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논산시 부창동 1 소재. 1909년에 나바위(현 화산) 본당 관할의 놀미 공소로 출발하여 1921년 6월 말에 논산(論山)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75년 10월 1일 중앙(현 논산 대교동) 본당을 분리하면서 부창동 본당으로 개칭하였다가 교구 결정에 따라 그 후 다시 '논산 부창동 본당' 으로 바뀌었다.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관할 구역은 부창동, 취암동, 강산동, 내동, 등화동, 지산동, 관촉동, 연산면, 부적면 전 지역과 채운면, 은진면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백석, 연산 등 2개소. 〔교 세〕 1922년 1,110명, 1949년 1,672명, 1955년 2,535명, 1961년 2,972명, 1966년 4,252명, 1971년 5,275명, 1976년 2,545명, 1982년 2,389명, 1989년 2,629명, 1996년 3,597명. 〔역대 신부〕 초대 루블레(HIP. Rouvelet, 黃惠中) 헨리코(1921. 6~1923. 5), 2대 공베르(J. Gombert, 孔安世) 율리아노(1923. 5~1942), 3대 박고안(朴稿安) 프란치스코(1942~1943), 4대 신원식(申元植) 루가(1943~1944) 5대 황정수(黃貞秀) 요셉(1944), 6대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194~19948), 7대 베르트랑(J. Bertrand, 韓聖年) 율리오(1948~1949. 5), 8대 생제(P. Singer, 成載德) 베드로(1949. 5~1962. 9대 로페페(P. Lopépé, 노배영) 베드로(1962.2~1964), 10대 손만재(孫萬宰) 요한(1964~1970) 11대 김영곤(金榮坤) 필립보(1970~1975. 9), 12대 유성숙(俞性淑) 루도비코(1975. 9~1977. 10), 13대 올리비에(J. Ollivier, 오일복) 요한(1977. 10~1982. 9), 14대 유재식(俞載植) 안셀모(1982. 9~1986. 8), 15대 박상래(朴祥來) 야고보(1986. 8~1990. 2), 16대 이종대(李鍾大) 요셉(1990. 3~1996. 1), 17대 윤종관(尹鍾寬) 가브리엘(1996.2~현재).
〔공소 시대〕 논산 일대에 복음이 일찍부터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1799년 해미(海美)에서 순교한 이보현(李步玄, 프란치스코)과 1801년 서울에서 순교한 황심(黃沁, 토마스)이 연산(連山) 출신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지만,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에도 이 지역 신자들은 많은 순교를 당하였다. 그 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옹기점을 운영하거나 화전을 일구며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가꾸어 나가기 시작하다가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가 1881년에 충청도 지역을 맡게 되면서 1884년경에 삼산 공소(성동면 삼산리)와 강경이 공소(강경읍 강경상업고등학교)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어 1887년에는 갈매울(가야곡면 목곡리), 곰밭(은진면 토량리), 새룰(광석면 사월리), 석교동(석동면 원봉리), 움뜸(현 강경 본당 사제관) 등지에 6개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들 공소의 신자수는 총 35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듬해에는 양촌(가야곡면 양촌리), 대하리(성동면 삼산리), 가지매 등 3개 공소가 설립되면서 논산 전역으로 복음이 확대되었다. 그 후 이 공소들은 1893년에 비에모(Villomot, 禹一模) 신부가 설립한 되재(현 고산) 본당과 1897년에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가 설립한 나바위 본당(전북 익산군 망성면 華山里)에 속하게 되었다.
〔설립과 변모〕 1911년 4월 8일 대구 대목구가 설정된 후 초대 대목구장 드망즈(Demage, 安世華) 주교는 사목상의 이유를 들어 전라도의 두 본당에서 관할해 온 논산 지방의 공소들을 계속 관할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서울 대목구에 요청하였다. 이때 서울교구 평의회에서 이들 공소들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이 문제는 교황청 포교성(현 인류 복음화성)에까지 보고되었고, 포교성에서는 논산 지역을 대구 대목구에 위임하도록 권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대목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는 1921년 6월의 사제 인사 이동 때 공주(公州, 현 공주 중동) 본당 주임으로 있던 루블레 신부를 논산에 파견하여 본당 창설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루블레 신부는 6월 말에 논산읍의 놀미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킨 후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당시 논산의 신자수는 강경 지역까지 합쳐 모두 1,110명이었으며, 공소는 15개에 이르렀다.
루블레 신부는 1922년에 현 본당 부지 2,046평을 매입하여 60평의 사제관을 건립하는 등 본당 정착을 위해 노력하다가 전임되었고,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공베르 신부는 1927년에 72평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그 후 일제 치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본당의 교세는 꾸준히 확대되어 6대 주임 조인원 신부 때인 1945년에는 강경(江景) 본당을 분할하였고, 1947년에는 논산 대건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8대 주임 생제 신부는 1954년에 한국 전쟁 때 불타버린 사제관을 신축한 데 이어 1958년에는 대전 교구에서 가장 먼저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하여 이듬해 3월 12일 천주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합쳐 루르드의 성모 꾸리아를 조직하였다. 한편 1958년 8월에는 마산리(馬山里, 현 연무) 본당을 분리하였고, 1960년경에는 천지의 모후 루르드 동굴을 성당 경내에 조성했으며, 1961년 10월 11일에는 현재의 성당 건물 237평을 준공하는 한편 쌘뽈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또 10대 주임 손만재 신부 때인 1970년에는 40평의 관사를 신축하여 임시 사제관으로 사용하였고, 11대 주임 김영곤 신부 때인 1975년 10월 1일에는 중앙 본당이 분리되면서 본당명이 부창동 본당으로 변경되었다.
14대 주임 유재식 신부는 1986년 6월 22일에 45평의 연산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고, 15대 주임 박상래 신부는 1987년 6월 말에 쌘뽈여자중고등학교에 1,477평의 본당 부지를 양도하는 대신 학교측으로부터 295평의 부지를 인수받았으며, 이듬해 10월에는 본당 주변의 조경 공사와 포장 공사를 실시하였다. 또 같은 해 12월 18일에는 총면적 284평에 사제관 및 수녀원을 갖춘 교육관을 신축하였고, 1989년 1월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었다. 16대 주임 이종대 신부는 부임 직후인 1990년 4월 18일 성모상을 건립한 데 이어 이듬해 6월 23일에는 예수 성심상을 축성하는 한편, 그 해 10월 23일에는 본당 설립 70주년 행사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17대 주임 윤종관 신부 때인 1996년 10월 20일에는 성당 지붕 개량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 동안 본당 신자들은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활성화에 노력해 왔으며, 최근에는 불우 이웃 돕기 운동과 소공동체의 활성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논산 본당 ; → 나바위 본당 ; 대교동 본당 ; 쌘뽈여자중고등학교)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대전교구 편, 《대전교구 30년》, 대전교구 홍보국, 1988/ 한국교회사연구소 · 대전교구 홍보국역편, 《대전교구 교세 통계 자료집》, 천주교 대전교구, 1990/ 서울 성가 소비녀회 역사 자료실 편, 《성재덕 신부》, 서울 성가 소비녀회 50주년사 기념 자료집 1집, 서울 성가 소비녀회, 1993/ 大邱教區 境界線의 確定〉, 《韓國敎會史의 探究》 Ⅱ,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pp. 273~300. 〔李裕林〕
부창동 본당
富倉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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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성당 내부 모습(왼쪽)과 1959년 3월 12일의 루르드의 성모 꾸리아 창립 기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