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家父長制
〔라〕patriarchia · 〔영〕patriar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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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식사 모습.
씨족이나 가족에서 아버지에게 높은 권한을 부여하고, 법적으로 부인과 자녀가 아버지에게 의존되어 있으며, 혈통과 상속이 남계를 따라서 이어지는 사회 조직. 이 같 은 정의는 가부장적 원칙으로 운영되는 사회도 포함된 다. 근대법 성립 이전에는 이러한 부권이 법률로서 성문 화되어 남성은 아버지로서 가족 특히 아내와 자녀들에 대하여 최고의 권위를 가졌다. 모든 재산의 소유권은 가 정의 어른인 가부장에게 있었으며 여성과 아이들은 남편 과 아버지에 의하여 소유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한편 가부장제를 법적인 개념으로 인식하는 학자들은 봉건제 의 붕괴로 이러한 법적 조항이 삭제된 만큼 가부장제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법적 개념 의 측면에서는 약화되었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사회 전체 에서 그 원리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근래 에 들어서 가부장제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가 시도되고 있다. 〔기원과 발전〕 남성들이 가정에서 가부장권을 가지는 과정을 탐구하기 위하여 인류학의 민족지(ethnography)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수집, 분석되었다. 특히 수렵 채집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채집 사회(gathering)의 남녀 관계, 결혼 형태에 관한 연구는 인류 사회의 초보적 형태의 가족관계에 관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채집 사회에서 남성의 수렵 활동과 여성의 채집 활동은 생존에 필수적인 작업이었으며 특히 여성은 전체 식량의 60~80% 를 공급했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모두 평등했으며 남녀간의 불평 등은 잉여 생산물이 생긴 다음부터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민족지적 자료들은 남녀간의 불평등의 원인이 혼인 관계에 의한 수렵 채집물의 분배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평등성은 남성들 사이에서만 성립되며, 남성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여성의 경제 활동에 의하여 독립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남성 들은 결혼함으로써 여성이 채집한 곡물을 먹을 수 있으며, 자신들이 얻는 고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증여함으로써 사회 관계를 확대할 수가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에서 남성들간의 갈등은 여성을 둘러싼 경쟁이기 때 문에 남성들간의 평등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성들의 성적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 장치들이 생겨난다. 여성에 대한 규제는 여성의 생명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평가 절하하고, 혼인이 남성들간의 교섭(신랑의 장인에 대한 봉사나 선물)에 의하여 맺어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장 치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를 지지하는 기재이며 장차 제도화될 가부장제의 실마리라고 볼 수 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점차 토지를 둘러싼 경쟁이 늘어나고, 인구의 안정 적 충원을 위하여 여성을 약탈하는 것이 빈번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초기 농경 사회는 부족 사회로서 혈연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 사회 단위는 가구(domestic group)였다. 여기서 지배적 역할은 연장 자가 했으며 이 연장자들이 가구가 속해 있는 지역 공동 체의 권위 체계를 유지했고, 여성 약탈에 대처하기 위하여 맺은 결혼 동맹도 혼인에 관여하는 연장자들의 권위 유지에 기여했다. 또한 혼인을 주선하는 연장자에게 바치는 연소자들의 봉사 내지 충성은 남성들간의 위계 질서를 만든 반면에, 원활한 혼인 동맹을 위하여 여성들의 성(sexuality)은 통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가부장제의 핵심인 성별 분업, 가부장의 권위 체계들이 성립되어져 왔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공식적 성립은 국가가 발생한 다음이다. 왜냐하면 초기 농경 사회에서 정착되어진 남녀 관계가 중앙 집권적 정치 체계를 갖춘 행정 조직이 대두하면서 남성 연장자들의 권위가 공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됨에 따라 더욱 분명하게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계층적 지위에 관계없이 남성은 국가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었고 여성들은 사적 영역, 남성이 대표하는 가정으로 그 활동이 제한되었다. 국가 조직은 여성에게 사회적 성인의 자격을 부과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생산 능력을 법적으로 부인하였으며 가구가 지배의 기본 단위이기 때문에 여성은 단지 남성 가구주의 피부양자로서의 지위만 갖게 되었다.
