적으로 남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 그리스도교에서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느님께 종교적인 의무를이행하는 일과 이웃의 정신적 · 물질적 궁핍을 보충해 주는 윤리적 책임의 수행을 의미한다.
Ⅰ . 성서에서의 봉사 〔용어와 의미〕 봉사와 관련된 성서의 용어로는 우선히브리어 '아밧'(עָבַד)이 있는데, 이 단어는 '일하다','섬기다', '노예가 되다' 등의 뜻이고, 이 히브리어에서'종', '노예' 라는 뜻의 '에벳'(עֶבֶד)이 유래하였다. 그리고 이 히브리어는 칠십인역에서 동사의 경우 '둘레우오'(δουλεύω), 명사의 경우 '둘로스'(δοῦλος)로 번역되었다. 신약성서는 이 구약의 용어들을 다 받아들이면서, 식탁에서의 봉사를 지칭하는 새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식탁에서) 봉사하다'는 뜻의 '디아코네오'(διακονέω),'봉사자'를 뜻하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 '봉사'를 뜻하는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가 그것이다. 가톨릭 교계 제도에서의 '부제'와 '부제직'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 그리스어 '디아코노스'와 '디아코니아'에서 유래되었다. 신약성서에서 종(에벳)과 식탁에서의 봉사(디아코니아)가 밀접하게 연결된 예는 "종의 처지에 대한 비유"(루가 17, 7-10)와 "청지기 종의 비유" (루가 12, 41-46 ; 마태24, 45-51)이다.
성서에서 봉사는 봉사받는 대상에 따라 다른 뜻으로 이해된다. 하느님께 대한 봉사는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 분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비하여, 인간에대한 봉사는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봉사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다른 사람에 대한 예속이다. 그러나 이방 세계에서 남에게 예속된다는 말은 동물이나 물건, 곧 가축이나 소유물로 전락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한다. 이런 처지에 빠진 사람을 '노예' 라고 부른다. 반면에 성서 세계에서는 남에게 예속된 사람의 조건과 처지를 율법으로 규정해 놓았는데, 이 경우 '노예'라는 말보다는 '종' 이라는 말이 더적합하다. 특별히 성서에서 말하는 '종' 의 신분과 구실은 1세기 지중해연안 지역의 기본 사회 틀인 주인과종의 관계에 부합한다. 이 시대의 주종 관계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볼 수 있는 고용인과 노동자 사이의계약 관계와 다르다. 이 시대의 주종관계는 가족 관계처럼 자발적이고 지속적이다. 종은 주인에게 자발적으로절대 복종하고, 주인은 종을 가족의일원으로 보호하며 그의 삶 전체를책임진다. 상호 의존과 연대 의식에 바탕을 둔 이 관계는, 법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에 대한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이 신뢰가 무너졌을때 주인과 종의 관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 경우 대개는 종이 자기에게 맡겨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이런 종에게 주인은 맡겨진 직책에 대해 철저하게 셈 바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주종 관계는 그 자체로 모순이 있다. 첫째, 이 관계는 연대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강제성을 드러낸다. 주인과 종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자발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주인은 종에게 일방적으로 철저한 복종을 요구한다. 힘있는 편은 어디까지나 주인이지 종이 아니다. 종은 충성을요구당할 뿐 주인에게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둘째, 이 관계가 정상적일 때는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가족 관계처럼 지속적이고도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나, 서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였을 때 당사자들은 폭력으로이를 해결하려 든다. 그것은 이 관계가 정해진 계약이나법이 아니라 관습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 말기에 자주 일어났던 노예들의 반란이 이를 잘반영해 준다.
위에서 지적한 주종 관계의 상호 의존, 강한 연대감, 가족적이고 자발적인 분위기는 이 관계의 긍정적인 측면이고, 일방적인 강제성과 폭력적인 해결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성서에서는 주종 관계의 이 두 특성 가운데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 봉사는 '섬김' 이라는 개념으로 통한다. 임금이나 주인 등 윗사람에게 봉사한다는것은 그를 섬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윗사람을 섬기는 이를 '신하', '시종', '종'이라 한다. 특히 임금처럼 큰 권력을 지닌 주인을 섬기는 신하나 종에게는 영예로운 직책과 신분이 주어지며, 그의 직책과 신분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율법서와 예언서는 이 같은 봉사의 개념을 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적용시킨다.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경신례를 통하여 하느님을 예배하는 일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주님이시다.그분 홀로 이스라엘의 주인이시기에 그분 말고 다른 신을 섬겨서도 안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화를 내시어 너희를 땅 위에서 쓸어 버리실 것이다. 너희 가운데 계시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질투하는 신이시다"(신명 6,14-15). 하느님을 섬기는 '종들'은 사제와 레위인들인데, 이들은 주님께 제물과 제사를 바치는 일을 주관한다.일반 백성은 그들이 주관하는 경신례에 참여함으로써 주님께 예배와 찬미를 드린다.
