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오, 루도비코 루이지(1606~1682)

Buglio, LudovioL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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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오 신부가 번역 · 간행한 《성사 예전》.

불리오 신부가 번역 · 간행한 《성사 예전》.

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한역 서학서 저술가. 신학자. 세례명은 루도비코. 중국명은 리류사(利類思). 자(字)는 재가(再可)
〔생 애〕 1606년 1월 26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스프랄루스(Spralus) 교구의 모네오(Moneo)에서 조반니 안토니오 불리오(Giovanni Antonio Buglio) 남작의 아들로 태어나 팔레르모(Palemo)에서 교육받고, 16세 때인 1622년 1월 29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626년부터 로마의 안코나(Ancona) 대학과 페르모(Fermo)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수사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그 후 로마 대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163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젊은 나이였음에도 그는 로마 대학교의 인문학과 수사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동양 선교의 '제1 세대' 라고 할 수 있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rancis Xavier, 1506~1552) 신부가 동양 선교사의 조건으로 젊고 유능한 학자를 요청하자 이 조건에 적합한 인물로 불리오 신부가 선발되었다.
1637년 중국에 도착한 그는 뛰어난 어학 재능을 발휘하여 한문과 중국어를 습득하였는데, 당시 중국에 있던 서양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중국어 실력을 갖게 되었다. 1640년에 중국에 도착한 포르투갈 출신의 마갈렌스(Gabriell de Magalhaens, 安文思, 1609~1677) 신부와 합류하여 사천(泗川) 지방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 불리오 신부는,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경(重慶)과 강서 지방에 복음을 선포한 선교사이기도 하다. 그는 관리 및 선비들과 교분을 맺으면서 세례성사를 집전하고 성당도 건립하였는데, 그가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던 시기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는 정치적 과도기였기 때문에, 그의 선교 활동은 억류와 혹사로 점철되었다. 1644년경 사천 지방이 부패한 명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장헌충(張獻忠)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그의 선교 사업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장헌충의 박해와 폭정으로 수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였고, 불리오 신부도 억류되어 그의 건축 사업에 철저하게 이용당하다가 중국을 통일한 청나라 군사들이 사천 지방을 점령한 1647년에 구출되어 북경으로 호송되었다. 청나라 군사들은 북경에서 학자와 현인으로 존경받던 살 폰 벨(Adam Schall von Bell, 1591~1666) 신부를 통해 서양 선교사들의 명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648년 북경에 도착한 불리오 신부는 순치제(順治帝)로부터 저택과 국록을 받고, 교회의 건축 허가도 얻어내어 동당(東堂)을 건립하였으며, 황후에게 세례를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회 선교사들을 보호하던 순치제가 죽고 8세 된 강희제(康熙帝)를 보위하는 대신들에 의해 섭정이 이루어지자, 선교사들에 대한 중상과 모략이 시작되었다. 1661년 불리오 신부를 위시하여 살 폰 벨 신부, 마갈렌스 신부, 페르비스트(F. Verbiest, 南懷仁) 신부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중국의 법에 어긋나는 종교를 설교한 죄, 반역죄 그리고 잘못된 천문학을 가르친 죄로 고발되었다. 불리오 신부는 재판을 받으면서 반론을 제기하였지만 투옥, 고문, 석방 그리고 추방이 거듭되다가 결국 1664년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1665년 4월 16일 혜성의 출현과 함께 대지진이 일어나자, 이러한 자연 현상이 천명을 어긴 것이라고 생각한 청나라 황실은 투옥된 선교사들을 석방시켰다. 그리고 학문을 숭상하는 강희제가 친정(親政)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불리오 신부는 다시 선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강희제가 서양의 천문학, 지리학, 수학의 탁월함에 감복하여 자신도 선교사들에게서 서양 학문의 기초를 배울 정도로 선교사들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불리오 신부는 해박한 수학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달력 개혁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동물 사육법이나 매 사냥법뿐만 아니라 서양화의 원근법도 불리오 신부에 의해 최초로 중국 화가들에게 소개되었다. 