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신학

否定神學

〔라〕theologia negativa · 〔영〕negative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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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만의 특성은 인간이 이해하는 초월성 · 무한성 · 유일성까지도 넘어서는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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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만의 특성은 인간이 이해하는 초월성 · 무한성 · 유일성까지도 넘어서는 본질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한 분야. 무신론(atheismus)이나 반신론(反神論, antitheismus), 불가지론(agnostizismus)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규정을 부정하는 방식(via negativa)으로 하느님의 본질을 인식하려는 학문.
〔의 미〕 그리스 교부들은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된 해석주의(hemetismus)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하느님의 존재 문제와 함께 하느님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언어 논리학적 문제를 제기하였다. '긍정 신학'(positive theology)은 하느님은 무엇이라고 긍정함으로써 단지 피조물의 관점에서 하느님을 규정하고 제한할 뿐이지만, '부정 신학'은 하느님은 무엇이 아니라고 부정해 나감으로써 긍정적 규정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무한성을 서술하고자 한다. 이렇게 부정적 방식을 통해 하느님을 인식하고자 하는 부정 신학의 의미와 형식은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에 의해 정립되어 중세 그리스도교로 전해졌다. 중세의 부정 신학은 주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에 의해 언어 논리학적으로 분석되고 체계화되었으며, 그 후 논리학적 · 존재론적 비판을 거쳐 변증 신학이나 신비 신학과 함께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이성적이고도 논리적 인식 가능성을 모색하는 신학의 필연적 요소로 성립되었다.
하느님은 누구인가? 인간이 부르고 있는 하느님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 의미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은 성서가 가르치는 그리스도교 신관(神觀)을 전제로 제기되었다. 성서에 나타나는 긍정적 신관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격적이고, 무한히 완전하며, 초월적이고, 그 자체(실체)로 존재하며, 그 자신 이외의 모든 것과는 전혀 다르며(차이성),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술어들의 의미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고 파악할 수 있는 범위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이 세계를 넘어서는 '초월성' , 유한한 요소의 총계와는 다른 절대적 '무한성' , 계산 가능한 '하나' 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유일성' 과 같은 하느님만의 특성은 인간이 이해하는 초월성 · 무한성 · 유일성까지도 넘어서는 본질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긍정적 표현 방식을 넘어설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본질을 어떻게 인식하며 서술할 수 있겠는가?
〔발 전〕 신의 초월성이나 무한성에 대한 물음은 아라비아 사상과 인도 사상이 만나던 소아시아의 그리스 철학에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무한한 것에서 흘러 나올 수밖에 없으며, 무한에서 흘러 나오는 한 그 자신의 소멸을 지불해야 하므로 유한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최소한 유한한 것 이상이어야 하고 완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은 어떤 개별적 속성도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개별적 속성으로 표현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순간에 그것은 이미 불완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는 이런 무한 존재는 일체의 존재자도 아니며 구체적 존재자들 이전의 것이므로, '원천적 무(無)' 인 동시에 '모든 것' 인 그 무엇, 즉 '무한'(ἄπειρον)이라고 했다. 무한이란 한계(πέρας)를 정할 수 없는 논리적 비규정체(非規定體)이기 때문에, 결국 규정하는 이성의 능력을 벗어나 있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기원전 515~445)는 이러한 무한성만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존재' 일 뿐이라고 역설하였다. 이처럼 무한성에 대한 사상은 인도뿐만 아니라 그리스에서도 고찰되었다.