그러나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경신례나 예배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언자들과 신명기계 역사가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는 일에는 경신례와 더불어 그분의 계명에 대한 순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 제사보다는 주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는이스라엘 왕정의 기틀을 놓은 사무엘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사무엘은 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은 사울 임금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번제나 친교제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같소? 순종하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그분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기름기보다 더 낫소" (1사무15, 22). 사무엘의 이 가르침은 예언자들의 정신과 일치한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 (호세6, 6). 이러한 예언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그대로 이어진다(마태 9, 13). 〔신약성서〕 예수는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온삶을 바치고, 율법과 예언서의 전통에 따라 그분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세상의 어떤 가치도하느님을 대신할 수 없으며(마태 4, 10), 특히 사람들이우상처럼 떠받드는 재물을 그분과 동시에 섬길 수 없다(루가 16, 13). 예수에게 아버지의 뜻은 최고 가치이다.그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어떠한 장애도 허락하지 않으며(마태 16, 21), 고통과 죽음까지라도 감수할각오가 되어 있다(마르 14, 36). 이러한 뜻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참다운 종이다.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순종의 삶을 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이사야서 후반부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노래' (이사 42, 1-4 : 49, 1-6 ;50, 4-9 ; 52, 13-53, 12)를 그에게 적용시킨 것은 결코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는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을 무엇이라고 파악하였는가? 요한 복음사가가 이를 명확히 밝혀 준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이마다 모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3,16-17). 세상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수혜(受惠)는, 공관 복음에 따르면,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핵심이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핵심, 곧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구약성서를 인용하면서 사랑의 두 가지 중요한 계명을 가르쳤다.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희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루가 10,27 ; 신명 6, 5 : 레위 19, 18).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느님사랑과 이웃 사랑을 한가지로 묶었다는 점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를 앞에서정의한 개념으로 바꾸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이웃에게 봉사하는 길이다. 예수는 최후 심판의 비유(마태 25,31-46)에서 이를 분명히 확인해 준다. 고통받는 이웃에게 대한 사심 없는 봉사가 곧 주님을 올바로 섬기는 일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와 이웃에 대한 봉사를 연결시키지 못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를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아 왕국으로 착각한 데서비롯되었다.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결연한 발걸음을 옮기는 스승 뒤에서 제자들은 그분이예루살렘에서 현세적인 메시아로 등극하실 것으로 오해하여 서로 자리다툼을 한다. 그들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참모습이 남을 섬기는 데 바탕을 두고있음을 확인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사람들은 엄하게 지배하고 그 높은 사람들은 백성들을 억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이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서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가운데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오히려 섬기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전으로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마르 10, 42-45 ; 마태 20,25-28).
〔그리스도인의 봉사 자세〕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간 길을 따라 걷고 그 길을 알려야 하는 사람이다.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었지만, 십자가에달려 죽기까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신을비우고 종이 되었다(필립 2, 6-8).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어 종처럼 봉사한 이유는 이사야의 전승대로, 그분 자신이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 "하느님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남에게 봉사해야 하는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고 더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그분이 보여 준 모범과 남긴 가르침에 따라 남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남을 섬기되, 자비와 연민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의무와 책임에서 남을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길, 곧 기쁜 소식의 봉사자이다(사도 6, 4 ; 루가 1, 2). 기쁜소식을 전하고 그 기쁜 소식이 가르치는 대로 주님과 모든 이를 섬겨야 한다. 때로는 위대한 선교사 바오로 사도처럼 "시련과 눈물을 참아 가며" 봉사해야 할 상황도 만날 것이다(사도 20, 19). 이런 상황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종' 이라는 개념이 갖는 구약성서의 가르침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종' 은 명예스러운 칭호인 동시에의무와 책임이 뒤따르는 칭호이다. 예수도 "종의 처지에대한 비유" (루가 17, 7-10)를 통하여 봉사자들이 가져야할 바른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 종이 지시받은 대로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이처럼여러분도 지시받은 일을 모두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하시오"(루가 17, 9-10). 이 비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두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전한다. 첫째, 모든 의무를 다수행하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의무 수행을 완벽하게 하고 나서도 우리는 아직 은총에만의지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일을 자기 과시나 자랑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로마 3, 27 : 1고린 1, 29 : 에페 2, 9).
