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경 아테네에서 시작한 철학 사조. 견유학파의 명칭은 '개' 〔犬〕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κύων'에서 유래한다. 이 학파의 대표적 사상가로 아테네의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of Athens, 기원전 483~375), 시노페의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 기원전 410~320), 테베의 크라테스(Kratess of Thebes, 기원전 365~258)가 유명하다. 스토아 학파를 창시해 유명해진 시티움의 제논(Zeno of Citium, 기원전 336~264)도 원래는 크라테스의 제자였 다. 안티스테네스는 소크라테스가 임종할 때 가까이 있었던 충실한 제자였고,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과의 대화로 더욱더 유명해진 그 사람이며 크라테스는 견유학파와 스토아 학파를 연결시켰다.
〔사 상〕 견유학파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저술한 저서는 남아 있지 않으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픽테투스 등 다른 사상가들이 단편적으로 서술한 것은 많다. 견유학파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무엇보다 중시했기에 개성이 강하다. 예를 들어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과의 대화는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일화는 권력의 정상에 있던 알렉산더 대왕이 거지처럼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가장 희망하는 것이 무엇이며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돕겠다는 말을 했을 때, 디오게네스는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견유학파가 얼마나 무소유와 청빈의 가치를 사랑했는가를 알려 주는 한 예이다. 견유학파가 주장하는 공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관념이나 보편보다 감각이나 개체를 중시하였다. 때문에 감각론자이며 유물론자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안티스테네스는 소크라테스 제자가 되기 이전에 회의론자 고르기아스의 제자였다. 플라톤의 《대화》에는 다음과 같은 의견 대립의 내용이 나온다. 안티스테네스는 플라톤에게 "나는 한 마리의 양을 보고 있다. 그러나 마성 (馬性, 말의 이데아)은 보이지 않는다" 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플라톤은 "안티스테네스는 감각이 있지만 이성은 없다"고 대답한다. 이것을 보면 안티스테네스는 프로타고라스 편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비슷한 대화가 디오게네스와의 대화에서도 나온다. 플라톤이 이데아에 관해 묻고 테이블이나 컵의 이데아를 말할 때, 디오게네스는 "나는 하나의 테이블이나 컵은 보지만 테이블이나 컵의 이념은 볼 수 없다"고 대답한다. 따라서 견유학파의 인식론은, 보편 개념은 마음속에만 있을 뿐,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별적 사물이라고 주장하는 유명론(Nominal-ism)의 초기적 입장임을 알 수 있겠다. 플라톤은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소피스트》 대화 편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이들은 만져 볼 수 있거나 쓰다듬어 볼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개념 규정에 의하면 물체와 존재는 하나이며, 동일하기 때문이다." 견유학파의 이러한 유물론은 뒤에 와서 스토아 학파에게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친다.
둘째, 금욕적 삶을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에 쾌락적 삶을 경시했다. 바로 이러한 입장도 스토아학파에게 이어지는데 이 점이 견유학파의 강점으로 보인다. 안티스테네스는 "쾌락에 굴복하기보다는 광인인 것이 더 좋다"고 선언할 정도로 육체적 쾌락을 악이라고 평했다. 디오게네스의 금욕적 행위에 관한 일화들 중에는 뜨거운 모래 위에서 몸을 굴리고 또는 겨울에 눈으로 덮인 동상을 껴 안음으로써 금욕적 삶을 실천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시즈위크(Sidgwick)는 그들이 육체적 쾌락을 멀리한 것은 그러한 욕망을 얻더라도 무가치한 것에 대한 고통과 불안이 따른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티스테네스는 그의 주저 《헤라크레스》를 통해 극기, 노고 및 불굴 등을 이상으로 하는 삶이 얼마나 좁고 험한 길인가를 보여 준다. 여기서부터 '참아라, 쾌락을 버려라' 고 하는 스토아 학파의 주장이 시작된다.
