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 동안의 전례상의 시기. '파스카 시기'라고도 한다.
〔기원과 발전〕 이 시기는 처음에는 오순절(五旬節, Pen-tecoste)이라고 하였지만 후에 부활 시기로 명칭을 바꾸면서, '오순절' 이란 이름은 부활 시기의 오십 일째 되는 날을 가리키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축제력에서 중요한 축제는 일정 기간 동안 계속되었는데, 마찬가지로 옛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파스카 삼일뿐만 아니라 칠 주간, 곧 50일 동안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경축하였다. 50일 축제 거행은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대인들은 누룩 안 든 빵의 축제 다음 50일 동안 '주간 축제' (Shavuot, Pentecoste)를 지냈다. 사도 행전 2장 1절 이하에 따르면,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리셨다. 이 성령 강림이 파스카 신비의 결실이다. 요한 복음 20장 22절에 보면, 이미 부활 날에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50일 축제 기간의 특징은 단식과 무릎을 끓고 기도하던 것을 그만두고 알렐루야를 부르며 전례적으로 기쁨을 드러내는 데 있다. 그러므로 《전례 주년 총지침》(Nomae universales de anno liturgico et de calendaro, 1969)에서는 옛 전통에 따라 "부활 주일부터 성령 강림 주일까지의 50일은 단 하루의 축일처럼, '큰 주일' 처럼 기뻐 용약하며 지낸다"(22항)고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이 50일 동안에는 평일에도 전례를 거행할 때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상징으로 부활 초를 제대 옆에 켜 놓는다. 전에는 부활 초를 주님 승천 대축일 복음이 끝난 다음 불을 꺼서 다른 곳으로 옮김으로써,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어 더 이상 그분의 공동체에 함께 계시지 않음을 드러내 보여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부활시기가 끝난 뒤에도 부활 초를 세례당이나 세례대가 있는 곳에 잘 놓아두도록 배려하였으며, 그 부활 초에서 불을 댕겨 세례받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초에 불을 붙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모든 장례 미사 때에도 부활 초에 불을 밝혀 관 옆이나 적합한 위치에 놓도록 하였다.
〔예수 부활 대축일〕 예수 부활 대축일은 자정 가까이 또는 그보다 조금 뒤에 부활 성야가 끝나고 시작된다. 옛날에는 새벽이 밝아 올 무렵에 성야가 끝났다. 시리치오교황(384~399) 때까지 로마 교회에는 성야를 마감하는 성찬례 거행 외에는 다른 성찬례 거행은 없었으며, 5세기에는 새벽 미사와 또 다른 미사가 도입되었다.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elasianum)에는 밤중미사에 사용하는 기도문 다음에 부활 대축일에(In domi-nico Paschae) 사용할 미사 기도문을 수록하였다. 부활 대축일 미사는 언제나 가장 장엄한 형태로 거행되었으며, 1952년까지는 전례 주년의 정점이었다. 성탄 대축일처럼 주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제들에게 부활 시기에 '대영광송'을 노래하는 것이 허락된 것은 11세기 말 이후부터였다. 여러 예식들은 이 점에 관해서 매우 분명해졌다. 예를 들면 베네벤토 예식(ritus Beneventanus)에서 입당송과 자비송(Kyrie) 사이에 주례는 회중을 향하여 큰소리로세 번 "주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활하셨다"(Iam Christus Dominus resurrexit)고 선포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로마의 부활 성야 예식에서는 차부제가 제1 독서 다음에 주교에게 "지극히 존경하는 아버지, 저는 당신에게 알렐루야인 큰 즐거움을 알립니다"(Revernendissime Pater, annuntio vobis gaudium magnum, quod est allelluia)라고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였다. 축제 중의 축제(festivitaum festivitas)인 부활 대축일은 다른 모든 축제들에 의해 선포된 축제로 받아들여졌다.
수도자들은 8세기부터 더 짧아진 부활 성야 예식 다음에 새벽에 시간경을 바쳤다. 이때 시편집의 세 개의 시편 가운데 첫 시편을 노래하였다. 로마 밖에서는 파스카 금요일에 십자가를 놓아두었다가 치운 무덤을 찾아가는 행렬도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 시대에는 부활 날 아침에 미사가 거행되었으며, 11세기경에는 "파스카 희생 어린양을 모두 다 찬미하세" (Victimae paschali laudes) 하는 부속가(sequenia)가 도입되었다. 한편 7세기경의 《보비오(Bobio) 성무 집전서》에는 성찬 전례의 감사 기도 중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갖 좋은 것을 창조하시고" (Perquem omnia bona creas)一이 기도문은 로마 미사 전례서 감사 기도 제1 양식에서 '마침 영광송' 바로 앞에 바친다一전에 양 고기를 축복하였다고 전한다.
