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본당

扶安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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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90 소재. 1926년 5월 29일 신성리(新城里, 현 시기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소화 데레사. 관할 구역은 부안읍 전 지역. 공소는 만석동, 덕림, 등용, 청호, 마포, 신복, 줄포, 창북, 돈지, 격포 등 10개소. 〔교 세〕 1952년 908명, 1959년 1,477명, 1966년 1,804명, 1973년 1,594명, 1980년 1,910명, 1996년 2,486명. 〔역대 신부〕 초대 이기수(李基守) 야고보(1926. 5~1937. 5), 2대 이기순(李基順) 도미니코(1937. 5~1946. 5), 3대 김반석(金盤石) 베네딕도(1946. 5~1951. 7), 4대 강윤식(姜允植) 베네딕도(1951. 7~1952. 6), 5대 박성운(朴聖雲) 베네딕도(1952. 6~1954. 5), 6대 이약슬(李若瑟) 요셉(1954. 5~1958. 1), 7대 김종택(金鍾擇) 요셉(1958. 1~1961. 7), 8대 세르스테븐스(D. T'Serste-vens, 池正煥) 디디에(1961. 7~1963. 7), 9대 김영구(金榮九) 베드로(1963 7~1969. 12), 10대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1969. 12~1974. 2), 11대 안용기(安龍起) 가브리엘(1974.2~1977.2), 12대 김정원(金正元) 토마스(1977.25), 13대 김종길(金鍾吉) 라파엘(1977 5~1982. 10), 14대 서석기(徐錫基) 베드로(1982. 10~1986. 1), 15대 권영균(權寧均) 안토니오(1986. 1~1988. 8), 16대 안철문(安哲文) 이냐시오(1988. 8~1991. 1) 17대 박병준(朴炳俊) 필립보(1991. 2~1995. 8), 18대 박진량(朴鎭亮) 라우렌시오(1995. 8~현재).
〔공소 시대와 본당 설립〕 부안 지역에 언제 복음이 전파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882년 고산 어름골(水洞, 현 완주군 비봉면 大峙里)에 정착해 있던 리우빌(L. Liouville, 柳達榮) 신부가 납틔(하서면 長信里), 대소(진서면 石浦里), 사창(社倉, 보안면 南浦里), 공작(백산면 竹林里)등 4개의 공소를 설립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박해 이후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한 신자들이 어업에 종사하거나 담배와 조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 지역 신자수는 이듬해에 총 119명에 달하였으며, 라푸르카드(A. Lafourcade, 羅亨默) 신부가 이 지역을 담당하게 된 1887년에는 6개 공소에 309명에 이를 만큼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 라푸르카드 신부가 사망함에 따라 이 지역 공소들은 1889년부터 금구 배재〔梨峴〕 본당(완주군 구이면 安德里 소재)에서 사목하던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의 방문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1891년에 설립된 무내미(주산면 德林里, 현 덕림) 공소는 정복조(鄭福朝, 시몬) 회장의 전교에 힘입어 가장 큰 공소로 성장하였다. 그러던 중 1895년 5월 9일 배재 본당에 부임한 라크루(M. Lacrouts, 具瑪瑟) 신부가 그 해 가을 수류(水流)로 거처를 옮기면서 부안의 공소들도 수류 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정읍 신성리 본당으로 1910년에 이관되었다. 이 무렵에 이르러 부안의 공소들은 무내미 · 납틔 · 만석동(萬石洞, 보안면 南浦里) 공소로 정리되었는데, 당시 이 세 공소의 신자수는 327명이었다.
한편 일제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신설된 등용리(하서면 長信里) 공소가 부안 지역 신앙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1900년대 초에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등용리는 1911년 대구 대목구가 설정될 무렵에 신성리 본당의 미알롱(A.Mialon, 孟錫浩) 신부에 의해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성 김대건(金大健, 안드레아) 신부의 후손인 김양배(요한)회장의 전교 활동으로 점차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공소 신자들의 노력에 의해 1918년 12월 11일 성당(20평)과 사제관(8평)을 완공하고,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 집전으로 축복식을 갖는 등 본당 승격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되었으며, 드디어 1926년 5월 30일 본당 승격과 함께 초대 주임으로 이기수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본당이 너무 외딴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전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게 되자 이기수 신부는 본당 소재지를 부안 읍내로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본당 이전과 변모〕 1935년 이기수 신부는 부령면 서외리 279번지(현 부안 문화원)로 성당을 이전하는 한편, 교우 및 빈민 자녀들을 위한 4년제 소학교를 설립하여 문맹 퇴치에 힘썼다. 그러나 이 학교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 2대 주임 이기순 신부 때인 1941년에 강제 폐쇄당하고 말았다. 이어 3대 주임으로 김반석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하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본당은 인적 · 물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휴전이 된 후 부안 본당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성당 신축이었다. 이에 6대 주임 이약슬 신부가 1957년에 현재의 성당 부지 가운데 일부인 340평을 매입한 데 이어 7대 주임 김종택 신부는 1959년에 성당 공사를 시작하여 가톨릭 구제위원회(N.C.W.C.)의 원조로 1961년 초에 130평의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1963년 8월 27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1950년대 후반부터는 농촌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간척 사업으로 신자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줄포 공소(1961), 신복 공소(1962), 청호 공소(1964), 마포 공소(1964)가 잇달아 설립되었다. 또 본당에서는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76년에 수녀원을 건립하였으며, 1981년에는 성심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88년에 부임한 16대 주임 안철문 신부는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신앙 쇄신 교육을 실시하여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도왔으며, 1991년에 부임한 박병준 신부는 구역별 소모임 활성화에 주력하는 한편 1993년 10월에는 사제관 · 교육관 · 수녀원 등을 신축하였다. 이어 18대 주임 박진량 신부는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7월 23일에 돈지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성당을 개 · 보수하였으며, 《부안 본당 70년사》를 발간하였다. 또 이듬해 2월 29일에는 격포 공소를 설립한 데 이어 10월 12일에는 줄포 공소 강당을 완공하는 등 본당의 성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전주교구 ; 시기동 본당)
※ 참고문헌  《부안 본당 70년사》, 천주교 전주교구 부안 교회, 1996/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 전동 성당 100년사 편찬위원회 · 호남교회사연구소, 《전동 성당 100년사》, 천주교 전주교구 전동 교회, 1996/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연표》, 호남교회사연구소, 1993/ -, 《天主教全州教區史研究資料集》 1집(1882~1911, 地名調查報告書), 호남교회사연구소, 1987/ -, 《天主教全州教區史 研究資料集》 2집(1882~1986, 教勢統計表), 호남교회사연구소, 1987.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