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예물. 특히 이 용어는 미사, 성사 집행, 다른 전례 의식이나 신심 행위의 경우에 사용된다.
〔개 념〕 봉헌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최상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구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또한 죄에 대한 속죄의 행위로서 하느님께 어떤 예물을 봉헌한다. 봉헌의 2차적인 목적은 예식을 유지하고, 그 예식에 위임된 직무자들의 생활을 위한 것이다.
봉헌에 관한 개념은 땅에서 난 곡식을 바친 카인과 아벨의 봉헌을 언급하는 창세기로 소급될 수 있다(창세 4, 1-8). 이 구절은 희생 제물과 봉헌물은 첫 인간들이 바친 것이라는 작가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희생물을 죽이는 것이 유목민들에게 예배의 한 형태로 여겨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농경민들에게 있어서 봉헌은 자연스러운 예배 행위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이었다. 또한 피를 흘리는 희생 제물은 어떤 봉헌보다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믿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모든 봉헌의 기초에는, 하느님이 인간과 그의 소유물, 노동의 결실 등에 대해서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분의 통치권(지배권)을 인간이 인정할 때 기뻐하신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처럼 하느님께 대한 예배 행위로서의 봉헌은 모든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제도인데, 특히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발전되었다. 그중에서도 레위 계급은 봉헌에 대한 가장 엄밀하고 완전한 입법상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은 1년 중 규정된 시기에 농작물이나 짐승을 성전에 봉헌하였다. 그 밖에도 은혜에 대한 기원과 감사, 죄에 대한 속죄, 법적인 불순 행위에
대한 정화, 병, 특히 나병의 치유 등을 위해 특별한 봉헌을 하였다. 또한 외아들은 성전에 바치는 봉헌물의 대상이었는데, 이를 다른 종류의 제물로 바꾸어 바쳤다(레위 12, 2-8).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새로운 봉헌 안에서 멜키세덱의 제사를 드러내고 있으며, 봉헌의 기본적인 개념을 근본적으로 미사 거행 안에서 보고 있다.
〔유대인의 봉헌〕 유대교에서의 봉헌물은 율법에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피를 흘리는 희생 제물이 바쳐지기도 하였으며(민수 8, 8 : 15, 4-10), 밀가루와 기름과 매일의 번제물이 향이 봉헌될 때 함께 바쳐졌다. 기름에 반죽한 밀가루 봉헌물은 향과 함께 제단 위에서 태워졌으며 그 나머지는 사제의 몫으로 돌아갔는데, 사제는 성전 구역 안에서 누룩 없는 빵을 먹도록 되어 있었다(레위 6, 14-18 ; 민수 6, 14-16).
친교 제물을 바칠 때에 감사의 희생 제물과 함께 누룩 없이 만든 빵과 누룩 없이 살짝 구운 속 빈 과자(wafer)기름으로 반죽하여 구운 밀가루 과자, 그리고 누룩이 든 빵을 성전에 바쳤다. 그러나 누룩이 든 빵을 제단에 올리거나 태우지는 않았다. 이 봉헌물 가운데 한 개만 집어 야훼께 바치고, 나머지는 친교 제물의 피를 따른 사제에게 돌아갔다(레위 7, 11-14). 그리고 나병 환자가 완치될 경우에 바치는 감사의 제물에 대한 규정을 보면, 만일 그가 넉넉한 자라면 희생 제물과 함께 고운 밀가루 10분의 3에바(ephah)를 기름에 반죽한 것을 바치고, 넉넉하지 못한 자라면 10분의 1에바를 바치면 족하였다(레위 14, 10. 21). 마지막으로 나지르인들의 희생 제물에는 일반적인 봉헌물과 함께 기름 바른 누룩 없는 빵, 구운 밀가루 과자 등이 포함된 한 바구니만 바치면 되었다.
희생 제물과 구별하여 공적인 봉헌물은 일반적으로 그 해의 첫 수확물을 봉헌하였으며, 무엇을 바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역적 관습에 따라 달랐다. 봉헌하는 곡물(밀, 보리, 콩 등)은 일반적으로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졌으며, 때로는 첫 과일뿐 아니라 기타의 과일을 자연 상태 그대로 봉헌하곤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봉헌〕 유대의 여러 전통과 마찬가지로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성전에 바치는 봉헌물 가운데 희생 제물과 기타의 봉헌물에 관한 사항들을 새로운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봉헌물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성찬례의 희생 제물이었다. 왜냐하면 주님의 죽으심이야말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봉헌이며 제물이었기 때문이다(히브 9, 11-14). 이런 의미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신자들이 성찬 예식 전에 주례자에게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였고, 이러한 봉헌물들은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들이 해산된 후 '신자들의 미사' (Missa fidelium, 성찬 전례) 시작 부분에서 성직자들과 부제들의 도움을 받아 담당 주교에 의해 모아졌다. 처음에는 침묵 가운데 봉헌물을 모았으나 5세기 초에 로마에서는 '오페르토리움'(offertorium), 밀라노에서는 '오페렌다'(offerenda)로 알려진 시편을, 그리고 그리스 교회에서는 '케루비콘'(kerubikon)으로 알려진 시편을 부르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후에는 실제 봉헌물을 모으는 일은 없어지고 옛날의 오페르토리움의 자취인 봉헌 성가만 남게 되었다.
