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심 잡념

分心雜念

〔라〕distractio · 〔영〕distr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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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분심 잡념이라는 고통으로 성숙되어 간다.

기도는 분심 잡념이라는 고통으로 성숙되어 간다.

마음이 산란하고 주의가 분산되어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이 떠오름. 종교적으로 수도나 수행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생각을 가리키는 이 말은, 오늘날의 '주의 산만'이나 '주의력 산만'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기도를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올리는 것' 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의 대화' 라고 할 때, 하느님께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길 경우 일반적으로 '분심 잡념'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 묵상 기도 특히 추리적 묵상 기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떠한 형태로든지 추리 사고의 기능을 방해하는 제반 문제들을 의미한다. 즉 추리나 상상을 할 수 없는 무능력함 또는 생각을 과도하게 하거나 집중할 수 없는 경향"을 일컫는다.
〔원인과 형태〕 일반적으로 기도 특히 묵상 기도를 할때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분심 잡념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 분심 때문에 기도에 맛을 드리지 못하고 묵상 기도가 어렵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기도 생활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분심 잡념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측면이다.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은 어떤 일에 있어서 항구하게 집중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신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기도에는 인간의 역할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므로 인간 조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분심 잡념이 생기게 된다. 두번째 원인은 하느님 편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도가 인간 혼자의 독백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과 말씀 그리고 응답이 함께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때 분심 잡념이 생겨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분심 잡념을 불러일으키시기도 한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칫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행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영적 교만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기도 중에 분심 잡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인간들이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머무를 수 있게 하신다. 즉 하느님의 도움 없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하느님께 대한 근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시는 것이다.
"지성이 완전히 의식하면서 고의로 주의를 초자연적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여 어떤 다른 것으로 향하게 할 때, 이를 '고의적 분심'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지에 따르지 않고, 혹은 완전한 의식 없이, 흔히 어떤 인상이나 형상에 끌려서 분심이 일어날 때, 그 흩어진 마음은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기도 중 발생하는 분심의 가장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은 기도의 준비 부족 때문이다. 기도란 마음먹은 대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과 생활 전체가 기도와 연관되어 있으며 기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생활이 흐트러져 있거나 과도하게 세상사 특히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경우, 기도를 드릴 때 필연적으로 분심 잡념에 떨어지게 된다. 운동 법칙에 관성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충분한 물리적 · 시간적 단절이 필요하다. 만일 그 지속성에 의해 어떤 일에 몰두해 있거나 집착한 상태에서 바로 기도를 시작한다면, 그것에 대한 생각이 기도할 때에도 연장이 되어 분심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 중에 분심 잡념이 많이 생겨난다면 우선적으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하느님 앞에서 성찰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기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정신적 · 심리적 불안과 고통 그리고 신체적인 과로와 질병이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지 않을 경우 기도 중에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거나 유지하기가 사실상 어렵고, 특히 육체적으로 심한 피곤을 느끼거나 고통이 있을 경우에도 쉽게 분심 잡념에 빠지거나 쉬고 싶은 열망이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모으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
〔대 책〕 첫 번째로 무엇보다도 먼저 생활 전체를 특히 마음을 단순하고 깨끗하게 보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느님의 동반자로서 합당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하느님은 지극히 거룩하고 참되며 단순하고 티없으신 분이시므로 우리들도 이에 맞갖은 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끊임없이 '하느님 현존의 수업' 을 하여야한다. 일상 생활 안에서 자주 하느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원의를 자라게 해주며 사랑에 불타게 한다. 이러한 원의와 사랑을 충족시켜 주는 때가 바로 기도, 특히 묵상 기도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이때 더욱 열심히 기도에 마음을 모을 수가 있고 하느님을 향할 수 있다. 이러한 하느님 현존의 수업은 일을 시작하고 마칠 때에 기도하는 습관과 더불어 순간순간 하느님을 생각하고 봉헌하는 행위, 특히 화살 기도의 형태로 반복하거나 단순하게 그분을 바라본다는 느낌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올리면 된다.
