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不貞

〔라〕impuritas · 〔영〕imp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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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신의 성적 능력을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욕구하는 것이 부정이다.

인간이 자신의 성적 능력을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욕구하는 것이 부정이다.

인간 각자에게 맡겨진 성적 능력을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욕구하는 일. 인간의 성(性) 질서를 유지시키는 윤리적 능력인 정결(貞潔, castitas)의 덕과 반대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본성적 특성으로서의 성을 인간적 사랑의 전체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생물학적 기능만으로 사용한다거나, 인간의 성을 인격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동물 수준으로 하락시킴으로써 성적 충동을 추구하는 것은 정결의 덕을 거스르는 부정한 일이다.
〔의 미〕 전통 윤리 신학에서는 정결을 거스르는 죄를 색욕(色慾, luxuria)과 부정(不貞)으로 구별하여 설명해왔으며, 이 둘의 근원은 모두 성적 욕정의 무질서한 사용에 있다고 보았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무질서한 내용으로 무분별, 정신적 판단에서의 조급함과 경솔함,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하느님께 대한 증오, 현세적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의지 안에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열거하였다(《신학 대전》 ⅠⅠ-Ⅱ, q. 153, a. 5).
전통 윤리 신학에서 구분하는 대로 설명하자면 색욕이란 정결의 덕에 직접 관련된, 영혼의 방탕을 야기시키고 불순한 쾌락과 관련된 악습으로서 이성의 조절 없이 음란한 방법으로 자신을 이끄는 직접적 행위로서의 악습이다. 반면에, 부정은 비록 직접적으로 음란한 행위는 아니지만 음란한 행위로 충동하는 모든 일들의 무질서한 사용이다. 따라서 부정을 간접적 색욕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정결의 덕에 직접 · 간접으로 위배되는 사음(邪淫, fornicatio)의 경우, 직접적 사음 혹은 완성된 사음은 음란한 행동이 완성된 것이고, 완성된 음란한 쾌락이 따라오기에 이는 색욕으로 분류되며, 간접적 사음은 그 원인에 있어 정결의 덕에 직접적으로 반대되기는 하지만 그 행위가 생각에만 머무름으로써 그 행위가 완성되지 않았거나 경미하게 색욕을 자극하는 행위로 그치게 된다면 색욕의 범주보다는 부정의 범주로서 이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윤리 신학 교과서의 저자들은 직접적 사음은 항상 사죄(死罪, peccatum mortale : 대죄)이며, 부정으로서의 간접적 사음은 그 원인상 중죄(重罪, peccatum grave)이기는 하지만 대상의 가벼움을 인정할 때 경죄(輕罪, peccatum veniale : 소죄)로 취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윤리 신학이 정결의 덕을 단순히 성적 욕정이나 그에 따르는 불순한 쾌락을 바로잡고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이해하였고, 따라서 성을 포기하고 거부하는 것이 마치 정결의 덕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개념이 널리 확산되어, 성의 본질이라든가 부부 사랑의 올바른 이해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여 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현대의 윤리 신학은 정결의 의미를 과거보다는 훨씬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이해한다. 곧 정결은 단순히 자제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덕이라는 것이다. 정결의 덕은 생명의 신비와 배우자의 인격적인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세이며, 부부의 인간적인 관계와 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사회적인 필요성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성적 능력을 조절하여 질서 있게 조화시키는 능력인 것이다. 헤링(B. Hairing) 신부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정결의 덕이란 성을 경멸하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숭배하지도 않으면서, 성적 신비의 깊은 의미를 통찰하고 그것을 궁극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결의 의미가 긍정적이고도 폭 넓게 이해되듯이 부정의 의미 역시 과거의 윤리 신학처럼 협의적인 의미로 구분되어 이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부정은 넓은 의미에서 정결의 덕을 거스르는 내적 · 외적 행위로서의 윤리적 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결의 덕이 인간의 성 질서를 지키는 윤리적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부정이란 예를 들어 인간이 자신의 성적 능력을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욕구하는 일이며, 또한 인간적 사랑의 전체적 의미로서 성을 이해하지 않고 순전히 생물학적 기능만으로 성을 사용하는 것도 부정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완성된 음란한 쾌락이라고는 할 수 없는 성적(性的) 환상이나 부정한 생각뿐만 아니라 과거 전통 윤리 신학에서 다른 범주에서 취급하였던 색욕까지도 부정의 의미 안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직접적인 부정〕 이는 쾌락의 무질서한 사용으로 영혼의 방탕을 야기시키는 불순한 쾌락이다. 즉 인간의 성적 능력의 의의와 목적에 직접으로 반대되는 사용이기 때문에 인간의 품위에 직접으로 반대되며, 따라서 윤리적 악습으로서 죄이다(《신학 대전》 ⅠⅠ-Ⅱ, q. 153, a. 1-3).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행위의 대상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사음 : 상호 동의하에 결혼이나 혹은 정결 서원을 한 사람이 아닌 자유로운 한 남자와 여자가 맺는 성 관계이다. 이는 적어도 다른 사람의 죄에 협력하며, 직접적으로 자녀의 선(善)과 교육, 공동선에 위배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중대한 죄이다. 부부 생활의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내연(內緣)의 처 관계(축첩 행위)는 사음의 반복 행위이며 교회법의 제재를 받는다.