교부 시대 :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는 하느님에 대한 긍정적 서술을 전개하면서도,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본질 인식을 분리시켜 고찰하였다. 특히 하느님의 본질은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공간적 · 시간적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어적 개념이나 범주, 정의(定義)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식 가능성까지도 초월한다. 오리제네스(Origenes, 185~253) 역시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이 닿을 수 있는 모든 속성과 본질(οὐσία)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역설하였다. 즉 성서적 하느님의 완전성과 유일성을 근거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은, 이 세계의 것을 그 무엇이게끔 하는 모든 본질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본질을 인식하는 인간의 이성까지도 초월한다. 하느님의 무한성에 대한 능동적 탐구는 니사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yssenus, 335?~395?)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그는 인간이 비록 무한한 것에 결코 닿을 수 없을지라도, 무한을 향한 지속적 움직임 속에서 끊임없이 무한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또 다가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하느님 안에 있는 무한한 것, 도달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내가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하느님의 존재가 아니라 다만 그의 본질일 뿐"(Oratio catechetica magna. 28, 5)이라는 그의 문제 의식은 디오니시오에 의해 성립되는 부정 신학의 학술적 동기와 윤곽을 결정하게 하였다.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 : 그리스 교부들의 전통과 플로티누스(Plotinus) 및 프로클로스(Proclos)의 신플라톤주의적 요소는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에 의해 종합되고 정리되었다. 그는 초월적인 것에 대한 신앙을 이해할 수 없는 단순한 기적 위에 정초하는 것이 아니라, 확고하고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창조의 질서 위에 정초시키고자 하였다. 창조의 질서는 바로 창조주의 의도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해명할 수 있겠는가? 먼저 디오니시오는 《천상의 위계(位階)》(De caelesti hierarchia)와 《교회의 위계》(De ecclesiastica hierarchia)에서, 무한하고 초월적인 하느님의 본성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사유와 이러한 사유 자체가 직면하고 있는 위계 질서에 착안하였다. 여기서 무한성과 유한성이 만나고 있는 위계 질서는 인간이 인식해야 할 세계의 구조이며, 또한 인간이 실현해야 할 과제로 파악하였다. 즉 하느님의 무한성과 피조물의 유한성이 맺고 있는 관계 그 자체는 이론적 인식 대상이자 동시에 실천적 과제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질서 자체를 인식하고 실현해 나가는 가운데, 하느님으로부터의 조명(照明)에 따라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하느님과 비슷해지고 하느님을 닮아서 결국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 세계와 같은 성질의 전 단계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이 세계가 속해 있는 위계 질서 자체의 원인이므로, 원인인 하느님은 창조의 결과인 위계 질서까지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된다. 초월하는 자는 본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존재적으로 피초월자를 넘어서기 때문에, 초월자와 피초월자는 그 본질이나 존재에 있어 전혀 다른 절대적 상호 부정의 관계에 있다. 초월자가 절대로 피초월자가 아니라면, 즉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유한한 존재자가 아니라면, 어떤 존재자도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다만 절대무(絶對無)일 뿐인가? 그러나 디오니시오는 하느님(초월자)에 대한 인식을 존재자의 부정에서 대두되는 '절대무' 에 착안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가 가지고 있는 부정의 논리 자체에 착안했다. 따라서 그의 《하느님의 명칭들》(De divinis nomi-nibus)에 의하면, 하느님의 본성(natura Dei)이란 이런 존재자도 아니요 저런 존재자도 아니며 모든 존재자도 아닐 뿐만 아니라, 존재자의 부정인 무(無)도 아니요, 절대 무도 아니다. 즉 하느님의 본성은 물론 모든 존재자를 초월하지만, 존재자와 부정의 관계에 있는 '무' 까지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절대적 타자(他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과는 전혀 다른 그 모든 것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고찰은 그 모든 것의 부정을 통해 하느님의 본질에 다가가지만, 동시에 그 부정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사유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느님을 긍정적으로 절대선(絶對善)이나 절대미(絶對美)라고 부르든 유일자(唯一者)라고 부르든 간에, 그 하느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의 원인이다. 결국 하느님과 피조물이 맺고 있는 초월과 인과관계에 대한 논리적 귀결이 바로 디오니시오의 부정 신학이다.