8세기 들어 로마에서는 부활 저녁 기도를 노래했는데,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Sacramentarium Gregorianum)에는 그때의 기도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대한 특별한 묘사를 8세기의 로마 예식서 27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저녁 기도 때 많은 '알렐루야'를 노래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비송을 노래하며 하는 행렬은 시편 109~111편의 노래로 이어졌고, 시편 112편과 92편을 노래하며 세례소로 행렬해 가서 세례소에서 시편 113편과 '마리아의 노래' (Magnificat)를 불렀던 것도 이날 저녁 기도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새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비디 아괌'(Vidi aquam)을 노래하며 교황에게서 견진을 받은 성 십자가 성당의 경당으로 모였다. 이 저녁 기도는 로마에서는 13세기에 사라졌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여러 교회에서는 계속되었다.
교회는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영향을 받아 언제나 파스카 주간을 단 하나의 축일로 생각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날의 전례 거행을 '교회의 관습'(Ecclesiae consue-tudo)이라고 정의하였고, 《에테리아 여행기》(Peregrinatio Aetheriae)는 이때 신자들이 예루살렘의 여러 교회들에 모였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부활 주간에는 무엇보다도 세례로 새로 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비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성 암브로시오의 교리 교육이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이다.
이전의 성무 집전서에서는 전례가 거행되는 그 축일의 지정 성당을 밝혀 적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무 집전서에서는 이러한 지시가 삭제되었다. 《젤라시오 성무 집전서》에는 팔일 축제가 사백 토요일(sabbatum in albis)로 끝난다고 하였으나, 그레고리오 1세 교황(540?~604) 시대의 팔일 축제는 바로 다음 주일에 끝나는 것으로 되었고,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에는 그 주일을 '흰옷 주일'(Dominica in Albas)이라고 이름붙였다. '사백 주일'(卸白主日, Dominica in Albis)이라고 한 것은 후대의 일이다. 현행 성무 집전서에는 팔일 축제 주간의 하루하루를 위한 고유한 전례 거행이 마련되어 있다.
〔부활 팔일 축제〕 부활 시기의 첫 8일 동안을 부활 팔일 축제라고 한다. 이 팔일 축제를 7주간의 '큰 팔일 축제' 와 비교해서 '작은 팔일 축제' 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뜻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팔일 축제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4세기 초나 3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러한 사실은 아스테리오 소피스타(Asterio Sofista)의 시편 강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스테리오는 팔일 축제의 여덟 번째 날을 "두 번째 '여덟 번째 날' "이라고 하였다. 팔일 축제의 전례는 파스카 신비에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세례로 새로 난 이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데에도 특징이 있다. 세례로 새로 난 이들은 매일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신앙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게 되며, 특히 부활 성야 때에 받은 입문 성사에 대해 더 잘알게 된다. '신비 교육'이라고 알려져 있는 교리 교육의 옛 흔적으로는 아스테리오의 부활 시기 강론을 들 수 있고, 그중 가장 유명한 예는 4세기 중엽 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가 남긴 다섯 개의 '신비 교리 교육'을 비롯하여 성 암브로시오의 《신비론》(De mysteriis)과 《성사론》(De sacramentis)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부활 팔일 축제에 대해 '교회의 합의'(Ecclesiae consensio), 즉 사순 시기처럼 교회가 합의하여 관습이 된 축제라고 하였다. 이 시기에 신자들은 일을 멈추고 날마다 전례에 참여해야 하였다.
이 주간은 처음에는 '백색 주간'(Septimana in albis) 또는 '흰옷을 입는 주간'이라고 하였고, 동방 교회들에서는 '쇄신 주간'(Septimana renovationis)이라고도 하였다. 본래 이 주간은 '흰옷 주일' 이라는 이름의 일요일에 끝나는 것이었는데, 세례로 새로 난 이들 때문에 7세기부터는 토요일에 끝났다. 이것은 파스카 토요일에 부활 성야를 앞당겨 지내던 것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는 것이었다. 팔일 축제의 입당송은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들에게 베풀어진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 입당송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불려지고 있다.