물론 하느님께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 (루가 12, 35-40)나 "청지기 종의 비유"에 나오는 주인처럼,충직한 종들에게 그들의 공로와 신분에 전혀 맞갖지 않은 큰 상급을 주시는 분이시다. 두 비유에 나오는 주인들은 자신을 맞기 위해 '깨어 기다린' 종들을 식탁에 앉히고 그들에게 시중들며, 종들을 마치 자신의 주인인 양 섬기는 파격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또는 자신의 전 재산을 충직한 종에게 맡겨 관리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섬기는 하느님께서 이 주인과 같거나 그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 봉사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는 모든 책임을 다하고서도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종의 자세여야 한다. 비유에 나오는 종처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 디아코니아)

※ 참고문헌  P.J. Achtemeier ed., Bible Dictionary, San Francisco,1996, p. 1001/J.B. Green · S. McKnight · I.H. Marshall eds., Dictionary ofJesus and the Gospels, pp. 747~751/ X. Léon-Dufour ed., Dictionary ofBiblical Theology, New York, 2nd ed., 1973, pp. 533~535/ 정태현, 《예수의 비유》, 바오로딸, 1996, pp. 167~176. 〔丁太鉉〕


Ⅱ . 사회학에서의 봉사
〔개 념〕 섬기는 일, 즉 봉사는 복음을 전하고(선교), 가르치며(교육), 사귀는 일(친교)과 더불어 교회가 수행해야 하고, 또한 수행해 온 책임 혹은 역할의 하나이다.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봉사는 교회를 섬기는 일(교회 봉사)과 이웃을 섬기는 일(사회 봉사)로 구분될 수 있으나,일반적인 의미에서 봉사는 곧 사회 봉사를 뜻한다. 또한사회 봉사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포괄적인 개념 안에 포함된 하나의 하위 개념으로도 이해된다. 스토트(J.R.W.Stott)는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책임을 '사회 봉사'(socialservice)와 '사회 행동'(social action)으로 구분하였다. 사회 봉사는 구제나 자선 활동과 같은 노력 봉사를 의미하며, 사회 행동은 정치적 · 경제적 활동을 통해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뜻한다. 이렇게 본다면 그리스도교의 사회 참여는 사회 봉사와 사회 행동의 모든 차원에서 함께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사회 봉사는 주로 문제의 결과를 해결하고, 사회 행동은 문제의 원인을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는 모두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구체적인 내용이라 하겠다. 사회 봉사의 개념은 좀더 폭 넓게 이해되기도 한다. 이삼열(李三烈)은 사회 봉사를 '사회 구호적 봉사'(charityservice)와 '사회 구조적 봉사'(structure service)로 구분하였다. 전자는 자선이나 구제와 같은 개인적 또는 집단적인 도움의 행위들을 의미하고, 후자는 사회 구조의 개선과 변혁을 통해 근원적인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행동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 봉사의 개념은 사회구호적 봉사와 사회 구조적 봉사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회 봉사라는 개념은 주로 사회 구호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사회 구호적인 봉사에는 개인 상대의 봉사, 소집단 상대의 봉사,지역 사회 봉사 및 기관 시설 봉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역사적 고찰〕 세계 교회 : 성서에서는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사회 봉사를 이해한다.이때의 사회 봉사는 주로 구호적인 의미의 봉사이지만진보적인 신학의 입장에서는 성서의 사회 봉사 개념을주로 구조적인 의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성서의전통을 이어받은 초대 교회에서도 봉사는 주로 사회 구호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과 상부상조하며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구제하는일에 힘썼던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정치 제도에 커다란영향을 미치고 있던 중세기에는 교회가 사회 봉사 사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물론 사회 구호적인 봉사이긴 하지만 수도원이나 수도회 등이 중심이 되어 가난한이들과 부랑아들을 구제 · 수용하고, 구빈원 · 고아원·양로원 등을 운영함으로써 교회는 사회 봉사의 가장 중요한 수행자가 되었다.
