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교를 위하여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산하에서 활동하는 위원회. 북한 선교위원회의 출범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 내에 '북한 선교부'를 설치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교회는 1980년대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그리고 제44차 서울 세계 성체 대회 등 뜻 깊은 행사들을 개최하였는데 , 이 중 특히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 교회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 내에 북한 선교부를 설치했던 것이고, 200주년 기념 행사가 끝난 후에는 주교 회의 산하의 공식 기구로 존속시킴으로써 북한 선교위원회의 활동이 가시화되었다. 위원회 활동은 대략 태동기(1982. 12~1985. 1), 기반구축기(1985. 2~1989. 10), 도약기(1989. 11~ )등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태동기〕 1980년 10월에 개최된 주교 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200주년 기념 주교위원회를 특별 위원회로 설치하고, 각 분과 위원회 단위로 실무적인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20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위원장 : 김남수 주교)는 대북한 선교 사업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1982년 9월 22일 이를 확정하고, 같은 해 12월 12일 북한 선교부장에 김몽은(金蒙恩) 신부를 임명하는 동시에 황춘홍 신부, 이한택 신부, 길홍균 신부, 도 토마스 신부, 이영자 수녀, 임남훈 수녀, 구 마리아 수녀, 현석호, 홍성철, 양한모, 노길명, 윤석인, 조광, 정덕기 등 15명을 북한 선교 사업 추진 위원으로 임명하였다.
200주년을 기해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되 점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는 기본 방향을 설정한 북한 선교부는, 선교사 양성과 선교물 제작, 선교사 및 선교물 투입, 선교 본부 정착뿐만 아니라 매월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제정하여 기도 운동을 전개하고, 전국 차원의 모든 행사에 북한 교회 각 교구 대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 등을 주된 사업으로 제기하였다. 그리고 1983년부터 실천 단계로 접어든 북한 선교부의 활동은 매년 실시되어 오던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 행사를 주관하면서 이를 위해 강론 자료와 메시지 등을 준비 · 배포하고, 북한 선교 사업을 연차적 사업 계획으로 세분하여 추진하였다. 20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 상임위원회는 1983년 11월 19일 열린 제6차 회의에서 북한 선교부 사업에 대한 실행 계획 및 1984년도 예산안을 심의 · 확정하고, 위원장 김남수 주교는 미주 교포 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고종옥 신부와 박창득(朴昌得) 신부를 북한 선교부 해외 활동 위원으로 추가 위촉하였다. 한편 1984년 1월부터 회보 <북한 선교>를 격월간으로 1만 부씩 발간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홍보 활동을 펼쳤으며, 그 해 3월에는 한국인 신부로서는 휴전 이후 최초로 고종옥 신부가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북한 선교부의 활동은 200주년 기념 행사의 종료와 함께 형식적으로는 끝을 맺었지만, 1984년 11월 20일 추계 주교 회의에서 "북한 선교부를 주교 회의 산하 직속 기구로 설치한다" 고 결정함으로써 이듬해 1월 14일자로 제반 업무를 마무리 짓고, 주교 회의 직속 기구로 재출범하였다. 이때 함흥교구장 서리인 이동호 아빠스가 담당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1985년 10월 23일자로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북한 선교위원회' 로 공식 명칭이 변경되었다.
〔기반 구축기〕 1985년도 춘계 주교 회의에서 북한 선교위원회의 활동을 뒷받침할 후원 조직의 구성이 인준되어, 같은 해 6월 23일 명동 성당 문화관에서 북한 선교후원회가 창립되었다. 창립 총회에서는 후원회 회장에 최상업, 부회장에 김병권, 조선종, 고문에 김기철, 문성원, 엄익채, 유백룡, 조동식, 현석호, 홍성철 등이 선임되었고, 이사와 감사도 각각 선임되었다. 북한 선교 후원회의 창립으로 대북 선교를 위한 재정적 기반 마련과 아울러 기도 운동의 구심체를 형성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북한 선교 후원회는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오후 6시 명동 성당에서 북한 교회와 대북 선교를 위한 월례 미사를 봉헌하는 한편, 후원회 지부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갔다. 그리고 1986년부터는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기도의 날 메시지>를 북한 선교위원장 명의로 공식 발표해 오고있다.