인간을 창조한 하느님과 하느님의 본성을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이 맺고 있는 상호 관계는 원인과 결과라는 절대 부정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창조의 결과인 인간은 다만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떠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참된 인식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 부정의 길은 긍정의 반대인 부정이나 부정의 반대인 긍정을 추구하는 부정 그 자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부정인 무(無)까지도 부정해 나감으로써 드러나는 참된 인식을 지향한다. 즉 하느님이 모든 존재자와 맺고 있는 참된 관계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모든 것에 대한 긍정적 판단뿐만 아니라 그 부정적 판단까지도 넘어설 때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사유가 하느님의 본성을 고찰할 때 직면하는 '초월' 과 '원인' 을 주제로 삼는 디오니시오의 부정 신학은 중세 시기로 전해졌다. 즉 부정 신학은 생 빅토르의 위고(Hugo a St. Victore, 1096~1141)의 《명제집》에서도 다루어졌으며, 로베르 그로스테스트(Robert Grossete-ste, 1175~1253), 베드로 히스파누스(Petus Hispanus, 1219~1273)에 의해서도 연구되었다. 이때는 이미 부정 신학적 방법이 동반하고 있는 정화(purgatio) 조명(illuminatio) 그리고 일치(unio)라는 인간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삼중의 길 (via triplex)도 더욱 체계화되고 다양화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 부정 신학은 중세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입되면서 철학적 반성과 언어 논리학적 분석을 거치게 되었다. 하느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이성(理性)을 통하여 하느님의 내적 원리(原理)와 본성(本性)을 어떤 식으로 사실적이고 긍정적으로 밝혀 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을 서술하는 전통적 방식으로서 부정의 길뿐만 아니라, 긍정의 길과 상징의 길이라는 삼중의 신학적 서술 방식을 모두 전제하면서, 하느님을 표현하는 술어(述語)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에 대한 인식의 문제는 결국 두 개의 물음으로 압축된다. 즉 "하느님의 절대적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가?" , "증명될 수 있다면 인간의 자연적 이성은 하느님이 '무엇' 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는가?" 만일 하느님의 '절대적 비규정성' 만을 주장한다면, 결국 인간은 절대적 부정의 길을 통해서만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적 무한성이란 어떤 술어로도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며, 규정될 수 없는 것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절대 부정에 대해 생 갈러(St. Galler)는, 모든 사실적인 것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으로 하느님의 개념을 규정해 나가려는 자는 결국 하느님의 본질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없는 규정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을 존재 자체요 제1 원인으로 증명하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기서 결정적 물음을 제기하였다.
첫째, 무한한 하느님의 본질은 유한한 사물의 본질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모든 사물 자체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것, 즉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것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물을 한 종(種)에 귀속시켜 그 사물의 보편적 형상(形相)이 무엇인지 파악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사물이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차이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실체에 대한 고찰에서는 종적(種的) 의미를 가지는 그 '무엇' 을 파악할 수도 없고, 또한 긍정적 차이점을 통하여 다른 사물들과의 상이성을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은 무엇이 아니라는 부정적 차이점들을 통해 그의 실체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하느님은 우연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구분된다. 게다가 하느님은 물체가 아니라고 덧붙이면, 하느님을 일련의 실체로부터도 구분하게 된다. 결국 하느님은 부정법을 통해 그 이외의 모든 것과 구별되는 것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그의 실체에 대해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인식될 것이다"(《철학 대전》 I, 14).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인식 역시 하느님 인식에 있어 완전한 방법이 아니며, 하느님이 그 자체로 무엇이냐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이 대답에 따라 다음 물음이 제기된다. 둘째로, 우리는 하느님의 본질 자체에 대해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물론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인간의 자연적 인식을 원칙적으로 거부하였다. 그의 창조론에 의하면 하느님의 존재에 한목(participatio)을 차지하고 있는 피조물은 그 스스로 존재하는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느님의 본질이나 본성에 대한 절대적 부정의 길도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절대 부정적 술어들 역시 그의 내적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표현해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해 긍정적인 것을 나타내는 모든 계시와 전통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부정 한다면, 결국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오히려 부정에 의한 인식도 항상 어떤 긍정적인 것에 근거한다고 역설하였다(De Potentia, q. 7, a. 5). 부정적인 모든 것도 결국 긍정적인 것을 통해 증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부정의 길을 사용하기 위해, 하느님은 그 어느 것에 의해서도 움직여진 적이 없다는 부정적 서술에 대한 긍정적 사실을, 즉 하느님이야말로 절대적 제1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 내고 하느님에 대한 불완전하나마 긍정적인 인식을 추구하였다(《철학 대전》 I, 14).
어떤 것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란 그것이 '무엇' 인지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를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무엇' 에 해당되는 술어들은 본질적으로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이요, '어떻게'에 해당되는 술어들은 사실 유한한 사물에서 비롯하는 불완전한 존재 방식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연적 이성은 '무엇' 을 나타내는 절대적 술어를 통하여 하느님에 대한 본질적인 어떤 것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 하느님의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는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느님이 무한하다고 할 때, 우리는 '무한' 이 지칭하는 것을 인식하지만, '무한' 이라고 지칭되는 것이 실로 어떤 것인지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인간의 자연적 인식이란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완전하지 못하다. 하느님이 그 무엇이라고 할 때, 그 무엇의 존재 방식은 유한한 피조물의 존재 방식으로는 인식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무엇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불완전하고 그래서 또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언어 논리학적 관심은, 무엇이 하느님에 대해 언급될 수 있는 말인지 또는 무엇이 언급될 수 없는 말인지에 관해서, 마찬가지로 오직 하느님에 대해서만 언급되는 말은 무엇이며, 하느님과 동시에 다른 사물에 대해서도 언급되는 말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찰한다(《철학 대전》 I, 30).
