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이용, 가밀 (1869~1947)

Bouillon, Ca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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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이용 신부(왼쪽)와 1937년 4월 30일 파리 외방전교회 총장의 감곡 성당 방문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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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이용 신부(왼쪽)와 1937년 4월 30일 파리 외방전교회 총장의 감곡 성당 방문 기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가밀로. 한국명은 임가미(任加彌). 1869년 12월 19일 프랑스 타르브(Tarbes) 교구의 비에유 아되르(Vielle-Adoeur) 지방에서 태어나 1888년 9월 16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893년 5월 27일 사제로 서품된 후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7월 19일 파리를 출발하였다. 같은 해 9월 7일 한국에 도착한 부이용 신부는, 며칠 후 미리내(현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로 파견되어 한국 언어와 풍습을 배우다가 1894년 봄 원주 부엉골(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부임 당시 그는 부엉골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일부 지역과 경기도 여주 일부, 충주, 청주, 괴산 등지를 포함한 충청도 동부 지역 등 총 22개 공소에 1,200여 명의 신자를 돌보았는데, 공소 순방 및 전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자 본당 이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그해에 발생한 동학란으로 인해 서울로 피신해 있다가 임지에 복귀하여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5월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旺場里)의 매산(玫山) 언덕에 있는 민응식(閔應植, 명성황후의 친오빠)의 90칸 기와집을 매입한 부이용 신부는 그 해 9월 17일 부엉골을 떠나 장호원(長湖院, 현 감곡) 본당을 설립하였다. 부이용 신부는 1901년 제천군 근우면 산척리(山尺里)에서 발생한 교안(敎案) 사건으로 지방민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1903년에는 성당 건립 공사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 80평 규모의 한 · 양옥 절충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그 해 10월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본당이 정착기에 접어들자 교육 사업에 관심을 돌려 1907년에 매괴학교(玫瑰學校)를 설립하였으며, 1914년에는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성체 거동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는 매괴학교를 바탕으로 애국 계몽 운동에 힘썼고, 신자들의 애국심 고취에도 노력하였다. 또 1930년에는 벽돌조 성당을 신축한 데 이어 1933년에는 본당 성가집(聖歌集)을 간행하기도 했다.
일제 말기에 그는 적성국의 선교사라는 이유로 다른 외국인 성직자들과 함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감금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1945년에 다시 장호원 본당 주임으로 복귀하여 사목 활동을 계속했다. 79세 때인 1947년 10월 25일 노환으로 사망하여 매괴 동산에 묻혔다가 1983년에 성당 내 예수 성심 제대 밑으로 이장되었다. 부이용 신부는 장호원 본당을 설립한 이후 50년 이상 이 지역 신자들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본당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 임가미 ; → 감곡 본당 ; 매괴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뮈텔 주교 일기》 Ⅰ ~Ⅲ, 천주교 명동 교회, 1986~1993/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감곡 본당 90년사》, 천주교 감곡 교회, 1986/ 원주교구 30년사 편찬 위원회 편, 《原州教區三十年史》, 천주교 원주교구, 1996.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