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釜山 聖 - 修女會

〔영〕Benedictine Sisters of P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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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블룸 신부(왼쪽)와 1830년에 발덱에 세워진 '가난한 자매들의 학교' 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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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자 블룸 신부(왼쪽)와 1830년에 발덱에 세워진 '가난한 자매들의 학교' 자매들.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올리베타노(Ordo Sti. Benedicti Montis Oliveti, 약칭 Olivetani) 연합회의 부산 자립 수도회(pioratus)로, 일명 '한국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시 수영구 광안4동 1278번지 소재. 1931년 9월 14일 스위스의 캄(Cham) 성 십자가(Heiligkreuz)수녀원에서 5명의 수녀를 간도 지방의 연길 지목구(延吉知牧區)에 파견하면서 시작되었는데, 1946년 이래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청산을 겪은 뒤 남하하여 1952년 9월 12일 부산에서 다시 수련원을 개원하였다. 이어 1972년 12월 1일 대리구로 승격되었고, 1981년 6월 8일 교황청 수도회성으로부터 자립 수녀원 인가를 받았다. 〔역대 원장〕 연길 · 부산 수녀원 : 초대 베로니카 라우르(Laur) 수녀(1931. 9~1934. 4), 2대 니콜라 페슬러(Fissler) 수녀(1934. 4~1950. 9), 3대 유영춘(柳永春) 알로이시아 수녀(1948. 9~1953.8), 4대 니콜라 수녀(1953. 8~1965. 12), 5대 야누아리아 피프너(Pfiffner) 수녀(1965. 12~1972. 12). 대리구장 : 초대 임남훈(林南薰, 그레고리아) 수녀(1973. 4~1978. 7), 2대 김지상(金芝尙, 레티치아) 수녀(1978. 7~1982. 1). 총원장 : 초대 임남훈 수녀(1982. 1~1987. 1), 2대 김지상 수녀(1987. 1~1992. 1), 3대 최길자(崔吉子) 안젤라 수녀(1992. 1~1997. 1), 4대 전정숙(全貞淑) 체칠리아 수녀(1997. 1~현재).
〔캄의 성 십자가 수녀원〕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1830년 1월에 스위스 루체른(Luzern) 주의 발덱(Bal-degg)에 세워졌던 '가난한 자매들의 학교 에 먼 기원을 두고 있다. 이 공동체는 호흐돌프(Hochdorf)의 성 베드로 바오로 대성당에서 재임하던 블룸(Josef Leonz Blum, 1786~1859) 신부가 정치적인 박해와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인해 도시로 몰려든 소녀들을 지도할 목적에서 설립하였다. 이곳 자매들의 공동 생활은 1841년에 수도 생활로 변모하였으며, 바젤 교구장 살차만(Salzaman) 주교에 의하여 1844년 10월 5일에 수녀회의 회헌이 인준되었다. 그러나 1848년 스위스 연방 의회의 결정에 따라 수녀회는 1853년 5월 6일 발덱에서 추방되어 죽(Zug) 주의 캄으로 공동체를 옮겨야만 하였다. 이후 수녀회에서는 1859년에 캄 수녀원을 완공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성 십자가(Heiligkreuz) 순례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점차 '하일릭크로이츠 수녀원' 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캄 수녀원에서는 당시까지 발덱으로 수녀들을 파견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루체른 주 정부가 이를 반대함에 따라 1862년 8월 24일 발덱과 캄 공동체를 분리해야만 하였다. 이후 캄 수녀원은 1865년에 연방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고, 이듬해에는 교구로부터 성 십자가 성당을 인계받아 이를 신축하였다. 또 1887년부터 수녀들과 지도 신부들은 성 베네딕도 수도원과의 연합을 추진하면서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 따라 회헌을 고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892년 9월 11일 이탈리아 시에나의 성 베네딕도회인 '몬테 올리베토 성 마리아 수도원'과 캄의 성 십자가 수도원 사이에 정식으로 연합회 가입 수락서가 교환되었다.
