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산〕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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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지혜로써 깨달음을 성취한 자이며, 깨달음으로써 원만한 인격을 갖춘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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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지혜로써 깨달음을 성취한 자이며, 깨달음으로써 원만한 인격을 갖춘 자이다.

원래 인도의 종교 일반에서 훌륭한 수행자와 성자(聖者)를 가리키던 호칭이었으나, 점차 불교의 고유 용어로 되어 석가모니, 또 석가모니의 입멸(入滅) 후에는 범부(凡夫) · 성문(聲聞) · 연각(緣覺) · 보살과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를 가리키게 되었다. 부처는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를 우리말로 음역(音譯)한 말이다.
〔어원과 용례〕 '붓다'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알다, 보다, 깨닫다'라는 의미의 동사 'budh' 의 과거 분사형'buddhi'에서 다시 '아는 자, 보는 자,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 명사로 된 것이다. 붓다라는 말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초기에는 풔(佛)로 음역되다가 나중에 풔투어(佛陀)로 음역되었는데, 중국에서 초기에 '풔'라는 단음절 표기가 주류를 이룬 것은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거쳐왔던 중앙 아시아의 퓌(but)라는 발음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국 발음의 꿔투어가 다시 우리 나라로 전해져 부처로 음역되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불(佛), 불타(佛陀)라는 한문 표기나 부처라는 우리말보다도 산스크리트어 발음인 붓다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 어휘가 깨달은 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최초의 기록은 인도 고대의 <우파니샤드>(Upanisạd)이다. 자이나교의 고대 성전(聖典)에도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Mahāvira)는 물론, 《베다》(Veda)나 <우파니샤드>에 등장하는 바라문교(Brahmanism)의 성자들, 장대한 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 나오는 다양한 성인들과 자이나교의 여러 성자들을 모두 부처라고 지칭한다. 그러므로 고대 인도에서 부처라는 말은 어느 정도 종교적 경지를 성취한 모든 사람, 즉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완전한 인격을 성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 이 말은 불교의 고유 용어가 되었으나, 불교의 경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간주되는 《숫타니파다》(Suttanipata)에도 부처가 여러 차례 복수 형태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에서도 처음에는 깨달음이라는 정신적인 경지를 체득한 위대한 수행자들을 모두 부처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이말은 점차 석가모니 한 사람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역사상의 부처와 깨달음〕 인도 사람들은 석가족의 성자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Goama Siddhārtha, 즉 석가모니)를, 지혜로써 깨달음을 성취하고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해탈하여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며 그러한 즐거움을 온 세상과 함께 나누고자 가르침을 전한 최초의 전형적인 인물로 신봉하였다. 이때부터 대승 불교가 일어나기 전까지 부처는 석가모니 한 사람뿐이었고, 깨달음을 성취한 모든 이들을 일컬었던 보통 명사로서의 부처가 석가모니 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부처를 깨달은 자, 즉 부처이게끔 한 결정적인 사건은 성도(成道), 즉 깨달음의 성취였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는 세계와 인간의 참모습, 즉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깨달은 진리의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많은 경전들은 부처가 깨달은 내용을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저것이 사라지므로 이것이 사라진다"고 하는 극단적으로 간략화된 문장으로써 설명한다. 이 말은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절대적 · 실체적 · 자존적(自存的)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 · 의존적 · 임시적 존재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 존재를 가능하게 한 조건이 사라지면 그 존재도 사라진다"는 연기(緣起)의 진리이다. 또한 부처의 깨달음을 중도(中道)의 깨달음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세계의 모든 존재는 절대적 · 실체적 · 자존적 존재"가 아니라는 공(空)의 세계관과, "모든 존재는 상대적 · 의존적 · 임시적 존재"라는 색(色)의 세계관이 하나의 내용임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깨달음이 인간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깨달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구도의 길에 나서기 전부터 꿰뚫어 보았던 것처럼 인간의 운명과 삶의 본질은 번뇌에 휩싸여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욕심 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마음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그것은 '나' 에 대한 이기심 때문이다. 