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 맞은편 올리브 산 기슭에 있는 정원. 예수는 서기 30년 4월 6일 목요일 저녁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친지의 집 이층방에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드신 다음(마르 14, 12-16 ; 22-26), 키드론 골짜기를 지나 게세마니로 가시어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면서 간절히 기도하시다가 제자인 유다 이스가리옷이 데려온 최고 의회 하인들에게 체포되어 이튿날 새벽까지 최고 의회에게 심문을 받으셨다(마르 14, 32-72). 게쎄마니는 아랍어 복합 명사로서 올리브 "기름 짜는 틀" 이란 뜻인데, 옛날부터 올리브 산에는 올리브 나무가 많아 어느 누가 그 산기슭에 올리브 기름집을 차린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지금은 올리브 산에 나무가 많지는 않지만 가톨릭 게쎄마니에는 매우 오래 된 올리브 고목이 여덟 그루 서 있다.
〔게쎄마니 간구〕 예수는 게쎄마니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가신 다음 홀로 물러가시어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마르 14, 36) 하고 간구하셨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고 대화이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초월자를 느끼고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신 게 특이하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지존으로 받들고 두려워하는 나머지 "우리 아버지" 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는 할지언정 결코 "아빠" 라고 하지 않는다. 아빠는 본래 아가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부자간의 관계가 남달리 친밀한 때는 아가가 어른이 되어서도 아빠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수는 머나먼 하느님, 두려운 하느님을 너무나도 가깝고 정겨운 임으로 느꼈기에 하느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이는 유대교에서는 마음도 먹을 수 없는, 예수님의 독창적 어법이다.
예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느님 아빠께 살려 주십사고 애원하였다 :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왜 그랬을까? 36~37세로 죽기는 너무 억울해서였을까?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공생활 내내 설교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가 임박했다고 역설하였는데 이제 자신이 죽으면 그 나라는 어떻게 실현될지 하는 고민이 더 컸으리라(레옹 뒤푸르, pp. 141~142). 어쨌거나 독미나리 즙을 값진 포도주인 양 쭉 들이킨 소크라테스와는 너무나 달리, 예수는 결코 죽음을 반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죽는 게 하느님 아빠의 뜻이라면 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죽음을 감수하겠다는 단서를 붙이는데, 정말 예수님다운 처신이다 :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히브리서 필자는 예수의 게쎄마니 기도를 연상하였던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구를 썼다 : "그이는 육으로 계셨을 때에 자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으며 그분은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주셨습니다. 그이는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 5, 7-8).
〔유 적〕 가톨릭 게쎄마니 만백성 성당 : 4세기 말엽 스페인 출신의 용감한 수녀 에테리아가 단신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과 터키를 순례하고 여행기를 썼다. 에테리아는 385년경 가톨릭 게쎄마니 터에 있는 '우아한 성당' 을 참배했다. 이 첫 번째 성당은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 때 건립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614년 페르시아군의 침공과 8세기 지진으로 완파되었는데, 그 터에다 1170년 경 십자군이 두 번째 성당을 지었으나 무슨 까닭인지 14세기에 폐허로 변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 다음 프란치스코회가 지금의 성당을 1919년에 기공, 1924년에 완공하였다. 여러 나라에서 건축비를 지원했다고 해서 '만백성 성당' 이라 한다. 중앙 제대 앞에 있는 자연석 바위가 돋보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성당 흔적도 볼 수 있다.
러시아 정교회 게쎄마니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 : 가톨릭 게쎄마니 위쪽 언덕에 양파 모양의 황금색 돔이 일곱 개 솟아 있는 러시아식 성당이다. 1888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스 3세가 짓고 자기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이라 명명하였다. 러시아 정교회의 연로한 수녀 몇 명이 겨우 성당을 지키고 있었는데, 러시아의 민주화와 더불어 젊은 수녀들이 오기 시작하여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 참고문헌 박수자,《이스라엘》, 양서각, 1986, pp. 165~168/ 정양 모 · 이영헌,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 생활성서사, 1988, pp. 51~52/ 정환국 역, <에테리아의 여행기>, 《신학전망》 23호(1973 겨 울), pp. 69~91 ; 25호(1974 여름), pp. 71~92/ Xavier Léon-Dufour, Face a la mort Jésus et Paul, Paris : Seuil, 1979/ Jerome Murphy O'Connor, Guide archéologique de la Terre sainte, Paris Dinoel, 1980, pp. 112~116. 〔鄭良謨〕
게쎄마니
〔라〕Gethsemani · 〔그〕Γεθσημαν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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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고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