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는 그 내력에 관한 신화. 이러한 신화는 대부분 그 시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이를 건국 시조 신화라고도 한다. 고금의 어느 나라이든 간에 건국과 관련된 신화가 전승되어 오지만, 그 신화의 유형은 특히 시조 탄생의 과정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시조가 하늘에서 하강하여 나라를 세웠다는 천신 강림 신화(天神降臨神話), 알을 깨고 나왔다는 난생 신화(卵生神話) ,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왔다는 외래족 신화(外來族神話) , 땅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지신 상생 신화(地神上生神話), 천신 강림과 지신 상생 신화가 어우러진 신화 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천신 강림 신화와 난생 신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성격과 의미〕 천신 강림 신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고조선(古朝鮮)의 시조인 단군(檀君) 신화이고, 난생 신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東明王)의 탄생을 알리는 주몽(朱蒙) 신화와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 탄생 신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탄생 신화 등을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 계통의 신화에 대한 해석은 반드시 일치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볼 때, 국가의 시조들이 평범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 그들이 세운 국가가 하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으므로 우연적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필연적으로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국가의 성원을 이루는 백성들이 천손족(天孫族)의 후예들이라는 것 등이 공통적인 내용이다. 또 하나 위의 두 유형에서 발견되는 공통 특색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가 국가의 시조 탄생 신화에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우주 창조 신화와 반드시 일치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천신 강림 계통은 절대적 능력을 가진 신이 전제되고, 그에 의해 인간의 모든 삶의 조건이 규정되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어렴풋하지만 창조적 형태에 가깝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천신 환인(桓因)은 어떤 근원을 알 수 없는 때부터 존재하여 이 지상 질서의 원천이 되어 왔으며, 그 천신이 인격적이요 의지를 가진 최고 존재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한편 난생 신화는 원래 우주는 혼돈으로부터 차츰 진화하였다는 진화론적인 관념과 결부되어 있다. 이 진화적 형태는 어떤 창조신의 개입없이 하나의 원초적인 물질이나 씨앗으로부터 우주가 자발적으로 발전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유형을 보면 단일한 원초의 물질이나 씨앗으로부터 세계가 발생하였다는 형식이 있을 수 있고, 또는 두 개 이상의 많은 인격화된 자연의 힘들이 작용하여 우주가 발생했다고 보는 관점도 있을 것이며, 인간이나 동물의 형태를 한 원초의 존재나 그 육체로부터 우주가 발생했다고 보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원초의 질료로부터 우주가 발생했다고 보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난생 신화는 바로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신화들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신화를 진화적 형태라 부르는 것은 우주가 무(無)로부터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질료로부터 진화하여 형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주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가지 유형은 매우 보편적인 것이다. 특히 천신 강림의 신화는 이 우주의 기원을 매우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최초의 국가 시조와 백성과의 관계에 대해 제기되는 근원적인 질문에 있어 천신이 태초부터 존재하였음을 전제하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천신은 선후(先後)에 있어 모든 생멸(生滅)의 원인이 되고, 아울러 그 현상적 존재를 가능케 하는 원인은 바로 천신이 된다. 이것은 난생 신화에서처럼 우주는 혼돈으로부터 차츰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혼돈에
앞서 신이 존재하여 그 혼돈을 창조의 세계로 바꾸었다고 보는 사고 방식과 통한다.
한편 건국 신화의 주인공, 즉 각각의 나라를 창시한 인물들은 모두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태어나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강(天降)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단군의 경우 하늘의 왕인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과 곰〔熊〕 사이에서 태어난다. 이는 곧 천상과 지상의 결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상징인 환웅과 부족신의 성격을 갖고 있는 곰과의 만남은, 외형적으로는 지배를 받고있는 백성에게 있어 하늘의 자손이 다스리는 선택받은 국가에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 의식을 갖게 한다. 그리고 내면적으로 본다면, 지배자가 스스로를 신성시하여 절대적인 통치 권한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고구려, 신라 그리고 가야의 건국 신화 모두의 공통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전승 과정〕 고려 시대에 와서 신화의 의미가 강조되었다는 것과 그 신화가 이 시대에 조작되었다고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 신화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미 전승되어 왔다고 보아야 한다. 신화의 전승 과정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구전(口傳)과 사서(史書)를 통해 내려온 문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주몽 신화의 예를 들면, 중국 동한(東漢) 시기의 철학가 왕충(王充, 27~97)의 《논형》(論衡) 길험편(吉險篇)에 간략하게나마 이와 같은 설화가 체계화된 형태로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늦어도 기원 전후 시기부터 설화의 기본 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 후 3세기 말엽 진(晋)의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 부여 전에 동명 신화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5세기 중엽에 나온 《후한서》(後漢書)에는 이 《삼국지》의 것을 그대로 전하면서도 약간씩 가필한 내용이 나타난다. 또 5세기의 것으로 판명된 광개토왕 비문에도 그 단편이 보이고 있으며, 6세기 중엽에 쓰여진 《위서》(魏書)에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대동 소이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7세기 초엽의 《양서》(梁書), 7세기 중엽의 《주서》(周書), 당의 위징(魏徵) 등에 의해 쓰여진 《수서》 (隨書), 당의 이연수(李延壽)에 의해 쓰여진 《북사》(北史) 등에도 나온다.
