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 본당

北青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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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교구 소속 침묵의 본당. 1935년 8월경 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 서리(北靑邑 西里)에 설립되었다가 1949년경 폐쇄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오틸리아. 〔역대 신부〕 초대 히머(K. Hiemer, 任竭忠) 갈리스도(1935. 8~10), 2대 파렌코프(W. Farenkopf, 朴偉明) 비트마르(1935. 10~1937. 7), 3대 엔크(D. Enk, 嚴光豪) 다고베르트(1937. 7~10), 4대 파렌코프(1937. 10~1942), 5대 푹스(A. Fuchs, 陳) 알프레드(1942~1945.3).
〔본당의 설립〕 북청 지방은 1930년경 전하건(全河建)과 전현(全鉉)이 서적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알고 함흥(咸興) 본당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 후 영흥(永興)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있던 히머 신부는 1935년 초부터 본당 설립을 알아보기 위해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하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식산(朝鮮殖産銀行)의 지점장 박봉노(朴奉魯, 요셉)와 예비 신자 방의석 등이 주축이 되어 8,500여 평의 성당부지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35년 8월경에 북청 본당이 설립되어 본당 설립에 공헌한 히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부임과 동시에 성당 신축에 주력하였으나, 두 달 만에 신설 흥남(興南)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고 2대 주임으로 파렌코프 신부가 부임하였다. 부임한 지 두 달 만인 12월 15일에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 집전으로 성당 축성식을 거행한 파렌코프 신부는, 교육 사업에도 남다른 열성을 가져 이듬해 8월 4년제 소학교인 해성학교(海星學校)를 인가 받은 후 1937년에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얻어 80여 평이었던 교사(校舍)를 증축하였다. 그러다가 그 해 7월초 덕원 수도원의 경리 신부로 전임되고, 경리 신부로 있던 엔크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본당 신자들이 파렌코프 신부를 다시 모시려 하였고, 또 마침 해성학교의 증축 문제도 결부되자 사우어 주교는 10월 15일에 파렌코프 신부를 북청 본당 4대 주임으로 재임명하였다. 파렌코프 신부는 이후 신자들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본당 정착에 주력하다가 1942년에 회령(會寧) 본당으로 전임되었고, 그의 보좌로 있던 푹스 신부가 5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나 1945년 3월 2일에 병사함으로써 북청 본당은 한동안 목자 없는 본당이 되었다. 그러다가 광복 후 공산 정권에 의해 1949년경 함흥교구의 다른 본당들과 함께 폐쇄되었다. (→ 함흥교구 ; 함흥 본당 ; 침묵의 교회)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한국어 자료집》, 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3집,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89/ 一,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 사업회, 1995. 〔金成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