세 번째는 "기도할 때 주님의 현존과 그분과의 친교의 의식이 선명하지 못하면 분심이 들기 쉽다. 그러므로 주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그분과 친밀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도할 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명백한 인식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 깨닫는 것도 분심에 빠지지 않고 좋은 기도를 바치는 바탕이 된다. 특히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과 친교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하느님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은 하느님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하느님을 대상화 내지 교리로 끝내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느님이 살아 계시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시며, 내곁에서 나의 말을 들으시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으로 느끼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네 번째로 기도 중에 살아 계신 하느님, 이 세상에 태어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계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기도이며 분심 잡념을 없애는 방법이다. 이것은 복음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상상하고 되새김으로써 분심에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분심 중에 있을 때 즉시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이의 모든 것' 이 되시기 때문에 기도의 동반자로 더욱 중요한 분이다.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그리고 어떤 필요성을 느끼든지 하느님 특히 그리스도는 적절하신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스승이고 주님으로서 어버이와 형제의 모습으로 착한 목자나 나그네의 모습으로 그리고 친구나 정배의 모습으로, 당신의 모습으로 드러내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분으로 언제든지 우리에게 당신 사랑을 드러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할 때 분심에 떨어질 위험이 그만큼 적어진다.
다섯 번째로는 기도할 때 '절실한 마음이나 원의'를 가지고 하느님을 만나면 그만큼 분심은 줄어들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가장 즐겨 들으시나, 사실 절실하고 간절하게 기도드려야 할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중재자의 역할이다. 이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과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의미하며, 하느님과 이웃 사랑의 총체적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령과 함께 이웃의 고통과 필요를 나의 것으로 삼아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을 때 분심에 빠져 들 기회는 없어질것이다.
여섯 번째로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기도드리는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에 무관심해지고 마음이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마음이 불타 오를 때 기도를 바치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미지근한 상태에서 기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로인해 마음이 멀어지게 되고, 이것이 분심 잡념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죄 중에 있다면 하느님께 이를 열어 보이고 용서를 청하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묵상할 수가 있으며, 분노와 미움 중에 있다면 시편 작가들처럼 하느님께 정의의 심판을 요청할 수도 있다. 절망에 빠져 있다면 십자가 위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이를 통해 '자아 인식과 하느님 인식' 이라는 기도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고, 또 그만큼 분심 잡념에서 멀어지는 기회도 된다.
일곱 번째로는 '분심 잡념' 중에 있음을 깨달았을 때 지금 드리고 있는 기도의 제반 환경 및 조건과 내용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있었다면 밖으로 나와 자연 안에서 산보하며 기도할 수도 있고, 앉은 자세에서 기도하였다면 장궤 틀이나 의자에 앉아 계속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을 달리하거나, 추리 묵상을 하고 있었다면 상상에 의한 묵상으로 전환할수도 있고, 보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십자가나 성화를 바라보며 하느님과 대화하거나 현존을 체험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여덟 번째로 지금까지 제시한 여러 방법을 실천해 보아도 기도할 때마다 분심 잡념이 계속된다면 근본적으로 자신의 기도 방법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교회 전통 안에는 여러 가지 묵상 기도 방법이 있는데, 그중 어떤 기도 방법은 자기 신앙의 정도나 혹은 기질에 따라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신중하게 다른 기도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즉 '이냐시오 묵상 기도 방법' 혹은 '가르멜 묵상 기도 방법' 등 자신에게 적합한 기도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도 기도에 전념함으로써 분심 잡념을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성격상 추리 묵상 기도'를 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은 마음으로 기도드리는 '잠심(潛心) 기도'를 함으로써 그만큼 좋은 기도를 바칠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다면 분심 잡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분심 잡념은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라는 극히 이질적인 존재의 만남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의식적인 분심 잡념' 이 아니라면 의지적으로 기도를 계속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흙탕물이 가득 찬 잔에 깨끗한 생수를 부어 넣을 때 일어나는 찌꺼기가 바로 기도에서의 '분심 잡념' 에 비유될 수 있으므로, 참된 기도를 바치기 위하여 거쳐야 될 과정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그리고 분심 잡념과 싸우는 과정도 참된 기도라고 할 수 있으므로 너무 '분심 잡념' 에 기도의 성과를 판단하지 말고, 분심 잡념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의지적으로 하느님과 결합되도록 노력하거나 분심 잡념에 떨어질 때마다 빨리 하느님께 돌아오는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신앙이 십자가라는 고통으로 성숙되어 가듯이 우리의 기도 생활도 분심 잡념이라는 고통으로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 관상 ; 기도 ; 묵상)
※ 참고문헌  정대식, 《기도와 삶》, 가톨릭출판사, 3판, 1988/ 김보록, 《기도하는 삶》, 생활성서사, 1988/ 예수의 데레사, 최민순 역, 《완덕의 길》, 성바오로출판사, 1992/ 一, 서울 가르멜 수녀원 역, 《천주 자비의 글》, 분도출판사, 2판, 1984/ 《가톨릭 사전》 P. Marie-Eugene de L'E.-J., Je veux voir Dieu, Editions du Carmel, 1963(부산 가르멜 수녀원 역, 《우리의 묵상 기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Teresianum, L'oraxione mentale, Teresianum, Roma, 1965. 〔趙雲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