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의 어느 날을 예수 부활 대축일로 정하느냐는 문제로 1~7세기 사이에 일어났던 여러 논쟁들을 총칭하 여 일컫는 말.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짜에 관하여 두 가지 관행이 공존하였다. 2세기에 소아시아, 곧 현재 터키의 여러 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의 과월절 전날인 니산(Nisan) 달 14일에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였다. 특히,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69~155), 사르디스의 주교 멜리토(?~190) 라오디게이아의 주교 사르기스(161~167경 재임),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아폴리나리오(2세기), 에페소의 주교 폴리크라테스(2세기) 등이 니산 달14일을 예수 부활 대축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quartodecimanism). 반면에 로마 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의 과월절 당일 일요일 또는 과월절 다음 일요일에 예수 부활 대축일을 거행하였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폴리카르포 주교는 말년에 아니체토 교황(154/55~1660)을 방문하여 서로 다른 동 · 서방 교회의 부활 축일을 통일하고자하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다만 서로 상대방의 관행을 존중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빅토르 1세(189~198/199) 교황이 예수 부활 대축일의 로마식 계산법을 배척한 에페소의 주교 폴리크라테스를 파문하자,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130~200)는 이러한 교황의 무리한 처사를 비난하였다(에우세비오, 《교회사》 V, 23~25항). 그 후 음력인 니산 달 14일이 태양력의 언제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해졌다. 왜냐하면 안티오키아 교회는 유대교 월력에 따라 춘분과 부활절을 정하였으나,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독자적인 월력을 따랐으므로 춘분과 부활절에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314년 아르스 교회 회의에서는 부활 축제를 어디서나 같은 주일에 지내야 하며, 로마의 주교는 관습에 따라 전교회에 날짜를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훈령은 효과가 없었고, 더구나 전 교회에 관계되는 문제였기에 콘스탄틴 대제는 이 문제를 공의회에서 다루도록 하였다. 325년에 개최된 제1차 니체아 공의회에서는, 동 · 서방 교회의 부활 축일을 통일하고자 동방의 형제들, 즉 일찍이 "유대인들과 같이 부활 축일을 지낸" 동방의 교구들(시리아, 칠리치아, 메소포타미아 등)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들과 기타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춘분 후첫째 주일에 축일을 지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또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들은 부활 축제일을 매년 산출하고 로마의 주교는 그것을 전 교회에 공고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니산 달 14일에 부활 축일을 기념하던 이들은 이러한 결정을 대부분 따랐다. 그렇지만 반대자들은 파문을 받았다. 341년 안티오키아 교회 회의 이후 동방 교회 내에서는 더 이상 대립이 없었으나, 이 결의 역시 부활 축일의 날짜를 통일시키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로마 교회의 월력은 84년 주기였지만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월력은 19년 주기로 19년에 7번의 윤달을 넣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춘분이 서로 달랐고, 그로 인해 춘분이 지나서 오는 보름 다음 주일인 부활 축일 날짜도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로마에서 활약한 수도자 디오니시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 470?~550?)가 525년에 교황청의 지시로 부활 축일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제1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결정한 방법을 채택한 그는 532년부터 626년까지 95년 간의 부활 축일 날짜를 미리 계산하여 축일표를 작성하였다. 그 결과 로마 교회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월력을 받아들였고, 6세기 이후에는 비로소 현실적인 일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켈트 교회는 7세기까지 이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8세기경 갈리아 지방에서는 이에 대해 약간의 차이 가 있었다.
그러다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에 의하여 개정되어 1582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그레고리오력(calendarium Gregorianum)으로 인해 동 · 서방 교회 사이의 부활 축일 날짜에 다시 차이가 나게 되었다. 율리오력(calendarium Julianum)의 시간 계산 방식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그레고리오력을 동방 교회에서는 수용하지 않고 율리오력을 고집함으로써 부활 축일 날짜가 서로 다르게 되었던 것인데, 그 차이는 한 달 이상까지도 벌어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황청은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율리오력에 따른 부활 축일 거행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가급적 같은 지방과 같은 국가에서는 같은 날에 부활 축일을 거행하도록 권장한다(동방 20항)고 발표하였다. (→ 디오니시오 엑시구우스 ; 예수 부활 대축일 ; 파스카삼일)
※ 참고문헌 《ODCC》, pp. 1037~1038/ 《Cath》 12, pp. 344~345/ Michel Clévenot, La Chrétienté a I'heure de Mahomet, Paris, Fernand Nathan, 1983, pp. 9~15. 〔鄭良謨〕
부활 축일 논쟁
復活祝日論爭
〔라〕controversia de data celebrationis Paschatis · 〔영〕Paschal controversy
글자 크기
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