강간(强姦, stuprum) : 협의로는 아직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여인과의 사음이기 때문에 사음의 사악함에다 그 여인의 부모에게도 상처를 주게 되는 명백한 죄이다.
간음(姦淫, adulterium) : 어떤 사람과 혼인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에 대한 색욕의 사악함에다 그 배우자에 대한 불의가 함께 첨가되는 죄이다.
근친 상간(近親相姦, incestum) : 근친 상간 혹은 친족들 사이의 성범죄는 색욕의 사악함에다 직계 혈통과 가정의 질서에 대한 불경의 죄까지도 첨가된다.
강탈(强奪, raptus) : 욕정적 쾌락을 목적으로 사람을 강제로 납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색욕의 사악함에다 인간에 대한 폭력이 첨가되는 죄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죄 : 욕정적 쾌락을 목적으로 올바른 이성을 거스르는 죄이며, 동시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죄이다.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의 교리는 정상적인 부부 관계 밖에서 성 능력을 고의로 사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성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자위 행위(自慰行爲, masturbatio) 역시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이며, 중대한 타락 행위라고 선언하였다(신앙 교리성, <성 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 1975. 12. 29) . 그러나 이러한 자위 행위의 현상에 대해서 현대의 심리학과 사회학, 그리고 몇몇 윤리 신학자들은 그것이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성적 발전의 정상 현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간접적인 부정〕 정결의 덕을 거스르는 내적인 악습으로서, 원인에 있어서는 정결에 직접으로 반대되는 성적 환상이나 부정한 생각은 욕정적 쾌락이 직접으로 완성된다고는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러한 것들은 정결의 덕에 간접으로 위배되는 윤리적 악습이다. 성적 환상이란 성에 대한 모든 생각과 공상, 마음에 그리는 것 등인데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윤리는 정상적인 사람에게 있어서도 잠깐 머리를 스치는 상상이 자위 행위나 성교를 하고 싶은 성적 욕정을 가지려는 환상과 공상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페쉬케(K.H. Peschke) 신부는 그의 윤리 신학 교과서에서 성적 환상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내용일 때 죄가 성립된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행위를 고의적인 상상으로 즐기는 것(간음, 근친 상간, 사음, 동성애 등), 과거에 정결의 덕을 거슬러 범했던 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기회를 놓쳐서 그런 죄를 행하지 못한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부정한 행동을 범하려는 대부분의 의욕 등은 정결의 덕을 거스르는 내적 죄가 된다. 특히 중죄가 되는 행동을 범하겠다는 깊은 의욕은 그 자체로 중죄가 되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 단죄된다. "(남의) 아내를 탐내어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제 마음으로 그와 간음했습니다"(마태 5, 28). 한편 헤링 신부는 "단순히 생각으로만 짓는 죄는 외적 행동에 의한 죄보다 죄의 결단과 강도가 덜하고 따라서 죄악성도 덜하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부정한 생각이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적은 구체적 상황에서는 흔히 그 생각에 대한 불완전한 동의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며, 이러할 때 죄악성도 덜하다는 것이다. 부정한 생각은 대부분의 경우 중죄가 아니지만, 무질서한 것이고 죄스러운 것이므로 피해야 한다. 부도덕한 생각은 사람의 마음속에 담아 두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먼저 마음에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교황청 신앙 교리성은 <성 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에서 정결의 덕을 직접 · 간접으로 거스르는 부정이라는 비인간적 모습의 회복을 위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정결의 덕, 정결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해서 깊은 존경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타인을 존경하면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음 ; 성 윤리 ; 정결)
※ 참고문헌  G. 달 사쏘 · R. 꼬지 편찬, 이재룡 · 이동익 . 조규만 역,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요약》,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3/ B. Häring, La Legge di Cristo, vol. 3, Brescia, 1972/ -, <상황 윤리>, 《신학 전망》 22호(1973. 가을), 광주 가톨릭대학교, pp. 30~55/ 신앙 교리성, <성 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 <사목> 44호(1976. 3),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pp. 122~132/ K.H. Peschke, 김창훈 역, 《그리스도교 윤리학》 2, 분도출판사, 1992. 〔李東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