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본당

扶餘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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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720 소재. 1972년 12월 9일 규암(窺岩)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부여읍 전역과 석성면 일부 지역. 〔교 세〕 1973년 179명, 1978년 622명, 1983년 956명, 1988년 1,339명, 1993년 1,821명, 1995년 1,244명. 〔역대 신부〕 초대 유봉운(俞鳳雲) 야고보(1973. 1~1977. 2), 2대 윤영균(尹英均) 미카엘(1977. 2~1984. 11), 3대 윤인용(尹仁龍) 바오로(1984. 11~1988. 8), 4대 박종우(朴鍾禹) 안드레아(1988. 8~1991. 8) 5대 이은진(李殷鎭) 미카엘(1991. 8~1998. 2), 6대 유재식(俞載植) 안셀모(1998.2~현재).
〔설립 및 변모〕 부여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를 전후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웃의 공주 · 청양 · 논산 · 서천 등에 비해 신자가 많지 않았으므로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인해 순교자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큰 박해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해가 끝난 뒤 주변 지역의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본격적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이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은 부여군의 은산면 · 외산면 · 내산면 지역이었다. 그 결과 1901년 4월 27일 줄리앙 공베르(J. Gombert, 孔安世) 신부가 부여 지역에 파견되면서 홍산 소양리(현 금사리) 본당이 공주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고, 동시에 부여읍 일대는 이 본당의 관할이 되었다. 그 뒤 1955년 9월 21일 부여군 규암면에 규암 본당이 설립되면서 부여 지역에는 규암 본당 소속의 공소가 설립되었다.
부여 공소 신자들은 1959년 3월 현재의 위치에 726평의 대지를 매입하여 그 해 10월 47평의 임시 강당을 준공하였는데, 그 후 부여 지역의 신자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자, 공소 신자들은 1972년 12월에 먼저 성당(47.6평)과 사제관(32평), 창고(23평)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9일자로 유봉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유봉운 신부는 부임 직후 담장 구축 · 화단 조성 · 정원 포장 등 마무리 공사를 마친 뒤, 1973년 5월 29일 성당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이듬해 11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가 파견되었고, 1980년 12월에는 공주군 탄천면 가척리 산 88-1번지의 임야 30,250평을 매입하여 본당 묘지를 조성했다. 또 1983년 2월에는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여 유아 교육을 실시하였고, 12월에는 유치원 · 수녀원 · 교리실의 개축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1986년 5월에는 성당 증축과 함께 교육관을 신축한 데 이어 1988년 3월에는 성당 보수 공사 및 유치원 교실을 증축하였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예수 성심 시녀회를 대신해 천주의 섭리 수녀회가 파견되었으며, 본당에 꾸리아가 창설되었다. 1997년 현재 본당의 관할 구역은 14개 구역에 21개 반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레지오 마리애 1개 꾸리아와 13개 쁘레시디움, 울뜨레야, 성모회, 제대회, 연령회 등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 대전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교구 30년》, 1988.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