종교 개혁 이후에는 구호적 의미의 사회 봉사 사업의 상당 부분이 국가의 책임으로 옮겨졌다. 여기에는 사회와 교회의 상황 변화가 크게 작용되었다.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발달로 사회 복지 영역의 책임을 점차 국가가 지게 되었고, 교회적으로는 종교 개혁 이후 신앙의 문제를영성화(靈性化, spiritualization)시키는 경향과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사이를 구분하려는 이원론적 신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예컨대 루터(M. Luther, 1483~1546)는 교회가 복지 시설을 수용하고 구제 사업을 펴는 것에 반대하였다. 이것은 교회는 전적으로 신앙의 문제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과 교회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려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었다.
17~18세기 유럽의 경건주의(pietism)와 18~19세기 미국의 복음주의(evangelism)는 개인의 구원을 통한 죄로 부터의 정화만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로 하여금 사회 봉사의 책임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경건주의는 세상적가치와 현실을 과소 평가하면서 현실 거부 혹은 현실 도피적인 사회적 태도를 조장하였다. 한편 복음주의는 산업화에 따른 악의 세력들에 대하여 개혁하기보다는 도피적인 방법을 택하였고, 따라서 현대주의나 사회적 복음이 결여되어 있는 개인 구원의 복음을 설교하였다. 이 무렵 교회의 사회 봉사는 기껏해야 개인의 구제와 자선에초점을 맞추는 구호적 봉사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도 선교의 과제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것이었으며, 선교의 수단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발생한 유럽의 그리스도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와 미국의 사회 복음운동(Social Gospel Movement)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하여 야기되었던 많은 경제 · 사회 문제들에 대한책임 의식의 회복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사회적인개인 복음에 집착하고 있던 교회들에 대한 대응으로서 생겨난 운동이었다. 이 운동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변형을 위하여 여러 사회 운동을 일으켰고, 그 계획들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하여 자선 활동과 같은 구호적 사회 봉사가 예방적 치료와 구조적 개혁을 주도하는구조적 사회 봉사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20세기에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구호적 및 구조적 사회 봉사 책임을 크게 일깨워 주었던 것은 세계 교회 협의회(W.C.C.)였다. 세계 교회 협의회는 초기에 기아, 질병,무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구호적인 사업을 전세계적으로 폭 넓게 전개하면서 자선과 구제의 필요성을 알렸다.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관심의 초점이 점차 사회 구호적인 봉사로부터 사회 구조적인 봉사의 문제로 옮겨졌다. 그래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악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위해 교회는 사회 구조악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 교회 협의회의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는 국제적인 정치적 힘의 대결에서 야기된 전쟁과 국가간 종속 관계, 경제 발전과 개발에 있어서 생겨난 국가 ·지역 간의 빈부 격차,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파생된억압과 착취의 비인간화와 정치 · 경제 · 사회 영역에서의 구조적 · 제도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대응이었다.그러나 이 협의회의 사회 봉사가 점차 구호적인 측면보다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면서, 이념적 · 실천적급진성을 보여 왔고, 이것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일부보수측과 심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한편 오랫동안 교회의 사회 참여를 반대하고 구호적 사회 봉사 실천에도 소극적이었던 프로테스탄트 보수 진영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선교를 인간화(humanization) 작업으로 보는 진보 진영과는 달리 보수 진영에서는 선교를 복음화(evangelizaion) 혹은 전교로만 이해하며 거의모든 역량을 개인 영혼 구원에 쏟았고, 복음주의적 · 부흥 운동적 교회들은 사회 봉사의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수진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여전히 성서의 권위 · 하느님의 목적 · 그리스도의 독특성 · 복음주의 등이 강조되고있으나, 여기에 더하여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책임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사회적 책임은 주로구호적인 봉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봉사는 교회의 부차적인 사명으로 이해되고 있고, 그나마도 선교의 한 수단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봉사적 책임은 교회의 보수 진영에서 생각하는 구호적 봉사와 진보 진영에서 강조하는 구조적 봉사가 조화를 이루면서 수행될 필요가 있다. 가톨릭의 경우 종교 개혁 이후에도 교회의 사회 봉사적 책임 의식과 그 실천은 지속되었다. 특히 19세기에는사회 문제, 특히 노동 문제에 대한 가톨릭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유럽, 특히 독일 가톨릭 신자들의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노력은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의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 1891.5. 