초기 국가 신화에서 성스러운 초월자의 모습이 남성의 모습으로 기술되는 점은 또한 전 시대부터 존재해 왔던 여성 비하 이념이 강화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 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적 자료와 고고학적 자료를 가 부장제의 대두와의 연관 속에서 연구한 러너(Lerner)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국민의 성을 규제하는 것이 사회 통제의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때 남성 가부 장은 국가가 자원을 국민에게 분배하듯이 자신의 가족에게 자원을 분배하고,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가부장이 자신의 가족이나 씨족을 통제하는 것이 국가 지배 체제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정착되었다. 결국 국가 조직은 남성 중심의 지배 집단을 구성하고 여성의 생산적 기여를 제도적으로 무시하며, 지배 권력 강화나 통치 이데올로기 유지에 남성에 의한 여성, 가족원의 지배를 활용함으로써 가부장제를 사회 전반에 공식화, 보편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확립된 가부장제는 성스러운 초월자의 모습을 남성의 모습으로 기술하는 상징 체계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왈쉬(Walsh)는 선사 시대에는 여성이 풍요의 여신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문자 문화의 시작과 더불어 권위적 남성 신으로 신격이 대치되는 '가부장적 혁명' 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강화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종속성과 결부되어 여성의 생산력이 이데올로기상 그 힘을 상실하게 되어 상징 체계 속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박탈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국가 수준에서 가부장제의 제도화가 신비화 과정과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구약 시대의 가족도 가부장적 가족이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가장 초기에 가부장은 그의 가족원에 대하여 절대 적인 권위를 지녔다. 출애굽기 20장 17절의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 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는 구절에서 부인을 가축과 같은 수준의 재산 목록으로 취급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현상을 잘 드 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데보라(Deborah)의 노래나 퓨 다(Huldah)와 같은 여예언자의 활약에서 보는 것같이 영 웅적 여성들의 역할도 존재했었다. 이러한 면에 근거하 여 비록 버드(Bird, Phyllis) 같은 여성 신학자들이 이 시대 의 여성들이 남성에 비근할 만한 권리를 지녔다고 하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러너는 이러한 주장을 역사적 자료 부재를 이유로 부인했다.
구약 시대 동안에 팔레스티나에서도 국가가 성립하면 서 여성의 공적인 역할과 경제적인 활동 그리고 예배적 (cultic) 역할이 약화되고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강화 되었다. 이러한 가부장적 요소는 사도 바울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에페소서 5장 2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의 구원자로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시 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 됩니다" 라는 구절도 이 러한 측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그리스도 교 신앙에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가부장제적 특성에 여성 신학적 재해석이 필요하다.
가부장제가 종교에서 중요 요소로 사용되는 것은 그리 스도교에만 해당되지 않고 대부분의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에게 초월적인 존재를 인식하는 주요한 계기를 가족 내 가족 관계,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로부터 유추시켜 종교적 세계의 신성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권위 체계가 가족 관계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가족간의 관계를 사회 질서, 통치 이 념과 연결시키고 있는 유교 이념이 우리 사회의 가부장 제를 변형시키는 과정은 바로 이러한 종교적 세계관과 가족주의가 정치적 이해 관계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현대 산업 자본주의 사회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가 법적인 차원에서 소멸되고 있지만 가부장적 관계는 가정뿐 아니라 사회 제반 영역에서 발견되고,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즉 가부장제가 경제적 요소에 따라 변화하지만 가부장제 또한 이러한 변화 구조와 한계 설정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서구의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가부장의 권한이 약화되기보다는 강화되었다는 주장은 사유 재산이 정착된 다음 잉여 개인주의, 가족주의 이념을 정착시켰다. 현대 사회의 가부장제에 대한 토론은 관료제, 권위주의, 그리고 여성의 낮은 지위와 관련지어 전개되고 있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가부장제는 가부장적 생산 양식, 고용의 가부장적 관계, 국가의 가부장적 관계, 폭력, 성(sexuality)의 가부장적 관계, 문화 제도에서 가부장적 관계 등 여섯 가지 요소로 형성되어 있다. 이 요소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상호 의존하면서 동시에 각 영역별로 상대적 자율성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가부장제가 자본주의 경제 구조와 어떻게 상호 결합 또는 분리되었으며 그런 과정 속에서 얼마나 자율성을 지니며 변화되어 왔는가라는 문제에 논의가 집중 되어 있다. 