월요일 : "주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셨으니, 너희 입은 언제나 주님의 법을 말하리라. 알렐루야."
화요일 : "지혜의 물을 얻어 마신 사람들, 다시는 흔들리지도 절망하지도 않으리라···"
수요일 :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너희들, 와서 천지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알렐루야."
목요일 : "주님, 벙어리 입을 열어 주시고, 갓난아기의 혀를 풀어 주시니, 당신 팔의 능력을 기리나이다. 알렐루야."
금요일 :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희망의 땅으로 이끌어 내시고···"
토요일 :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빼내시고 뽑아 내신 그들이 춤추며 나오게 하셨도다. 알렐루야."
사백 주일(부활 제2 주일) : "갓난아기같이 너희도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그로써 너희는 자라나 구원을 얻게 되리라. 알렐루야."
7세기에는 이미 받은 세례를 해마다 기념하기 위하여 '주년 파스카'(Pascha annotinum)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부모들과 대부모들은 하느님께 감사하며 주년 기념일을 지내고자 지난해 부활 때 세례를 받은 아기들을 교회로 데리고 왔으며, 그들과 함께 온 공동체가 모여 해마다 찾아오는 세례를 기념하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제2천년기에 들어서면서 어린이 세례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거행되어 주년 세례 기념 예식은 점차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의 부활 시기 거행과 단일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신자들에게 50일의 부활 시기의 단일성을 다시 찾게 했다. 비오 5세 교황의 성무 집전서에서 '부활 주일' (Dominica Resurrectionis)라고 했던 것을 새 전례서에서 '파스카 주일' (Dominica Paschae)이라고 고친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현행 전례서에서는 이를 더 명확하게 하고자 "주님 부활 날의 파스카 주일. 본일 미사(Dominica Paschae in resurrectione Domini. Ad missam in die)라고 이름붙였다. 그래서 부활 시기를 시작하는 파스카 주일은 '부활 주일' 이라고 하지 않고 '주님 부활 날의 파스카 주일' 이라고 함을 분명히 했다. 마찬가지로 다음에 오는 주일들은 더 이상 '부활 후 제2 주일'(Dominica secunda post Pascha) 등으로 부르지 않고, '파스카 제2 주일'(Dominica I Paschae, 부활 제2 주일) 등으로 바꿈으로써 50일의 파스카 시기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주님 승천 축일 전야는 없어졌지만 이 축일은 대축일로 승격되었고, '승천 시기'(Tempus ascensionis)는 더 이 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에도 파스카 주일은 계속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주일로 옮 겨 지내지만 제날짜에 지내는 곳에서는 이 주일은 '파스카 제7 주일' 로 지낸다.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에도 "오 순 주일. 전야 미사. 대축일 미사"(Dominica Pentecostes. Ad missam in vigilia. Ad missam in die)라고 이름붙였으며, 성령 강림 대축일 팔일 축제는 없어졌다. 이 팔일 축제는 7세기 초에 제정되었었지만, 이것은 '오순절'이라는 말의 뜻을 무의미하게 할 뿐만 아니라 50일의 신학을 희석시키는 모순을 빚는 축제였다.
부활 시기의 미사 전례 성서, 즉 독서집(Lectionarium)도 수정하였다. 사실 로마 예식에서만 전례 시기와 아무 런 관련이 없는 사도들의 편지를 읽게 했었고, 다른 예식들에서는 로마 예식과는 달리 사도 행전과 묵시록을 읽어 왔다. 라틴 예식의 독서들이 이미 750년의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독서집 안에 담겨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어떻든 그러한 독서집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개혁의 결과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개혁에서는 사도들의 서간을 어느 자리에 배치해야 할지 몰라 부활 시기에 고정시켜 놓았다. 그러므로 로마 예식 안에도사도 행전과 묵시록이 도입되게 된 것이다.