이처럼 주몽 신화는 무려 10여 세기 동안이나 대대로 전승되면서 확대 보완되고 발전되어 고려 중기 김부식 (金富軾)의 《삼국사기》,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 (東明王篇),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 이르러 고구려 건국 신화로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신화의 성격이나 내용에서 볼 때, 단군 신화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여지는 주몽 신화가 이미 기원 전후 시기에 그 골격이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신화들의 탄생 기원과 역사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하늘에 대한 경외심이 높았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천신 강림으로 인해 탄생한 시조들을 신성시하여 왕으로 추대하게 되었고, 이러한 그들의 탄생 설화는 당시의 무속(巫俗)과 함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흔적은 그 시조들의 탄생 당시의 상황과 그 이름에 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록 배경〕 단군 신화, 주몽 신화 등이 문자로 새롭게 정리되어 나타난 시기를 보면 여러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이나 《제왕운기》(帝王韻記)를 저술한 이승휴(李承休), 그리고 《동명왕편》을 저술한 이규보가 모두 여몽항쟁(麗蒙抗爭)이 한창인 때나 끝나기 직전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러한 신화를 기록해 둔 이유로는 두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이규보가 스스로 괴력난신(怪力亂」神)라라 언급하기를 싫어했을지도 모르는 동명왕의 이야기를 스스로 신성시 하면서 기록한 것은 어떤 이유, 즉 그 이야기를 다시 기록으로 남겨 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일연과 이승휴는 중국 제왕들의 신이적(神異的)인 탄생을 들어 우리 나라 왕들의 신이적 탄생에 보편성을 두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이유는 바로 당시의 사회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30년 간의 여몽항쟁은 결국 고려의 패배로 끝났고, 이로 인해 고려는 원(元)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장기간의 전쟁과 패배로 인해 왕실은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국토는 황폐해져 백성들은 구심점을 잃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새롭게 국가 사회가 복구되려면 하나의 구심점이 만들어져야 했는데, 당시의 형편으로는 만들어질 구심점이 없었
던 것이다. 이때 대두된 것이 바로 건국 신화라 할 수 있다.
신화는 서술 양식과 인식 정도에 따라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탄생 설화의 경우 신이적인 양상은 백성들로 하여금 선민 의식(選民意識)을 갖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신이적 탄생 설화와 우리 나라의 탄생 설화에서 일치되는 점이 있다고 이해되고 인정될 경우 그 동안 몽고의 침입으로 인하여 실추되어 있던 민족관이나 왕조관(王朝觀)을 어느 정도 회복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불교계 인물인 일연이나 이승휴는 이미 분산될 대로 분산된 민심을 모으기 위해서는 하나의 구심점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바로 그들의 종교인 불교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실은 당시 호국(護國)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의 탄생과 같은 맥락에서 건국 신화의 의미가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다.
〔구원사적 의미〕 단군 신화의 경우 하느님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홍익 인간의 뜻을 품고 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삶 자체를 주관하는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이들을 모두 신적(神的)인 것에 뿌리를 두고자 하며, 영원한 존재가 시간적인 세계에 내려와 봉사하는 뜻이 표현되고 있다. 한편 주몽 신화의 경우 탄생이 신비스러운 기적과 결부되고, 탄생 이후에는 위험 속에 유기(遺棄, abandon-ment)되는 데서 미지의 새로운 종교성을 획득할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즉 주몽은 보통의 인간이 얻을 수 없는 자연의 힘을 획득하고, 인간적 척도로는 잴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을 사용하는 자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삼국 시대의 신화적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태양이나 밝음과 관련이 있다는 데도 주목해야 한다. 즉 주몽의 경우 주(朱)는 붉다는 뜻이고, 주몽의 다른 이름인 동명(東明)도 밝다는 뜻이며, 주몽의 아들인 유리의 본 이름도 유리명왕(琉璃明王)이므로 밝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유리의 태자는 해명(解明)으로 불리었고,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형 비류(沸流)도 붉다, 밝다의 뜻을 가진 부루(pur)의 변음이다. 박혁거세의 경우 또한 박(朴)은 밝〔明〕이며, 혁거세(赫居世)는 불구내(弗矩內)로 광명치세(光明治世)를 뜻한다. 이상의 것들은 어렴풋하지만 우리 민족이 아득한 옛날부터 절대자를 추구하고 그 보호 속에 살고자 하는 무의식적 구원의 욕망을 표현한 것임을 나타내 주고 있다.
※ 참고문헌 일연, 《삼국유사》 이규보, 《동명왕편》/ 이승휴, 《제 왕운기》 김동훈, <공동모체와 원형 구조로부터 본 고조선의 곰토 템>, 《조선학 연구》 제2권, 연변대학 출판사, 1990/ 박진석, <호패왕 비문을 통하여 본 주몽왕과 그의 출신>, 《조선학 연구》 제2권, 연변 대학 출판사, 1990/ 이은봉, <단군 신화의 종교적 의미>, 《정신 문 화》 제4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주몽의 지상적 역할과 건국 이념> 《종교 연구》 제3집, 한국종교학회, 1986. [李恩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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