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3동 본당

富平三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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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북구 십정동 182-190 소재. 1982년 2월 16일 산곡동 본당, 부평2동 본당, 주원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가정. 관할 구역은 부평3동 전 지역과 부평2동, 산곡동, 십정동, 간석동 일부 지역. 〔교 세〕 1982년 1,462명, 1985년 2,386명, 1989년 3,562명, 1993년 4,291명, 1995년 4,218명. 〔역대 신부〕 초대 즈베버(B. Zweber, 崔) 베네딕도(1982. 2~1986. 9) , 2대 이덕진(李德眞) 가브리엘(1986. 9~1991. 2), 3대 홍창만(洪昌晩) 루가(1991. 2~1995. 2), 4대 이근일(李根一) 마태오(1995. 2~현재).
1970년대 군 부대가 철수한 신촌 일대에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신자수가 급증하자 교구에서는 본당 설립을 계획하고, 1982년 2월 16일 산곡동 본당, 부평2동 본당, 주원 본당의 관할 구역 일부를 분할하여 부평3동 본당을 신설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즈베버 신부는 교구 보조금으로 십정동 174-13번지의 2층 건물 40평을 임대하여 임시 성당과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성당 건립을 위한 기성회를 발족시켜 3월 28일부터 기금 신립을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즈베버 신부는 수차례 미국을 오가면서 도움을 청해 성당 건축 기금 대부분을 미국 신자들에게서 모금하였다. 그리고 1982년 11월 14일 현재의 성당 터 826.5평을 매입한 후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착공 3년 만인 1985년 3월 9일 교리실 8개와 소강당 2개를 갖춘 성당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 기간 중 본당에는 동심회, 청년회 등이 조직되어 성당 건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1982년 2월부터는 천주의 섭리회 수녀들이 파견되어 사목 활동을 도왔다.
성당을 건립한 후 부평3동 본당은 사목과 선교를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였는데, 그 가운데 특히 신심 함양과 교리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1986~1987년에는 여러 신심 단체들이 조직되어 개인의 신심 및 본당 발전에 기여하였고, 교리 교육은 주일학교 · 첫영성체 준비반 · 세례 예비자반 등으로 나누어 실시하였으며, 연중 사순절 특강과 단체별 피정도 실시하였다. 1988년 2월 부설 유치원을 개설한 데 이어 1990년 9월에는 5개의 교리실과 25평 규모의 시청각실을 마련하였으며, 이듬해 4월에는 나눔의 정신에 입각하여 처음으로 전 신자가 헌혈을 하였고, 4~6월에는 '환경 교실' 을 개설해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1995년부터는 본당 신자들의 일체감을 높이기 위해 전 신자 이름표 달기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97년에는 '잃은 양 찾기 운동' 과 '새로운 양 찾기 운동' 및 1인 1단체 가입 운동을 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97년 현재 본당에는 명도회, 청소년 가톨릭 학생회, 레지오 마리애 23개 쁘레시디움, 성소후원회, 요한 복사단, 울뜨레야, 동심회, 안나회, 성모회, 다솜 어버이 성가대, 요셉회, 청년회 등의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인천교구, 《인천교구사》, 1991.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