15)에 수렴되었는데, 이회칙이 반포된 이후 가난은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뿐만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야기되는 불공정한분배나 착취 등에 의해 발생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념해 오던 자선 활동도 중요하지만 예방적 치료의 방법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찾아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예컨대 1931년 교황 비오 11세(1939~1958)는 회칙 <사십 주년>(Quadragesimo Anno, 1931. 3. 15)을 통해 사회 정의와 사회 자선의 조화와 공존을 강조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 헌장>(Gaudium etspes, 1965. 12. 7)에서 가난하고 고통 중에 신음하는 이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의무를 재천명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의 천주교회는 사회 사목의 중요성을 재강조하면서시설 위주 · 치료 위주의 자선 활동과 대(對) 사회적인접근 방법을 통한 사회 변혁과 개선에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 교회 : 천주교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부터 사회구호적 봉사가 실천되었고, 박해 중에도 천주교는 의료복지 · 구빈 활동 · 아동 복지 사업을 선교와 함께 전개하였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봉사 사업이 이루어진 것은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이루어진 19세기 말부터였다. 사실상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개화와 근대화에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초기의 근대화된 학교들이주로 그리스도교에 의해 시작되었고, 여성 해방 운동·문맹 퇴치 운동 · 절제 운동 · 농촌 운동과 같은 광범위한사회 운동들이 교회에 의해 주도되었다. 새로운 문화 활동을 전개하였고, 성서의 번역과 보급으로 국민 계몽에기여하였다. 그리고 교회는 개인의 존엄성, 인간의 권리와 자유, 평등과 정의 등의 근대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확산시켰다. 이러한 일들은 구조적 사회 봉사의 성격이강하다고 하겠다. 한편 의료 사업이나 복지 사업 등을 통한 구호적인 사회 봉사에도 한국 교회는 커다란 역할을담당하였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 다수의 프로테스탄트 보수교회에서는 대부흥 운동을 통하여 신앙적 열정이 선교적활동으로 표출되면서 개인 구원 중심의 신앙 형태가 강화되었고, 이에 따라 구조적이든 구호적이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사회 봉사는 점차 부차적인 관심으로 약화되었다. 특히 1920년대 이후 한국 교회는 일제 탄압의 핵심적 대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피안적 · 말세적 · 신비주의적인 신앙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중심적인 신앙 형태가 되면서 사회 봉사적 관심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1945년 8 · 15 광복이 되면서도 프로테스탄트 교회의반사회적 성향은 여전하여 교회의 봉사적 기능은 미미하였다. 1960년대 이후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일반적현상은 부흥 운동과 성령 운동에 집착하면서 사회 봉사에는 무관심해 왔었다. 그러나 한편 광복 이후 사회 복지사업과 사회 구호 활동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한 천주교회는, 1960년대에는 구호 활동만이 아니라 사회 개발 및 인간 개발 사업에도 관심을 두었다. 1970년대 이후 천주교와 진보적인 프로테스탄트 진영에서는 구호적인 사회 봉사의 실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구조적 악에 대해서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정치적 비민주성,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모순과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이념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도전하는 입장에 섰고, 이것은 198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이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로 인하여 한국 사회의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구조는 크게 달라져서 민주화 ·평등화 · 복지화를 지향하는 사회 변화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한편 놀라운 양적 성장을 이룬 프로테스탄트 보수 진영에서도 1980년대 이후에는 구호적인차원의 사회 봉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 있다.
〔봉사 의식과 실태〕 사회 봉사 문제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교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의 의식은 과거에 비해 많이달라지기는 하였으나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봉사를 교회의 본질적 사명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은 가지고있으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이 나타난다. 첫째는 아직도교회의 사회 봉사를 선교 사업의 일환이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봉사 기능을 교회의 부차적인기능으로 보면서 이 부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둘째는 봉사라고 할 때 교회 봉사를 먼저 생각하지 사회 봉사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있어서 이차적인 것으로보는 경향이 있다. 셋째는 사회 봉사에 대하여 생각과 관심을 가져도 그것은 주로 자선, 구제와 같은 구호적 수준의 봉사이지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구조적수준의 봉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넷째로 사회 봉사가 교회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교회의인적 · 물적 자원을 활용해서 봉사를 실천해야 하겠다는적극적인 참여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는 사회 봉사 자체에 대해서는 교회의 중요한 사명의 하나로 인식하면서도, 그것은 대체로 의식 수준에 머물러 있고, 적극적인 실천 의지는 약하다.