또한 신학, 전례학, 윤리학, 기도서에 이르는 방대한 한역 서학서를 저술하였는데, 이 저술들은 오늘날까 지도 중국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학술적 공헌과 덕성으로 인하여 황제의 신뢰와 존경을 받던 불리오 신부는, 1682년 10월 7일 북경에서 사망하여 국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의 묘비에는 중국에서 행한 업적들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출생지인 미네오시에서도 도심을 '불리오 광장' 이라 명명하여 그의 업적을 기념하고 있다. 18~19세기에 사신으로 중국에 갔던 실학파 계통의 조선 학자들이 북경에서 접하였던 한역 서학서 중 다수가 불리오 신부의 저술들이었는데, 이는 그가 1668년에 북경에서 간행한 《성교요지》 (聖敎要旨, Compendium doctrinae christianae)가 정약종이 저술한 《주교요지》의 원형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번역서 및 저서〕 불리오 신부는 주로 그리스도교와 서양의 학문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동양으로 전달하는 획기적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서양사에서는 최초의 그리고 17세기 최고의 중국학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인 선비들과 협조하여 무려 80권이 넘는 교의학, 윤리학, 호교론 관계 서적을 한문으로 저술하고 번역하였는데, 좀머포겔(Sommervogel)의 도서목록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한역 서학서 목록만도 3면에 달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제1부와 제3부를 《초성학요》(超性學要)라는 제목으로 완역하였다. 30권에 이르는 이 책은 1654년에서 1682년까지 북경에서 간행되었으며, 1932년에는 상해에서 중간(重刊)되었다.
이 밖에도 윤리 신학에 관한 논문을 한문으로 저술하였으며, 미사 경본(Missale Romanum)인 《미사 경전》(彌撒經典, 북경, 1680)을 5권으로 나누어 간행하였고, 성무일도서(Breviaium Romanum)인 《사탁과전》(司鐸課典, 북경, 1674~1675)과 성사 집전에 관한 《성사 예전》(聖事禮典, 북경, 1676)을 번역 · 간행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번역 작업은 그리스도교의 보편화와 토착화 정신의 발로이며, 예수회의 초기 선교사들이 동양 선교를 시작할 때부터 지녔던 이러한 정신은 한역 서학서의 저술로 드러났다. 그래서 이들 한역 서학서들은 동양과 서양이 종교적 · 학문적으로 만나던 초기의 역사뿐만 아니라, 17세기 서양의 신학과 철학이 지니고 있는 정신과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당시 예수회 선교사들은 단순히 현지인 사제를 양성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철학과 학술 서적을 번역 소개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현지인 사제들이 교리와 전례를 이해해서 그들의 고유한 언어와 방식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대한 사도적 정신을 실현했던 것이다. 모든 전례가 라틴어로 행해지던 서양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번역 작업은 문화에 대한 상대적 이해와 토착화를 목적으로 한 예수회 특유의 계획과 활동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교황 바오로 5세(1605~1621)는 1615년에 중국인 사제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모국어로 전례를 행하고 성사를 집행할 것을 공식적으로 인준하였지만 실행되지 못하였고, 1681년에 이르러 쿠플레(Philip Couplet) 신부가 이 인준의 재가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이것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불리오 신부의 사도적 정신은 한역 서학서로 남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예수회 ; 중국)
※ 참고문헌  李約瑟, 《中國科學技術史》(Joseph Needham,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vol. 4, Phrysics and Physical Techmoloy, part Ⅲ, Civil Engineering and Nautics, Cambridge), 1971, pp. 111ff/ Bollandus etc. ed., Acta Sanctorum, XIII , Paris, 1643, 123 Diss. xlviii/ G.H. Dunne, Generation of Giants, Notre Dame, 1962/ Cordier, Bibliotheca sinica, I , Paris, 1881, p. 514/ Ménologe S.J., Assistance d'Italie/ R. Streit ed., Bibliotheca Missionum, V, Freiburg, i. Br., 1916, pp. 768ff/ Sommervogel, Bibliothèque de la compagnie de Jésus, Ⅱ , pp. 363ff/ La Civiltà Cattolica,n Roma, 1850, 78(1927), Ⅰ : pp. 301~310, 504~513, Ⅱ : pp. 322~330/ E. Lamalle, 《EC》 3, pp. 189~190/ J. Schiitte, 《LThK》 2, p. 762. 〔申昌錫〕