〔연길 수녀원의 설립과 시련〕 캄의 수녀들이 한국에 진출하게 된 것은 간도(間島) 지역을 사목 관할 구역으로 하여 1928년 7월 19일에 설정된 연길 지목구의 브레허(Theodor Breher, 白化東) 신부가 1930년에 수녀 파견을 요청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캄 수녀원의 총원장 아델하이드 슈비터(Adelheid Schwitter) 수녀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1931년6월 14일에 연길 지목구와 계약을 체결한 다음 그 해 9월 14일 베로니카 라우르 수녀 등 6명의 지원자를 한국으로 출발시켰다. 이들은 11월 1일 제물포를 통해 입국하여 11월 6일 연길에 도착하였으며, 11월 9일에는 '예수 성심' 을 주보로 연길 수도원 옆에 마련된 4층 수녀원의 축성식을 가졌다. 이에 앞서 브레허 신부는 4명의 한국인 지원자들을 받아들였고, 이들은 11월 11일 연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처음 이 수녀원의 명칭은 캄 하일릭크로이츠 연길 수녀원' 또는 '연길성 십자가(하일릭크로이츠) 수녀원' 등으로 불렸다.
이후 연길 수녀원에서는 1931년 12월 초에 시약소를 개설하였고, 1934년 8월 14일에는 정식으로 수련원을 개원하였다. 시약소는 1935년에 레너(Ludwig Lehner) 박사가 파견되어 오면서 '연길 수녀 병원' 으로 변모하였다. 이어 1933년에는 용정 하시(龍井下市) 본당에 첫 지원을 설립한 데 이어 1945년까지 모두 7개의 본당 지원을 설립하였으며, 1935년 10월 20일에는 4명의 한국인 수녀들이 첫 서원을 하게 되었다. 한편 1937년 연길 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되면서 주교로 성성된 브레허 신부는 1939년 5월 1일 캄의 모원과 2차 계약을 체결하였고, 1943년 8월 21일에는 연길 수녀원의 회헌을 인준하였다. 그 동안 캄의 모원으로부터 계속 회원이 증원되어 1945년에는 18명의 선교 수녀와 17명의 한국인 수녀가 활동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소련군의 진주로 불안과 위험 속에서 지내던 연길 수녀원은 이듬해 5월 중국 공산당이 들어서면서 모두 세 차례의 청산과 수난을 받아야만 하였다. 제1차청산은 같은 해 5월 20일 연길 본원과 훈춘 · 명월구 지원 등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수녀들은 다른 신부· 수사들과 함께 보안 제1단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브레허 주교의 항의로 한국인 수녀와 니콜라 원장 수녀를 비롯한 스위스 수녀들은 즉시 석방될 수 있었다. 반면 에 다른 서양 수녀들은 두도구 · 삼도구를 거쳐 7월 7일에는 두만강 인근의 남평(南坪) 수용소로 옮겨졌고, 이 곳에서 1948년 5월까지 생활해야만 하였다.
1946년 5월 25일에 마침내 연길 수련원은 폐쇄되었고, 다음해 7월에 니콜라 원장 수녀는 수녀원을 분리함과 동시에 남한에 친가가 있는 수녀들에게 남하를 권하였다. 곧 이어 제2차 청산이 시작되어 팔도구 본당과 연길 본원이 또다시 아픔을 겪게 되었지만, 다행히 남평 수용소에 갇혀 있던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1948년 5월 15일에 석방되어 연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1949년 12월 12일에는 브레허 주교와 수련장 베다 퀘닉(Beda Qönig) 수녀 등 4명의 수녀가 추방되었고, 다음해 11월 1일에 있은 제3차 청산으로 교회가 폐쇄되면서 1951년 9월까지 모든 서양 수녀들이 중국을 떠나게 되었다. 연길에서 종신 서원을 한 한국인 수녀들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8명이었다.
〔부산 수녀원의 정착과 안정〕 1947년부터 남한으로 월남한 한국인 수녀들은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배려로 우선 청주에 있던 성심 보육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어 다음해에는 행주와 안동에 지원이 설립되었고, 1949년 11월 21일에는 경기도 소사에 작은 수녀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수녀들은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해야만 하였다. 처음 부평동에서 생활하던 수녀들은 1951년 5월에는 동구 초량동 31-3번지(현 부산 성 분도 병원 자리)에 새 터전을 마련하였으며, 11월 5일에는 성 분도 자선 병원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9월 12일에는 3대 원장 유영춘(알로이시아) 수녀를 중심으로 병원 한 쪽에 마련된 수녀원에서 수련원을 개원하였다. 연길 수련원이 폐쇄된 지 5년 4개월 만이었다. 이어 1953년 8월 24일에는 스위스에서 수녀들이 파견되어 오면서 니콜라 수녀가 다시 원장을 맡게 되었고, 다음해 9월 14일에 성 분도 자선 병원이 정식 병원으로 인가를 받았으며, 11월 23일에는 슈레플(Corbinian Schräfl, 周聖道) 신부가 지도 신부로 부임하였다.