50일의 부활 시기를 지내게 된 것은 거의 부활 전례를 거행하게 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부들은 이 50일의 부활 시기를 단 하나의 축제일로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은 과월절을 지낸 다음 50일의 주간 축제를 지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50일의 하루하루를 같은 파스카 축제일로 지냈다. 그래서 사도 행전 2장 1절에서도 그리스어로는 오순절을 단수로 쓰고 있으나, 라틴어역 성서는 《새 대중 라틴어 성서》(Nova Vulgata)가 나오기 전까지는 오순절을 복수로 썼다(cum complerentur dies Pentecostes). 이것은 4세기에 성행하던 표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50일의 축제는 주님의 부활 날 시작하여 여덟 번의 주일을 지내는데, '여덟' 이라는 숫자는 성 바실리오가 지적한대로 마지막 날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성령론》, 27,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부활 시기의 단일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이 시기의 주일들을 더 이상 '부활 후 주일'이라 하지 않고 '부활 주일'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래서 '사백 주일'도 '부활 제2 주일'이 되었다. '성령 강림 대축일'도 그래서 부활 제8 주일이 되었고, 이는 큰 팔부 파스카, 곧 '오순절'(50일 축제)을 마감하는 날이 되었다. 이 시기의 주일들은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처럼 어떤 대축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이 주일들의 전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영광이 일체를 이루는 파스카 신비를 하나의 축제처럼 거행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부활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승천과 성령의 파견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1 독서는 초기 교회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고 복음을 선포하는지를 전해 주는 것으로 모두 사도 행전의 말씀을 봉독하고, 제2 독서는 1년을 주기로 베드로의 첫째 편지와 요한의 첫째 편지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을 봉독 한다. 왜냐하면 이 말씀들은 부활 시기에 알맞는 믿음의 기쁨과 굳건한 희망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 주일과 제3 주일의 복음은 부활하신 분의 발현과 관련된 말씀이다. 이 주제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제3 주일과 제4 주일에 좋은 목자의 복음을 배치해 놓았다. 다음에 이어지는 세 주일들에는 마지막 만찬을 드시고 주님께서 하신 담화와 기도에서 따온 말씀들, 곧 '이별의 담화' 와 '사제의 기도'를 복음으로 듣는다. 50일 축제의 주일 독서들이 제공하는 주제들을 짧게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 부활 대축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제2 주일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의 공동체', 제3 주일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그리스도', 제4 주일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양 떼의 문과 좋은 목자', 제5 주일은 '공동체 건설과 서로의 사랑', 제6 주일은 '공동체의 확장과 성령의 약속', 제7 주일은 '주님 승천, 예수 영광의 증인들, 아버지께 드린 예수의 기도', 제8 주일은 '성령 강림, 온 교회에 성령의 내림' 등이다. 또 이 시기에 사용되는 감사송은 다섯 개인데, 그중 첫 번째 것만이 부활 밤 미사와 대축일 미사 그리고 팔일 축제 중에 사용하도록 정해져 있다.
부활 제2 주간부터 제6 주간에 이르는 부활 시기의 평일들은 모두 고유한 본기도를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기도문들(예물 기도, 영성체 후 기도)은 14일마다 반복되도록 짜여져 있다. 독서는 연속적으로 사도 행전에서 읽으며, 복음은 네 복음서가 다 봉독되는 부활 팔일 축제를 제외하고는 요한 복음 3장과 6장, 10장 그리고 14~17장을 거의 연속적으로 읽는다. 이날들에는 미사를 마칠 때 장엄 축복을 할 수 있다.
고대 교회는 오순절의 50일 축제 전체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이 건너가신 것을 주제로 하여 단 하나의 축제처럼 지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하나의 파스카 사건을 여러 개별 사건으로 나누어 각 사건들을 강조하려고 한 것은 의미의 단일성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축일이 '주님 승천 대축일' 이고 '성령 강림 대축일'이다. 그러나 《에테리아 여행기》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4세기 말까지 주님의 승천과 50일째에 있었던 성령의 파견을 함께 기념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들은 둘 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완성으로 하나의 파스카 사건을 이루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를 제외한 다른 교회들에서는 이미 4세기에 부활 뒤 40일째 되는 날에 주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을 지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이날에 대해 여러차례 강론을 한 것으로 보아, 이미 주님의 승천 축일은온 땅에서 거행되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주님 승천 대축일〕 오늘날 그리스도의 승천은 대축일로 거행되고 있다. 이날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입당송)과 공동체 안의 영원한 현존(영성체송)이다. 본기도는 승천 사건에서 인간의 현양도 바라보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늘의 영광에 들어올려질 것이다(예물 기도). 제1 독서(사도 1, 1-11)와 제2 독서(에페 1, 17-23)는 3년 주기에도 해마다 변동이 없지만, 복음은 마태오 복음 · 마르코 복음 · 루가 복음을 번갈아 봉독한다. 이 축일의 신비는 두 개의 감사송에도 잘 드러나 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을 평일에 의무 축일로 지내지 않는 곳에서는 그 다음 주일로 옮겨 지낸다.
