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희만(1916~1986)

奉喜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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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희만 신부.

봉희만 신부.

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안토니오. 1916년 1월 17일에 충남 아산군 인주면에서 태어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6월 24일 사제로 서품되어 영등포(永登浦, 현 도림동)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인천 답동(沓洞) 본당 보좌(1942~1943. 12)를 거쳐 충북 제천(堤川, 현 남천동)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이곳에서 8년 이상 사목하는 동안 봉희만 신부는, 1945년 9월 27일 관할 구역인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九鶴里)에 소재한 배론〔舟論〕 성지에서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묘비 제막식을 가졌으며, 성당 인근의 일본식 가옥을 매입하여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조한 후 1947년 10월 15일 축성식을 가졌다. 또 1949년 10월 25일에는 고아원 '보혜원'을 인수하여 '천혜원' (天惠院)으로 개칭하고 운영을 재개하였으며, 옛 배론 성 요셉 신학교 일대의 부지 1,500평을 매입함으로써 현재의 배론 성지가 조성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이어 1954년 2월 신용산(新龍山, 현 삼각지)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다가 같은 해 10월 26
일에는 다시 영등포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신심 단체들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성당 신축을 위한 부지 마련에도 노력했다. 그 후 경기도 평택(平澤) 본당 주임(1956. 3~1959. 9)을 거쳐 1960년 3월 춘천 청평(淸平)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봉희만 신부는, 1961년 5월 27일 전임 윤을수(尹乙洙, 라우렌시오) 신부가 책임을 맡고 있던 친애원(親愛院)의 운영을 재개하는 등 약 13년 동안 본당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각 공소에서 계획했던 수익 사업의 중단, 인보 성체 수녀회의 철수, 교세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어 그는 1973년 초부터 약 6개월 동안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지도 신부를 겸임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22일 문산(文山)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1974년 5월 5일 일산(一山) 본당 관할의 금촌(金村) 공소와 와동(瓦洞) 공소를 본당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이듬해 11월에는 교구 지원으로 성당 및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975년 8월 8일 서울대교구 참사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그 후 서대문(西大門) 본당 주임(1977. 5~1982. 9)을 거쳐 응암동(應巖洞) 본당 주임(1982. 9~1985. 3)을 끝으로 현직에서 은퇴하여 휴양하던 중 1986년 4월 29일 사망하여 용인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 남천동 본당 ; 서대문 본당 ; 응암동 본당 ; 청평 본당)
※ 참고문헌  <서울 주보> 427호(1986. 5. 4), 서울대교구 선교국, p. 6/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50년사》, 1983/ 천주교 도림동 교회, 《모랫말 반세기》, 1986/ 천주교 서울대교구 응암동 교회, 《응암동 본당 25년사》, 1993/ 청평 본당 40년사 편찬위원회, 《천주교 춘천교구 청평 본당 40년사》, 천주교 춘천교구청평 본당, 1994.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