봉헌물의 일부분은 성변화(consecratio, 축성)와 영성체를 위해 사용되었고, 그 나머지 봉헌물은 가난한 이들과 성직자를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봉헌은 매우 중요하였기에 '봉헌' (oblatio)이라는 단어는 전체 전례적 봉사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신자들이 성찬 전례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봉헌하였다는 첫 언급은 사도 시대의 그리스도교 아가페(agape)와 관련되어 있다. 이때 신자 각자는 자기 봉헌을 하고, 참석자들은 이 봉헌물로 형제적인 식사를 하였으며,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후에 아가페가 성찬 전례와 분리되었을 때 봉헌물의 관행은 미사의 전례적 요건이 되면서 미사에 일치되었다. 봉헌물의 전례적 관습은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관습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아가페 거행시 행해지고 있던 폐단을 꾸짖을 때 드러난다(1고린 11, 20-34). 그리고 사도적 규범들은 빵과 포도주 외에 다른 봉헌물을 제대에 봉헌하는 것을 금하도록 하면서 이미 오래된 관습을 주지시키려는 인상을 준다. 다른 일반적인 것은 제대의 봉헌물이 될 수 없었지만, 이러한 봉헌물들은 주교에게 보내졌으며 주교는 신부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사도 헌장>(Constitutio Apostolica)은 주교가 의무적으로 사제에게 계속해서 나누어 줄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카르타고 교회 회의(397)의 규정 제24항은 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해 준 빵과 포도주, 즉 밀과 포도 외에 다른 것을 봉헌하는 것을 금하고 있으나 파스카 축일에 꿀과 우유를 봉헌하는 것은 허락하였다.
봉헌하는 것은 하나의 엄밀한 규범이었으며, 교회와 완전히 일치되지 않았던 이들인 예비자들, 파문당한 이들, 아직 화해하지 않은 죄인들에게는 금지되었었다. 봉헌하였던 자들만이 희생 제사의 결실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규범의 중요성을 크게 부여하였다. 그러나 특별 봉헌물은 성찬 전례에서 공동 참여를 위한 집단 봉헌물은 아니었고, 각자의 신심을 위한 개인 봉헌물이었다. 이미 사도적 규범들과 카르타고 교회 회의의 규정 제24항에서는 성찬 전례를 위한 것 외에 다른 일반적인 것들을 봉헌하였던 아주 오랜 관습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특별 봉헌물은 공동 봉헌물과 구분되어 미사 전이나 적어도 복음 봉독 전에 봉헌하도록 하였으며, 그 어떤 것이라도 무방했다. 성 놀라의 바울리노(Paulinus de Nola, 353~431)는 순교자 성 펠릭스(Felix,+260)의 무덤에 양탄자, 수공품,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 향수와 그 외의 다른 것들이 봉헌되었음을 증언하였다. 또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의류 제품의 봉헌물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교회에서 봉헌물 명목으로 제대에 현금을 바치는 관습은 9세기에 봉헌의 편리성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미 4세기에 유스티노, 테르툴리아노, 바울리노, 아우구스티노 등이 현금 봉헌을 위한 헌금통의 설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양상 때문에 봉헌물이란 용어는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여 교회나 사제에게, 어떤 이유와 예식이나 신심의 목적으로 봉헌되었던 것뿐만 아니라 건물, 토지, 자산, 십일조, 기금 등을 다 포함하게 되었다.
처음에 봉헌물은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이었으나, 점차 신자들의 신앙심이 감소되면서 봉헌물이 줄어들어 이미 5세기에 와서는 의무적인 경향을 보였다. 주교들과 교회 회의는 자발적인 봉헌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이며, 한편으로는 예식을 거행하는 성직자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던 만큼, 봉헌물에 대한 진정한 의무와 권리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585년의 마콘(Macon) 교회 회의에서는 파문이라는 조건하에 매주일 빵과 포도주를 의무적으로 봉헌할 것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1969년의 새 미사 경본은 성찬 전례를 시작하는 봉헌 예식 때 빵과 포도주의 봉헌과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도와 주기 위해 다른 예물들을 봉헌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그리고 빵과 포도주의 형상하에 바치는 봉헌의 실제적인 의미가 성찬 기도 중의 기억' (anamnesis) 부분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 감사의 전례 ; 기억 ; 미사 ; 성찬 전례)
※ 참고문헌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1, New York, 1911/ 《EC》 9/ Enciclopedia Italiana, vol. 30, Roma, 1949/ Enciclopedi generali mondadori, Milano, 1986/ J.A. Jungmann, The Mass of the Roman Rite, vol. 2, Westminster, 1992. 〔鄭義哲〕
봉헌
奉獻
〔라〕oblationes · 〔영〕offe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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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은 하느님께 대한 예배 행위(왼쪽)로서, 아기 예수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