하트만은 자본주의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위에 성장했지만,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계층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남성들도 이 관계에서 가혹한 배반을 당한다고까지 지적하였다. 그러면서도 가부장제 사회의 위계적 남성 조직을 통해 남성들과 자본주의가 서로 승인, 지지를 하는 관계를 맺는다고 보았다. 한편 가부장제를 이렇게 자율적인 것으로보다는 각 역사 단계의 지배적 생산 양식 속에서 파악하는 맥도노우(McDonough)와 해리슨 (Harison)은 자본주의 경제 체계가 상호 작용으로 형성 하는 구체적 복합체를 지배적 생산 양식 하에 형성된 가부장제로 보고 있다. 즉 서로 분리 또한 연결되는 구조 속에서 가부장제를 파악한다고 해도 각 개인의 지위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들의 계급적 위치라는 것이다. 위의 두 입장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라는 개념을 제시한 아이젠스타인(Eisenstein, 1988)의 노력이다. 그는 가부장제를 단순히 사회 생산 양식의 파생물로 파악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함께 기능하는 상대적이며 자율적인 제도로 보았다. 즉 가부장제와 경제 구조는 서로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완전히 통합되어 있어 분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의 가부장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는 전통적 가족 제도의 기반이 확립되어진 조선조의 정치 체계와 부계 친족 체계의 성립 과정을 통하여 이해될 수 있다. 사실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는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시기 여성들의 자율성은 남녀 관계의 자유 개방성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가족 제도의 몇몇 특징에서 더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외가와 처가에 대한 관계가 매우 긴밀하여 부계친(夫系親)의 일방적인 중요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처가를 자기 집 처럼 생각하여 장인, 장모를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고 친 부모처럼 섬겼다. 또한 동성친(同姓親)과 이성친과의 차별이 없었으며 족보 등의 기록에서도 딸과 외손을 차별 하지 않았고 제사 및 재산 상속에서도 아무런 차별이 없었다.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경우에도 양자를 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로서 이 시기에는 강고한 가부장권이 성립되어 있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가 되면서 주자학적 정치 이념으로 무장된 양반 지배층은 주자 가례를 따른 가족 의례를 정 착시키고 부자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와 적장자 우 위의 상속 제도가 일반화되었다. 부계 혈통 집단은 의례 를 감당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있는 일부 양반 집안들 에 의하여 문중 조직으로 재조직될 수 있었다. 가족 관계 에서부터 전체 사회 질서를 보고 있는 주자학의 세계관 에 따라 유교적 질서를 체득하고 있는 양반층에 의한 향 촌 사회의 지배가 어느 정도 공식적 인정을 받았으며 이 들의 영향력은 부계 혈통주의, 장자 우선주의, 적서 차 별, 남녀 차별 등의 경향을 강화시키는 데 작용하였다. 이러한 사회에서 도덕적 인간상은 집안 내 효(孝)를 실 행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며 충(忠)으로 확대된다. 이러한 이상에 따라 가부장은 집안 어른으로서 최고의 권위와 존경이 부여되나, 이때 가장은 부(父) 또는 조부(祖 父)라는 친족적 지위로서의 지위를 의미하지 친족과 관계없는 가장권은 우리 나라에서는 특별한 법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가장인 부나 조부가 유교적 존비 (尊卑)의 질서관에 따라 집안을 지휘 통솔하며 대외적으로 가족을 대표한다. 이러한 가장권은 주자학적 규범 속에서 제한되어 자녀를 혼인시킬 의무나 주자 가례를 적 절히 시행해야 하는 의무를 지어 가족 성원들의 위반에도 대표로 죄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재산이 가족 성원 개인들의 명의로 가질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 장의 독단에 의하여 재산권이 행사되지는 않았고 가장의 명의로 된 재산의 경우에도 조상 전래 재산의 경우는 그 권리의 행사가 제한되어 있었다. 여성들의 역할은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아래에서 혈통 계승을 위해 후손을 낳는 역할과 시부모 공양이 중심을 이루었다. 남편 가문의 혈통을 잇는 여성들은 '열 녀관' 과 재가 금지 그리고 '출가 외인' , '삼종지도' , 여성과의 강제 이혼을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칠거지악' 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행동에서 통제를 받았다. 그러나 부덕과 정절관을 지킨 여성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국가적으로 주어졌다. 남성이 '충신' 이 되듯, 여성은 '열 녀' 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죽어서는 남녀가 동등하게 조상으로서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는 남계 혈통주의에 기반을 한 만큼 남존 여비의 원리를 철저하게 내면화시킨 여성들이 자신들의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시집살이를 견디어 가도록 강요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조 여성이 철저한 내외법 에 따라 공적인 진출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한편 집안을 꾸려 가기 위하여 하는 경제 활동, 봉제사, 접빈객을 위한 준비, 그리고 자녀 특히 아들을 잘 키워 내는 역할들은 가부장제 가족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 중에서도 여성이 지녔던 경제력, 어머니로서의 존경들을 고려하여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지는 않다는 주장조차 나오고 있다.