셋째, 물질적 풍요로움을 경멸하고 청빈의 기쁨을 찬양하는 삶을 선택한다.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유를 잃어버린 구속된 삶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유와 자기충족(autarkeia)을 지향하여 돈이라는 것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테베의 크라테스는 자기 고향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덕(arete)을 숭상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다 버리고 거지 생활을 선택하였다. 성 프란치스코에 앞서서 견유학파의 성인의 상을 보여 준 크라테스는 자기 충족의 단순성, 고독, 자유를 찬양하며 악한 사람들은 갈 수 없는 페라 섬의 주민들을 쾌락이나 황금의 노예들과는 거리가 먼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묘사한다. 그가 꿈꾸는 왕국은 싸움이 없는데 검약과 검소가 지배하는 곳에는 모든 것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넷째, 문명과 문화가 주는 혜택을 멀리하며 순수한 자연 상태를 찬미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는 가르침은 바로 문명 사회가 악을 수반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명인의 법이나 제도도 모두 부당하다고 보았다. 디오게네스는 가진 것이라고는 물을 떠마시는 호박 그릇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도 어느날 개가 그릇 없이도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 그릇마저 버렸다고 한다. 문화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역사를 등지고 살아간 철저한 자연주의자였던 디오게네스의 자연관에 비하면 루소(J.J. Rousseau)의 자연은 너무나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다섯째,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반국가적, 반사회적 인물들로 비난받을 수 있으며 법과 예절을 모르는 반도덕, 무법의 사람들로 배척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경계를 무시하고 그들 자신을 세계 시민으로 자처하며 정치적 국가 권력을 넘어서는 무한한 자유의 세계를 지향하였기 때문에 세인들의 비난이나 비판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또한 그들의 강점인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에 휩쓸려 살아가는 인간을 교화하는 도덕의 선생, 영혼의 의사 역할도 했다. 외투, 배낭,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며 구걸하는 견유학파 설교사는 고대 사회에서는 낯익은 모습이었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1세기에 이르는 동안 견유학파는 로마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스토아 학파의 등장과 함께 견유학파는 다시금 빛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스토아 학파의 모든 사상가들은 디오게네스를 존경했고, 특히 에픽테투스는 견유학파의 이념을 열렬히 극찬하였기 때문이다. 스토아 학파와 함께 견유학파는 로마 제국의 사치와 도덕적 부패에 대항하는 운동을 일으켰는데 스토아 학파는 귀족 계급에게 호소했고 견유학파는 대중들을 설교했다. 루시앙(Lusian)이 견유학파 사람들은 무지하고 속되다고 비난할 정도로 엉터리 사기꾼으로서 견유학파를 흉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뛰어나고 존경받는 진짜 견유학파의 사람들이 전통을 이었다. 디오크리소스톰, 데모낙스와 가다라의 에노마우스 (Oeonomaus of Gadara) 등이 중요하고 유명한 견유학파의 전승가들이었다.
〔견유학파와 그리스도교〕 견유학파의 이상은 집 없이, 거지나 방랑자가 되어 자연인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었기에, 어떤 점들은 그리스도교가 포용할 수 있었다. 견유학파와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관해서는 다만 단편적 증거가 있을 뿐이다. 견유학파로서 팔레스티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수용되고 연결된 사람으로서 기원후 1세기에 살았던 페레지니우스(Pereginius)를 들 수 있다. 그는 수년 후 어떤 일로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배척받았고 16년 올림픽 축제 중에 분신 자살했다. 120년 시리아 출생의 《디아테사론》의 저자인 타시안(Taian)은 성 유스티노의 제자였는데 나중에 그노시스파로 전향했고 이단적 자기 억제의 단체를 창립했으며 그 생활 방식이 견유학파의 방식과 비슷했다. 4세기경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의 친구였던 알렉산드리아의 막시무스는 견유학파인들처럼 검약하게 살아 그레고리오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성 바실리오도 디오게네스의 금욕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인내와 무관심을 강조한 견유학파의 특성은 다른 이교도들의 사치와 방탕에 강력하게 대응해서, 그리스도교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견유학파의 부정적 측면과 탈선도 있었지 만, 아마도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등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금욕주의는 견유학파의 이념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그리스 철학)
※ 참고문헌 D.R. Dudley, A History of Cynicism, London, 1937/ R. Hoistad, Cymic Hero and cymic King, Uppsala, Sweden, 1949/ F. Sayre, Diogenes of Sinope, A Study of Greek Cynicism, Baltimore, 1938/ The Greek Cynics, Baltimore, 1948/ K. von Fritz, Quell enuntersuchungen zu Leben und Philosophie des Diogenes von Sinope, Philologus, Supplementbond 18 : 2, Leipzig, 1926/ F.D. Caizzi, Antisthenes Fragmenta, Milian, 1966. 〔洪鍾律〕
견유학파 犬儒學派
[라]cynicus · [영]cy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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