북한 선교 기반 구축의 또 다른 뼈대라고 할 수 있는 계몽 운동은 1987년 이후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대북 선교에 관한 세미나와 초청 강연 등을 실시하면서 그 윤곽을 다져 나갔다. 그리고 북한 선교위원회의 본격적인 연구 · 계몽 활동은 1988년 5월에 "통일 사목 연구소"가 창립됨으로써 획기적인 전환점을 갖게 되었는데, 국내외 유관 연구소들과 유대를 맺고 북한 사회에 대한 자료와 정보 수집 · 동유럽권 교회의 동향 분석 · 북한 교회의 재건 방향 연구 등을 목적으로 세워진 이 연구소에서는 연구 결과를 '통일 사목 연구 시리즈'와 '통일 사목 연구 논총' 등으로 모아 발간하였고, 통일 사목 강좌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또 제44차 서울 세계 성체 대회를 맞아 1989년 10월 6일에는 성체 대회 행사의 일환으로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본 한반도 평화' 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북한 선교위원회는 세계 성체 대회 행사의 일환으로 경기도 파주군 소재 비무장 지대 내 도라 전망대에서 평화 통일 기원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성체 대회에 참석한 각 나라 주교들과 함께 봉헌된 이 기원 미사에서 이동호 북한 선교위원장은 평화의 메시지를 통해 복음적 의미의 민족 화해 원리와 그 실천적 지표를 담은 통일 방안의 마련을 촉구하였다. 이후 1991년부터 같은 장소에서 매년 북한 선교위원회 주최로 평화 통일 기원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이처럼 북한 선교위원회의 활동은 성체 대회를 전환점으로 하여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게 되었다.
〔도약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서 냉전 구조가 해체되고, 동서독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등 세계 정세가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남북 관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북한 선교위원회는 1980년대처럼 단순히 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준비 단계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2000년대를 향한 대북 선교 전략을 수립하고 남북 관계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후원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제작하였던 회보 <북한 선교>를 기관지의 성격을 띤 《화홰와 나눔》으로 발간 형태를 달리하고, <통일 못자리>라는 정보 자료를 각 교구청과 본당 등 교회 기관에 배포하였다. 또한 남북 합의서 채택 등 남북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여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할 것을 주교 회의에 건의한 결과 1992년도 춘계 주교 회의에서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같은 해 6월부터 시행되었다. 한편 북한 선교위원회는 남북 관계의 발전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북한 선교를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교회 내의 각계 인사 30명으로 구성된 자문 회의를 1992년 4월 22일에 발족시켰다.
북한 선교위원회는 1991년에 신자들을 대상으로 대북 선교 및 통일 문제에 대한 의식 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일선 사목자들을 대상으로 의식 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화해와 나눔》에 게재하였다. 또한 북한 선교에 관한 내적 인식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의 관련 조문 내용을 연구 · 건의하였는데, 이에 따라 1995년 4월에 공포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서는 '북한 선교 라는 개념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면서 민족의 평화 통일에 대비하여 북한 교회의 부흥과 북한 동포의 복음화를 위한 사목적 역량을 갖추는 교회의 활동"(200조)이라고 정의되었다. 이와 함께 남북 관계의 변화와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통일 기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홍보하여 1992년도 추계 주교 회의에서는 1993년부터 각 교구별로 통일 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하였다.
북한 선교위원회는 기도 운동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철야 기도회'를 주관하고, 1993년부터는 분단의 현장에서 민족적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기 위하여 판문점 순례 기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북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중국 연변 지역의 용정(龍井)에 유치원을 건립하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을 파견하여 북한 선교를 위한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간접적 대북 선교 방식의 일관성과 체계적인 뒷받침을 위해 '북한 선교 협의회' 를 1994년 9월에 발족시키는 등 대북 선교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 특히 광복 50년을 기해 1995년도 추계 주교 회의를 거쳐 그 해 10월 21일 북한 선교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하여>는 한국 교회의 공식 입장을 대변한 일종의 통일 사목 지침으로, 대북 선교 활동의 구체적인 지침이 되고 있다. (→ 주교 회의 전국 위원회) 〔卞鎮興〕
북한 선교위원회
北韓宣敎委員會
〔영〕Committee for the evangelization of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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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매년 북한 선교위원회 주최로 봉헌되는 평화 통일 기원 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