조선조 사회가 "남성 지배가 완성된 사회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지배 영역이 강화되고 효(孝)의 가치 아래 어머니의 권좌 배후에서의 권력 행사가 거의 제도화되다시피 한 사회였다"는 견해도 있다. 반면에 가부장적 가족 구조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정절'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여성의 삶을 규제하고 있는가를 근거로, 전통 사회에서 여성들은 권리가 박탈된 낮은 지위였음을 주장하는 견해 도 있다. 결국 조선조 가부장제가 여성 억압의 실체였다는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여성이 활약하였던 가정의 영역이 남성들이 대표했던 공적 영역에 종속 되었고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면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민족 항일기에 들어와서 우리 나라 가부장제의 성격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즉, 자본주의의 성립과 더불어 가정은 생산 단위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어 여성은 사적 영역인 가정의 전담자가 되고 남성은 임금 노동자로서 사회적 생산의 공적 담당자가 된다. 다시 말해서 남성은 명실공히 정치 · 경제 · 사회 면에서 공적 영역을 담당하고 여성은 사회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적
영역을 담당하는 사회적 분업이 제도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여전히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객체적 존재로 머물게 된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노동 현장에서 가부장적 노동 통제와 권위주의, 관료주의에 입각한 엄격하고 위계적인 통제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더욱 심화된 가부장적 노동 통제의 대상이 되어 왔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가부장제는 형태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가족 구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 부계 혈통주의의 전통, 남존 여비의 이념은 가정 내 어머니의 역할을 중시하는 경향과 함께 여전히 그 사회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적 가족 이념은 남아 선호, 그리고 부자간의 관계와 연결되는 권위주의적 관계를 지속시키면서 여성에 대한 제반 차별이나 비하와 연결되어있다. 한국 기업에서 이러한 가부장적 요소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는 지적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과 가부장제가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한국의 현대 사회가 자유주의적 합리적 관계보다는 전 근대적인 사회 관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 조직의 원리를 가부장제적인 온정주의와 가족주의에 입각하게 한다. 따라서 사회 문제를 온정주의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사회의 합리화를 계속 지연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가부장제는 조선 후기의 그것보다는 매우 약화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그 기본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가부장제가 재생산되는 가장 핵심적인 장소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에 가족의 가부장적 성격에 대해서 많이 연구되어야 한다. 또한 가부장제가 많은 사회적 비합리성을 초래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적 성격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히 여성의 억압된 지위와 삶을 유지시킨다는 점에서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며, 그런 점에서 앞으로 여성학계에서 가부장제의 문제가 보다 심각하게 논의될 것이다. 결국, 가부장제에 대한 관심은 인류 사회의 권위 체계, 지배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서 여러 경제 구조와 결합하여 변형을 거듭하면서 생존해 왔다. 때문에 이 문제는 결코 급격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보다 합리화된 방향으로의 사회 발전과 민주주의 교육의 적절한 시행을 통해서만 가부장제는 점차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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