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루터파의 신비 사상가. 신지학자(神知學者). 종교 개혁 말기인 1575년에 괴를리츠(Görlitz) 부근의 알트-자이덴베르크(Alt-Seidenberg)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목동으로 지낸 뵈메는, 초등 교육을 마친 후 1594년에 괴를리츠로 가서 제화공(製靴工)의 견습생이 되었으며, 1599년에는 푸줏간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듬해 구듯방을 개업한 뵈메는 이때 15분 간 신비 체험을 했는데, 이 체험 이후 1613년까지 제화공으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1612년에 그는 첫 작품 《서광》(曙光, Morgenröte im Aufgang, Aurora)을 발표하였는데, 본래 이 책은 혼자 사용할 목적으로 집필된 것으로 신학 · 철학 · 점성술 등이 혼합되어 있는 글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복사본을 입수한 루터교 목사 리히터(Gregorius Richter)는 구두장이가 신학자를 사칭한다고 비난하면서 이 문제를 괴를리츠 시 당국에 고발하여 그에게 저술 활동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5년 후부터 뵈메는 다시 신앙적인 논문들을 쓰기 시작하여 《그리스도에 이르는 길》(Der Weg Zu Christo)이라는 소책자를 1623년에 발간하였지만, 또다시 리히터의 비난을 받자 이듬해 드레스덴(Dresden)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슐레지엔(Schesien)에 사는 몇몇 친구들에게 갔다가 그곳에서 많은 인정을 받았지만, 괴를리츠로 돌아온 뒤인 1624년 11월 21일에 사망하였다.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그가 죽은 뒤에야 출판되었다.
저서로는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연구서인 <신적 본질의 세 가지 원리》(Die drei Prinzipien göttl. Wesens, 1619), 우주론적 이론들을 담고 있는 《사물의 표식론(標識論)》(Designatura rerum, 1622), 창세기에 대한 풍자적인 주석서로 르네상스의 자연 신비주의와 성서 교리를 종합한 《대신비》(Mysterium Magnum, 1623) , 세례와 성체성사에 관한 《그리스도의 계약》(Von Christi Testamenten), 《인간의 세가지 생명》(Vom dreifachen Leben des Menschen, 1619/1620), 《신지학의 여섯 가지 점》(Sex puncta theosophica, 1620) 등이 있다.
〔사 상〕 사유 구조 : 뵈메의 사고는 성서와 루터교적인 교의와 독일 신비주의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플라톤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뵈메의 사유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범지학(pansophie)도 결정적인 요소였다고 여겨진다. 또 그의 범지학적인 입장은 범신론의 경향를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이로 인해 뵈메는 그가 속한 루터교로부터 정통 교리에서 벗어났다는 비난을 받았다.
뵈메의 범지학적 특성은 범지학을 신론과 그리스도론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신비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이 전제되어 있으며, 그의 사유에는 전통적인 분석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서 우선 존재에 내재하는 지향' 이 있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또한 그리스도교적 그노시스주의로 표현되는(N.A. Berdyajev) 뵈메의 사유 세계는 후기 루터주의의 그노시스에 속한다고 파악되기도 하였다(E.H. Pältz). 뵈메는 살아 있는 신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하여 신플라톤적이며 범지학적인 표상을 수용하였으나, 이러한 입장에는 루터교의 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보른캄(Bon-kamm)은, 그노시스주의적 형이상학으로 신앙의 경험을 형성한 뵈메의 사유는 루터적인 요소를 깊이 변경시킨 것이라고 하였다.
뵈메의 사유 구조를 결정짓는 특징으로서, 베르댜에프(N.A. Berdyajev)는 '직관'. '직접적인 영감', '자연 직관'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뵈메에게 감정과 직관의 형식, 사유의 구상 형식(Bildlichkeit) 철학의 본질주의적 형식이 있다 하더라도 한편으로 그는 비이성적이거나 자연 철학적인 의미를 거슬러서 신화를 극복하고 있으며, 역사와 언어, 시대와 사회의 비판을 고려하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헤겔(G.W.F. Hegel)은 그를 예언자적인 해석자로 평가하였다. 그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도처에 같은 구조'(durchgängige Strukturgleichheit)라는 말로 심리적이고 형이 상학적인 현상을 표현한 경험주의적 형이상학을 심리학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P.J.A. Feuerbach). 그러나 "러 자신을 관찰하라. 너를 추구하라. 너를 발견하라. 너는 신의 초상 · 모상 · 본질 · 특성이다" (De Triplici Vita Hominis, Ⅳ, 75)라는 문장의 맥락에서 보자면, '같은 구조' 라는 말은 초상(Ebenbildlichkeit)이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이므로 그의 사유는 신지학(theosophie), 심령적 · 실존주의적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전기 작가인 프랑켄베 르크(Frankkenberg)에 의하면, 뵈메가 어느 날 자기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햇살이 주석 용기를 비추었는데, '이 사랑스럽고 유쾌한 빛살'로 말미암아 그의 '별빛 영롱한 심혼(心魂)' 은 '빛으로 무늬진 표지와 형태 및 윤곽과 색깔' 너머 사물의 최심층(最深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뵈메 사상의 출발점이었다. 사물에 '각인(刻印)되어진 내적인 기반(基盤, Grund)'을 뵈메는 《사물의 표식론》에서 설명하고자 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모든 외양은 상징일 뿐이라면서, 이 외양 뒤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뜻을 헤아리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상징주의(象徵主義, symbolismus)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신론과 인간학, 언어 철학, 해석학, 역사 이해와 사회학 등을 다양하게 언급하였다.