나아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에 대한 술어가 지칭하는 것과 맺는 관계와 지칭 방식과 맺는 관계를 분석하기도 하였다. 즉 인간의 이성은 무엇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서술한다. 그런데 인간의 인식은 감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감각적 방식을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칭하도록 주어진 것과의 관계에서는 완전성을 진술하는 술어도 있지만, 그 지칭 방식과의 관계에서는 모든 술어가 결함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철학 대전》 I, 30). 결국 하느님과 관계되는 술어들은 긍정될 수도 있고 부정될 수도 있다. 즉 그 술어의 의미 때문에 긍정되기도 하며, 반대로 지칭하는 방식 때문에 부정되기도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본성을 긍정적 방식으로 인식하기는 하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 결국 피조물의 존재 방식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무한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의 인식이 닿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다만 완전히 인식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인간을 초월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불완전하지만 허위는 아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에 대해 긍정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보다는 부정의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더욱 사실적이고 참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긍정의 길뿐만 아니라 부정의 길도 나름대로 하느님을 인식하는 데 사용하였다. 즉 긍정의 길은 하느님의 의미를 밝혀 주는 한편, 부정의 길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인식 방식 자체를 교정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초월성에 대한 서술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는 부정 신학의 유산을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와 연관지어 하느님 자신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자체가 가진 결함과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발전시켰다.
스코투스(Duns Scotus, 1226~1270)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지칭하는 선언적 유일성을 강조하면서 하느님을 인식하고자 하였고,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는 피조물을 존재론적으로 더욱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는 하느님의 유일성은 오직 부정의 부정(negatio negationis)을 통해서만 서술될 수 있다는 디오니시오의 입장을 강조하였다. 그래도 중세의 부정 신학은 쿠사의 니콜라오(Nicolaus Cusanus, 1401~1464)의 《무지의 지(知)(De docta ignorantia, I, 26)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인식 자체가 가진 결함에 치중했다. 헤겔(G.W.F. Hegel, 1770~1831)이나 현대의 몇몇 철학자들은 하느님 안에 있는 것에 대한 비판적 부정이나 변증법적 부정으로 떨어지기도 하였지만, 결국 부정 신학은 하느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신학 개념을 보완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근간을 이룬다. (→ 신론 ; 신학)
※ 참고문헌  Ps-Dionysius, De divinis nominibus(J. Migne, 《PG》 3)/Thomas Aquinas, Summa contra Gentiles I, 14, 29, 30, 36/ -, Summa Theologiae, Ia, q. 3, q. 13/ -, De potentia, q. 7, a. 2, a. 51 Koch, Ps-Diomysius in seinem Beziehungen zum Neuplatonismus und Mysterienwesen, 1900/ C. Journet, Connaissance et inconnaissance, Paris, 1947/ A. Festugière, La révélation d'Hermès Trismégiste, 1954/ C. de Moré-Pont-gibaud, Du fini à l'infini, Paris, 1956/ K. Jaspers, Die großen Philosophen I, 1957, pp. 934~956/ H. de Lubac, Sur les chemins de Dieu, Montaigne, 1956: Aufden Wegen Gottes, Freiburg, 1992/ V. White, Dieu l'inconnu, Tournai, 1958/ F. Shehadi, Ghazalis Unique Unkowable God, Princeton Univ., 1959/ V. Lossky, Théologie négative et connaissance de Dieu chez Maître Eckhart, 1960/ F. van Steenberghen, Dieu caché, Louvain, 1961/ J. Pieper, Unaustrinkbares Licht, 1963/ H. Theil-Wunder, Die archaische Verborgen-heit. Die philosophischen Wurzeln der negativen Theologie, 1970/ K. Hedwig, Negatio negationis, Archiv für Begriffsgeschichte, Bonn, 1980/ 김성진, <否定神學의 論理一僞 Dionysius Areopagita 의 경우>, 《韓國哲學者 연합 학술 대회보》, 1989, pp. 121~134. 〔申昌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