1955년 3월 21일, 남한에서 첫 종신 서원식이 거행되어 이강례(李康禮, 사베리아) 수녀 등 7명이 서원을 하였다. 이후 수녀원에서는 1962년 3월 25일 광안동 산 110번지(현 수녀원 소재지)에 부지를 매입하여 5월 20일에 기공식을 가졌으며, 3년 뒤인 1965년 4월 30일에 수련원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6월 18일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 동안 부산과 경남 지역은 1957년 1월 21일에 부산 대목구로 설정되었고, 1962년 10월 26일에는 천주교 부산교구 유지 재단이 설립되면서 수녀원도 이 재단에 편입되었다가 1965년 6월 30일자로 수녀원 단독의 재단 법인 허가를 받았다. 한편 캄 수녀원이 1963년에 교황청 설립 수녀원이 되고 1965년 10월에 새 회헌을 인준받음으로써 부산 수녀원에서도 이 회헌에 따라 생활하게 되었다.
부산 수녀원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크게 성장하였는데, 1961년부터 1970년까지 모두 12회의 첫 서원식이 있었고, 종신 서원자는 11회에 걸쳐 47명이 탄생함으로써 1970년 현재 100명(한국인 94, 스위스인 6)의 수녀들이 활동하게 되었다. 아울러 1952년에 개원하여 1955년에 인가를 받은 서울의 동자동 성 분도 자선 병원은 1969년에 신축 건물로 이전하였으며, 1965년 말에는 부산 성 분도 병원과 함께 비영리 종합 병원으로 허가를 받았다. 또 1969년에는 광안동 수련원 앞에 성 분도 치과 의원을 개원하였고, 부산 지역을 비롯하여 상주 · 김천 · 서울 · 마산 등지에 새 지원이 설립되었으며 김천 성의여자중고등학교, 거제의 해성중고등학교, 부산의 데레사여자중학교에도 수녀들이 파견되었다.
〔대리구 승격〕 당시 부산 수녀원의 가장 큰 희망은 자립적인 운영이었다. 이에 모원에서는 1964년 초에 알마 피스터(Alma Pfister) 수녀를 한국에 파견하여 그 실상을 파악하도록 한 후, 그 자립을 순조롭게 추진하기 위해 피프너 수녀를 한국의 제5대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68년 8월에는 모원 총회에서 부산 수녀원 대리구 승격에 관한 의안이 통과되었으며, 1970년과 1971년의 모원 쇄신 총회를 거쳐 1972년 7월 13일에는 마침내 <한국 대리구를 위한 특별 규정서>가 반포됨으로써 같은 해 12월 1일부터 한국 수녀원이 대리구로 승격되었다.
1973년 4월 14일에는 한국 대리구 제1차 총회가 개최되어 초대 대리구장으로 임남훈(그레고리아) 수녀가 선출되었다. 이어 4월 28일에는 부산 수녀원의 공식 명칭을 '한국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로, 대사회적인 명칭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 로 결정함과 동시에 본원의 광안동 이전을 결정하였다. 이후 부산 수녀회에서는 1982년 1월까지 자립을 전제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1974년 12월에는 소사 수녀원이 건립되었고, 1976년 2월 20일에는 문현동 '성 분도 봉사의 집'을, 3월 2일에는 분도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처의 지원을 증설해 나가는 한편 해외에도 눈을 돌려 1976년 10월 1일에는 뉴욕 퀸즈 한인 천주교회에 지원을 설립하였다. 또 1980~1981년에는 본원을 증축하고 영성 생활의 심화와 청소년 사목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79년 4월 27일에 있은 임시 총회에서는 한국 수녀원의 자립이 의결되고, 다음해 7월 11일에는 스위스 모원 총회에서 이 의결이 통과되었다. 이어 1981년 6월 8일에는 교황청 수도회성으로부터 교황청 설립 자립 수녀원의 인가와 동시에 캄과 한국 수녀원의 연합 결성을 승인받게 되었으며, 1982년 1월 22일자의 교령으로 두 수녀회의 연합 정관이 인준되었다. 이에 앞서 부산 수녀원에서는 1981년 9월 14일에 설립 은경축 기념으로 '은혜의 50주년' 행사를 개최하였다.
