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강 본당

芙江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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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 130-1 소재. 1957년 4월 청주 본당으로부터 분리 · 신설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명. 관할 구역은 부용면, 남이면, 현도면 전 지역. 〔교 세〕 1965년 1,522명, 1971년 1,921명, 1976년 1,668명, 1980년 768명, 1986년 1,030명, 1990년 1,179명, 1994년 1,284명, 1996년 1,285명. 〔역대 신부〕 초대 슈나이더(D. Schneider, 선) 다니엘(1957. 4~1958. 5), 2대 란(F. Ryan, 양승덕) 프란치스코(1958. 5~1959. 5), 3대 몬투오리(A.S. Montuori, 문금산) 안젤로(1959 5~1963. 7), 4대 덱먼(L. Decman, 마) 레오(1963. 7~1965. 7), 5대 로진스키(J. Rosinsi, 노신기) 요한(1965. 7~1970. 12), 임시 플레밍(A.Fleming, 현안신) 알프레도(1967. 9~12), 6대 주노(M. Zunno, 주은로) 미카엘(1971. 3~1974. 10), 7대 곽동철(郭東喆) 요한(1974. 10~1979. 5), 8대 연제식(延濟植) 레오(1979. 5~1981. 8), 9대 서정혁(徐廷赫) 프란치스코(1981. 8~1983. 4), 임시 곽동철(1983. 4~1984. 5), 10대 이범현(李範玄) 토마스(1984. 5~1987. 6), 11대 신성근(申成根) 야고보(1987. 6~1989. 6), 12대 신성국(申成國) 노엘(1989. 6~1992. 3), 13대 김인국(金仁國) 마르코(1992. 3~1994.5), 14대 구윤회(具潤會) 안토니오(1994. 5~1997. 4), 15대 이수한(李壽漢) 치릴로(1997.5~현재).
〔전사 및 본당 설립〕 부강 지역에 본격적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공주(현 公州 中洞) 본당 3대 주임인 퀴를리에(Curier, 南一良, 1863~1935) 신부가 1907년에 비룡(飛龍, 충북 청원군 南二面 비룡리) 공소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퀴를리에 신부는 1907년에 공소를 순방하다가 비룡 땅에서 몇몇 교우들의 노력으로 많은 예비 신자들이 탄생하고 있음을 알고 즉시 이곳에 공소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이 비룡 공소는 처음에 공주 본당 관할이었으나 1910년경 옥천(沃川) 본당 관할 공소로 변경되었고, 1914년 4월 옥천 본당 2대 주임 이종순(李鍾順, 요셉) 신부가 비룡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 해 11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1919년 11월 대전 본당이 설립되면서 비룡 본당은 대전 본당의 공소로 되었다가, 1932년 청주 본당이 감곡(甘谷)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면서 다시 그 관할 공소로 변경되었다. 한편 부강 지역의 경우, 본당 설립 이전에 공소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용포(龍浦, 부용면 부강리)에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 후 1953년 9월에 충청북도 지역이 감목 대리구로 설정되면서 이 지역 교세가 확대되자, 1957년 4월 청주 본당에서 부강 본당으로 분리 · 설립되어 메리놀회의 슈나이더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성장과 변모〕 슈나이더 신부는 부임 직후 부강리 129-2번지의 한옥 건물을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나, 해마다 신자들이 증가하자 3대 주임 몬투오리 신부는 1961년 5월에 지금의 성당 터 3,004평을 매입한 후 그 해 8월부터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이듬해 6월 16일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 · 축성하였다. 그리고 1963년 5월에는 비룡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 한편 이에 앞서 1961년 11월부터는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의 수녀들이 부임하여 활동하였는데, 1965년 12월 철수하고 말았다.
본당 설립 이후 부강 본당의 교세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당시 본당 사목을 맡고 있던 메리놀회 신부들은 가톨릭 구제위원회(NC.W.C.C.)의 후원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구호 물자를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1969년 6월에는 316평의 대지를 매입하여 '오대' 와 '교동' 부락의 극빈자를 위한 주택을 건립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74년 10월 첫 한국인 사제 곽동철 신부가 부임할 때까지 부강 지역에는 2,300여 명이 입교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렇게 교세가 확장되면서 1970년대 말까지는 공소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남이면의 비룡 공소와 척산(尺山) 공소, 현도면의 상삼(上三) 공소와 시목(棶木) 공소, 문의면(文義面)의 문의 공소와 문동 공소, 부용면 노호리(芙蓉面 蘆湖里)의 매포(梅浦) 공소 등이 본당의 관할 공소였다. 그러나 1984년 4월 관할 구역 조정으로 문의 공소와 문동 공소를 포함한 문의면 전 지역이 서운동 본당으로 이관되고, 현도면의 공소와 남이면의 척산 공소가 폐지되면서 현재는 비룡 공소와 매포 공소만이 남게 되었다. 1985년에는 성모 동굴을 새로 조성하였고, 1991년 6월에는 본당 신자들의 정성으로 교육관인 '성모 회관' (87평)을 착공하여 이듬해 1월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1995년부터는 수녀회를 다시 초청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는데, 현재는 임시로 보혈 선교 수녀회의 수녀 1명이 주 3회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아울러 1997년 본당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그 기념 사업으로 현도 공소의 설립을 추진함과 동시에 2000년에 비룡 공소 건물을 건립하기 위해 기금 마련에도 노력하고 있다. (→ 청주교구)
※ 참고문헌  감곡 본당 90년사 편찬위원회 편, 《감곡 본당 90년사》, 천주교 감곡 교회, 1986/ 청주교구 옥천 교회, 《옥천 본당사》, 1991/ 천주교 청주교구청, 《청주교구 연감》, 1995/ 예수 성심 시녀회, 《주님 손 안의 연장- 예수 성심 시녀회 60년사》, 1996/ 대전교구 공주 중동 교회, 《중동 본당 100년사》, 199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