나를 위한 이기심은 나와 너, 우리와 너희, 나와 그들을 가르게 된다. 그리고 나의 것과 너의 것, 우리 것과 너희 것, 나의 것과 그의 것, 우리 것과 그들 것을 가르게 된다. 인간은 나에 대한 이기심이 생기는 순간부터 나에 대한 집착심을 갖게 되어, 나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여기에서 욕심 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고 이러한 마음들은 고통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절대적 존재는 없으며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서 존재하는 일시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모든 인간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나에 대한 이기심과 집착을 버릴 수 있다. 나에 대한 이기심과 집착심이 사라질 때 욕망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질 때 번뇌와 고통이 사라지며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상태가 다름아닌 인간의 실존적인 자유이다. 이 깨달음은 완전한 자유이고 궁극적인 자유이다. 부처는 이러한 사실을 세계와 인간의 참모습으로 깨달은 사람이다. 즉 부처는 지혜로써 깨달음을 성취한 자이며, 깨달음으로써 원만한 인격을 갖춘 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처를 진리로부터 어긋남 없이 그대로 왔으며 또한 그대로 간 사람(如來),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應供), 세계의 실상을 올바로 완전히 아는 사람(正遍知)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완벽하게 실천하는 사람(明行足), 모든 번뇌를 훌륭하게 극복한 사람(善逝),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잘 아는 사람(世間解), 가장 뛰어난 최고의 스승(無上師), 모든 번뇌와 악의 침범으로부터 자신을 잘 통제하는 사람(調御丈夫), 신들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의 스승(天人師),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世尊)이라는 열 가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부처가 우리들과 다름없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불자(佛子)들도 그와 다름없이 깨달음을 성취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근본 불교나 초기 원시 불교의 불자들에게 있어서 석가모니는 어떤 초월적이고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중생들을 구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고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듯 그들을 진리의 길로 안내하는 한 사람의 스승일 뿐이었다.
〔신앙상의 부처〕 그러나 부처에 대한 견해는 다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오로지 유일한 부처로서 신봉되던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욕심 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삶과 죽음의 한계 속에서 괴로워하는 존재이지만, 자비와 인욕과 지혜를 실천한다면 누구나 그 고통과 한계를 극복하고 부처가 될 수 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심지어 짐승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개방성 때문에 한 사람의 부처에 그치지 않고 여럿의 부처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여러 명의 부처는 필요하지 않았고, 부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믿음의 필요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열반에 들고 나자 부처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믿음이 생겨났다. 즉 석가모니는 수없이 많은 부처 중의 한 사람이며 또한 부처의 다양한 면모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해석과 믿음이었다. 이제 대승 불교의 신봉자들에게 있어서 석가모니는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으로서의 스승이 아니며, 단순히 이 세상에서 고행한 결과로써 부처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거 전생(前生)의 수행 결과로써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전생을 주관하는 연등불(燃燈佛)을 비롯한 과거칠불(過去七佛)이 있고, 서방 극락 세계에서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아미타불(阿佛) 등 현재 다른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현재불(現在佛)이 있으며, 지금은 도솔천(兜率天)에서 보살로서 수행하고 있지만 미래에 세계를 주관할 미래의 부처 미륵불(彌勒佛)이 있다는 관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외에 대승 불교에서는 삼세시방(三世十方)에 여러 부처가 존재한다고 하였는데, 삼세(三世)의 부처로 과거의 장엄겁(莊嚴劫)에 천불(千佛), 현재의 현겁(賢劫)에 천불, 미래의 성수겁(星宿劫)에 천불이 있다고 하였다.
부처는 이처럼 나타나는 시간과 주관하는 세계에 따라서 여러 부처가 있으며, 또한 그 성격에 따라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등 세 가지 차원의 부처로 구분한다.
첫째, 법신 부처는 진리 그 자체인 부처로서 세계의 근원이자 모든 개별적 부처의 원형(原型)으로서 우주의 본질을 가리킨다. 이 부처는 일체의 형상과 언표를 떠난 초월적인 존재이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관념적 대상으로서의 부처는 절대 아니다. 이 부처야말로 온 세계의 궁극적 실재이며 깨달음의 세계에서 체험되는 근원적인 부처로서 진리 그 자체이다.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 반드시 진리가 있듯이 법신 부처는 세계의 본질로서 언제나 존재한다.
