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돌

〔라〕scandalum · 〔영〕scan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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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낫게 하신 예수.

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낫게 하신 예수.

"위반, 공격, 전락, 무엇엔가 걸려 넘어짐" 등의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스칸달론(σκάνδαλον)에서 파생되어 널리 쓰이게 된 걸림돌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도덕적인 감정을 해치거나 충격을 주는 객관적인 행위나 사람 또는 사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대도시의 빈민가도 하나의 걸림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걸림돌이라는 말은 때로, 부끄럽거나 불명예스러운 어떤 일을 알게 되었거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뜻하는 주관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이러한 경우에 이 단어는 부끄러움을 야기하는 사람이나 행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반응 자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민은 빈민가를 보면서 걸림돌에 걸린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윤리신학에 있어서 걸림돌은 어떤 수치스러운 일과, 그로 인해서 야기되는 불명예심과 모욕감이라는 반응을 의미하기보다는, 타인들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와 자극을 제공하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이 결과로 죄가 반드시 실제적으로 저질러져야 그것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악한 행위나 말이 잘못된 행위를 하도록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걸림돌이 성립되며, 이 경우에 정확히 걸림돌의 죄가 성립된다. 한국 교회에서는 일찍이 '악한 표양(表樣)' 이란 말을 사용했다. 자비심이 이웃의 영적, 현세적 어려움을 도와줄 의무를 주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은 이웃의 영적인 피해를 주거나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더 무거운 의무도 있는 것이다.
걸림돌이라는 단어는 성서 안에서 여러 번 등장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리스도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됩니다”(마태 11, 6)고 말한다. 그리고 십자가를 피하라고 말하는 베드로에게는 "내 뒤로 물러가라. 사탄아!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태 16, 23) 하고 말한다. 성체에 대한 약속을 해준 다음에 예수는 말한다. "그것이 여러분을 걸려 넘어지게 합니까?" (요한 6, 61) 이러한 경우에 예수는 걸림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의 도덕적인 감정에 대한 공격이나 충격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목에서 예수는 분명히 걸림돌이라는 말을 누군가를 죄로 이끌어 들인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런 일이 생기게 하는 사람은! 그는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단 채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그를 위해 다행스럽습니다" (루가 17, 1-2).
신학자들은 걸림돌이라는 말을 구분해서 다루고 있다. 말이나 행위로 남을 죄짓도록 자극하는 것은 간접적인 것일 수도 있고 직접적인 것일 수도 있다. 만일 걸림돌의 죄가 의도된 것이 아니라면, 그 결과가 불가피하거나, 적어도 그러한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해도, 그것은 간접적인 것이다. 말이나 행위가 의도하는 직접적인 결과가 타인의 범죄라면 그 걸림돌은 직접적인 걸림돌이다. 걸림돌을 제공하는 사람이 타인을 죄짓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증오를 표현하려는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악한 행위를 통해서 악마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 명백하므로, 그는 악마적인 걸림돌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걸림돌은 능동적인 걸림돌과 수동적인 걸림돌로 구분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능동적인 걸림돌은 타인을 죄짓도록 자극하는 사람 측에서 본 걸림돌이며, 수동적인 걸림돌이란 그러한 자극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 측에서 본 걸림돌이다. 걸림돌의 일차적인 효과는 죄 자체가 아니라 죄에 대한 단순한 유혹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만 죄를 지을 수 있다.
〔도덕적 평가〕 걸림돌을 제공하는 악의란 무엇인가? 타인의 범죄가 직접적으로 의도된 경우, 또는 직접적으로 의도되지 않은 경우에도, 걸림돌의 제공자의 악한 표양을 타인이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하는 경우에는 걸림돌이라는 심각한 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두 경우 모두 자비를 거스르는 죄가 되는 것이다. 직접적인 걸림돌은(어떤 이들에 따르면 간접적인 걸림돌도) 그 걸림돌의 제공자가 걸림돌의 희생자들로 하여금 어기도록 자극하는 목표인 그 덕이나 계명 자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둑질을 하라고 타인을 설득하는 것은 걸림돌의 제공자에게는 자비와 정의를 모두 다 어기는 죄가 된다.
충분히 심사숙고하지 않은 경우나, 그 걸림돌에 의해 야기된 죄가 본성상 사소한 것이거나, 아니면 모든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 걸림돌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경우들이 아니라면, 직접적인 걸림돌은 중죄가 된다.
바리사이파의 걸림돌 : 걸림돌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바리사이파의 걸림돌이란, 예수 시대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그릇된 해석에 맞추어 선한 사람들의 말이나 행위를 왜곡하는 그런 사람들의 까탈스러운 반응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분개했다는 것을(걸림돌에 걸렸음을) 드러냈다(루가 13, 14). 이러한 형태로 악의적으로 왜곡된 행위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죄를 씌울 수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나약함의 걸림돌 : 그러나 어떤 구체적인 행위들이 그 자체로 선한 것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것인 경우에도, 나약함이나 무지함의 걸림돌을 피하기 위한 모든 이성적인 단계들을 밟아야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 만일 어떤 행위의 결과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그 행동을 삼가야 하며, 그것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을 삼가는 것이 그 행위를 그릇된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다고 허락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여러분의 이 권리가 허약한 이들을 넘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나는 영영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1고린 8, 9. 13).
걸림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구원에 필요하다면 신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타인의 죄를 막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신성 모독을 하는 등의 본질적인 악을 행하는 것은 더 더욱 허용될 수 없다. 무지에 의해서 나약함이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서도 선한 행위를 계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걸림돌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나 공동체에 심각한 해악이나 손실을 끼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걸림돌의 보속〕 걸림돌을 제공한 것에 보속할 의무에 관해서는, 자신의 말이나 행위로써 타인을 심각한 유혹이나 죄에 인도했다면 그 잘못을 제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그 사람은 앞으로 선한 표양을 보이도록 노력함으로써 앞서 보인 악한 표양을 상쇄해야 한다. 사실 일반적으로 삶의 가시적이고 외적인 변화가 보속의 가장 좋은 길이다. 공적인 걸림돌을 제공한 사람은, 특히 그가 공동체에서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경우에는, 공적으로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 죄 ; 교회 형법)
※ 참고문헌  H. Davis, Moral and Pastoral Theology, 《NCE》. 〔宋炯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