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축일 미사 때 제2 독서 후 알렐루야 전에 노래하거나 읽는 찬미가. 부속가를 뜻하는 라틴어 '세귀엔시아'(sequentia)는 따라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세궤레'(sequere)에서 유래하였는데, 현재 4개만 남아 있다.
부속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로푸스(tropus)라는 중세 음악 용어의 이해가 필요하다. 원래 트로푸스는 비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음악에서는 가사가 빈 선율에 가사를 채워 넣는 작업을 의미하였다. 서양 음악사에서 악보가 발견되는 것은 9세기경의 기록부터이다. 이 시기의 악보는 자세한 음높이를 알 수 없고 단지 선율의 움직임만 암시하는 손짓의 표기 정도였는데, 이 악보를 그리스어의 '몸짓'이라는 뜻의 단어를 사용하여 '네우마(neuma) 악보'라고 하였다. 결국 그 이전과 이 시대에는 모든 성가를 외워서 전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가사와 선율은 서로 보완 관계가 있어서 한 음절 대 한 음씩의 노래라면 외우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지만, 만일 한 음절에 긴 선율이 붙어 있는 경우에는 외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경우에 암기를 위하여 긴 선율의 각 음에 원 노래의 가사와는 별도의 새로운 가사를 삽입하는 편법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이 작업을 트로푸스라고 불렀다. 이 트로푸스 작업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기리에(Kyrie)의 '에' (e) 음절과 알렐루야(Alleluia)의 '야' (ia) 음절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도 그레고리오 성가의 미사 통상문 가운데 기리알레(Kyriale, 기리에 · 글로리아 · 상투스 · 아뉴스 데이가 묶어진 한조)를 보면 여러 가지 부수적 제목들이 붙어 있다. 예를 들면 기리알레 1번은 <빛과 원천>(Lux et origo), 기리알레 2번은 <선의 샘이신 주여>(Kyrie fons bonitatis) 등의 제목을 갖는다. 이것은 트로푸스의 첫 단어들을 그대로 제목으로 붙인 것이다.
이처럼 알렐루야에도 트로푸스가 붙기 시작하였다. '야훼를 찬미하라' 라는 뜻의 히브리어 '알렐루야' 중에서 마지막 음절 '야' 는 야훼를 뜻하는 음절로서, 특히 미사 중에 복음 전 노래로 세 번 반복되는 경우에 세 번째 알렐루야의 '야' 는 대체적으로 긴 선율을 동반하였다. 이 긴 선율의 '야' 를 '환호' (Jubilus, 또는 Jubilatio)라고 불렀는데, 이 긴 가사 없는 선율을 외우기 쉽도록 하기 위하여 역시 트로푸스 작업이 동반되곤 하였다. 이렇게 부가된 가사가 아름답게 발달하면서 이번에는 이 부분이 따로 독립된 노래가 되었는데, 이를 부속가라고 한다. 따라서 부속가는 복음 전 노래인 알렐루야를 따라오는 노래이다.
역사적으로 9세기 후반부터 부속가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부속가는 장크트 갈렌(St. Gallen) 수도원의 음악지도자이자 도서관 책임자였던 노트게르(Notger de Stammler, 840~912)가 880년경에 고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의 몽블랑댕(Mont-Blandin)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알렐루야와 함께 25개의 부속가가 수록된 비슷한 시기의 성가책(Antiphonale)이 발견되었으며 아말라르(Amalar von Metz, + 853)의 증언에도 "유빌라시오(Jubilatio)를 성가대원들이 '세귀엔시아'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트로푸스 작업은 라인 강 서쪽의 생 마르티알 리모즈(St. Martial Limoges) 수도원과 동쪽의 장크트 갈렌 수도원을 중심으로 번져 나갔다. 이렇게 발생한 부속가는 11세기까지 전 유럽에서 발전되어 약 5,000곡 정도가 있었으며, 처음에는 대축일에만 불리던 것이 차츰 널리 퍼져서 후에는 매일 20개 정도의 부속가를 놓고 선택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유명한 작가들로는 노트게르, 에크하르트(Ekke-hard, 900~973), 베르노(Berno von Reichenau, ?~1048), 콘트락투스(Hermannus Contractus, 1013~1054), 성녀 힐데가르트(St. Hildegard von Bingen, 1098~1179) 등으로 모두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이었다.
한동안 번창하던 부속가는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인 1570년에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명에 따라 4개만 남고 모두 폐기되었다. 그 남은 곡들은 부활 대축일의 부속가인 <파스카의 희생께 찬미를>(Victimae paschali laudes, 1050년 Wipo von Burgund 작사, 11세기 작곡자 불명의 선율)과 성령 강림 대축일의 <오소서, 성령이여>(veni, Sancte Spiritus),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의 <시온이여 노래불러>(Lauda Sion salvatorem, 1263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 작사, 12세기 익명의 작곡자 작곡), 그리고 위령 미사의 <분노의 날>(Dies irae) 등이었다. 여기에 1727년에 교황 베네딕도 13세(1724~1730)에 의하여 성모 통고 축일의 부속가인 <스타밧 마테르>(Stabat Mater, 통고의 성모)가 추가되었다. 이 곡은 당시 프란치스코 수도회 지도자인 야코폰 다 토디(Jacopone da Todi, ?~1306)가 가사를 썼다고 전해지나 분명한 것은 아니고, 곡은 주지옹(Jousion)이라는 베네딕도 수도회 수사가 썼다고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위령 미사의 부속가인 <분노의 날>은 사라지고, 현재에는 4곡만 불린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성가에 미친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성 베네딕도 축일의 부속가는 베네딕도회 수도원 내의 미사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발생 기원에 따라서 원래의 부속가는 복음 전 노래인 알렐루야 다음에 자리하며, 알렐루야가 불리지 않을 때에는 부속가도 빠지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알렐루야 앞에 불리게 되었다. (⇦ 세귀엔시아 ; <스타밧 마테르> ; → 가톨릭 음악 ; 그레고리오 성가)
※ 참고문헌 Die Musik in Geschicte und Gegenwart, Deutscher Taschenbuch, Bärenreiter, 1989/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Macmillan Publisher, 1980. 〔白南容〕
부속가
附續歌
〔라〕sequentia · 〔영〕seq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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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