물론 타종교와 비교해 보면 구조적인 봉사는 물론, 구호적인 봉사에서도 그리스도교가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천주교와 일부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의 봉사 활동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사실상 한국의 사회 봉사 및 사회 복지 시설은 종교와 매우 밀접한관계 속에서 운영되어 왔는데, 국가가 설립하는 복지 시설도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종교 기관 혹은 종교인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실제로 1994년 현재 사회 복지시설 종사자의 85%가 종교인이다. 이것은 시설 종사자의 대우는 열악하고 예산은 부족하기 때문에, 신앙과 자기 희생에 근거한 봉사의 차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종교인의 참여가 두드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가운데는 프로테스탄트와 천주교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불교는 매우 저조하다. 예컨대 사회 사업 기관수를 보면 프로테스탄트가 전체의 61.2%, 천주교가28 2%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리스도교 기관이 89 4%나된다. 봉사 시설 종사자를 보더라도 무종교인이 15.0%,불교인은 5.9%에 불과한 반면 프로테스탄트 신자는63.9%, 천주교 신자는 12.9%로 전체의 76.8%가 그리스도교인이다. 그리스도교의 사회 봉사 및 사회 복지 활동이 타종교에 비해 활발한 것은 한국 교회가 서양에서이미 형성된 사회 복지 시설 참여의 전통을 이어받았고,상대적으로 우월한 조직력과 자금 동원력 때문으로 여겨진다.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은 교단 산하에 혹은 연회(年會)나 노회(老會), 지방회 산하에 그리고 개별 교회 단위로사회부, 사회 봉사부, 혹은 봉사부라는 부서를 두고 사회봉사 사업을 계획하고 방법과 방향을 개발하며 여러 가지 사업을 실천하고 있다. 물론 진보 교단의 경우에는 농민 · 노동자 · 도시 빈민 대상의 운동을 전개하는 구조적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봉사 사업이 구호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천주교에서는 주교 회의 내에 '사회 주교위원회' 가 있어서 사회 사목을 담당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활동은 주교 회의내와 각 교구의 '사회 복지위원회'나 '정의 평화위원회' 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각 본당 내의 '사회복지 분과위원회'와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 '레지오마리애' 및 기타 여러 단체 등을 통해서 봉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불우한 이웃에 대한 자선과 구호 활동, 사회 사업적 접근 방법을 통한 제반 사회복지, 사회 개발 그리고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사회 봉사 실태는 그렇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우선 사회 봉사 사업에대한 교단 차원의 활동이 미약하다. 사회 봉사 문제를 전담하는 직원을 둔 교회는 거의 없고, 봉사 사업에 대한신자들의 호응도도 적극적이지 않다. 사회 봉사를 수행할 수 있는 건물이나 시설 또한 별로 없으며, 지역 사회봉사를 위하여 지역 사회 조사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일 년 예산 가운데 사회 봉사를 위해 책정된 비율은 프로테스탄트의 경우 대체로 5% 미만이며, 천주교의 경우각 본당 일 년 예산의 10%이지만 주로 그 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사용된다. 사회 봉사를 위한 특별 헌금이나 모금은 주로 수해 구호 헌금이나 연말 연시 특별 구호헌금을 하는 정도이다. 교회에서 수행되는 사회 봉사 사업은 지속적이고 예방적인 사회 복지 프로그램 개발과실천보다는 일시적이고 단순 구호적인 사업에 국한되는경향이 많다. 프로그램도 주로 청소년 · 아동 · 노인 대상이며, 그 내용도 시설 방문 · 지원 사업 · 장학 사업 · 이재민 구호 정도에 머무르는 경향이 많다. 이와 같이 인적 · 물적 시설 자원의 차원에서 한국 교회는 사회 봉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교회 시설은 주로 선교와 교육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설사 시설이 부족하여 사회 봉사 사업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해도 봉사는 교회 밖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때문에 물적 · 인적 자원만 있다면 사회 봉사는 얼마든지 실천될 수 있다. 