신, 인간, 자연 : 뵈메에 의하면 하느님은 '심연'(深淵, Urgrund) 즉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 두 가지의 근원을 함유하고 있으며, 알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하였다. 여기서 '심연' 은 의지이며, 이 심연의 자기 이해는 근본적으로 영원한 자아의 정립이다. 이러한 심연은 빛과 지혜인 성자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으며, 성령 안에서 스스로를 확대시키고 자신을 표출한다. 이 하느님은 두 개의 의지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선하고 다른 하나는 악하며, 하나는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분노이다. 이러한 두 개의 의지들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자연을 창조하게 하며, 자연은 스스로를 일곱 개의 자연의 영들 또는 근원 정령(Quel-lgeister)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근원 정령이란 저항하려는 욕망, 확장하려는 경향, 이러한 욕망과 경향 사이의 투쟁, 식물들의 생장 발육, 동물의 생태,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자신 안에 집약시키는 인간 등이다.
뵈메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자연 안에 있는 존재이지 하늘에 있거나 하늘 위에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는 하느님을 살아 있으며, 행동하고, 스스로를 위격으로서 정립하는 영원한 힘으로 이해하였다. 그 영원한 힘은 모든 운동과 동시에 무한한 대립과 구분되며, 모든 차이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창조의 기능 안에서 소멸되지 않고 자연과 생물들에게서 독립적인 것으로, 살아 있는 하느님의 자유 그 자체이다. 뵈메에 의하면 자연 안에서 만유(萬有)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과 세계의 근원적인 통일은 인간 자신 안에서 체험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전세계이며, 인간이 소우주(小宇宙)라면 세계는 대우주(大宇宙)인 것이다.
그의 저서들은 의지와 해방의 철학적 역동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존재들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이다. 즉 심연에서 출발하여 여러 존재의 층들이 탄생하는데, 여러 존재 층들의 움직임은 모순들의 싸움이며, 발현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모순들의 싸움은 항상 가장 새로운 존재의 형상들을 발생시키며, 항상 사물들의 구조를 많이 발전시키고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지각과 지성을 다듬는다. 모순들의 풍부한 상호 작용으로 인해서 사물들은 원초적인 정지 상태에 머물지 않고 발전하여 자기를 나타낸다. 이 발현의 표현이란 단순히 존재의 현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것의 절정이고 그것의 완성이다. 매번 그 싸움은 해결될 수가 없으며, 오히려 반대의 세력들은 끊임없고 기한 없는 운동으로 끝나지 않는 메마른 적대 상태로 들어간다. 그는 이것을 탄생, 자연 혹은 생명의 운명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완전한 유한성이 결여된 존재의 조건은 존재로 하여금 순환적인 과정에 처하게 하며, 이러한 운동을 거역하는 것은 곧 모든 진정한 발전의 결여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적인 본성은 모든 현 존재의 씨앗인데, 이것 없이는 사물들이 증발해 버리며 사라지게 된다. 그 본성 즉 피조물들과 신안에 있는 그 의지는 존재 자체의 기초이며, 이 개념으로 뵈메는 모든 이원론을 극복하고 질료와 그 특성을 회복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므로 존재의 구조 속에 명확한 이 역할은 본성이 선의 권능에 반대하려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따라서 본성은 악으로 변모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 향〕 뵈메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는 안젤루스 실레시우스(Angelus Silesius)이다. 그 후에 종교 사상가인 폭스(George Fox), 기히텔(J.G. Gichtel), 뵈메를 "인류 역사의 기적 현상"이라고 평가한 셀링(F.W. von Schelling), "자신의 변증법이 이미 뵈메에게 나타나고 있다" 고 한 헤겔, 또 괴테(J.W. von Goethe), 리히텐베르크(G.C. Lichtenberg), 노발리스(Novalis), 베르댜에프, 바더(F.X. von Baader) 등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뵈메의 사상은 영국에서 퀘이커 교도들(Quakers)에 의하여 열광적으로 수용되었으며,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전해져 영향을 미쳤고, 퀘이커 교도들에 의하여 뵈메의 영향력은 미국에까지 미쳤다. (→ 신지학)
※ 참고문헌 A. Koyré, La phil. de J.B., 1929/ Ernst Benz, Der vollkommene Mensch nach J.B., 1937/ J.J. Stoudt, Sunrise to Eternity. J.B., Life and Thought, 1957/ P. Hankamer, J. Böhme. Gestalt und Gestaltmg, 1924, 19612/ (RGG) 1,p. 1340ff/F. Maliske, 《LThK》 2, pp. 559~560/ Phil. Wört. buch, A. Kröner Verlag, Stuttgart ;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Ⅱ, 1979/ H.J. Muller, 《NCE》 2, p. 638/ Miklos Veto, Dictionnaire des Philosophes, A~J, 1984, pp. 380~381/ E.H. Pältz, 《TRE》 6, pp. 748~753. 〔梁惠貞〕
뵈메, 야콥(1575~1624)
Böhme, J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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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