"승천 다음 성령 강림 대축일 전 토요일까지의 평일은 성령의 오심을 준비한다"(《전례 주년 총지침》, 26항). 이날들은 고유 미사 양식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성령의 파견에 관한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성령 강림 9일 기도가 일반 신자들의 신심에서 생겨났고, 이것은 후에 공식 전례에도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주님의 승천 뒤에 함께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과 하나가 된다. "이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부인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 (사도 1, 14).
〔성령 강림 대축일〕 부활 뒤 50일째 되는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은 부활 시기를 마감하는 날이다. 동방 교회들에서는 언제나 파스카 축제의 단일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로마 예식에서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독립적인 축일로 기념하였으므로 성령 강림 대축일에도 팔일 축제가 생겨났다. 그러나 전례 개혁은 '성령 강림 대축일 팔일 축제' 를 없애고 성령 강림과 주님 부활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부활 성야처럼 세례성사를 베풀었던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미사는 더 이상 전 토요일 오전에 거행해서는 안된다. 이 전야에는 고유한 전야 미사가 새로 마련되었으며, 이 미사는 성령 강림 축제를 시작하는 첫 미사이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파스카 신비를 오십 일 동안 기리게 하셨으니···"라는 본기도는 부활과 성령 강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고, 감사송은 다음과 같이 새롭게 바꾸어 파스카의 단일성을 매우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아버지께서는 파스카의 신비를 완결하시려고 저희를 독생 성자와 결합시키시어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오늘 성령을 가득히 내려 주셨으며, 성령께서는 새로 세워진 교회와 만민에게 천상 지식을 넣어 주시고,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신앙을 고백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 속에서 온 세상이 용약하며···."
성령 강림 대축일의 첫째 독서(사도 2. 1-11)는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강림하신 사건을 전해 준다. 밀을 수확하고 드리는 감사제요 시나이 계약의 완성을 기념하던 주간 축제, 곧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는 사건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계약의 새로운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교회안에 첫 열매들을 맺게 함을 뜻한다. 둘째 독서(1고린 12, 3b-7. 12-13)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생명을 주는 근원이심을 보여 준다. 복음은 전에는 예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성령의 파견을 약속하시는 말씀(요한 14, 23-31)을 봉독하였었지만, 새로 봉독하도록 한 단락은 주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의 뜻을 함께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부분으로, 부활한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령을 주시는 내용(요한 20, 19-23)이다. 캔터베리의 주교 랑톤(Stephan Langton, +1228)이 지은 부속가(Veni, Sancte Spiritus, 성령 송가)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장엄하게 찬미한 것으로 '금빛 찬가'(sequentia aurea)라고도 하였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붉은 색 제의를 입는 것에 대해 인노천시오 3세 교황(1198~1216)은 성령께서 불 혀 모양으로 내려오신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자들에게 성령 강림의 축제를 파스카 축제와 별개의 축제로 알아듣게 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큰 파스카 팔부(50일 축제)를 마감하는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은 중심 축일인 부활 축일의 전례 색과 같은 색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확실히 더 큰 뜻이 있을 것이다. (⇦ 망부활 ; → 부활 축일 논쟁 ; 성령 강림 대축일 ; 예수 부활 대축일 ; 전례력 ; 주님 승천 대축일)
※ 참고문헌 A. Adam, L'Anno Liturgico. Celebrazione del Mistero di Cristo, Torino Elle Di Ci, 1984, pp. 94~101/ M. Augé, AAVV(a cura di), L'Anno Liturgico. Storia, teologia e celebrazione, Anàmnesis 6, Genova, Marietti, 1988, pp. 127~145/ J.C. Cervera, L'Anno Liturgico. Memoriale di Cristo e Mistagogia della Chiesa con Maria Madre di Gesù, Roma, 1987, pp. 115~142/ M. Righetti, Manuale di Storia Liturgica, Milano, Àncora, 1956, pp. 206~246/ I.H. Dalmais · P. Jounel, 김인영 역, 《전례 주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pp. 63~74/ Normae universales de anno liturgico et de calendaro, 1969. 〔金宗秀〕
부활 시기
復活時期
〔라〕tempus Paschale · 〔영〕Easter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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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성야 미사는 '빛의 예식'으로부터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