둘째, 보신 부처는 수행의 결과로써 성취한 부처이다. 이 부처는 보살이 서원(誓願)을 세운 후 오랜 수행의 결과로 성취한 초자연적 부처이다. 이 부처는 초월적 차원의 법신 부처가 형상을 갖춘 존재로 드러난 것이므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이 부처의 신체에는 32가지 초인적인 표징(32相)이 있고 80가지의 부수적인 특징(80種好)이 딸려 있다. 그러므로 이 부처는 인간적 조건 아래서 설명될 수 있는 최고의 완전성과 이상적 인간성으로 제시되는 부처이다. 이러한 보신 부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초월적 존재로서 언제나 이 세계에 현존한다. 후기 선불교에서는 푸른 산, 흐르는 물, 흔들리는 바람 등 온갖 삼라만상이 모두 보신 부처로 고백된다. 즉 세계의 본질이 법신 부처이므로 그 형상인 세계 전체가 그대로 보신 부처인 것이다.
셋째, 화신 부처는 중생(衆生)들의 필요에 따라 나타나 작용하는 부처이다. 이 부처는 중생들의 부름에 감응하는 부처이다. 즉 중생들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역사적인 부처이며 중생들과 통교(通交)가 가능한 인격적인 부처로서 그 대표적인 존재가 사바 세계의 역사에 개입한 석가모니이다. 그러나 화신 부처는 석가모니 한 사람만이 아니다. 이 세계를 비롯한 모든 세계에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수많은 화신 부처들이 있다. 과거의 일곱 부처도 미래의 미륵 부처도 특정한 세계에 특정한 중생들을 구제하러 오기 때문에 모두 화신 부처이다. 후기 대승 불교에 따르면 이 화신 부처는 중생들의 필요와 부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화신 부처는 형상을 초월한 법신 부처가 자비심에 의해 형상과 작용으로 중생들에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이 부처는 믿음과 수행이 돈독한 사람의 눈에는 어느 곳 어느때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자비로운 부처이다. 보신 부처가 특정한 모습을 갖추는 대신에 화신 부처는 신이나 짐승이나 필요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날 수가 있다. 그리하여 부처는 갠지스 강변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을 수 있다. 이러한 부처의 보편화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佛性) 사상을 낳았고 삼라만상이 모두 그대로 부처라는 후기 선불교 사상의 근거가 되었다.
한편 부처는 지혜, 즉 깨달음의 성취자일 뿐만 아니라 자비의 실천자로 체험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깨달음은 반드시 자비의 실천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의 양 날개나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되는 지혜나 자비는 어느 하나만 있을 수 없는 동시적인 것이다. 즉 부처는 자각(自覺)과 구제〔覺他〕,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두 가지 가장 큰 성격을 가진 존재이다. 여기서 자각은 지혜의 완성이고 각타(覺他)는 자비의 완성으로, 이 지혜와 자비의 양면이 완전하다는 의미에서 부처를 '각행궁만'(覺行窮滿 ; 깨달음의 작용이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범부에게는 세 가지 모두, 성문과 연각은 각타와 각행궁만, 보살에게는 각행궁만이 부족하다 하여 이들과 비교해 부처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대승 불교 시대의 부처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서 예배와 기원의 대상으로 체험된다. 석가모니는 본래 초월적인 존재로서 의도된 계획에 따라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왔으며, 오랜 동안의 수행에 의해서 무한한 공덕을 갖추었다. 부처는 그러한 공덕의 힘에 의해서 초월적인 권능을 갖게 되며, 원하는 중생들에게 그 공덕을 나누어 줄 수가 있다. 대승 불교 시대의 불자들은 과거 역사 속의 한 스승으로서 존경의 대상이던 부처를 현재의 삶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체험하고 예배하게 된 것이다. (→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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