〔자립 수녀원의 성장〕 자립 수녀원은 1982년 1월 21일 선거 회의로 시작되었다. 이날 선거에서 임남훈 수녀가 초대 총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부터 수녀회에서는 회헌에 따라 베네딕도 수도회다운 삶과 평화의 공동체 형성을 모색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한편 교황청 수도회성에서는 1980년에 제출한 한국 고유의 회헌 일부를 수정하여 1984년 6월 19일에 인준하였다.
자립기에 들어서면서 수도회의 활동 폭은 더욱 넓어져 가게 되었다. 국내외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1980년 이후에는 서울 · 마산 · 부산 · 대전 · 군종교구청에도 수녀들이 진출하였고, 1989년 10월 5일자로 메리놀 수녀회로부터 지산 자활원을 인수받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꾸준히 성장해 오던 부산성 분도 병원은 노동 쟁의, 파업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1988년 8월 31일 그 운영권이 수녀원에서 부산교구로 완전히 이관되었다. 이 무렵 수녀원에서는 나환우나 장애인들의 재활 사업에도 눈을 돌려 1983년 9월 수원의 성 라자로 마을에 수녀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였고, 1987년 7월 11일에는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도척면 진우리)에 성 분도 장애자 직업 재활원을 개원하였다.
1991년에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은 한국 진출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수녀원에서는 그 기념 행사를 '은혜의 60주년' 으로 명명하고, 1990년 초부터 세미나와 경축 행사를 준비하였다. 그런 다음 1991년 9월 9일부터 14일까지 기념 행사를 가졌으며, 이때 60주년 기념 화보집인 《은혜의 60년》을 출간하였다. 또 이무렵에는 해외 지원 설립이 활성화되면서 1990년에 캐나다 몬트리올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다음해에는 미국 볼티모어와 중국 연길, 필리핀에 수녀들이 진출하였다. 그중에서도 연길 진출은 수녀원의 첫 터전에 새로 회원들을 파견하였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부산 수녀회는 1998년 현재 394명의 회원들이 본원을 비롯하여 국내 본당 44, 해외 본당 9, 사회 복지 기관 14, 병원 5, 교육 기관 2, 유치원 10, 피정의 집 5개소, 그리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와 주교 회의 위원회 및 교구청 부서 25곳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 성〕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베네딕도회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자립 수도회로, 그 영성은 회헌의 1부 '수도 생활의 영적 기조' 에 잘 나타나 있다. 이 회헌의 1부는 캄 수녀원의 회헌과 같으며, 2부는 법적 규정' 으로 부산 수녀원 고유의 회헌이지만, 모두 베네딕도회의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수녀원의 특은과 현시대의 요구에 상응하도록 짜여 있다. 그러므로 그 영성은 '하느님은 모든 일에서 영광을 받으소서'(Ut in omnibus glorificetur Deus)를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복음의 권고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고, 교회의 구원 사명에 참여하며, 사랑으로 하느님과 공동체를 섬기고, 봉사와 애덕의 의무를 수행하는 소명을 살고자 노력한다. 아울러 모든 수녀들은 베네딕도회 회원으로서 수도승의 영성 즉 '세상을 떠나 기도와 고행의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에 이르는 것' 을 본받고자 하며, 베네딕도 규칙서에 따라 수도승의 시간 즉 '하느님의 일'(Opus Dei), '성독'(聖讀, Lectio Divina), '일'(Labor)을 중시한다. 다만, 그 생활은 은거가 아니라 한 수도원 안에서 일정한 규칙 아래 함께 하느님을 찾는 '공생 수도 생활' (cenobitic life) 즉 '평화의 공동체' 를 지향하는 공동체적 영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캄 수녀원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성체 조배, 연길 수녀원 이래의 수도 생활, 전례 활동과 재수련 · 재교육 · 피정 등을 통해 생활의 쇄신과 수도자로서의 영성을 추구해 오고 있다. (→ 베네딕도회 ; 부산교구 ; 연길교구)
※ 참고문헌  PH. 왈터, 정한근 역,《승리의 십자가》, 분도출판사, 1973/ 부산교구 편, 《教區三十年史》,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1990/《은혜의 60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 1995/ 한국교회사연구소편,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부산 올리베따노성 베네딕도 수녀회 빛 둘레》(계간).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