기존의 교회 건물이나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고, 또한 교회 밖의 다양한 봉사 사업에 참여할 수있기 때문에 시설 문제는 봉사 사업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때로는 예산 부족을 소극적인 사회 봉사의 이유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봉사 사업은 다른 모든사업을 수행한 후에 재정적 ·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인적 자원은 노력 봉사를 위해 얼마든지 활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상 교회는 자원 봉사자 확보에 있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그리고 노력 봉사는 대체로 교회 내의 인적 자원 가운데서 충원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인적 자원마저도 봉사 활동보다는 선교 활동에 주로 동원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다른 조직이나 집단보다도 풍부한 인적 ·물적 · 시설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원을 사회 봉사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회 봉사 프로그램〕 교회가 수행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사회 봉사 프로그램을 주로 구호적인 측면에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아동 대상의 봉사 프로그램으로는 유아원 · 유치원 · 선교원 운영 및 지원, 탁아 사업 운영 및 지원, 놀이방 · 보육원 운영 및 지원, 공부방 운영 등이 있을 수 있다. 청소년 프로그램에는 청소년 생활상담, 소년 소녀 가장 결연 후원, 독서실 · 공부방 운영,장학 사업, 계절 학교 및 야학, 청소년 건전 놀이 지원등이 있다. 노인 대상의 봉사 프로그램으로는 노인 대학운영, 경로당 · 노인정 운영 및 지원, 불우 노인 식사 제공, 경로 잔치, 양로원 및 요양원 노인 결연 후원과 운영및 지원, 거택 보호 노인 결연 후원, 가정 봉사원 서비스등이 있을 수 있다. 장애인 대상의 봉사 프로그램에는 사회 재활 상담, 장애인 보장구 지원, 시설 장애인 결연 후원, 장애인 시설 운영비 지원, 재활원 · 요양원 특수 교육, 거택 보호 장애인 후원 결연 등이 있다. 여성 대상의 봉사 프로그램으로는 주부 대학, 여성 교양 강좌, 미혼모가정 결연 후원, 모자 가정 · 모자원 보호 시설 운영 및지원, 윤락 여성 직업 훈련 및 취업 알선, 성폭력 상담등이 있을 수 있다. 기타 일반 성인 대상의 봉사 프로그램으로는 성인 교실 운영, 주민 도서실(독서실) 운영, 소비자 협동 조합, 농산물 공동 구매, 무료 급식, 무료 진료, 복지 단체 자원 봉사, 장학 사업, 종합 복지관 운영 및 지원, 건전한 집회(결혼식, 주민 모임, 만남의 장소 등)를위한 교회 개방, 가족 문제 상담, 무료 셔틀 버스 운행,정기적 알뜰 시장, 마을 교통 정리, 바자회, 자원 봉사가정 봉사원 활동, 인권 사회 운동 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농촌의 경우에는 영농 교육, 소득 증대 사업 지도,신용 협동 조합, 농산물 공동 구매, 소비자 협동 조합,건전 영화 · 비디오 상영, 소식지 발간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봉사 프로그램 외에도 지역 사회의 특성과 각본당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봉사 활동 내용은 개발될수 있다. 봉사의 실천은 신자 개개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소집단 수준에서, 교회 전체 수준에서, 혹은 교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또한 내용에 따라서는 시설 개방이 필요한 일, 인적 자원의 노력 봉사가필요한 일, 경제적인 후원이 필요한 일 등으로 봉사 영역이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지역 사회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봉사 프로그램들이 각 본당별로 시행될 수 있다.
따라서 각 본당들은 어떠한 봉사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있겠는지, 어떻게 인적 · 물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겠는지, 교회 시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겠는지를 먼저 검토한 후에 적절한 봉사 프로그램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사회 봉사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올바른 의식과 실천 의지일 것이다. (→ 가톨릭 복지 사업 ; 가톨릭 사회 교리 ; 가톨릭 의료 사업 ;사회 봉사 ; 사회 사목)
※ 참고문헌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통합), 《교회 사회 봉사 총람》, 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성규탁 외, 《한국 교회의 사회 복지 참여에 관한 연구》,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1991/ 심대섭 편, 《종교와사회 복지》, 원광대학교 출판국, 1993/ 이삼열 편, 《사회 봉사의 신학과 실천》, 승실대학교 기독교사회연구소, 1992/ 이원규, 《한국 교회의 사회학적 이해》, 성서연구사, 1992/ 一, 《한국 교회의 현실과 전망》, 성서연구사, 1994/ 한국 자원 봉사 능력 개발 연구회, 《한국 교회 사회 봉사 사업 조사 연구》, 성광문화사, 1990/ John R.W. Stott,Issues Facing Christians Today, London, 1984(박영호 역,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교적 답변》, 기독교문서선교회, 1985. 〔李園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